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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32화 (43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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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펄 발드의 군세가 가지는 단점 중에 지금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언덕을 빼앗기 힘든 기병의 속성이라는 것이었다. <토벽 언덕>은 기병의 약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두두두!

“뀌익!”

멧돼지가 흉한 소리를 냈다. 숲에서 만난다면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꽁꽁 언 것처럼 움직이지 못할 만큼 덩치가 큰 멧돼지들이었다. 펄 발드들은 언덕 아래를 돌면서 사정없이 무기를 던지고 활을 쏘았다.

투둑! 휘익! 휙!

펄 발드들이 쏘는 화살과 창은 언덕 아래에서 쏴졌기에 맞아도 가죽에 박히기만 할 뿐, 뚫지를 못했다.

“하하하! 하나도 안 아프네!”

<애송이 용병> 하나가 한 번 맞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웃으며 머리를 드러냈다.

퍽!

“궥.”

투구에 창이 걸려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 새끼가, 또 지랄이네. 야! 야! 살아있냐?”

옆에 있던 용병이 쓰러진 애송이를 챙겼다. 흙 때문에 피를 흘려도 티가 나지 않았다. 뒤통수를 만지자 피가 묻어나왔는데, 살점이 덜렁거리면서 용병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끌려오자 기겁을 했다.

“이런, 씨발.”

피 묻은 손을 흙에 비볐다.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팔 하나가 잘려도 살아남는 인간이 있는 반면에 그냥 넘어진 것만으로도 죽는 인간이 있었다. 모두 운이었다.

그 속에서 발룬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떡하니 토벽 위에 앞발만 올린 채 머리를 높이 들고 있었다. 그 위에는 이실레아 또한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다.

티잉.

전신갑주는 힘없는 타격음만 울렸고, 발룬은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털이 단모였기에 맞으면 맞는 대로 타격이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하얀 피부에 멍 하나 들지 않았고, 하얀 털에 피하나 묻지 않았다.

되려 펄 발드의 수준 낮은 무기 관리 때문에 녹이나 흙 혹은 검댕이가 묻었다. 모닥불을 피우면서 무기로 모닥불을 뒤집거나, 장작에 꽂아서 밀어 넣는 것이 분명했다.

‘형편없군.’

“반격을 시작하라!”

“반격 시작!”

용병 대장이 이실레아의 말을 복창하며 악을 질렀다. 곳곳에서 철소리나 돌이 나무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났고, 밖에서는 펄 발드들이 시끄럽게 굴었다.

“방패 올리고!”

“발사!”

애송이 용병이 허망하게 죽은 것과는 다르게 용병들은 훈련한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방패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한 번 막고, 다시 웅크리면서 뒤에 있는 사람의 화살이나 투창이 쏘아졌다.

겨냥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건 펄 발드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덕 위의 토벽에 숨어있는 인간들을 보고 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멧돼지의 충성도가 너무 높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 넓은 초원에서 펄 발드와 동고동락을 한 것이 멧돼지들이었다. 돌에 맞아도 도망치지 않았고, 고삐가 없어도 능숙하게 머리를 원하는 곳으로 돌렸다.

그 충성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주 보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돌격하는 것은 힘들겠어.’

이실레아가 단번에 견적을 뽑았다. 단 1초 만에 모든 정황이 들어오고, 결과가 쏟아져나왔다.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천재적인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두 수를 앞서나갔다.

‘내가 나서도 5마리 이하로 밖에 못 죽인다.’

적들이 워낙 띄엄띄엄 있었기 때문에 발룬으로 돌격하며 뇌격을 쏜다고 해도 많이 휩쓸지 못할 것이다. 또한 추격하기에는 멧돼지들의 충성심이 높았다. 죽기 살기로 도망칠 것이고, 그 순간에도 펄 발드들은 강한 유대감으로 공격할 터였다.

그건 이실레아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큰 피해를 줘야만 한다.’

유목종족인 <펄 발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병민일치(兵民一致)였다.

병사가 곧 백성이라는 소리였다. 그건 강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했다. 권력자의 눈으로는 백성도 병사처럼 싸울 수 있으면 큰 강점으로 여기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약점이 될 수 있었다.

‘가족단위로 서로 뿌려져 있지만, 서로 다 아는 놈들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의 경계를 하지만 서로 술도 마시고, 거래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가 되어서 지금 이렇게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자연히, 큰 피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실레아는 펄 발드를 한 방에 큰 피해를 줘야 했다.

강병처럼 보이지만, 큰 피해를 입으면 잡졸이 되어버리는 것이 병민일치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용기를 절망으로 바꾸게 하기 가장 쉬운 놈들이지.’

“뒤로!”

“꾸엉!”

이실레아가 말하자 발룬이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펄 발드들이 더욱 거세게 함성을 질렀다. 겁을 먹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신호는 안 쏩니까!”

용병대장 하나가 소리쳤다. 미리 말한 것과 이실레아가 하는 짓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버텨라! 펄 발드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크다!”

“예에!”

이실레아가 칼같이 대답하자 용병단장이 고개를 전장으로 돌렸다. 독기가 가득한 카리스마에 압도되었다.

“숙여라! 너도, 너는 계속 쏘고!”

이실레아는 등을 굽혀서 돌아다니면서 반격하는 이들을 절반으로 줄였다. 자연스럽게 펄 발드들은 여유로움을 되찾았다.

스슥!

이실레어는 엉덩이를 땅에 대고, 양팔을 뒤로한 다음에 그대로 발로 토벽을 걷어찼다.

“흐아압!”

기합까지 넣어서 여러 번 치자 토벽 한 곳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크아아아!!!”

펄 발드들이 그 모습을 보고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1/3으로 반격이 더 줄어들자 기회라고 생각한 펄 발드 하나가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이다! 놈들이 더는 쏠 게 없다!”

“어차피 몇 놈도 없다! 적기병을 대비할 놈들 빼고 나머지는 하나 되어 쳐부수자!”

“우! 구! 우! 아!”

펄 발드들은 독특한 소리를 냈다. 돌격 신호이기도 했는데, 중기병이 아닌 이들은 돌격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돌격 신호가 따로 있었다.

둘둘 언덕을 빙글빙글 돌며 지랄을 떨던 펄 발드들이 하나로 모였다.

짧은 시간 속에서 이실레아가 무너진 토벽의 바닥에 웅크렸다. 발룬도 배를 깔고 앉았다. 다른 용병들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창이나 칼 혹은 둔기를 쥐고 있었다. 창을 쥔 용병 빼고는 모두 방패를 하나씩 모두 가지고 있었다.

또 용병의 태반이 나무 방패를 하나 더 등에 지고 있었다.

펄 발드를 상대할 때는 방패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가고, 나머지는 뒤따라서 오면 된다. 기병들 또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볼 테니, 결코 걱정하지 마라.”

“예!”

용병대장들이 소리를 냈다. 이곳에는 6개의 용병단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만큼 이실레아의 기병 우회는 펄 발드들에게서 시간을 많이 빼앗았다.

언덕 위에 있는 인간들의 숫자가 몇 명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반응만으로 맹신한 펄 발드 130여 마리가 그대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 소리와 흉흉한 짐승소리가 들려왔고, 알 수 없는 언어도 흘러나왔다.

이실레아는 한쪽 팔로 발룬의 목을 단단히 둘러매면서 손에 고삐를 겹겹으로 묶었다.

“펄 발드가 보이면 바로 달려가.”

“꾸우.”

발룬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콧김을 뿜더니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이실레아 또한 그 힘에 편승하며 일어나 발을 하나 그대로 몸에 걸쳤다. 이실레아의 몸이 옆구리에 있는 채로 발룬이 거칠게 뛰어갔다.

“이야아아!!!!”

그 뒤를 용병들이 따라갔다.

이실레아는 순식간에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눈에 펄 발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던져라!!!”

펄 발드들이 그대로 그물과 슬링, 창 따위를 던졌다.

퍽!

“억!”

용병이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슬링에 맞고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다른 용병과 뒤엉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펄 발드보다 시야가 낮아서 기습처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형편없이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쩌억!

번갯불이 터져나갔다. 드낙과 싸울 때만 해도 전신을 번개로 가득 메꾸었던 발룬이지만, 훈련을 통해서 오직 전방으로 뿌릴 수 있게 되었다.

“그그그극!”

펄 발드는 물론이고, 멧돼지들까지 전격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낙마하는 이들이 30마리는 되었고, 피부가 타는 이들이 10마리는 되었다. 범위를 최대한 넓게 했기에 공격력은 낮았다.

그런데도 대단한 공격이었다.

퍼억!

발룬은 낙마 되건 말건 우직하게 밀고 들어갔다. 발로 걷어차고 밟고, 밀어붙였다.

“우와아아아아!!!!”

펄 발드의 일점사격에도 살아남은 용병들은 계속해서 뛰어나갔다. 무기를 내려찍고, 방패로 후려치고 발로 혀가 튀어나온 채 기절한 펄 발드의 골통을 후려쳤다.

서걱!

이실레아의 특수 장검 또한 휘둘러질 때마다 피를 뿌렸다. 상대가 공격하든 말든 몸으로 맞아주면서 적을 베는 데에만 집중했다. 때때로 투구를 노릴 때면 장검을 쥔 양손을 역으로 쥐어서 튕겨냄과 동시에 내려 찔러서 공수를 한 수에 담아냈다.

두두두두!

“펄 발드를 죽여라! 이실레아 경을 따르자!”

도렌의 목소리가 평야에 울려 퍼졌다. 20기에 달하는 경기병들이 거침없이 펄 발드에게 달려들었다. 이실레아에게 시선이 집중되어있었고, 끔찍한 뇌전에 수십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렸기에 도망치기 바쁜 펄 발드들이었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챙기기 급급했다.

“<환상급습(Illusion Raid)>!”

도망치는 펄 발드들이 말 머리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더니 다시 말 머리를 돌리거나 측면을 친 도렌 쪽으로 말 머리를 옮기기도 했다.

“뭐하는 거야!”

펄 발드가 발악하듯이 엉뚱한 데로 가면서 말이 서로 부딪치자 화를 냈다. 그 목에 그대로 화살이 박혔다. <바세안 토성>을 거점으로 사용하며 마적질을 했던 기수들이었다.

얼추 근거리에서 쏘는 활은 운만 따라주면 목에도 화살이 박힐 수 있었다.

양쪽으로 공격을 허용하자 펄 발드들이 사정없이 무너져내렸다. 도렌의 <킹슬레이 전신갑주>에 담긴 환상 마법 때문에 후퇴하는 시간이 더더욱 길어졌다.

그 덕에 살아남은 펄 발드는 30마리가 되지 못했다.

“도렌 경! 펄 발드들이 버리고 간 가축들을 데려오시오! 용병들은 확인사살을 하고 휴식을 취한다!”

“예!”

“예!”

<파충류 초원>의 북부는 그 전투를 끝으로 그대로 인간들의 것이 되었다. 가족이 무너지고, 북부 초원에서 살던 펄 발드들의 생존자들은 그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가져온 가축들도 모두 인간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용병들에게 전리품의 1할을 내어주겠다.”

용병들은 앞으로도 많이 필요했다. 더 많은 용병 유입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이실레아가 하라는대로 했기 때문에 매우 용맹한 용병들이었다. 사실상 거의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었지만, 그럼에도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는 놈들이 있는 법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용병들이 이실레아의 말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펄 발드들의 가축은 숫자만 해도 4천 마리가 넘었다. 1할이면 400마리였다.

기수들에게는 각자 가축 40마리가 주어졌다. 20명 모두 살아남았기에 그것만으로도 800마리가 소모되었다. 나머지 2, 800마리는 국고로 귀속될 것이다. 이실레아는 딱히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게제라스는 몰라도 드낙님은 절대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녀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호구라고 말하지만, 이실레아는 권력을 잡고도 그렇게 행동하는 드낙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권력을 잡는 순간 인간은 바뀔 수밖에 없는데. 참 대단하신 분이시다.’

병권을 쥐기 위해서 드낙을 공격한 이실레아였지만 지금은 드낙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00마리에 달하는 트롤 부산물을 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조용하게 지낸다는 것은 대나무같은 뚝심과 강력한 인내심이 있어야 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몽펠리에의 인장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기사 마차>에 같은 문양이지만 조금 작은 기사 마차가 나란히 섰다.

그곳에서 내린 몽펠리에의 기사는 고풍스러운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에는 식사를 위해서 테이블이 많이 놓여 있었는데 중앙에 작은 분수가 있었고, 곳곳에 그림과 흉상이 놓여 있었다.

싱싱한 생화도 꽃병에 담아있어서 여관 내부에는 꽃향기가 많이 났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울 정도로 먹는 양이 많았다.

“아크온님. 오랜만입니다.”

“어. 자네가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아크온이 크게 반겨주었다. 일어나서 악수하고, 껴안아주었다.

“<불라온 경>. 트롤 토벌전 이후로 처음이지?”

“네. 하셨던 일은 잘되었습니까?”

“영리한 검은 늑대 부부였어. 전신갑주의 마법을 써서 겨우 잡았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가주님의 서한입니다.”

그 말을 하며 불라온은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금박으로 둘러싸인 채 있었고, 잡아당기면 그대로 양피지가 펼쳐지는 식이었다.

“어지간히 급한 일인가 보군. 이런 건 처음으로 받아보는데.”

아크온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서한을 받아들인 아크온의 표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리고 뭔가 불명예스러운지 목까지 얼굴이 새빨개졌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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