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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케샤스는 몇 달 전부터 완전무장을 하며 <깊은 녹색 숲>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총관의 긴급명령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정관이고, 드낙의 왼팔인 게제라스 총관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무시할 정도로 케샤스는 멍청하지 않았다. 또한 긴급명령서는 이번에 처음 받아봤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도 컸고, 체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전에 받아본 적이 없어서 호들갑을 떤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너무 강렬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식물을 짓이겨서 나는 냄새가 케샤스의 <전투 로브>에서 풀풀 풍겨왔다.
<조용한 화살>이라 불렸던 케샤스는 사실 후각이 뛰어난 순찰자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후각에 대해서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장점으로 승화되었다.
상대 또한 숲 냄새가 강렬한 이곳에서 독특한 후각을 못 받도록 숲 냄새를 덕지덕지 붙이기 때문이다.
숲길에는 순찰자들이 나뭇가지를 후려쳐서 인위적으로 만든 달빛이 내려오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밑에 야영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숲을 거치는 자들을 잘 보기 위해서였고, 그들 또한 어느 시간대에서든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해질녘에는 주홍빛이 그 야영지에만 가득하니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야영지를 못 찾아서 밤에 쩔쩔매던 이들은 달빛으로 잘 볼 수 있었다.
그곳을 케샤스는 유심히 봤다.
‘확실하군.’
여자가 부풀어 오른 로브를 하고 있는 게 절로 보였다. 분명 마법사였다.
순찰자의 로브는 부풀어져 있지만, 갑각류처럼 매끈하고 딱딱하다. 하지만 마법사가 입은 로브는 부들부들하다. 안에 공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둥둥 떠 있고, 어느 곳이 올라가면 다른 곳은 내려가는 등, 대류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구름이 로브 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으로 순찰자와 마법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순찰자인 케샤스는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잠들고, 불침번을 서는 남자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새하얀 연기가 수풀에서 삐져나오며 바람을 타고 남자에게 흘러들어왔다.
“크어엉···”
코를 크게 한 번 골며 남자가 그대로 화덕에 얼굴이 떨어져 내렸다. 케샤스는 가볍게 어깨를 끌어안으며 천천히 남자를 마차에 기대게 했다.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고, 남자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툭툭.
로브를 노크하듯이 건드리자 로브가 펄럭이며 페리에 러셀의 머리를 감쌌다. 푸른 아지랑이가 살짝 보이며 페리에 러셀을 깨웠다.
“으!”
페리에가 기겁하며 일어났다. 눈을 감고 있던 망막에 푸른 마력이 약하게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진정하십시오. 페리에 러셀 마법사님.”
“순찰자. 이게 무슨 짓이죠?”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게제라스 총관님의 명령서를 받아서 그렇습니다. 자리를 피하시지요.”
페리에가 몸을 일으켰다. 어둠으로 들어간 케샤스가 향한 방향으로 가기에는 겁이 절로 났다. 달빛이 내려앉은 곳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빛 하나 없는 숲의 어둠.
페리에는 등을 굽히며 짧은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면서 왼손을 허공에 더듬으려고 했다. 그 손을 케샤스가 잡아주며 페리에를 나무 뒤쪽에 숨겼다. 3걸음 움직인 것이 전부였다.
“무슨 명령서죠?”
“당분간은 <둥근 언덕 마을>에서 지내라고 하십니다. 저 이주민들은 광산 마을의 이주민이 될 것입니다.”
“마을의 이름만 들어도 멀어 보이네요. 그리고 전 호수 마을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했어요. 이건 너무 강압적이네요. 저에게 약속한 것과는 다르고요.”
“트롤 1마리분의 부산물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거로 넘어갈 것 같나요? 하지만, 불파겐 자작님과의 계약 관계를 위해서 이번에는 제가 굽힐게요. 다음은 없어요.”
페리에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내용 자체는 냉철함이 깃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주민들은 <둥근 언덕 마을>에 오자마자 한 명의 안내자에게 이끌려서 하루도 못 쉬고 그대로 호수 마을로 향했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둥근 언덕 마을에서 이방인.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평범한 복장을 하고, 사냥꾼처럼 활을 어깨에 멘 케샤스가 페리에가 지낼 집으로 안내했다. 절로 마법사의 대우를 알 수 있었다.
“여깁니다.”
“나무···집인가요?”
페리에가 눈을 반짝였다. 양쪽에 큰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고, 서로 가지가 뒤엉키면서 하나가 되어서 쭉 위로 올라간 형태였다. 그곳에 구멍을 뚫고, 나무를 덧대어서 집을 만든 것이 페리에가 일시적으로 지낼 곳이었다.
“쌍나무집입니다. 보시다시피 3층짜리 집입니다. 저렇게 보여도 나무는 살아있고, 아직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페리에가 감탄했다.
“정말요?! 무슨 마법이죠?”
“순찰자의 방식입니다. 마법은 일절 들어가 있지 않죠. 중요한 것이 있다면 뿌리 관리 정도일 겁니다.”
페리에가 눈을 감았다. 벌써부터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마법을 만들자. 성장 마법을 중심에 두고, 마법진으로 정도를 제어하면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겠어. 아니지! 나무를 덧댄 곳을 바위로 만들면 내구도가 더 강해지니까, 변화 마법을 더 크게 쓰는 게 좋겠어.’
“···님?”
“마법사님?”
페리에가 정신을 차렸다. 스승에게 마력을 쪽쪽 빨리면서 마법사로서의 소양을 쌓아왔기에 마력이 전신에 차고 돌자 절로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죄송해요. 딴생각을 좀 하느라···”
“괜찮습니다. 가구들도 다 들여놓았습니다. 청소도 미리 해놨고, 3일에 한 번씩 사람이 와서 청소를 해줄 겁니다.”
“고마워요.”
페리에가 쌍나무 집으로 들어갔다. 몸을 돌린 케샤스는 그길로 <총관의 긴급명령서>를 불태웠다. 인장 또한 말끔하게 태워졌고, 재로 남았다.
마법사의 은폐는 가장 중요했다. 게제라스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모르고, 토치라이트 가문에 종사하던 알버트 스펜서의 제자인 페리에 러셀을 스카우트 한 서신을 오래전에 보냈었다.
엎질러진 물과도 같은 것이 이 시대의 편지였다. 결국 케샤스의 선에서 일을 처리해야 했고, 케샤스는 그것을 완수해냈다.
‘대체 왜 마법사를 숨기라는 건지.’
케샤스로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법사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사막에 물을 손에서 쏟아내고.
꽁꽁 언 호수에 물고기가 펄떡 뛰며 낚시대에 걸리게 해주며.
곡물 창고에 일어난 거친 불꽃을 순식간에 꺼트리는 존재가 바로 마법사였다.
‘모든 분야의 해결사!’
그런 걸 그냥 숨기고만 있다니 케샤스는 아쉬움이 컸다. 물론 그런 인재를 숨겨야 할 정도로 밑에서 뭔가가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모르고 있는 게 편하지.’
케샤스는 그 움찔움찔하는 검은 것을 건드리기는 싫었다.
*
화염처럼 붉은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가 마차에서 내렸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제법 높은 언덕에는 망루가 세워져 있었다.
‘허, 정말이지 허접하군. 성벽도 없이 그저 망루 하나로 초원을 보살피다니.’
“불라온 경, 저 초원을 보게. 저렇게 광활한 곳을 망루로 막을 생각을 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형편없는 영지가 아닌가.”
<불라온 세파르섹>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필시 기병이 많을 것입니다.”
“흥.”
<질라크 몽펠리에(Zilak Montpellier)>.
아크온의 동생인 그는 바세안 토성을 지나서 파충류의 초원에 도달했다. 이들 무리는 50명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그들이 먹을 한 달 식량만 해도 짐마차 15대가 넘었다. 정규병 45명에 마법사 5명으로 이루어진 무시무시한 대군이었다.
평범한 마을은 물론이고, 웬만한 토성 하나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이었다.
병력은 적었지만, 마법사가 다섯에 기사도 둘이었다. 이들의 등장으로 초원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씨, 씨발!”
가장 먼저 용병들이 빤스런을 쳤다. 이실레아가 있는 곳으로 도망쳤는데, 다수를 상대로 절대 싸우지 말라고 들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신속한 빤스런이었다.
“으하하하!”
그 모습에 질라크 몽펠리에가 배를 부여잡으면서 웃었다. 거리가 한참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대로 도망치는 모습이 정말이지 미치도록 불쌍했기 때문이다.
‘저 꼴 봐라. 저거.’
비루하기 짝이 없는 병신들을 보는 것은 질라크의 큰 재미였다. 경박하고 자만하며 귀족적인 질라크는 실로 가학적인 취미를 지니고 있었고, 항상 어리석은 자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자였다.
어리석은 농민은 귀족에게 땅을 빌려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질라크의 성향을 바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20기의 기병과 1명의 기사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허! 저 영물은 대체 무엇인가!”
이실레아가 투구를 벗고, 인사를 위해 다가왔음에도 질라크는 발룬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늘 높이 솟은 뿔과 새하얀 단모는 깔끔했다. 뭐가 묻어도 금방 털이 뽑히고 새로 났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백색을 유지하는 것이 발룬이었다. 그 영롱한 모습은 실로 비현실적이었다.
“발룬입니다. 대산의 영물인 것을 불파겐 자작님이 길들였고, 저에게 빌려주셨습니다.”
이실레아는 그런 무례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자리에 도렌이 없다는 것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도망친 용병들을 추슬리고 있었다.
“그래? 이런 곳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영물이군.”
“꾸우.”
발룬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울었다. 이에 질라크는 발룬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목소리는 별로야. 내 것이었다면 성대를 뽑아버렸을 텐데. 하하하. 지금이라도 침묵 마법이 걸린 목걸이를 선물해줄 수 있는데. 어떤가. 아마, 그게 분명 나을걸세.”
“신호용으로 쓰고 있어서···.”
“그래? 하긴. 마법사가 없으니 작은 신호완드를 쏘아 올리기도 힘들겠어. 쯧쯧.”
질라크는 말하는 것에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이실레아는 고급인력과 인사를 나누었다. 질라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슷한 말을 언급했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백금 왕가 덕분에 마법사 전력도 북부 중에 가장 많으신데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불라온 경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물론 매우 정중했고, 존대하여 자신이 낮음을 미리 알렸다.
“커흠. 이거 죄송하게 되었소. 제국 전신갑주에 크나큰 결함이 존재해서 그것을 확실하게 하려고 늦었소.”
“겨, 결함 말씀입니까?”
이실레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럴 만도 하지. 제국 전신갑주가 얼마나 비싼 건데. 큰 결함이 있다고 들었으니.’
불라온 경이 속으로 웃었다.
“기괴한 제국 기사가 쓰던 것 아니오? 그 슬라임 같은 것들이 쓰던 전신갑주인데 인간이 제대로 쓸 수 있겠소?”
이실레아가 절로 수긍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마법사들과도 인사를 하시오. 최고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왔소.”
“예.”
이실레아가 뒤로 향하자 불라온이 투구를 썼다.
‘마법사가 없는 걸 탓해라.’
마법사들 또한 이실레아의 연기에 꿈뻑 속아 넘어갔다.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세상을 돌아다녔던 이실레아였다. 이곳에서 경험으로 이실레아를 이길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그다음에 호수 마을에서 <게제라스 총관>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질라크는 미리 정보를 들었기에 이실레아와는 다르게 게제라스에게 자신을 인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말을 끊어버리고 소리쳤다.
“이게 몽펠리에의 뜻인가! 왜 이렇게 늦은 건가!”
손가락질까지 질라크에게 해대었는데 질라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블라온 경이 앞에 나서서 게제라스를 나무랐다.
“보자마자 역정을 내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경우는 무슨 경우! 가장 먼저 그렇게 고생해서 전신갑주를 보냈는데 몽펠리에건 파이룬이건 소식 하나 없더니 그냥 이렇게 나타나 와놓고 경우를 찾는 게 무슨 경우요!”
“이것 참···”
질라크가 질색했다. 절로 말을 뒤로 물렸다.
‘천박하기는.’
블라온 경이 게제라스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질라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놈이 불파겐의 왼팔이라고? 멋스러움은 하나도 없구나.’
구질구질했다. 진흙탕 같은 천박함을 가장 싫어했는데, 그 짓거리를 하니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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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누구인가? 누가 이브에 밖을 나가려고하는가?
저놈입니다! 저놈이 커플입니다!
잡아라!!!!! 모조리 잡아들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