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24화 (42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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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떼(Swarm)>가 단단한 산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무리는 타오르는 해질녘의 색처럼 붉었다. 흉흉한 기세보다는 음흉함이 더 컸지만, 규모가 주는 기이한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부정한 세력의 궐기(蹶起)처럼 땅이 있을 곳에 태양이 비추어진 것처럼 타들어 가는 물결이 산을 뒤덮으며 산의 뒤쪽으로 향했다.

드넓은 골짜기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뿔있는 핏빛쥐>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이들은 무장 또한 튼튼했다. 광산의 종족인 크놀들을 죽이고 그 기술력과 장비를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기술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관습과 많은 실패로 얻은 경험으로 양질의 물건을 생산하고 있었다.

무기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창을 든 핏빛쥐가 있다면 둔기를 든 핏빛쥐도 있었다. 같은 무기를 들어도 합금처럼 색이 일정하지 않고, 뒤죽박죽 한 금속을 든 핏빛쥐와 말끔한 철로 된 무기를 든 핏빛쥐로 나누어져 있었다.

또한, 11마리의 의원들이 이끄는 <리전>은 각양각색의 모습 속에서 일정한 특색 또한 보유하고 있었다.

“찍찍! 오랜만에 밖에 나와본다.”

“지네 키우는 건 이제 지겹다.”

가장 체격이 작은 뿔쥐들이 들어가는 <작은 벌 리전(Little Bee Region)>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리전이었다. 가장 약하기에 단단한 산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리전이다.

생산. 기술 보존. 교육 등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임무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무력은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로테이션을 통해서 숫자가 적은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과 함께 다니기 때문이다.

쿵! 쿵! 캉!

왼발로 크게 땅을 치며 동시에 무기를 땅에 부딪치며 쿵쿵 소리를 두 번 내고, 방패를 한 번 치며 대장쥐를 위시한 배불뚝 리전의 최정예들이 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에서 2열로 올라왔다.

“크아아아!!!”

“끼익! 끼이이익!”

“찍찌이이익!”

수많은 환호 소리가 퍼져나갔다. 괴물처럼 소리를 내기도 했고, 원숭이처럼 언성을 높이기도 했으며 쥐소리를 내기도 했다. 통일되지 않은 함성은 핏빛쥐들의 종족 역사가 아주 짧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보편성이라는 것이 드물었다. 이렇게 크게 한곳에 모인 적도 없었기에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검은 장막의 대장쥐>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뜨나아악!”

배불뚝 리전의 덩치가 큰 핏빛쥐들 또한 드낙을 외쳤다. 이내 모든 핏빛쥐들이 뜨낙을 외쳤다.

그들을 통일하는 하나의 단어였다.

그 위대한 광경을 보며 이들의 자존감은 끝을 모르고 높아졌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위대한 출정식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북부>라고 불리는 땅의 지하는 모두 우리들의 것이다!”

뜨-낙!

“인간들은 형편없는 종족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창조주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것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지하 깊이 들어온다면 자비를 베풀지는 마라!”

뜨-낙!

대장쥐의 연설은 제법 오래 이어져 나갔다.

인간에 대해서.

드낙에 대해서.

핏빛쥐에 대해서.

다양한 말을 간단한 키워드의 반복을 통해서 각인시켰다. 의원들과 머리를 맞대어서 만든 연설문이었다. 그것을 모조리 외운 대장쥐는 뛰어난 리더였다.

“우리들은 음흉하다! 그렇기에 승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명심하고 정정당당하게 적과 싸우려고 하지 마라! 비겁함이 곧 힘이다!”

“비겁함이 곧 힘이다!”

작은 벌 리전은 10개로 나누어져 다른 리전들의 속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0방향으로 그들은 지하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단단한 산의 뒤편으로 시작되는 지하굴은 나중을 위해서 철저하게 미리 계획된 지하통로를 만들어갈 것이다.

파바밧! 파밧!

대장쥐를 비롯한 패불뚝 리전은 그중에서도 가장 굴 파는 속도가 빨랐다. 특히 3번 강하게 파고, 두 번은 힘을 빼서 흙을 적당히 치웠기에 지치는 속도도 느렸다.

지방이 가득한 핏빛쥐의 최정예는 지칠 줄을 몰랐다. 덩치가 컸기에 굴도 잘 팠다. 특히 대장쥐가 가장 선두에 서서 다른 이들이 교대할 때도 끝없이 팔을 놀렸기에 사기가 극단적으로 높았다.

“찍찍!”

가는 도중에는 다른 지하 종족을 만나기도 했다.

“킁킁!”

다른 종족이 파놓은 굴에 들어서며 대장쥐가 코를 벌름벌름 거렸다. 두툼한 볼살에 들러붙은 더듬이 같은 긴 털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바람을 느꼈다.

“일부는 굴을 정직하게 파고, 절반은 여기를 사수하고, 지형지물을 쌓아올려라. 적의 규모를 모르니 통로를 좁게 만들어라. 나머지는 모두 날 따라서 간다.”

“예!”

대장쥐는 순식간에 검은 장막을 두르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배불뚝 리전은 천천히 따라갔다. 이미 이각수가 된 대장쥐의 능력에 대한 전술토의를 마친 상태였다.

푹!

거대 핏빛쥐들은 곳곳의 벽을 찌르고 다녔다. 혹시 몰랐기 때문이다. 대장쥐는 곧 이 굴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고블린이군.’

어디에서든지 인간보다 잘사는 것이 고블린이었다. 인간 또한 만만치 않은 번식력과 적응력 그리고 저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블린만은 못했다. 그들이 주력세력이 된 것은 종족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인신(人神)이었고, 그를 통하여 신성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주술사로 보이는 놈이 하나. 전사가 여덟.’

하나같이 금속제 방어구를 입고 있었고, 바닥에는 털가죽을 깔았다. 지하에 사는 놈들이 털가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놈들은 이곳에 사는 고블린 세력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운이 좋네.’

대장쥐는 창을 바닥에 놓고, 대거를 꺼냈다. 그리고 촉촉한 코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바람은 느껴지지 않는다. 지대는 낮고.’

환경 정보를 확인한 대장쥐가 움직였다.

대장쥐는 무자비했다. 곁에서 드낙이 사냥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기습을 어려워할 수가 없었다.

“으프.”

바람 소리와도 비슷하게 고블린 주술사가 목소리를 조금 냈다. 목이 베어지면서 입이 틀어막혀졌기 때문이다. 피냄새는 동굴에서 빠르게 퍼질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욱 농밀해지는 것이 동굴이었지만 새로운 냄새는 번져나가는 속도가 느렸다.

대장쥐는 자신이 가는 방향의 반대쪽에 무기를 허공에 휘둘러서 피를 뿌렸다.

“엉?”

고블린 하나가 피 몇 방울을 맞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 고블린들의 시선은 화덕의 불빛에 노출된 채로 죽은 고블린 주술사가 아니라 고블린 전사에게로 모여졌다.

“뭐야? 왜 그래?”

“피 같은데?”

“피?”

그런 질문을 하는 사이에 셋이 더 죽어 나자빠졌다. 그리고 고블린 주술사가 죽은 것을 다른 고블린들이 확인하고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곁에 같이 잠에 빠져들었던 암컷 고블린들은 거칠게 굴러졌다.

“허어어억!”

일어나서 두리번거리면서 뒤를 돈 고블린 전사의 아랫배가 그대로 베어지며 피가 쏟아지며 내장이 후두둑 덜렁거렸다. 잘려진 내장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엄청난 탈력감을 느낀 고블린 전사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고, 손으로 내장을 만졌다.

“저기다!”

그 움직임에 전사들이 화덕 옆에 기울여서 둔 장작에 불을 붙여서 냉큼 달려왔다. 하지만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크아악!”

고블린의 검은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나가며 두개골이 퍽 깨지며 고블린 전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곁에 있던 고블린 전사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무기를 휘둘렀다.

캉!

불똥이 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짐승 특유의 악취를 맡은 고블린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질렀다.

“검은 늑대다!”

“검은 늑대!”

호랑이조차도 밤이라면 물어 죽인다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검은 늑대>였다. 검은 늑대에게 공격당한 마을의 인간들은 검은 늑대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마브로스 리꼬>라고 돌려 부를 정도였다.

그것은 고블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히익! 히이이익!”

고블린 전사가 횃불도 던지고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도망치자 나머지도 도망쳤다. 모두 대장쥐에게 죽임을 당했다.

현장에 뒤늦게 도달한 배불뚝 리전은 다시 리틀 비 리전의 일원을 기다렸다. 거대쥐의 반밖에 오지 않는 핏빛쥐가 고블린들의 장비를 확인하였다.

“어떤가?”

대장쥐의 말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핏빛쥐가 말을 벌벌 떨며 말하자 대장쥐가 몇 번이나 다독여주었다.

“괜찮다. 있는 그대로 침착하게 말해라.”

“예···후우.”

심호흡했다. 대장쥐의 카리스마는 심약한 리틀 비 리전의 일원에게는 가혹할 정도였다. 그가 이룬 업적들! 그것을 듣고 앞에서 당당할 사람은 없었다.

“장비는 조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크놀들에 비하면 형편없습니다. <녹슨 리전(Rusty Region)>과 비슷한 정도입니다.”

“형편없는 놈들이군.”

광산의 종족과 고블린을 비교하는 것에 있어서는 고블린의 입장도 들어봐야 했지만 이 자리에 고블린은 없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품질이 하품입니다. 또 가지고 있는 식량은 없거나 한 끼도 안 됩니다. 숫자 또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밀어버리면 되겠네. 수고했다. 작은 벌들은 전리품을 수거하고, 고블린들을 해체해라. 나머지는 곧바로 굴을 점령한다.”

대장쥐가 앞섰다. 물론 그들은 통로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굴을 새로이 파서 곳곳을 돌아다니며 뿔뿔이 흩어져 있는 고블린들을 학살했다.

단 3시간 만에 작은 고블린 부락은 그대로 멸망했다. 이들 사체는 가죽이 벗겨지고, 뼈째로 핏빛쥐들의 먹이가 되었다.

대장쥐의 진격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달빛이 환하게 떠오른 곳에서 성벽의 그늘진 곳에 어둠이 들어와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으로 변질된 눈이 사방을 살폈다.

대장쥐는 거침없이 홀로 외성벽을 지나 외성지역을 돌아다녔다. 전에 했던 대로 술집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니, 진짜라니까!”

“이 새끼가, 그럼 내기할래? 불파겐 영지, 거기 지금 다 망하고 있어! 갔던 자유기사들이 죄다 돌아오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야?”

“헛, 헛소리? 지랄하네. 이 새끼가! 내기해. 내기. 내가 브릴리언트 가문의 일족들이 엄청나게 지나가는 걸 봤다니까? 가축만 해도 어마어마했다고.”

시끌시끌했다.

대장쥐는 적당히 듣고는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내성을 순식간에 넘었다. 내성 지역은 조용해 보이지만 가까이 돌아다녀 보면 잔잔한 소곤거림이 많았고, 외성지역의 떠들썩함보다 더 귀중한 정보들이 오갔다.

‘앗!’

대장쥐는 한 집의 벽에 손을 대었는데, 물컹거림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벽의 딱딱한 감촉을 느꼈다. 손과 벽이 마주한 곳에 푸른색의 마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파크는 튀지 않았다.

얼른 손을 뺀 대장쥐는 주위를 다시 살피고 다시 손을 벽에 가져다 댔다. 마력의 층을 뚫고 벽을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 그렇게 해도 이 마법을 행한 마법사에게는 들키지 않는 듯했다.

‘<검은 장막> 때문이다. 역시.’

그 힘을 얻었을 때, 얻었던 무한한 자신감. 그것을 진실로 재목격한 대장쥐는 그대로 영주성으로 숨어들어 갔다. 영주성에 들어서자마자 마력이 한 번 대장쥐의 몸에 가루가 앉은 것처럼 내려앉았다.

깔끔하게 털어낸 대장쥐는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밤은 길었고, 목적지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가장 깊은 곳이 최고지.’

대장쥐는 가장 깊은 곳으로 움직였다. 그곳이 가장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척. 척.

금속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쥐가 그늘진 곳에 숨었다. 그것만으로도 수비병은 그대로 대장쥐를 지나갔다. 하지만 딱 한 호흡의 차이를 두고, 맨발을 하고, 검은색의 옷을 입은 자가 코너를 휙 돌아서 나타났다.

숨어있는 상대를 당황하게 하여 빈틈을 만들어내는 순찰 전술이었다.

“······”

다행스럽게도 대장쥐는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에 대한 끝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섬뜩한 곳이다. 더 조심해야겠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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