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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17화 (41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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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서부 전선>은 <제8차 공격전>을 끝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2왕자 파벌>이 결사적으로 항의를 했고, 의견을 크게 냈기 때문이었다. 아라온 플래티넘으로서는 그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백금 왕가의 핏줄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제시한다면, 자신의 정통성을 낮게 잡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마신장(魔神將)>을 죽이기 위해서 2왕자를 죽인다면, 아라온 또한 대의를 위해서 죽어야 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어떻게 한다.’

2왕자 파벌은 한시라도 1왕자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수작질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이었고, 지금 이 엄청난 위기에 혼자 쉴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지도자로써 나약해 보일 수 있었다.

독대 또한 당연히 불가능했다.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평생 꼬리처럼 따라올 것이다.

‘폼포스가 순교자가 되면 좋을 텐데.’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아라온은 빠르게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의 정치력은 백금 왕가의 혈통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한 뱀과 같았다. 자신에게 무엇이 이득이 될지 그 결과부터 먼저 생각하는 비상한 머리를 지녔다.

폼포스가 순교자가 된다면 얻는 이익은 엄청났다.

‘퇴각할 수 있다.’

2왕자 파벌이 데려온 기사. 그들이 가지고 오고 있는 식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추가 보급이 없으면 자연히 왕국이 스스로 짊어져야 했고, 이를 빌미로 퇴각을 할 수 있었다.

명분은 폼포스의 무모함이면 충분하다.

또한, 후계자 구도 또한 견고해진다.

‘남부왕이 될 수 있다.’

3왕자 길게이는 뛰어나지만 기반이 얕다. 남부왕국의 외곽지역에 퍼져있어서 집중하기 힘들어 내전에 돌입할 수가 없다. 남부 왕국은 <중앙 집권체제>이기 때문에 중앙에 얼마나 큰 힘을 가지냐가 중요했다.

폼포스가 사라지길 원했지만 아라온은 결코 적극적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난리를 치는 것이 2왕자 파벌이었다. 그들을 모두 죽이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고, 곱게 죽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만들 하라. 그대들은 내가 동생을 죽이는 패륜아로 보이는가? 언제까지 내가 이런 모욕을 참아야 하는가.”

“무례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아라온의 말에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선을 넘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왕자가 죽는다면 그들 파벌은 엄청난 재산을 내어주고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좌천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플래티넘 42세>는 그것을 가만히 방관할 것이다. 왕권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남부왕이었다. 귀족들이 뒤지든 말든 재물이 빼앗기든 말든 상관없어하는 게 그였다.

‘오히려 환영하겠지···’

왕자들의 후계자 싸움을 방관한 이유가 귀족들의 역량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뛰어들어야 했다. 그만큼 백금 왕가의 정치력은 지독했다.

“오우거와 타협을 상식적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상대는 마신의 장군말이다. 그런데 타협을 한다면 남부왕국은 마신과 결탁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허나, 남부왕국의 지엄한 왕자를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어떤 대의보다 중요한 것이 플래티넘 왕족의 핏줄 아닙니까!”

맞습니다!

많은 신하들이 플래티넘의 핏줄을 높이 세웠다.

“그대들의 말이 참으로 옳다. 하지만 폐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지는 걱정이 많다.”

“전시이기에 다소의 실수도 눈 감아주실 것입니다. 또한 현장에서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아라온 왕자 전하 보고 지금, 마신의 같잖은 장군말과 협상을 정말로 하자고 말하는 건가!”

“왕족을 지켜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 아닌가!! 아니면 폼포스 왕자 전하를 죽이자는 것이냐? 역적의 생각이다!!”

“뭐라?”

언성이 높아지자 아라온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자연스럽게 눈치 보는 이들이 소리를 지른 가신들을 쿡 찔렀고, 사과를 하도록 유도했다.

“죄송합니다.”

“흥분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 사과를 받으며 아라온이 입을 열었다.

“내 동생을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을 죽인 마신장을 가만히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은 놈과 협상하여 동생을 빼내야 한다.”

아라온의 말에 1왕자 파벌이 반대에 나섰다.

“들킨다면 어찌하시려고 하십니까!”

“놈은 인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신장 따위와 협상이라니, 과거에 한 번도 없었던 치욕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그에게 죽어나간 자들의 영혼이 피눈물을 흘릴 겁니다.”

2왕자 파벌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웅성웅성!

아라온은 그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오우거가 답답해서 폼포스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협상단을 보내겠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정하겠다.”

아라온은 예상대로 협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오우거의 힘이 예상외로 너무 강력하다. 괴이할 지경이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것인가.’

그 내면에는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깨뜨린 발라쿠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었다. 보통 오우거가 아닌 것이다.

벌떡!

그 말에 <볼메인 울바락스 후작>이 크게 발언했다.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이번 협상은 오우거에 대해서 잘 아는 자가 반드시 합류되어야 합니다.”

그는 당연히 2왕자 파벌에 소속된 자였다.

“허. 그럼 후작, 누구를 추천하고 싶소? 여기에 오우거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있는가.”

“<소인 케이시언 백작>이 있습니다. 그는 오우거 토벌은 물론이고, 오우거를 해체하는 것에 앞장섰고, 보고서와 연구 일지까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아라온의 눈이 케이시언 백작에게로 향했다. 마법사임에도 작위에 대한 집착을 지녔고, 상당한 재능을 지닌 마법사였기에 백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상업적이고, 친왕가적인 행보를 지닌 자였다.

특히 재정, 마법사 전력에 있어서 폼포스를 도와주는 기둥 중에 하나였다.

“좋다. 그를 협상단에 넣어주마. 더 말할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협상단>은 금방 만들어졌다. 2왕자 파벌은 단 1명만 넣어졌다.

“반드시 내 동생을 살려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구해보겠습니다!”

<베사익 롱룰 공작>이 크게 대답했다.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반드시 구해주게.”

협상단과 악수를 하며 아라온이 여러 번 말하였다. 물론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못 읽을 자는 협상단에 넣어지지도 않았다.

일단의 병력과 함께 협상단이 텅 빈 기사 마차에 너도나도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소인 케이시언 백작>에게 1왕자 파벌의 귀족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일이 이렇게 되다니, 놀랍군. 설마 올바락스 후작이 자네를 추천할 줄이야.”

“하하. 저도 놀랐습니다. 그만큼 제가 진정으로 폼포스 왕자를 위해서 일을 했다는 것이겠지요.”

케이시언 백작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1왕자의 스파이가 바로 그였다.

“폼포스 왕자는 결코 되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마차가 울퉁불퉁하고 박살이 난 곳을 거침없이 지나갔다. 기사 마차는 험지에서도 곧잘 다닐 수 있었다.

“협상단이 도착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발라쿠!!”

쿵!

“크크크!”

오우거 발라쿠의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편하게 앉았다. 건물 잔해가 밀려나가고 주저앉으며 흙먼지가 대량으로 피어올랐다.

“<불어라 바람(bul-eola balam)>.”

그리 대단한 바람은 아니었지만 삽시간에 흙먼지가 발라쿠의 뒤로 사라졌다.

꿀꺽.

후방에 있어서 발라쿠의 활약상이 크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1왕자 파벌 소속의 귀족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저 알 수 없는 단어를 읊는 것만으로도 마법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마신장(魔神將).

무력은 기사를 뛰어넘고. 소서러 같은 마법은 그 어떤 고명한 마법사보다도 뛰어난 마신의 장군말.

“1만의 생명체를 매 년마다 바쳐라. 적어도 사람만해야한다. 그리한다면, 너희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겠다.”

“이 땅에서 물러간다는 소리요?”

그 말에 발라쿠가 미친 듯이 웃었다. 공기가 쩡쩡 울렸기에 방어 마법이 펼쳐졌다. 엄청난 성량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 땅은 이제부터 마신의 땅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지 않겠다.”

“폼포스 왕자는 풀어줄 수 있는가!”

“4번의 조공 그리고 최소 1년 뒤에 풀어주겠다. 그의 편의를 위해서 수행원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은 허용한다. 하지만 도주의 시도가 있을 시 내가 직접 나서서 쫓아가 왕자를 죽이는 것은 물론 다시 인간을 맹공격할 것이다.”

협상단은 그 말을 듣고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오우거 발라쿠! 너의 뒤에 흑마법사가 있는가!”

“놈들은 나를 배신하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너희 왕국의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발라쿠는 순순하게 진실을 말했다. 인간이 믿을지 말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협상단이 숙덕거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오우거가 제안하기에는 너무나도 음흉하오.”

“무슨 고민을 하나? 정말로 그렇다면 거부를 해야지.”

공작의 말에 다른 귀족들이 난색을 표했다.

“거부를 하면 오우거가 중앙으로 치고 들어올 것이오. 감당할 수 있겠소?”

“그건···”

공작의 눈에 죽은 자들이 녹색의 거미 마수에 의해서 거미줄이 둘둘 말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쇠사슬 거인이나 마수 약탈자가 그것을 짊어지고 던전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보급을 위해서 시체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 전쟁터에서 죽은 징집병의 숫자는 수만에 달했다. 자세한 숫자를 모르는 이유는 집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규병은 1~8차에 달하는 공격전을 수행하면서 8천 명이나 죽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험하겠지요?”

“빌어먹을 상황이오. 정말로.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죽었소. 서부에서 마수에게 잡혀죽은 자들까지 생각하면 오우거는 다시 한 번 겨울에 중부를 강타할 수도 있소.”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오우거를 죽일 수 있는 비전을 지닌 과거의 망령이 지금 되살아났지 않습니까?”

“불파겐을 끌어들이자고? 미친 건가!!!”

<베사익 롱룰 공작>이 발악했다.

“그 가문이 아니라면 막을 수 없습니다.”

<소인 케이시언 백작>이 그렇게 말하는 귀족들을 보며 공작에게 추가로 말했다. 그는 오우거를 해체한 경험이 있었다.

“거인족의 피부층을 뚫는 건 쉽지만, <뼈층>을 뚫는 건 어렵습니다. 뼈층을 뚫었다고 해서 오우거의 급소를 공략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불파겐은 그것이 가능합니다.”

공작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사이에 발라쿠는 코딱지를 돌돌 말아서 손에서 튕겼다.

쾅!

코딱지에 직격당한 반쯤 무너진 집의 벽이 그대로 기울어서 떨어졌다.

“······”

그것을 보고 사색이 된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귀족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좋다! 따라와라, 왕자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마.”

발라쿠가 기분 좋게 대답하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협상단은 무장이 해제된 폼포스를 던전 깊은 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쇠사슬 괴인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소인 케이시언 백작>이 눈물을 쏟아내며 폼포스를 끌어안았다.

“와주어서 고맙다. 백작! 내 살아나가면 그대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폼포스는 안도하며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고맙다.”

남부왕국은 공식적으로 오우거 토벌을 포기했다고 공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토벌에 나선 군대는 해산되었고, 뿔뿔이 흩어져서 치안을 잡는데 이용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동시에 회군을 하며 지정된 곳으로 향하는 군대들이 방문하는 마을 곳곳마다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돌아오지 않은 징집병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그게 밑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가진 자가 자신의 것을 스스로 내놓을 리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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