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19화 (41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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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대형 상단이 <호수 마을>의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대상(大商)이었으므로 그 모든 것을 한곳에 밀집하여 수용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롱피서스 상단>은 몽펠리에 가문 소속의 캐러밴이기도 했다. 이 상단을 꾸리는 <마르닷 롱피서스>는 순박하게 생긴 데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새하얀 피부에 항상 웃고 다니는 자였다.

“이게 불파겐 영지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니. 허, 참나.”

그는 마차에서 내리며 혀를 찼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직접 명령을 내렸기에 바짝 움직였는데 그 목적지가 이딴 형편없는 곳이라니.

“그래도 불파겐 아닙니까?”

“상인에게 불파겐이고 나발이고 어딨어? 돈이 중요하지.”

그는 바닥에 가래를 퉤하고 뱉었다. 인상과는 다르게 성질이 더러웠다.

외딴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 사람들의 돈을 훔쳐서 몽펠리에 영지로 들어서서 상단을 꾸린 것이 그였다. 돈이 두둑하니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마저 버린 것이 그였다.

‘구질구질한 곳을 벗어났는데, 이런 외딴곳에 오게 되다니.’

짜증이 확 돋아났다.

“빨리 돌아가고 싶으니까, 바로 영주를 보자.”

“예.”

용병이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검문도 안 받고 떵떵거리며 몽펠리에를 외쳤다.

“몽펠리에 소속의 상단이다! 지금 당장 영주님을 봐야 하니, 길을 비켜라!”

호수 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병사 세 명이 서로 쳐다보더니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이 그러한데 용병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왜 웃는 거냐?”

"시답잖은 용병 새끼가 어디서 반말을 찍찍 싸뱉어?”

덩치 큰 병사가 우직하게 다가오자 용병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병사들이 낄낄거렸다.

“이실레아 님에게 들은 것치고는 독기가 없는데?”

“용병이 아닌가 보지.”

“그럼 뭐야?”

“몰라. 병신?”

푸하하하!

용병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몸을 들이밀었지만 배치기에 그대로 뒤집어졌다.

“이, 이놈들!”

<마르닷 롱피서스>가 냉큼 나서서 손가락질을 했지만 손가락이 잡혀서 그대로 꺾였다.

“끼엑!”

고블린 같은 소리를 내며 롱피서스가 그대로 양 무릎을 뚫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병사는 손을 놔주면서 뒤를 가리켰다.

“귀족이 아니면 뒤에서 순서를 기다려라! 호수 마을에 예외는 없다!”

“끄으응···”

‘두, 두고 보자. 미친 병사 새끼.’

“빨리!”

“히익.”

마르닷 롱피서스가 뒤로 호다닥 움직였다. 병사가 겁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줄을 서다가 이내 다시 빠져나와야 했다.

“헥헥. 헥!”

몽펠리에 소속의 대상이 왔다는 말에 게제라스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말을 탈 줄 몰라서 달려와야 했다.

“총관님을 뵙습니다!”

척!

인사를 하는 병사들의 어깨를 손을 높이 들어 올려 다독인 게제라스가 잠시 손에 힘을 주고 기대었다.

“여기 물이 있습니다. 끓인 물입니다.”

“고맙다.”

게제라스는 물을 마시고, 병사 하나가 눈치 좋게 고함을 질렀다.

“롱피서스 상단의 책임자는 앞으로 오시오! 게제라스 총관께서 부르시오!”

“예에에!!!”

마르닷이 냉큼 줄에서 빠져나가서 히죽거리면서 손을 싹싹 비비며 웃는 상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게제라스와 마주치자마자 인사는커녕 면박부터 쥐어 박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소? 다른 가문도 그렇고, 불파겐 자작님이 그렇게 우습소?”

“예?”

“땅이 녹았을 즈음에 도착을 해야지. 봄이 다 가고 나서 왜 이제야 왔냐 이 말이오!”

벙찐 표정을 한 마르닷 롱피서스가 웃음을 헤실헤실 지으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식량을 최대한 모은다고···”

“변명이 그게 전부요? 북부는 일 처리를 왜 그딴 식으로 하는 거요?”

“죄송합니다···”

마르닷이 고개를 푹 숙였다. 게제라스는 롱피서스 상단이 자리 잡은 곳으로 걸어갔다. 뒤따라온 수행원들과 사제 1명이 따라붙었다.

“식량은 얼마나 되오?”

“염장 생선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또 소금부터 시작해서 밀포대 또한 최대한 챙겼습니다. 여기 양피지를 받아주십시오.”

“음.”

게제라스가 수량을 확인했다.

‘좋군.’

호수 마을 사람들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다. 대상다웠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량을 꼼꼼히 확인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젊은 문인들이 도착했다. 하나같이 땀으로 절어있었다. 게제라스가 일에 미쳐있었기에 허투루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오지.”

“아아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총관님께서는 뛰어갔다고 호들갑을 떨어대어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는 문인까지 있었다.

사람들의 훈수! 그건 시대를 뛰어넘은 공통점이었다.

“물건들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해라.”

“예!”

문인들이 흩어졌다. 그 모습에 마르닷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곳곳에 장난질을 해놨기 때문이었다.

‘들키진 않겠지?’

심장이 콩닥거렸다. 식량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것이 아랫것들이고 잡것들이기에 장난질을 제법 쳐놓고 이득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마르닷 롱피서스가 나쁜 놈인 게 아닌 것이 그런 상인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허허··· 굳이 확인까지 해야겠습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확실하게 하는 것이 문인들이고, 관료들이요. 전량 확인이 끝나면 거래를 시작하겠소.”

뒤에서 병사들이 저울까지 가지고 오고 있었다. 밀 몇 포대를 끈 짐수레도 왔다. 비율을 따져서 확실하게 균형을 맞추어서 거래를 하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게제라스가 다른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밀 쪽을 보던 문인이 눈을 찌푸렸다.

<청렴>하기 때문에 산수가 좀 느려도 관료로 고용된 것이 <문인 고이슨>이었다. 내년에 <라이터(Writer)>라는 성씨를 받을 예정이었기에 더더욱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돌 반, 밀 반도 아니고···’

“병사! 이걸 가지고 총관님께 보여주어라!”

“예!”

밀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딱딱해서 못 먹을 정도로 개량이 안 된 산이나 들에서 나는 잡곡들이 눈에 보였다.

“볼 것도 없군. 돌아가시오.”

게제라스가 가져온 물건의 수량이 든 양피지를 건네주면서 마르닷 롱피서스에게 말했다.

“예? 도,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몽펠리에의 뜻은 잘 전해 들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이오.”

게제라스가 몸을 돌렸다.

“어이쿠! 총관님! 총관니이이임!!!”

배가 불룩 튀어나온 마르닷이 그대로 엎어지면서 총관의 다리를 잡았다. 병사 셋이 달려들어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뒤에서 목에 팔을 둘러서 잡아당겼다.

“켁!”

숨이 막히는 것뿐만 아니라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강하게 목을 조였기에 마르닷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험하게 다루지 마라. 몽펠리에의 뜻을 직접 전달해준 사람 아닌가. 사신으로 대접해라.”

“죄송합니다!”

병사들이 게제라스에게 사과하며 그를 풀어주었다.

“헉! 헉!”

손발을 벌벌 떠는 마르닷이 패닉에 빠졌다. 귀족과 몇 번이나 같이 해처먹으면서 어떻게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지 잘 알았다.

‘X 됐다.’

“살려주십시오! 게제라스 총관님! 제, 제가! 뭐라도 하겠습니다!”

그 말에 게제라스가 몸을 빙글 돌렸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몽펠리에가 불파겐과 헤어지겠다고 말하는데 왜 자네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가?”

“제가, 제가 탐욕에 눈이 멀어서 그랬습니다. 몽펠리에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게제라스가 혀를 찼다.

“쯧쯧. 그렇구만.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 관리 못한 것도 잘못이지. 잡곡과 돌이 섞인 밀은 우리가 압수하도록 하겠네. 증거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니 용서해주게.”

“아닙니다! 아닙니다아아악!!!”

마르닷이 팔을 휘적거리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이대로 상황이 끝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더 뭘 하겠는가?”

“염장한 생선은 장난치지 않았습니다. 모두 먹을만합니다.”

게제라스의 눈이 염장 생선이 있는 항아리를 조사하는 문인에게로 향했다. 병사가 툭하고 문인을 쳤고, 문인이 게제라스를 보며 고개를 일단 끄덕였다. 막대로 휘저어 보고, 살짝 맛을 봤을 때 매우 짠맛이 느껴졌다.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값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흠···오늘 잘못에 대한 몇 가지 문서를 써서 공증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나중에 딴 소리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마르닷이 마라톤을 한 것처럼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말 그대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박살이 날 뻔했기 때문이다.

“호수 마을로 들어오게. 몽펠리에 가문에서 전해주라는 말이 있을 것 아닌가.”

“예. 콜록! 콜록!”

입은 물론이고 목 안쪽까지 바짝 말라버려서 마르닷이 대답을 하다가 기침을 했다.

자리를 옮긴 마르닷 롱피서스가 따뜻한 차를 홀짝였다. 그 눈에는 게제라스에 대한 공포로 가득했다. 대상으로서의 커리어가 한 방에 박살 날 뻔했다.

‘끔찍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만 해도 심장에 무리가 오는 기분에 휩싸였다. 만약 그냥 돌아갔다면? 혹은 불파겐에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흐으으···”

오한이 엄습하자 마르닷이 몸을 떨었다. 게제라스가 그걸 보면서 말했다.

“추우신가?”

“아닙니다. 헤헤···”

마르닷이 습관적으로 헤실거렸다. 자신이 철저하게 약자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목책으로 이루어진 허접한 곳이 아니었다.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몽펠리에의 소식을 말해보시오.”

게제라스의 말에 마르닷이 냉큼 품에 있던 양피지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인장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고, 뜯은 흔적은 없어 보였다. 게제라스는 뜯지는 않고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의심을 하는 모습에 마르닷 롱피서스가 불쾌감을 느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우거 토벌 2차 실패.’

게제라스의 눈이 빠르게 양피지를 훑었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최신 정보들이었다.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빠르게 정보를 얻은 것일 터였다. 말 그대로 <최신 정보>라고 이름 짓기에 충분했다.

‘15미터? 미쳤다.’

오우거에 대한 정보 또한 적혀져 있었다. 보통 오우거의 체구는 작게는 5미터에서 크게는 9미터인 것을 생각했을 때 거의 2배에 달하는 신체를 지닌 오우거였다. 입이 절로 벌러졌다.

실제 병사들을 통한 전투 정보까지 써져있었는데, 그 정보에 대한 것은 질 좋은 종이로 양피지에 함께 첨부되어있었다. 게제라스는 종이를 뒤집어서 테이블에 놓고, 양피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남부의 상황이 끔찍하네. 국가 붕괴가 되지는 않겠지만, 결코 전쟁을 수행하지는 못할 터다.’

이주민의 급증, 치안이 위태로운 데다 사제들이 사라지며 곳곳에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다.

망조가 깃들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그것이 중립신이 의도한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은···3왕자에 대한 이야기네.’

뜬금없었다. 하지만 위치상으로는 알아야 하기도 했다.

‘동남쪽에서 활동 중. 몰락 귀족들을 규합하고 있는 건가.’

총관은 쓴맛이 났다. 남부 몰락 귀족들을 통해서 남부의 철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북부 전선>부터 시작된 악연을 봤을 때, 철을 얻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후우···”

게제라스가 심호흡을 했다.

‘철에 대한 것은 없네. 약삭빠른 짓을 하겠지.’

몰래몰래 할 생각인 듯했다. 공론화 시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거의 확실한 방법이다.’

불파겐의 나약한 세력을 생각한다면 작위를 받은 드낙 불파겐이 상인이 되지 않고서는 철을 가져오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또 드낙이 직접 간다고 해도 대량으로 구매하지는 못할 것이고, 가격도 비쌀 것이다.

철이 비싼데 불파겐이고 나발이고 싸게 살 방법은 없었다.

‘외척에 기댈 수밖에 없겠는데.’

“혹시 철을 가지고 온 게 있나?”

“철이요? 아니요. 없습니다.”

마르닷이 냉큼 대답했다. 게제라스의 눈이 착 가라앉아졌다.

‘트롤 원정을 생각해서 이번 년에는 아예 안 줄 수도 있다. 그리되면 안 되는데.’

걱정이 크게 들었다. 드낙이 고개는 숙이지 않아도 몸을 굽히고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철은 그만큼 많은 곳에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끝났으면 돌아가게.”

“예. 감사합니다.”

게제라스는 마르닷 롱피서스와의 만남을 끝냈다. 반년치 식량의 <염장 생선>을 공짜로 얻었다. 소금을 비롯한 생필품도 마찬가지였다. 큰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철이 없는 것이 찜찜했다.

‘이걸로 퉁치라고 할 수도 있다. 저런 상인 놈을 보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돼.’

더 멀리 내다보기도 했다. 이게 선물일 수도 있었다. 너무 뻔히 걸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잡한 놈이었다. 해처먹기만 하는 돼지 새끼를 보냈다는 건 믿기 힘들었다.

용병들이 수행원인 것도 그런 근거를 뒷받침했다.

‘방계가 아니라는 것이고, 책임을 물어 마음대로 하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게제라스의 고민이 깊어졌다.

똑똑.

“무슨 일인가?”

“예. 게제라스 총관님. 롱피서스 상단과 함께 온 자유기사가 몸을 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 들어오라고 해라.”

“네.”

병사가 그렇게 나가고 잠시 뒤에 사내가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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