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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28화 (42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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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실레아와 도렌이 직접적으로 찾아와서 보고를 하고, 방을 나가자 드낙은 문을 닫고, 뒤돌아서서 전신갑주를 벗었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닫았다.

달칵.

창문을 닫자마자 드낙은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가슴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드낙이 살아온 세월이 적었고, 싸움을 자주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암살자로서의 재능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스르릉.

불합리하다고 말할 정도의 기억력 차이를 지닌 사람이 있듯이, 드낙은 결코 상대에게 뒤를 내어주지 않을 정도의 암살력을 지니고 있었다.

드낙이 검을 하단에 놓고, 수비적인 태세를 취하자 천장에서 그림자가 뚝하고 떨어져 내렸다.

‘역시. 엄청나시다.’

“찍찍!”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털. 눈조차 칠흑과도 같았지만, 순식간에 타오르는 붉은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드낙이 검을 집어넣었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조련술의 업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대장쥐>가 허리를 굽혔다. 충성심이 절로 느껴졌다.

“창조주를 뵙습니다.”

“왔다면 왔다고 말하지.”

드낙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창조주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지닌 것이 대장쥐였다. 그 숭배에서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대장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드낙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 번 숨었다고 자신을 내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그러지 마라.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자 중에서 무력이 가장 높은 존재는 드낙 님이십니다.”

안 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그를 칭찬하자 드낙이 작게 웃었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북부에 있으라고 했을 텐데? 이미 북부의 지하를 손에 넣었느냐?”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 종족 중에서 핏빛쥐에 맞설 종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들은 하나로 뭉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말해봐라.”

드낙이 흥미를 느꼈다.

‘분열된 건 핏빛쥐도 마찬가지인데.’

“너희 또한 11개의 세력으로 나뉘지 않았나.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고.”

대장쥐에게 엄격한 체급 차이를 둔 소수만 이끌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과 머릿수에서 차이가 나게 하여 약화하기 위함이었다.

핏빛쥐들에게 <대장쥐>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하에서의 전쟁에 핏빛쥐가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특히나 11마리의 장(長)을 두고 있어서 핏빛쥐 또한 하나로 뭉쳐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고 여겼다.

“드낙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의 종교를 저희는 가지고 있고, 신이 살아 움직이며 직접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종교를 지닌 종족이 있습니까? 보고 싶으면 볼 수 있고,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할 수 있는 신을 가진 종족이 어디에 있습니까?”

“음. 마음만은 고맙다. 하지만 나만 너무 믿지 말고, 핏빛쥐들을 통솔하는 데 힘써라.”

드낙이 볼을 긁으며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괜히 낯간지러웠고, 대장쥐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더더욱 부끄러웠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 것은 저 무도하고, 간악하며 주제를 모르는 하찮은 인간무리가 드낙 님을 해하려고 작당을 했기에 서둘러 오게 되었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온 이유는 당연히 <제국 전신갑주>를 둘러싼 음모 때문이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은 드낙의 무력 때문이라도 강화마법, <한묶음 폭증(Dozen Outburst)>을 제거해야 했다.

동시에 <육법 태엽식> 또한 내구력을 낮추게 하여 자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음모가 대장쥐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빼돌린 연구 종이뭉치를 훔쳤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적혀져 있지 않았지만, 충분히 무슨 생각을 하며 연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괘씸한 새끼들.’

드낙은 자신의 무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려 한 정황 중 하나의 과정이 담긴 종이를 읽어나가며 욕을 했다. 뒤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양피지로 기록이 되어있었지만, 들킬 것을 염려하여 빼 오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들킨다면 그들은 단숨에 다른 생각을 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했다. 많이 얻는 것보다는 안 들키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지.”

인간들은 전혀 멍청하지 않았다. 작은 위험이라도 느껴지면 언제든지 프로젝트를 없을 수 있었다. 명문가는 세월을 통해서 축적된 역사가 있었고, 이것을 재산으로 여기며 큰 기회 속에서 큰 위험이 시작될 조짐을 잘 파악할 줄 알았다.

“이 개잡놈들이.”

드낙이 불같이 화를 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든, 객관적으로 생각하든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잘 부탁한다고 검증을 보냈는데, 그 검사결과가 잘못되고 조작된 것이다?

돈주고 못 사는 것이 제국 전신갑주인 것을 고려했을 때, 그 가치는 인공위성과도 같았다. 기술력이 대단히 집약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산다고 해도 못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전신갑주였다.

‘그렇게 중요한 걸 내어줬는데, 뒤통수를 날릴 생각을 해?’

대장쥐는 아크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하다고 느꼈고, 인간에 대해서 아무런 동정심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드낙이 인간을 버릴 것을 원하기도 했다.

“고맙다.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북부로 가야 하겠지?”

“예. 아직 북부 지하를 모두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다음에 올 때는 핏빛쥐들을 데려와라. 자주 소통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귀족들이 이렇게까지 음흉할 줄은 몰랐다.”

피를 섞고, 결혼 동맹까지 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이걸 가만히 놔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정을 지난 시각에 드낙은 홀로 말을 타고 빠져나갔다. 게제라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함이었다. 병사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파충류 초원>에 대한 토벌을 진행하라고 말만 전했다.

“푸륵!”

밤길을 달리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었다. 달빛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말은 낮에 달리는 것보다 쉽게 지쳤다.

파아앗!

빛이 번쩍였다.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드낙의 손에서 뻗어나온 신성력이 말의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며 가루를 땅에 떨어뜨렸다.

마치 비를 맞은 것처럼 흙이 그것을 단번에 흡수했다.

“가자!”

드낙이 외침에 말이 콧김을 뿜으며 열심히 내달렸다.

동이 트고, 드낙이 그대로 <호수 마을>의 닫힌 문을 고함을 쳐서 열도록 지시했다.

“영주님?!”

목책 위에 있는 병사가 깜짝 놀랐다.

불과 며칠 전에 떠났던 드낙이 다시 돌아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신성력 덕분에 평온한 모습의 말에서 내린 드낙은 거침없이 대로를 걸어 들어갔다. 병사들은 드낙의 기세가 흉포하여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경례 한 번 한 것이 전부였다.

“잘 만났다.”

막 문을 열며 나서려던 게제라스는 드낙이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자작님? 무슨 일입니까?”

“창문을 모두 닫고 2층으로 올라와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게제라스가 서둘러 외쳤다.

“안에 누구 있느냐!”

“예!”

집사와 시녀가 대답하자 게제라스는 서둘러 그들을 쫓아내다시피 밖으로 보냈다.

“집사! 병사 다섯을 추려서 집 밖에서 경계를 서게 해주시오.”

“예!”

집사가 허둥지둥 달려갔다. 시녀는 길에 나와 있다가 집사가 빠르게 움직이자 따라나섰다. 게제라스는 창문으로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환기와 햇빛을 들여보내기 위해 열었던 창문을 모조리 닫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작님. 지하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자.”

드낙이 다시 일어나서 지하로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다급함마저 있었다.

초에 불이 붙으며 밝아졌다. 음울한 곳이었다. 방이 여러 곳이었다. 그중에 한 곳에 들어섰다. 문은 열어두었다. 발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보통 지하실을 무슨 용도로 쓰나?”

“금고나 중요한 서류를 모아둡니다.”

드낙은 짊어진 가죽 배낭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서 게제라스에게 내어주었다.

“통나무 열 개를 연결하여 한 번에 내려쳐서 바위를 부순 충격량을 비교하여 일어설 수 있는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지닌 드낙 불파겐의 내구력에 아웃버스트의 강화 마법이···”

게제라스가 앞에 부분만 읽다가 종이를 흩뜨려 놓았다. 그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뭡니까?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드낙의 무력에 관한 연구의 단편적인 내용.

제국 전신갑주의 대지 골램에 대한 내용 등이 담겨 있는 종이뭉치에 손을 놓은 채로 게제라스는 화산이 검은 연기를 매캐하게 뿜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굴었다.

‘핏빛쥐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

“용병 노릇을 하기 전에 연줄이 조금 있다.”

“···그렇습니까. 어느 가문입니까?”

제국 전신갑주를 준 곳은 두 곳뿐이었다. 연구를 맡기고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둘 다. 이걸 얻은 곳은 몽펠리에다.”

“몽펠리에가···”

게제라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드낙은 마땅찮았다.

“무슨 생각할 고민이 있는가!”

쾅! 후두둑!

돌로 된 테이블이 그대로 푹하고 패여서는 가루가 튀고, 돌멩이가 바닥을 굴렀다. 게제라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화만 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영주님.”

“화를 내야 할 일이지. 믿고 맡겼는데, 이런 식으로 나왔다! 물론 종이뭉치만 봐서는 그렇게 침착할 수 있다. 하지만 놈들은 지독한 짓을 했어.”

드낙은 대장쥐에게 들은 것을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게제라스의 눈이 커졌다. 종이뭉치는 단순히 드낙의 무력을 연구하고, 그것을 사유로 들어 제국 전신 갑주를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 본 것이 아님에도 그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낙의 추가 정보를 듣고 나서는 게제라스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덜덜.

손이 떨렸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일을 벌였다.’

선을 넘어섰다는 것이 아니다. 남의 땅에 깃발을 꽂은 격이고, 남의 기술을 마치 자기 것처럼 훔쳐 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주님도 아시다시피 전신갑주라는 것은 함부로 내어주는 것도 아니고, 내어준다고 해도 마법사와 연줄이 없고 전신갑주를 만들 대장장이를 모르는 이에게 내어줍니다.”

“나도 안다.”

전신갑주는 기술의 집약체와 같았다. 예를 들면 최신형, 차세대 탱크의 도면과도 같았고, 다른 국가에 넘겨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만큼 가치가 높은 것이었으며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결혼 동맹을 했기에 저희는 내어줬습니다. 제국 전신갑주는 유리관 연결 부위 때문에 바로 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네 말이 맞다.”

“이건, 침략행위라고 말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입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게제라스가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은 북부를 칠 수 없습니다. 영지전은 물론이고, 피를 내어서도 안 됩니다.”

드낙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화딱지가 났는데, 게제라스가 또 그딴 소리를 내뱉자 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자고? 그딴 개소리를 지금 내 앞에 한 것이냐?”

“크, 크게 화내실 만합니다.”

게제라스가 말을 떨었다. 드낙이 그 모습에 기세를 줄였다.

“계속 말해봐라. 그래서 널 찾아온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드낙이 한숨을 내쉬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몸을 움직였다. 도저히 다른 이의 의견을 들을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의 아내들의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가서 명문가고 나발이고 다 쳐 죽이고 싶었다.

“으그그!!”

이빨을 뿌드득 가는 소리에 게제라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드낙은 무릎을 굽혔다가 다시 일어나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영지전도 안 되고, 피를 조금이라도 내도 안 된다고?”

“예!”

게제라스가 빠릿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드낙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었다.

“명분은 충분하지 않은가.”

“예. 지금 상황만 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게제라스는 그 말에 전혀 딴지를 달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앉으시지요.”

‘지금은 그 어떤 설득도 안 먹힌다. 시간을 들여서 흥분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는 드낙에게 자리를 권했다. 조금 파손된 돌 테이블에 드낙이 다시 앉았다.

“물이라도 가져오겠습니다. 끓인 물이면 되시지요?”

“아니. 냉수로.”

드낙답지 않게 냉수를 찾았다. 게제라스가 계단을 올라왔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병사들이 몰려왔다.

“이리!”

손짓하며 부르자 병사 중에 가장 고참이 달려왔다.

“예!”

“바로 냉수를 가져오고 이 집을 철통같이 지켜라. 어슬렁거리는 놈도 잡고, 두 번 보이는 놈도 잡아라.”

“예!”

뒤를 돌자 게제라스가 다시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외척이고 시녀고 누구 하나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말이라도 하면 안 된다. 그게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예!”

그 말을 하고 게제라스가 문을 지켰다. 병사 몇 명이 서둘러 냉수를 끌어올리려고 우물로 향했다. 아침해가 막 떴기 때문에 아직도 물이 차가울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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