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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35화 (43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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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게제라스의 집무실에 불라온이 오늘도 출근도장을 찍듯이 찾아왔다.

‘어림도 없지.’

“아니, 영주님이 안 오셨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게제라스가 불라온 세파르섹의 신경을 긁었다.

“하지만 벌써 3일이 지났지 않은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기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대산 너머에 계시오. 몽펠리에니까 내 이렇게 말해주는데···.”

게제라스가 헛기침을 하면서 입을 다시 뗐다.

“영주 님께서는 대산 너머에 큰 흥미를 느끼고 계시오.”

“그건 잘 알겠소. 하지만 이대로 계속 기다려야 하오?”

게제라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스핀 경을 보냈으니. 곧 올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재촉하지 말아 주십시오.”

게제라스는 존대를 깍듯하게 하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이에 불라온이 또 한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상대가 약한 소리를 하면 쿡 하고 찌르는 게 귀족의 어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해보라는 소리요. 봉화를 올리던가. 제국 전신갑주는 매우 급하다고 그렇게 우리가 늦게 온 것에 대해서는 큰소리를 빵빵 치더니, 불파겐 자작은 왜 늦는 거요?”

종횡무진 대화체를 바꾸는 게제라스는 순식간에 표정까지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지금 그게 할 말인가! 늦게 왔으니 다른 볼일이 있어서 가버린 것이지! 영주 님께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몽펠리에를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어디에 있나! 엉!”

게제라스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는데, 불라온은 저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드낙 불파겐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자였다. 또한, 반박할 말도 없었다.

실제로 록시 몽펠리에에게서 말실수를 더는 하지 말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질라크 또한 별 영향력 없는 잡것들에게는 본성을 드러내지만, 게제라스에게는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는 사과할 수밖에 없겠다.’

“미안하오. 하지만 우리는 마법사 전력을 다섯이나 데리고 와서 하루가 흐를수록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정 아쉽거든, 마법사들을 일단 몽펠리에 장원이나 주변 마을을 돕는데 써주시오. 드낙 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요.”

불라온 경은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질라크에게 드낙의 호감을 위해서 마법사들을 사용하자고 말할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대신, 록시에게로 향했다.

“레이디 록시. 질라크님과는···”

시녀에게 차를 받으면서 불라온이 입을 열었지만 록시가 손사래를 치자 입을 다물었다.

외교관이 꿈이고, 실제로 재능도 그곳에 있는 록시에게 있어서 질라크의 언행은 실로 어리석은 자의 것이었기 때문에 언급조차도 싫어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질라크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어렸을 적부터 강하고 혹독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천생이 오만하다고 해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인내심은 있었다.

“알아서 어련히 잘하겠죠. 석지 마을에 땅 정령을 위해서 돌을 퍼다 옮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갔다던데요.”

실로 그다웠다.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음험한 생각을 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나빴다. 딴에는 술을 베풀어주겠지만, 그 속을 알고 있는 록시는 기분이 나쁘기만 나빴다.

“실은 방금 총관에게 다녀왔습니다.”

불라온 경이 총관과 있었던 대화를 말했다.

“게제라스 총관이 정말이지 막 나가는군요.”

록시는 일단 불라온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어서 총관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영주의 왼팔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자작님이 호수 마을에 보름이 넘도록 기다렸으니까요.”

“끙.”

그게 그녀가 할 일이었다. 서로 각을 세웠다면, 조금 완화해주는 역할인 셈이었다.

‘곧 총관도 오겠지. 안 오면 이상하지. 그렇게 배짱을 부렸는데.’

지금까지 안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드낙이 먼저라는 뜻이기도 했다.

게제라스는 외척에게 박쥐와도 같은 존재로 보이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바로 들킬 것이다. 시녀들이 많기 때문이다.

벙커에 들어가서 궁리를 하는 게 아니라면 능히 좋은 계획들과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로 게제라스는 지금까지 벌려놓은 것들을 빠짐없이 쥐고 있어야 했다.

업보나 다름없었지만, 동시에 돌아오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내정관의 꿈을 더욱 단단하게 할 수 있었고, 지금 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꿈을 이루고 그 꿈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탁.

불라온이 찻잔을 조용히 마시고, 내려놓았다. 소리가 제법 크게 나자 불라온의 눈이 동글해졌다. 이에 록시가 눈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소리가 크게 나는 재질로 만든 겁니까?”

“네. 재미나죠? 당황스러운 표정은 실로 오랜만에 보네요.”

“짓궂으십니다.”

잠깐 분위기가 환기되었을 때, 록시는 제국 전신갑주에 대해 말했다.

“가주께서 왜 그런 판단을 내리셨는지. 전 아직도 걱정인데, 너무 성급한 것 아닐까요?”

“불파겐 영지에 마법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 아닙니까? 급하게 해야지만 안전한 일입니다.”

또한 불라온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작의 무력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하나가 강하다고 해서 다른 것까지 강한 것은 아니다. 드낙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무력에 대한 소문을 자주 들은 록시의 판단력이 현혹되었다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는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는 인간입니다. 또 제가 록시님의 편을 든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최대한 협조를 해주십시오.”

록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찝찝했다. 그가 돌아간 뒤에 오후 늦게 게제라스 총관이 찾아왔다. 창문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불라온 경이 왔지요?”

“예. 그것 때문에 오셨나요?”

게제라스가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님이 부재중이지 않습니까. 걱정되어서···”

“무슨 딴짓을 하겠어요? 나중에 어찌 될지 알고. 자작님께 최대한 설명해 드리고 해야 할 일인데요. 제가 잘 말해두었으니 총관도 너무 그들을 강하게 대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게제라스는 금방 사라졌다. 몽펠리에와 자주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티가 역력했다. 상황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5일이 지나서 파이룬 가문 또한 도착했다.

그들은 고작 12명에 불과한 사람들을 보냈는데, 마법사가 하나뿐이었다. 부관 노릇을 하는 기사도 없었고, 직계에서 떨어져 나간 방계인 <파이아룬>의 기사가 책임자로 있었다.

파이룬 가문은 독특한 방계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는데, 직계라도 방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잘 없었지만, 가문 초기에는 그러한 일이 종종 있었다.

<파이룬> -> <파이아룬> -> <바파이아룬>으로 성씨가 3곳이었고. 그 외의 다른 성씨를 지닌 파이룬 계열 귀족들은 모두 외부에서 유입된 공적자들이었다.

“블라온 경 아닌가.”

<빌 파이아룬>이 마중 나온 이들 중에서 불라온 경과 면식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다음으로는 질라크와 인사를 했고, 게제라스 다음으로 도렌과 인사를 했다. 이스핀은 드낙에게 향했으므로 없었다.

“세 개의 가문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저녁 식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질라크가 말하자 게제라스는 그렇게 하도록 했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이런 날에 함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법 성대한 저녁 식사가 열어졌다. 그곳에는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부인들도 참석했다. 킹슬레이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 외의 다른 이들은 아쉽게도 호수 마을에 없었다.

레이시아 플래티넘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아 있었으므로 실로 그러했다.

“자작님께서는 대체 언제 오는 것이오?”

“이거 실망이오. 몽펠리에 쪽은 일주일을 기다렸다고 들었는데. 마법사 여섯을 어허, 어허.”

“영주가 부재중이면 총관이 대리자가 되면 될 것을, 꼭 기다려야겠소?”

“무거운 일이기는 해도 서로 신뢰관계가 두터운데. 너무한 처사 아닌가.”

“내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보름 기다렸다고 우리보고 보름을 똑같이 기다리라고 하는 심보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오?”

“영주로서의 판단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지경 아닌가.”

머릿수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이번 저녁 만찬에서 게제라스는 전과 다르게 크게 소리치지 못했고, 말로 두들겨 맞았다. 그러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마음껏 떠들어라.’

게제라스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어졌다. 이 모든 것이 저 귀족들이 제대로 속고 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도렌은 식사를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압박에 시달렸다.

그만큼 날이 서 있는 공격이었고, 도렌은 감당하지 못했다. 질라크는 오히려 그런 도렌의 나약한 모습에 사타구니가 벌떡 설 정도였다. 선하고 나약한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정말이지 짜릿했다.

질라크의 포크를 든 왼손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갔다.

호되게 두들겨 맞은 게제라스는 도렌을 챙겼다.

“괜찮나?”

“예. 그래도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습니다.”

“자네 얼굴이 새파라네. 사제에게 가야겠어.”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마법사들이 모두 도착하고 3일이 더 흐르고 나서야 드낙이 호수 마을에 도착했다.

“트롤을 잡아왔군.”

질라크가 무미건조하게 드낙이 가져온 전리품을 구경했다. 트롤은 세 마리에 달했지만 질라크를 감탄하게 하지는 못했다. 체중이 무겁고 체고가 높은 트롤은 기사급이라면 누구나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롤에게 죽는 기사도 많았지만, 죽은 기사는 유명해지지 못했으므로 거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인간은 없었다.

반면 불라온 세파르섹과 빌 파이아룬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목만 깔끔하게 날아갔다. 그것도 절단면이 매끄럽다.’

인간 같지 않은 드낙의 힘이 느껴졌다. 저 높은 곳으로 롱소드를 휘둘러서 목을 한 방에 쳤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떤 비전을 사용했을지 절로 궁금해졌다.

‘기습이라고 해도 무릎이나 다른 곳을 밟거나 머리에 올가미를 걸어서 올라타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기습이 아니었다. 두 명의 기사가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하였다. 자신의 체중까지 합치면 근 100kg이 넘는 것이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였다. 점프력이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오래 기다렸나?”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가장 앞에 선 질라크에게 물었다. 이에 질라크는 짧게 목례를 하며 대단히 예의를 지켰다.

“전혀 아닙니다. 자작님. 트롤을 세 마리나 토벌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많은 시민이 불파겐의 이름을 칭송할 것입니다.”

“칭찬이 도가 텄군. 대산 너머에 마을은 고작 하나뿐이라, 그들이 좋아할지 모르겠어.”

모두가 드낙의 말에 웃음을 한가득 지었다. 회장님의 말에 깊이 집중하고 있는 회사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제국 전신갑주 때문에 왔겠지?”

“예! 몽펠리에에서는 마법사 다섯을 데려왔고, 파이룬 가문은 하나를 데려왔습니다.”

명확하게 두 가문이 작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면이었다. 왜냐하면 둘은 경쟁 상대인데 파이룬은 마법사를 적게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통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냥 흘러버릴 정도로 작은 단서에 불과했다.

드낙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하지. 기다리다가 지쳐서 내 대산에 토벌을 하러 갔는데, 이렇게 마법사들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하기는 싫다.”

“바로 회의소로 이동하겠습니다.”

게제라스가 드낙의 말을 받으면서 선두에 섰다. 딱 호랑이 기세를 빌려 쓰는 여우 같은 모습이었다.

‘연기 잘하네.’

드낙이 속으로 고소하게 웃었다. 부인들은 게제라스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기에 이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큰 원탁에 몽펠리에와 파이룬이 가져온 제국 전신갑주가 올려졌고, 많은 이들이 들어왔다. 원탁에는 귀족들과 드낙의 부인들 그리고 드낙의 가신들이 앉았고, 벽에 있는 의자에는 마법사들이나 수행원들 그리고 시녀들이 앉았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마법사가 일어났고, 질라크가 마법사를 짧게 소개했다.

“이 마법사는 몽펠리에 마법사 중에서 가장 으뜸입니다.”

“불리 몽 위저드라고 합니다.”

자기 키보다 높은 지팡이를 쥐고 곧은 몸을 하고 있었지만 거북이 목을 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늙은 모습과는 다르게 피부는 고왔고, 주름이 적었다.

“제국 전신갑주에는 큰 결함이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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