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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26화 (42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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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세안 토성>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것이 <파충류의 초원>이었다. 그 역할의 중요성을 모르는 귀족은 거의 없었다.

게제라스부터 드낙에게 간청을 할 정도로 <파충류의 초원>은 목초지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몰락 이후 목장 일을 한 <브릴리언트 가문>이 들어서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이 밀어낸 곳을 다른 자들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회를 노리며 <호수 마을>에서 중앙 정치를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들이던 아내들은 드낙이 <둥근 언덕 마을>을 시찰하러 간다는 소리에 꽃내음을 맡은 꿀벌처럼 달려왔다.

“북부에서도 몇 없는 초원 아닌가요? 분할하여 통치하는 것이 중요하죠.”

“초지가 얼마나 넓은데요. 그걸 그냥 묵혀둔다고요? 누구보다도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판이하니, 분명 불평하는 이들이 나오겠죠.”

케이샤까지 끼어있을 정도로 아내들의 불만을 내뱉었지만 드낙은 시큰둥했다.

“이미 받은 곳도 마을이 하나뿐인데, 무슨 소리입니까?”

이미 삼 방위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주민이 적으니 그렇죠. 물론 많이 유입되고 있지만, 나누어지면 적어지는 법이잖아요?”

이주민의 분배받는 것을 짚으며 변명을 했다. 식량 같은 명문가들이 준비한 것은 많은데, 이주민이 그것보다 적기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또한 헌신적인 신전이 존재했기에 마을을 유지하는 데 편하기도 했다.

“여름도 온 것이 아닌데, 공을 세우기도 전에 엘라한 토성은 저희만큼 이주민을 받고 있잖아요?”

다른 아내는 엘라한 가문까지 끌어들였다. <록시 몽펠리에>였다. 아주 날카로운 찌르기였고, 거기에 대해서 드낙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진실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농사에 도움을 주려는 힘을 지닌 것이 엘라한 가문이었지만, 아직은 저수지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공을 세우지 않았음에도 이주민을 평범하게 받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귀족 부인들이 알아서 이해해준 덕이었다.

그녀는 엘라한 가문을 짚어서 한 번 정치공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낙에게 보여주며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는 효과 또한 얻어냈다.

모두 단 한 마디로 행한 것이다.

‘이런 씨.’

말발로 그냥 잡아먹히자 드낙이 결국 강수를 두었다.

“이미 내가 할 말은 모두 했습니다. 더 말씀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있어도 하지 마십시오.”

생각보다 드낙이 고집이 세우자 부인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명문가고 나발이고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못 박아 말했기 때문이다.

“강직해도 말씀이 심하시네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 덕목 중의 하나였다.

그것을 칼 같이 자른다는 것은 상대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꾸만 손에 잡혀서 그렇습니다.”

드낙의 말에도 자신들의 격이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아내들은 드낙의 말에 일단은 대답하며 냉랭하게 떠나갔다.

‘뭔가 싸하네.’

드낙은 농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제라스를 호출했다. 거진 400명이 몰려있는 민회에서 빠져나온 게제라스는 물을 마셨다. 남은 물로는 세수를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자초지종을 드낙이 말하자 게제라스가 기절초풍했다. 귀족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빌미로 뭐라도 피해를 줄 것입니다. 그때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대부분의 일을 용서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인가? 그저 고집 한 번 피운 것뿐인데.”

“작은 것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닌 것이 정치입니다.”

“그럼 사과를 해야 하나?”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외척과의 관계는 적당히 굴곡이 있어도 끝장이 나서는 안 되었다. 이번에는 드낙의 실수였다.

“트롤의 부산물을 하사하며 사과를 하는 게 최선일 겁니다.”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거지처럼 구걸하듯이 애걸했다.

“자작님. 저 요즘 통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음···”

드낙이 괜히 시선을 돌렸다. 400명의 무지한 농민 앞에 선 게제라스는 그야말로 욕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조리 쳐죽이기고 감옥에 들여보내기에는 그들은 정말이지 대단할 정도로 열정적인 농부들이었다.

다른 농부보다 두 배. 세 배는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경작 면적도 넓었다.

“예? 그리고, 아직까지 많이도 남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만, 함부로 써서는 안 되지.”

“그럼 자작님이 나중에 수습하십시오. 여름이 코앞입니다. 바빠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게제라스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진절머리를 쳤다. 인내심이 많이 바닥나 보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함부로 게제라스를 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어깨에 손을 얹으며 독려를 할 지경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사과하고 둥근 언덕 마을로 가겠네.”

“예. 부탁 좀 하겠습니다. 자작님.”

드낙은 조금 자존심이 꿀렁꿀렁 목까지 올라왔지만 게제라스 때문에 참았다. 하지만 오히려 드낙의 이런 행보에 부인들이 안절부절못했다. 생각보다 사과할 때는 확실하게 이득을 들고 와서 사과했기 때문이다.

‘빼도 박도 못하겠지?’

음흉한 생각을 하는 드낙의 내면을 보지는 못한 아내들은 하나같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러면 제가 마치 길을 들이려고 하는 짓처럼 되잖아요. 부산물은 받지 않고, 사과만 받겠어요. 제 입장이 정말 곤란해요! 소문이 퍼지면 큰일 날 거예요.”

“하하하. 그럼 오히려 내가 애처가가 되고 좋지 않습니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드낙은 오히려 능글맞게 대답하며 능청을 떨었다. 절로 흥이 났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내어주고 드낙은 후련한 기분으로 빠져나갔다.

‘트롤 수십 마리의 부산물 중에 한 마리만 내어주는 건데, 뭘. 오히려 다음에도 또 이러면 또 더 줘야지.’

자잘한 정치는 드낙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분야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좋아 보였다. 특히 귀찮지 않고, 언행에 있어서 실수해도 무마하기 좋았다.

‘내 이미지도 좋아지고.’

“그러고 보니 안젤리카 경이 요즘 안 보이네.”

토벌을 시도 때도 없이하며 가문이 정착할 돈을 마련하고 있는 <안젤리카 에드윈>과 드낙은 얼굴을 보지 않는지 3개월이 넘었다.

“안젤리카 경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와 봐라.”

“예!”

드낙이 병사 하나에게 묻자 병사는 냉큼 답을 찾아오겠다며 사라졌다. 수십 분 후에 달려서 도착한 병사가 말했다.

“토벌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

‘열심이군. 하긴, 두 번째로 약하니까. 어련히 힘에 부치면 돌아오겠지.’

기사는 강골이다. 임신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며 <둥근 언덕 마을>로 향하기 위해 나섰다. 갈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정했던 병사 다섯과 함께 호수 마을을 떠났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이 제법 많았다.

본래는 게제라스의 생각이고 제도였지만, 드낙의 이름으로 모두 행해진 것이었기에 호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드낙의 무력과 무용담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호하지는 못했다. 왠지 드낙의 앞에 스스로를 대면하는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다.

그 상반된 감정은 모순적이었지만 그 모순이야말로 <불파겐 영지>의 근간이기도 했다.

“하따, 씨발. 고년 참 가슴이.”

<부라큰 용병단>의 용병대장 리큰이 히죽거렸다. 이주민으로 보이는 방랑자 하나가 나무에 칭칭 감겨 있었는데,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퉤!”

리큰이 가슴을 주물렀는데, 여자가 고개를 들며 거칠게 침을 뱉었다. 볼에 묻은 침을 손으로 닦은 리큰이 침 냄새를 맡았다. 그 저질스러운 행위에 여자가 순간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도둑년이 쳐 돌았나!”

짝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그대로 돌아가며 피가 튀었다. 여자의 치아 하나가 침과 피가 뒤섞인 채 바닥에 떨어졌다.

“살살하소. 대장. 곧 둥근 언덕 마을 아니오.”

“은화를 들고 튄 년인데 살살은 무슨. 마음 같아서는 당장 쳐 죽이고 싶지만, 손가락 자른 거로 만족해야지.”

여자의 오른손 엄지는 텅 비어있었다. 응급처치는 했는지 붕대가 손에 감겨있었다.

이주민의 유입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근본도 없이 일단 눈앞에 닥친 위협에서 도망쳐 나와서 아무런 대책 없이 이곳에 몰려든 이들이 대다수였다.

당연히 도둑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용병대장 리큰이 모닥불의 앞에 앉았다. 그의 넓은 어깨 뒤로 용병 단원이 바지를 내리고 여자의 허벅지에 뭔가를 비비고 있었다.

“안에다가 싸면 뒤진다. 우린 그런 애 안 키운다.”

“예! 대장님!”

우렁찬 대답에 용병단원들이 낄낄 웃었다. 대장 리큰은 모닥불에 얹은 꼬치를 꺼내서 물었다. 짭짤한 소금간이 되어있었고, 불맛과 나무 향이 배 있어서 맛이 뛰어났다.

한 참 먹고 있을 때, 철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리큰이 팔을 들어 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용병단원 중 외곽에 불을 지핀 몇몇 놈들이 모닥불을 그대로 밟아서 불을 꺼트리고 발로 흙을 걷어차서 덮었다.

순식간에 나무 위로 두 명이 활을 어깨에 메고 올라갔다. 나머지 3명은 수풀 속으로 바짝 숨어들어 갔다. 미리 야영지를 만들 때 적당한 수풀 안에 구덩이를 파서 땅을 낮추어놓았기에 성인이 들어가도 순식간에 머리카락도 안 보일 정도의 숨을 공간이 있었다.

“기사입니다.”

“쫄지마. 기사도 사람이다. 자다가 뒤진 기사에 대한 소문도 못 들어보고 살았냐?”

그렇게 강하게 말하며 리큰은 수풀을 헤치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기사와 정예병사들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어디 지옥에서 빠져나왔나. 독기가···’

물리면 죽는다는 독사의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큰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체구를 지닌 기사에게 허리를 굽히며 헤실 웃었다.

“헤헤. 반갑습니다. 기사님. <깊은 녹색숲>에 고블린 하나 없었는데, 기사님 덕인 것 같습니다.”

“그래. 고블린을 만나지 못했다니, 다행이다. 나는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라고 한다. 어디 용병단인가?”

“<부라큰 용병단>입니다. 저는 용병대장 리큰입니다. 의뢰서를 보고 오게 되었습니다.”

“인원은 11명이 아니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이실레아의 눈이 결박된 여자에게로 향했다. 리큰이 그 여자의 발밑에 가래침을 한 번 뱉고 말했다.

“도적 떼를 만났습니다. 어린 애새끼부터 애송이에 절름발이 늙은이에다가 하여간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놈들이 뭐라도 얻으려고 왔는데, 돈이 없는데 용병이 뭘 줍니까? 거부했더니 그대로 덤벼든 것이죠.”

그 말에 여자가 피맺힌 소리를 냈다.

“아니에요! 창녀짓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저희 가족을 공격했어요!”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희 용병단은 그짓 때문에 몇 번이나 화를 당해서 여러 가지 해소 용품을 들고 다닙니다.”

“예를 들면?”

이실레아가 묻자 리큰이 손짓을 했다. 가장 막내가 허둥지둥 급하게 달려가서 가죽 포대를 하나 가져오며 하찮은 그림에 그려진 야한 그림을 꺼냈다.

“음.”

이실레아가 면밀하게 훑었다. 여성이 그걸 보고 있으니 용병 중에 몇몇은 꼴렸는지 귀가 조금 달아올라 있었다.

‘정액도 묻어있고. 이걸로 성욕을 처리하긴 했나 보네.’

이실레아는 그림들을 돌려주고 다시 여자에게로 향했다. 병사가 자연스럽게 횃불을 가까이 가져다 대서 밝게 밝혔다.

‘씨발.’

자연스럽게 리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여기도 한 발 쌌네. 하긴, 대체재가 있다고 해도 진짜가 있는데 왜 대체재를 쓰겠어?”

이실레아의 말에 용병들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몇몇은 허리춤에 손을 대기도 했다. 곧 뒤져도 한 번은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친 용병들의 생각이었다.

“이 새끼들이! 무기에서 손 떼! 정말로 다 뒤지고 싶어?”

“이런 야지에서 법이고 나발이고 뭐가 있어? 서로 증거가 없는데 우리가 죄인인 것처럼 말하잖아!”

“가까이에서 장궁을 쏘면 전신갑주고 뚫린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웅성거림이 잠깐 일어났지만 리큰의 왼쪽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꿈틀하자 용병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리큰의 나쁜 습관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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