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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보글보글.
보라색의 물로 가득한 곳에 담가져서 끓고 있는 유리관이 보였다. 마법사는 유심하게 눈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마법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다.
“제국이 매달릴 만하다.”
제국기사의 혼이 마력과 뒤섞어서 푸른 슬라임으로 만들어 그것을 <마력 핵심 유리관>에 넣는 것이 그들의 강함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손쉽게 알 수 있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영혼>과 <마력>이라는 키워드는 연구에 들자마자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그 정확한 용처는 쉽게 입으로 낼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잘 알려진 것이었다. 지금 하는 것은 그것에 관한 확인이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의 수집이었다.
양피지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을 천장에 들러붙은 대장쥐가 집중해서 한 글자씩 읽어나갔다. 거리가 멀었기에 느릿느릿했다.
[영혼 흡수율 12% 낮음]
[마력 효율성 125% 초월적]
대장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 세상을 제법 돌면서 글자는 순식간에 익혔지만, 읽을 수 있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곳도 가봐야지.’
지하의 깊은 곳에 있는 마법 연구실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가구의 틈에 손가락을 넣어서 훑어봤는데, 묵은 때가 거의 없어서 이 연구실이 최근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스 골램 소환!”
제국기사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지는 않아도 마력을 충전하여서 해당 마법을 사용하는 곳도 볼 수 있었다. <소환 마법>은 매우 강력한 마법이었기에 보통 전신갑주에 새겨질 수 없을 만큼 마법진이 컸다.
“어스 골램 소환!”
그런 것이 전신갑주에 달려있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또한 아래쪽의 팔꿈치에 있는 스위치로 대지 골램에 소모되는 마력을 소, 중, 대로 3단계로 나누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어스 골램 소환!”
2m, 2.5m, 3m로 체격을 조정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 몇 번이나 계속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을 대장쥐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꾸준히 똑같은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 가야겠다.’
기록하는 마법사가 매우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쥐는 제집처럼 연구시설을 돌아다녔다. 문서를 스리슬쩍 해서 읽어보기도 했다. 대부분이 <제국 전신갑주>에 대한 것이었다.
‘도즌 아웃버스트···’
그중에서도 <한묶음 폭증(Dozen Outburst)>이라는 강화 마법에 대한 연구서가 특히나 많았다.
‘드낙님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네.’
그가 이룬 업적, 목격담, 상대에 대한 스펙, 무용담을 최대한 많이 담고, 신뢰 있는 자들의 의견 또한 따로 모여져 있었다.
‘왜 이런 것을 모았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다. <드낙의 무력>을 깊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제국 전신갑주 지하 연구소에서 조사할 이유는 분명 특이했고, 대장쥐가 가장 얻어야 하는 이유로 보였다.
달그락.
상자에 잔뜩 있는 유리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텅텅 비어있었고, 새것처럼 깨끗했다. 분명 실험을 하는 듯했다. 폐기된 유리들이 넣어져 있는 포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사하려고 한 건가? 하지만 실험체에 대한 것은 없던데.’
보고서를 읽었기에 대장쥐는 순식간에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 확실하게 모든 정보를 취득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딱히 식사하지 않아도 지방이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회의실>에 잠복하기를 며칠. 이내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매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회의실에 입장했는데, 표정이 밝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약해 보이는 마법사는 다른 이들이 앉기도 전에 말했다.
“아크온 님에게는 아직도 말하면 안 된다고 하던가?”
“당연한 소릴. 하나같이 이번 일은 덮자고 하더라.”
“파이룬이 다른 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이곳에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몽펠리에 가문원들이었다. 대장쥐가 귀를 기울였다. 아크온이라는 인간은 드낙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든든한 아군이라고 했지.’
“제국 전신갑주에 대해서는 더는 연구를 할 것이 없다. <마력 핵심 유리관>에 대한 것도 대충은 끝났다. 인간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흑마법사나 다름없는 짓이지. 폐기해야 하는 게 옳다. 동물을 통해 실험한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서로 남기지 않을 정도로 실험체에 대한 것을 은폐시킨 정황을 방금의 대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마법사는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었기에 자세하게 듣고 싶어 했다.
“정확히 폐기하는 이유는?”
“보고서의 형태로 남길 것이다.”
“그걸 내가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말에 마법사가 아하, 거리면서 대답했다.
“너무 많은 영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덮을 정도로 마력 효율이 창조적이고 초월적이다. 한 번 채워놓으면 무한하게 마력을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비인도적이지.”
마력 효율이 125%라는 것은 1의 에너지가 1.25의 에너지가 된다는 소리였다. 양의 제한은 있겠지만, 무한마력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었다. 마력이 남아있는 한 더 많은 마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국 기사>가 마력폭풍에 쉽게 죽은 이유였다.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주(家主)님의 판단이 오늘 내려왔다. 내일 연구소는 폐기될 것이다. 중요한 정보는 오늘 내로 모두 옮겨놔야 한다. 나머지는 용광로에 들어가게 된다.”
“벌써? 너무 빠른 판단인데. 한묶음 폭증 강화 마법에 대한 보고는 고작 3일 전에 올라갔잖아.”
“경쟁자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경쟁자는 파이룬을 뜻했다. 몽펠리에 가주의 인장과 몽펠리에 가문의 인장이 찍힌 양피지를 뜯어서 마법사가 펼쳐서 눈으로만 읽었다. 그 행위가 마지막 마법사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다른 마법사들이 겉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결과라서 오히려 맥이 빠지는군.”
“불파겐은 강하지만, 세력이 형편없지.”
몽펠리에의 마법사들이 드낙을 조롱했다.
“제국 전신갑주에 담긴 마법은 하나같이 절륜하다. 그런 것을 불파겐에게 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자살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어처구니없는 판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법 수정에 대한 건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마력 핵심 유리관>에 사용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있고, 마법진이 서로 얽혀있다고 말하면 된다. 얽혀있는 이유는 공간 압축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될 일이고. 그것을 통해서 불파겐에 있는 제국 전신갑주를 수거하여 다른 마법을 집어넣을 생각이다.”
“이미 한 번 싸웠는데, 바꾸는 건 좀 아닌데.”
“수복 마법이 제국기사의 영혼에 각인되었잖나. 나머지도 그렇게 되어있다고 말하면 된다.”
<마법식 영혼각인>! 목이 돌아가고, 방어구가 움푹 패고, 뼈가 꺾여도 회복되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것이 제국기사의 영혼에 각인되어있었다. 이를 예를 든다면 드낙이 쳐들어와도 이해시킬 수 있었다.
“흐흐. 제국 전신갑주의 비밀을 하나 알아냈으니, 우리는 큰 이득이겠지? 앞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마법사가 히죽거렸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국 전신갑주는 말 그대로 우월했다.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존의 마법진 체계가 다를 줄은 나도 꿈에도 몰랐다. 엄청나.”
“난 그중에서도 <육법 태엽식>에서 크게 감탄을 했고, 제국 마법사에 대해서 존경심마저 들던데.”
“6개의 마법진이 비슷한 공격마법을 서로 태엽처럼 감아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마법진으로 만들었지. 그 덕에 소환 마법이 들어갈 자리를 전신갑주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이고.”
시끌시끌.
마법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이야기할 것이 많았다. 질문 하나에 대답이 수두룩했고, 또 다른 질문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들으며 대장쥐는 석상이 된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날벌레 하나가 대장쥐의 코에 내려앉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불파겐의 신체능력은 정말 믿을 수 없더군. 한묶음 폭증을 사용하는 제국기사 열다섯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리다니.”
“파이룬의 전신갑주가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미 일어난 일이니 아직도 체감할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육법 태엽식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는 <한묶음 폭증(Dozen Outburst)> 강화마법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연구하면서 가장 정치적인 주제였다. 그 때문에 가주가 이 연구실로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통달의 대마법사 아웃버스트>가 만든 강화 마법으로도 합공을 했는데도 다 죽어버렸으니···”
대마법사 아웃버스트.
모든 분야의 마법에 통달하였으며 <영혼과 마력의 합일>을 추진시키는 데 크게 일조를 했다고 추측되고 있는 자였다. 그가 만든 강화 마법은 충격적이었다.
“작은 힘이 필요한 곳에는 작은 힘을 주고, 큰 힘이 필요한 곳에는 큰 힘을 준다. 나는 그 진리를 이 강화 마법에서 느꼈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어. 랜스 차징을 당해도 멍 하나 드는 게 전부라고! 엄청난 강화 마법이야. 그저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강화 마법이지.”
모두 대마법사 아웃버스트에 대해서 떠들어대었다.
필요한 것을 모두 들은 대장쥐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몽펠리에 성>을 빠져나간 대장쥐는 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다시 머리만 빼꼼 나와서 밤에도 불빛으로 가득한 성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너희는 자격이 없다. 드낙 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지 않아. 그저 이용할 뿐이지.’
함께 하고 있음에도 다른 배를 탄 것처럼 구는 모습에 대장쥐는 마음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파바밧! 파밧!
대장쥐가 땅속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저 인간들보다는 빠르게 드낙에게 북부의 정보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
“잘 왔다.”
드낙이 일단의 무리를 크게 반겼다. 온다, 온다 하면서도 안 오던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의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호수 마을>이 아니라 외척들의 장원에 머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생산품은 불파겐의 것이었다.
그런 거래였다.
“제국 전신갑주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가장 급한 것도 물었다. 기사가 있음에도 내어줄 전신갑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력 핵심 유리관>이라 불리는 제국 기사의 영혼이 담긴 유리관 때문에 조금 걸린다고 합니다.”
연금술사가 깍듯하게 말했다. 방계였기에 제법 자세하게 알고 있었는데, 방계라고해도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냥 제3자의 입장에서는 한 가문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낙은 <호수 마을>에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러 온 연금술사들을 결코 가볍게 대우하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영지에 대해서 당부를 했으며, 최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공유하기를 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로는 못 하는 것이 없었으므로 연금술사들은 냉큼 대답했다.
연금술사에 대한 일처리를 마친 드낙에게 게제라스 총관이 보낸 젊은 문인이 찾아왔다.
“총관은 바쁜가?”
“예. 이제 곧 여름이라 저수지 때문에 농부들이 서로 싸워대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고생이 심하겠어.”
‘히힛.’
드낙이 웃었다. 자기 일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처리 된다는 기분은 정말이지 짜릿하고 매번 들어도 재미났다. 이래서 CEO나 사장들이 회의를 그렇게 많이 하는 듯했다. 정말이지 재밌었다.
숙제를 대신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었다.
“<파충류 초원>의 작전에 필요한 용병들이 <둥근 언덕 마을>에 충분히 모였다며 한 번 마을에 방문하시는 게 좋지 않겠냐며 게제라스 총관께서 말하였습니다.”
“알았다고 전해라.”
드낙은 장비를 챙기고, 다섯의 병사만 이끌고 그대로 출발했다. 게제라스가 열일하는데 영지 순방을 안 하기에는 좀 기분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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