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여름
불파겐 영지는 자유기사가 일시적으로 유입되지 않고 있었다. 봉급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부흥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선택할 자유기사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깊은 고민을 요구했다.
그 덕에 게제라스는 자유기사를 얻기 위해서 조금 절박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무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박봉해도 오는 사람은 있는 법이지.’
게제라스 총관은 들어온 자유기사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일단 단신(短身)이었다.
기사로서 단점이다. 키가 작으면 기사를 하면 안 되었다. 그게 정석이다. 만약 단신으로 기사를 한다면 팔이라도 남들보다는 길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땅따리~했다.
‘방어구도 하나 없네.’
등짐에 돌돌 말아서 위에 얹은 털 가죽이 보였고, 흉갑 하나 입지 않았다. 누더기 옷에 구멍 뚫린 부츠를 신고 있었다. 혁대에는 <갈고리>가 덜렁거렸다.
천으로 둘둘 만 장창을 무기로 쓰고 있는 듯했다.
‘혈통으로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고.’
평범한 푸른 눈에 강렬한 주황색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었다. 약간 높은 곳에서 묶었기에 제법 야성미가 느껴졌다.
오면서 사냥한 토끼가 등짐에 걸려있어서 그냥 용병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몰골에도 게제라스는 목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차가 좋습니까? 술이 좋습니까?”
“술을 주시오.”
그를 대우해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진짜 자유기사라면 게제라스는 한 명의 자유기사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거짓이라면 게제라스가 제법 대우해준 것을 빌미로 더 큰 벌을 내릴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유기사에게 대우해주는 게 맞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때 개박살을 내는 게 안전한 방법이었다.
술을 총관이 직접 내어주자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살면서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 듯했다. 혹은 게제라스 같은 문인을 만나지 못했던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십니다.”
“불파겐 자작의 왼팔이라 불리는 사람 아니오? 내가 잘 못 알고 있나?”
거침없는 말에도 게제라스는 분노 하나 없었다.
“맞습니다. 그저 매사에 조심하는 거라고 여기십시오. 어디 가문의 자유기사입니까?”
“내 이름은 겐이고. 가문에 대해서는 자작님과 독대를 통해서 말하고 싶소.”
“그분은 <은고원 마을>에서 대산 너머를 토벌하고 있습니다.”
술을 병째로 마신 겐이 빈 술병을 내려놓았다.
“위치만 알려주면 그곳으로 가겠소.”
“필요한 건 있습니까?”
게제라스는 그렇게 물으며 눈을 반짝였다. 질문 자체에 음흉함이 제법 끼여있었기 때문이다.
“술과 식량만 조금 주면 될 것 같소.”
겐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양이나 질에 대해서는 일말 없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서 가겠다는 뜻이었다. 무뚝뚝함과 둔한 맛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밖에 누구 있는가!”
“예! 총관님!”
“자유기사 겐에게 병사들이 마시는 술과 식량을 내어주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겐이 일어났고, 게제라스는 문이 연 곳으로 그를 인도하며 말했다.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대련이라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소.”
게제라스는 빠르게 자리를 만들었다.
겐은 스트레칭을 하며 적당히 기다렸다. 창을 두른 천을 풀지는 않고, 그대로 쥔 채 연병장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병사의 말에 겐은 고개만 까딱했다. 시작부터 도발이었지만 상대 병사는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정신 훈련이 잘 되어있군. 어떤 기사인지 모르겠지만, 병사에게 독기가 느껴진다.’
끈적끈적하고, 마른 사막에서 어떻게든 오아시스를 찾겠다는 그런 절박함이 깃들어있는 눈을 하고 있었다.
‘체격도 크고, 거기에 방패병. 확실하게 테스트로는 나쁘지 않지.’
창으로 방패병을 이기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얼마나 빨리 제압하는지를 확인한다면 겐이 어느 정도 수준을 지닌지 알 수 있었다.
창의 날만 벗긴 상태로 겐이 싸움에 들어섰다.
방패를 들어 올린 병사와 겐은 대치하고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격돌했다. 겐은 방패를 적당히 두드리면서 하단을 집요하게 노렸다. 병사는 방패를 조금 내리고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서 하단을 원천 봉쇄했다. 동시에 한 손망치를 방패 위에 두어서 상단 공격을 쳐낼 준비까지 해두었다.
‘속이 뻔히 보인다.’
병사는 상단으로 자유기사가 올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이실레아에게 당하기만 당했기에 병사들의 방어는 수준급이었다.
“하아아압!”
겐이 기합을 지르며 순식간에 땅을 창으로 치며 그대로 투구를 노렸다. 망치가 위로 올라갔고, 그 사이에 병사의 시선이 창끝으로 향했다.
퍽! 파라락!
망치로 천에 싸인 부분을 쳐내는 소리를 뒤로 이상한 소리가 이어졌다.
덜그럭!
“웃!”
혁대에 있던 갈고리가 쇄골이 있는 부위의 갑옷 틈새에 걸어져서 당겨졌다. 단신임에도 힘이 대단했고, 당황한 병사는 쉽게 자세를 바로 세울 수 없었다.
콰당!
순식간에 넘어졌다. 겐은 그럼에도 가만히 있었다. 병사가 재빨리 일어나서 방패를 고쳐잡았다.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왜 상대가 가진 무기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지 않느냐?”
겐은 그렇게 말하며 갈고리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밧줄을 당기면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밧줄을 추가로 걸어서 겹겹이로 만들며 능숙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야아!!!”
병사가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양손이 없는 장창은 보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게 정석이다. 물론 방패를 앞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겐은 왼손을 뒤로 크게 당기면서 밧줄을 가지런하게 만들며 오른손의 엄지를 앞으로 하여 창날은 앞으로, 창대는 뒤로 보냈다.
일순간이지만 균형이 유지되었고, 뒤로 간 왼손이 창대를 잡았다.
따다다다당!
창이 병사의 방패를 두들겼다. 자연스럽게 병사가 돌진을 멈추었다. 맹공 속에서 돌진을 하기에는 체중이 받쳐주지 못했고, 균형이 위태로웠다.
겐이 방패의 바깥 부분을 이리저리 치면서 방패가 휘청휘청 거렸기 때문이다. 방패의 면적이 컸고, 달리는 도중에는 방패에 대한 제어가 낮아졌다.
돌진을 계속했다면 방패 때문에 고꾸라지거나, 다른 변수가 생겼을 것이다.
“흡!”
상대 병사가 돌진을 멈추자 겐이 뒤로 한 걸음 움직이며 간격을 넓혔다. 동시에 방패와 밑을 노렸다. 강철로 된 부츠를 입고 있었지만 충격이 절로 전해졌다.
리치가 긴 장창이었기에 파괴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기묘하게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창술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려치기의 이점을 얻는 찌르기를 하고 있었다.
방패를 치는 행동으로 상대를 밀어내고 동시에 아래로 찌르는 공격에 다양한 힘이 깃들 수 있었다.
헛수가 다음 하단 공격에 힘을 불어넣는 독특한 창술이었다.
중하단의 공격 속에서 병사의 집중력이 아래로 향했다. 발을 계속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자극에 인간은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팍! 카가각!
“헉.”
한순간에 투구가 하늘을 날았다. 누구도 그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동체시력이 뛰어난 드낙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투구가 허공을 날았고, 창은 대각선으로 하늘을 찌르듯이 높이 들어올려졌다. 창끝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그대로 두면 창이 곤두박질칠 것이다.
슥슥!
겐이 창을 뒤로 잡아당기며 창이 고꾸라지는 것을 막았다.
모두가 그제서야 호흡을 했다. 투구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을 때,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대련을 하던 방패병은 다리에 힘이 풀려있었다. 머리에 충격이 왔고, 투구가 하늘로 솟구쳤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고, 창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고 멀쩡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사제! 다리를 치료해주시오. 아마 피멍으로 가득할 것이오. 훈련이 잘 된 방패병이였소.”
사제가 서둘러와서 강철 부츠를 벗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으으윽!! 아그극!”
흥분이 사라지자 방패병이 비병을 질렀다. 강철 부츠를 벗기는데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뼈가 부러진 것처럼 고통이 극심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피가 주르륵 강철 부츠에서 흘러내렸다.
발은 엉망진창이었다. 발톱 중에 부러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고기를 망치로 팬 것처럼 박살이 난 발톱이 퍽퍽 박혀있었다.
“이런 끔찍한···”
게제라스가 그걸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신성력의 빛이 터져나갔다. 방패병은 금방 설 수 있었지만 모두 겐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더 좋은 술을 내어드려도 되겠습니까?”
게제라스가 깍듯하게 말했지만 겐이 거부했다.
“병사들이 마시는 것을 주시오.”
“예.”
겐은 술이 든 가죽 주머니를 두 개 받았고, 식량은 딱 은고원 마을까지 갈 수 있을 만큼만 짊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짐이 크게 늘어났지만 거뜬히 움직였다.
그는 발걸음이 굉장히 빨랐다. 방랑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모닥불이 지펴진 곳에 창을 두며 <겐 쟝(Gen Jean)>의 눈이 타오르는 불길에 담겼다.
<하늘의 창>
<투구걸이의 기사>
<음흉한 갈고리>
수많은 이름을 남겼던 쟝 가문의 후손이 그였다.
‘과연 불파겐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짓을 보면 <계승>조차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정황이 많았다. 겐은 두근거리는 가슴과 답답한 마음에 술을 입에 가져갔다.
핏!
바람 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음식 냄새에 이끌려온 여우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이 난 채 풀썩 쓰러졌다. 어느새 창을 들고 있는 겐이 다시 창을 바닥에 두었다.
모닥불에 그의 양손이 들어왔는데 새끼손가락이 엄지손가락만큼 퉁퉁했다. 특히 왼손의 새끼손가락의 안쪽 옆부분에는 굳은살로 가득했다.
그저 균형을 잡는 것으로만 사용되는 왼손을 창의 추진력에 힘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엄청나게 고생한 흔적이었다.
남들은 보름 동안 갈 산길을 겐은 단 8일 만에 주파했다.
그는 드낙과 마주할 수 있었다. 게제라스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병사들에게 건넸기 때문이다.
드낙은 편지 안을 확인했다. 상대 자유기사의 실력이 굉장했다는 것이 적혀져 있었고, 투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렸다는 것이 드낙의 눈길을 끌었다.
들어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제라스의 편지에서 눈을 돌린 드낙이 물었다.
“투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렸다고?”
“예.”
“···가문 명이 뭔가?”
조금 머뭇거리는 모습만으로도 겐 쟝의 목소리가 떨렸다.
“쟝 가문입니다.”
그것을 토하며 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드낙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그를 거칠게 껴안았다. 별 감흥이 없을 수가 없었다. 드낙은 믿고 일을 맡길만한 인재가 필요했다.
“와줘서 고맙다! 지금은 자유기사라고?”
“예.”
“고생이 많았을 터다.”
“불파겐 또한 그랬을 겁니다.”
드낙은 등을 두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쟝 가문은 진즉에 세파리아스에게서 들었다. 상단세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쟝 가문의 창술이었다.
그는 앉자마자 겐 쟝에 대한 보상부터 들이밀었다.
“지금 있는 마을은 모두 장원으로 내어준 상태다. 장원에 대한 선약도 있으니, 그것이 끝나면 곧바로 내어주는 것이 정상이지만, 조금 조금씩이라도 이주민을 보내어 지금 당장 마을을 하나 만들어주겠다.”
“감사합니다.”
불파겐의 은원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파겐이 아니라는 소리와 같았다. 드낙은 쟝에게 무조건적으로 가문의 부흥을 도와줘야 했다.
“가문의 생존자들은 제법 있나?”
“예. 북부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수들을 빌려줄 테니, 가서 데리고 와라. 은화도 넉넉하게 주마.”
“감사합니다.”
드낙은 그 길로 병사들에게 광산의 관리를 맡기고, 서둘러 <호수 마을>로 향했다. 은을 착복하더라도 지금 이 일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잘 만하면 불파겐 가문의 친구 가문들과 함께할 수 있다.’
겐의 행색을 보니, 다른 가문들은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 농후했다. 가장 배가 고팠던 쟝 가문이 처음으로 왔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먹고 살 만한데, 굳이 다시 불파겐에게 가야 하나 싶겠지.’
특히 지금 남부왕국의 상황을 보면 감히 투자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쟝 가문에게 부족하더라도 즉각적인 대처를 해야했다.
‘제국 전신갑주에 대한 소식은 언제 오는건지. 그게 되어야 마음 편하게 제국 전신갑주를 베풀어주는데.’
드낙이 아쉬워했다. 몽펠리에 가문과 파이룬 가문이 생각보다 제국 전신갑주에 대한 연구 정보를 내어주는게 늦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5717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