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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드낙은 혼자 지하실에 앉아서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이 조용하자 자연스럽게 화가 누그러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불씨는 언제든지 남아있었고, 장작만 들이밀면 다시 타오를 것이다.
한 번 누그러져서 꺼질 불꽃이 아니었다.
“영주님. 냉수를 가져왔습니다.”
드낙은 반은 마시고, 반은 덮어썼다. 차가운 감각이 몸을 지나갔다.
“계속 말을 해보겠습니다.”
“아니.”
“예?”
게제라스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화를 가라앉힌 짧은 시간 동안 드낙도 제법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다. 그것밖에 답이 없다. 소규모로 박살을 내든, 성을 하나 쳐부수든. 뭐라도 무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어 나올 놈들이다.”
“결단코 안 됩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드낙은 되레 큰소리를 냈다.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그게 지금이고!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결코 안 된다. 그리고 피묻은 검이 한 자루도 없다면, 이번 같은 일이 똑같이 또 벌어지겠지. 왜? 이득이 되니까!”
보통 전신갑주도 아니다. 제국 전신갑주였다. 그 능력은 대장쥐 때문에 드낙은 능히 알고 있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피를 뿌린다면 득보다는 해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책은 아닙니다.”
“총관이 생각하는 상책은 그럼 뭔가? 내가 말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나?”
“예. 제가 감히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드낙이 누그러져 있자 게제라스가 이야기를 진전시켰다. 가장 먼저 영지전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화가 식었을 때 먼저 후려쳐야 하는 것이었다.
“불파겐의 역사를 아시지요? 힘으로 해결하고, 강자존의 뜻으로 살아간 역사 말입니다.”
“모를 리가 있나?”
드낙이 수긍하면서도 날카롭게 반응하자 게제라스가 입에 침을 묻혔다. 손바닥에 땀이 절로 났다.
“불파겐 영지는 동부지만 북부 귀족들과 잘 어울렸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힘으로 해결했고, 결국 모든 귀족과 왕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먼저 검을 빼 들어 북부와 영지전을 벌인다면, 북부는 다시 불파겐과 척을 지게 될 것입니다.”
북부는 질긴 쇠심줄과 같았다. 공격을 받는다고 항복하는 적이 없었고, 큰 위험 속에서는 순식간에 하나로 뭉쳤다.
“···백금왕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게 될 것이고. 근데, 내가 먼저 시작한 건 아니지. 말은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닌가.”
“검을 먼저 뽑는 것은 저희가 되는 거 아닙니까? 시작을 먼저 한 것과는 다르지요.”
드낙이 다리를 달달 떨면서 눈을 추켜올려 천장을 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부글부글 뭔가가 끌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건 불합리함이었다.
사기를 친 놈은 저놈인데 자기는 주먹을 휘둘렀다고 경찰한테 가해범으로 몰린 격이었다.
물론 당사자로써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X같은 법이라고 할 만했다. 사기를 당했는데 그 사기범을 쳐 팰 수가 없다니. 지금이 딱 그러했다.
“불파겐의 역사 때문에 손이 묶여있다고 보셔야 합니다. 먼저 칼을 뽑으면 역시 불파겐이라며 옛날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겁니다. 그럼 다시 저희는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게제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피를 내서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를 뿌리게 된다면, 영지는 피폐해질 것입니다. 저희는 자급자족은 가능하지만, 자체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서적을 많이 본 게제라스였다. 천재적이지는 않지만, 똑똑하고 박식했다. <자급자족>과 <자체성장>을 구분하여 말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드낙을 설득할 힘이 되어주었다.
“알겠다.”
영지전과 피를 뿌리지 않겠다는 게제라스의 요구를 수락하자 게제라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데도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 분노를 그냥 공(空)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놈들은 어찌 되었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보복해야지요! 이번 일이 얼마나 큰일인데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요!”
게제라스가 벌떡 일어나서는 감정을 크게 올려서 외쳤다. 앙상한 주먹을 허공에 훙훙 휘두르다가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쇼를 해야만 했다.
‘살 떨린다. 진짜.’
지금 당장이라도 드낙이 말에 올라타서 혼자라도 <파이룬 하늘성>이나 <몽펠리에 성>으로 달려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 말을 들어봐 주십시오. 아주 크게 박살을 내어드리겠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말입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은 철과 밀을 내놓을 것이고, 불파겐 영지의 남과 서에 있는 장원이 서쪽에만 있게 이전되고 축소될 겁니다.”
그렇게 허공에 주먹질하며 당당하게 외치고 나서는 보상부터 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드낙이 가지고 있는 화를 짓누르고 바위로 단단히 틀어막고 둑을 세워서 흘러나오는 것도 철저하게 막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해야지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다.’
드낙의 분노는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그가 마음먹는다면 정말로 북부는 거친 내전 속에 휘말릴 수 있었다. 또한 게제라스 같은 문인들에게는 그 전쟁이 불러올 <남부 왕국>의 역량 소모는 미래로 향하는 길을 멀게 만들고, 영광으로 향하는 계단을 무너뜨리는 것임을 잘 알았다.
전쟁은 권력자 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인류의 발전 가능성을 결과적으로 저해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인류를 위해서 드낙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불파겐 세력은 땅을 얻어도 관리를 할 수 없었으므로 전쟁을 하더라도 얻는 게 적었다. 많은 재물을 받아도 북부가 망하면 동부는 고립될 것이다.
‘고립되면 우리도 망한다.’
북부가 몰락 -> 제국이 냉큼 북부로 진격 혹은 동부로 향하는 길목 차단.
북부가 몰락 -> 백금왕가가 동부로 향하는 길목 차단 + 북부로 인력 투입.
“이렇게 되는 겁니다. 특히 제국은 영주님에게 열다섯에 달하는 제국 기사를···”
“그래! 그래! 내가 아까 알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자네의 해결 방법이나 한번 말해보게!”
보상을 말하고 난 뒤에 게제라스가 가져온 양피지에 공식같이 쓰면서 재차 당부하자 드낙이 신경질을 냈다.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게제라스에게 자문하러 온 것만으로도 자제심과 인내심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결혼동맹까지 했는데, 제국 전신갑주에 눈이 돌아가서는! 이게 대체 내가 이러려고 이딴!”
드낙이 분을 삭였다. 게제라스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걸, 이걸 참아야 한다니.’
뚝뚝!
드낙이 손가락의 관절을 뚜둑 소리를 냈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당장에라도 화병이 날 것 같았다.
‘지금도 저 먼 곳에서는 내 뒤통수를 칠 망치를 만들고 있는데.’
“흐으으음!!!”
드낙이 입을 꾹 다물고 콧김을 황소처럼 내뱉었다.
“전쟁하면 결국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무너질 겁니다.”
“······”
드낙이 손을 주먹 쥐며 테이블에 놓고, 엄지만 들어 올렸다. 머리를 숙여서 눈에 꾹꾹 눌렀다. 그다음에는 게제라스가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합당하고, 옳은 일이었고, 그나마 객관적인 판단이었기에 그럴듯한 말이기도 했다. 인정해야만 했다.
“···계속 말해라.”
게제라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그러니까, 아직 공식적으로 뒤통수를 맞지 않았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속아주는 척하면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 뭉치가 있지 않은가.”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팽팽 돌리며 아니라고 말하였다.
“아니지요. 그리한다면 관련된 마법사만 죽으면 되는 일이 됩니다. 꼬리를 자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일은 큰데, 문제가 터진 시기가 빠르면 거기서 끝입니다. 대부분 가문의 일원이기에 자기 가문을 위해서 죽을 것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아차 싶었다.
‘그렇지. 이곳 사람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써버리지.’
인간은 영원불멸하지 않고, 그렇기에 가문과 국가같이 더 오래 영속하는 것을 위해서 죽는다. 그때는 그랬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고 수 세대가 흐른 현대는 허무주의의 팽배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거친 대양(大洋)을 등대 없이 항해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지금은 그랬다.
물론 드낙은 이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다. 그런 삶을 살아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텨야 한다는 거네.”
‘뭔가 와신웅담 같다.’
뭔가 멋이 나서 드낙은 마음에 들어 했다. 뭔가 영웅적인 행보 같아 보였다. 제대로 사자성어를 모르는 건 한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주 쓰지 않아서 생긴 고질적인 병이었다.
“그다음에는?”
드낙이 제법 게제라스의 해결법을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에도 총관은 이마에서 주르륵 흐르는 땀을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말해나갔다.
지하실은 서늘했음에도 온몸에 땀으로 범벅된 것이 총관이었다. 한 번이라도 헛디딤을 하면 전쟁 발발이기 때문이다. 병력이 적어도 <드낙 불파겐>, 개인의 무력은 충분히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전쟁 뒤가 문제지만.’
점령하지 못하는 땅은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되갚아줘야지요. 아내들 또한 그 과정을 봐야 합니다. 그리되면 빼도 박도 못할 것입니다. 전신갑주의 수정 요구 뒤에 저희 영지에 마법사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전신갑주를 수정하다가···”
“마지막 1벌 남았을 때 덮치면 빼도 박도 못하겠군.”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드낙이 저울질을 했다.
자신이 쳐들어가서 박살을 내고 전리품을 얻어오는 것.
상대에게 농락당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역공을 취하는 것.
‘그들이 감당할 죄는 후자가 더 무겁다.’
죄지을 거 다 해놓고 역공을 받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보상금은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드낙은 현대인이었고, 사실 명예보다는 재물욕이 더 컸다.
“좋다. 그렇게 해보자.”
게제라스는 그 외에도 염려해야 할 것을 짚어나갔다.
“영주님의 비밀 정보 단체는 결코 위협적으로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싸우러 나가는 것보다는 적에게 휘둘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중을 위해서 말입니다.”
정보 조직의 은폐! 다음에도 또 써먹고, 상대가 또 방심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거기에 대한 변명거리 또한 총관이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드낙은 걱정이 생겼다.
“내가 너무 급하게 총관을 찾아서 이미 이야기가 부인들에게 들어갔는데, 어찌 해야 하나?”
“걱정 마십시오. 결코 연관 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 염려스러우신다면 <깊은 녹색 숲>의 상태가 엉망이고, 문인이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며 저에게 책임을 무르러 왔다고 하시면 됩니다.”
게제라스는 자신과 문인 하나를 죄인으로 만들어서 오늘을 피해가자고 말했다. 그 말에 드낙은 제법 감동했다.
“내 왼팔인 자네에게 오점을 남기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폐허가 된 <사냥꾼 마을>에 대한 것으로 말씀하시면···”
“약해.”
드낙이 고민했다. 이내 게제라스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것에 사고가 옮겨갔다.
“내가 바보가 되면 되는 일 아닌가. 토벌에 정규군이 너무 적고, 기병이 보병보다 많다고 역정을 낸 것이지. 그럼 효과가 크니, 더 확실하게 잊힐 것이다.”
어차피 이곳저곳에서 드낙은 부족하다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하나 추가 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었다.
‘유비도 관우나 제갈량보다 급이 낮잖아?’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든든한 탱커가 된 기분도 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말고.”
드낙이 호탕하게 말했다. 바보가 되는 것쯤이야 후에 게제라스의 계략이 들키는 것보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되느냐 이 말이다!!”
바락바락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체력 뺏기 전략>에 대해서 무지한 드낙의 난동은 <석지 마을>에서 이스핀이 2일에 걸려서 도착하고 나서야 일단락될 정도로 개난장판이었다.
회의장의 굵은 나무 기둥에 드낙의 주먹이 찍혀서 공사를 진행해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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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4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덧글 중에 일리가 없는 말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차량 과실처럼 비율이 다를 뿐이죠. 전 항상 댓글을 다 보기 때문에 사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물론 1부 후반은 좀 멘탈이 털려서 변명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덧글창을 닫지는 않았죠.
손해보다는 도움이 더 많이 되기 때문에 더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의견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싸우시들 마시고,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