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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푹!
마수 약탈자가 피를 뿌리며 목이 베여졌다. 뒤이어서 방패를 얻어맞고 앞가슴을 드러내며 쓰러졌고, 심장을 연이어서 내어주었다.
혼전이 일어난 상태에서 정규군은 징집병을 밀어내면서 마수들을 각개격파했다.
마수가 많은 상황이었지만, 정규군은 명확하게 전투에 있어서 <다수>였다.
마수는 공간적으로 철저하게 열세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50명에 불과한 정규병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혼전으로 내몰린 징집병들의 존재가 마수의 발목을 크게 잡은 것이다.
“키엑!”
징집병과 마수가 서로 뒤엉켜있었으므로, 정규병에게 관심이 덜 집중될 수 있었고 마치 측면 혹은 후면을 후려치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철저하게 확인사살 하라! 결코 방심하지 마라!”
<우익기동>의 효과를 발휘한 것과 같았다. 기사는 <쇠사슬 괴인>과 중대형 마수를 염려하여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감 또한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보다 강한 종족을 밀어낼 수 있었던 힘.’
잉여생산물을 통해서 인간들의 머릿수는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신의 힘을 빌려서 치유의 힘을 가진 사제들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강력했다.
첫 방진에 소속된 <왕국 정규군>이 선두를 서는 척하며 사기를 높이고.
두 번째 방진에 소속된 <징집군>이 들어와서 베테랑 대신 죽는다.
전투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세 번째 방진에 소속된 사제와 정규군이 도착한다.
그 결과 베테랑 병사의 숫자는 최대한 유지하고, 난전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징집병이 다시 한 번 화살받이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사제 전력을 결코 전투에 투입하지 않음으로써 사제들이 작은 부상조차 당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인류가 수많은 종족들을 제치고 평야를 먹을 수 있는 이유였다.
촤르륵.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
“눈치도 좋군.”
전투가 마무리되어갈 때, 도착한 <쇠사슬 괴인>들은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 사이에 있는 100개의 머리통을 투척하는 전갈. 눈이 관절마다 달려있는 대형 마수 <백두전갈(百頭全蠍)>도 빠지는 듯 보였다.
투척할 수 있음에도 투척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나절 내지는 하루 안에 한 번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수가 저런 행동이 가능하냐?”
정규병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정규병이면서도 그것도 모르는 게 말이 되냐는 뉘앙스를 가득 풍겼다.
“교육 시간 때 잠만 잤냐? 기사님이 이곳은 지상도 던전이라고 했잖아. 마신의 은총이 가득한 곳이니까, 당연히 저럴 수 있지. 모르긴 몰라도 마신장(魔神將)의 수족처럼 움직일 거다.”
던전은 말 그대로 마수들을 위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들어서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으니까 더 무서워지는데. 일부러 죽었을 수도 있잖아.”
“설마. 그럴 리가.”
그때 기사가 소리쳤다.
“잡담은 그만 나누고 부상자를 옮겨라! 장애물을 두텁게 쌓아라! 1시간 뒤에 징집병이 추가로 들어온다! 그때 다시 움직일 것이다!”
“예!”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서둘러 움직이며 징집병들이 대충 세워둔 장애물을 다시 한 번 모았고, 몇몇 곳에서는 모닥불을 지폈다. 일단은 생명체인 마수에게 불타는 장작을 던지는 것은 제법 괜찮은 공격법이었다.
물론 그중에 징집병의 소리는 없었다. 전부 죽었거나 기절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더럽게 무겁네.”
“죽은 것 같은데, 그냥 둬.”
팔이 역으로 꺾인 징집병을 부목도 안 하고 옮기기 시작했다. 게거품을 문 징집병의 눈이 거꾸로 돌아갔다. 쇼크사 한 것이다. 그래도 정규병 중 누구 하나 제대로 운반하지 않았다.
<징집병>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대우가 오히려 정당했다.
슬쩍.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해.’
그 속에서 트렌지셔널 아머의 부속품을 몰래 빼돌리는 정규병도 있었다. 보급부대에게 건네주어서 질 좋은 포도주나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약탈을 기사들은 말리지 않았다.
사기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약탈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치고 오래 산 놈은 없었다. 기사라도 전신갑주를 입고 있지 않을 때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성공적인 1차 점령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알박기가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1~3차 공격전에 있었던 <원정대>의 생존자들이 구출됐다.
“살아남은 자는 더 없습니까?”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흩어졌소.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오.”
식량 창고로 좁혀드는 마수들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고, 살아남아서 복귀한 자는 대부분이 기사들이었다. 마법사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병사들이 서둘러 원정대의 생존자를 부축하여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도 안심이 되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거의 끌고 가다시피 했다.
“지금 바로 <검은 돔> 내부로 들어간다!”
“예!”
동시에 <2왕자 폼포스 플래티넘(Foamforce Platinum)>는 뭔가 되는 것 같자 냉큼 검은 돔의 안으로 들어와서 깃발을 걸고, 단번에 지휘부를 짰다. 반론은 전혀 없었다.
반면 1왕자는 검은 돔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겁쟁이라니까. 언제 봐도 형님은··· 안 그렇나?”
대범하게 나선 폼포스의 거대한 체형에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1왕자가 비겁하다고 소리를 내뱉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결코 왕의 그릇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고서가 들어간다면 능히 남부왕께서 폼포스 왕자 전하님을 높이 평가하실 것입니다.”
‘더러운 1왕자! 우리가 왔는데, 자기는 뒤에만 있어?’
그 배경에는 당연히 자신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자기는 내빼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2왕자 파벌이었기에 더더욱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았다.
전령이 안으로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2왕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원정대의 생존자를 어서 들여라!”
“예!”
병사가 대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폼포스의 앞에 초췌한 몰골의 기사가 들어왔다. 피곤에 절어있었으며 잠을 못 잤는지 충혈이 크게 되어있었다. 그래도 10분이라도 잠을 잘 수 있어서 그나마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2차 공격전에 투입되었던 선임기사 메인 베리라고 합니다!”
이름과는 달리 기세가 제법 있었다.
“많은 전우를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이 일을 끝내야만 한다. 무엇을 찾았느냐?”
“<던전 진입로>를 찾았습니다.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문에 마법사를 잃긴 했지만 큰 성과였습니다.”
폼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건물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던전 진입로>! 그것을 찾아냈다면 한 결 진행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단한 전공을 세운 게 아닌가? 이 기사를 후방으로 어서 후송하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사들에게 끌려왔지만 나갈 때는 들 것에 실어져서 나갔다. 또한 사제가 하나 붙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당연히 지금 진입해야 합니다.”
“마법 전력이 없이 오우거를 던전 내부에서 어찌 감당합니까?”
<검은 돔>에 대량의 마법 피해를 끼친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팩트였기 때문에 반박하는 자가 없었다.
“결국 하루는 더 있어야 하는군.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하는 게 옳다. 오우거가 딴마음을 먹기 전에 지상을 접수해야 한다.”
지하에 있는 것이 발라쿠였다. 그렇다면 지상을 먼저 점령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미 <던전 진입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기 때문에 그곳에 병력을 집중한다면 능히 튀어나오는 오우거를 밀어낼 수 있었다.
통로를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마신 성현의 던전이었다.
“진입로는 상당히 클 것이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다면, 오우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는 할 수 있을 터다.”
간이 막사임에도 모든 것이 다 있었고, 중앙 원탁에 놓인 <드래곤 로드 전투요새>의 내부 지도에 폼포스 왕자가 지휘봉으로 탁 가리켰다.
“현재 내부로 들어온 병력의 숫자는 몇 만인가?”
“정확히 절반인 2만입니다. 물론 그중에 정규병은 8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징집병입니다.”
“그래? 후방에 연락을 서둘러 보내라. 시간이 늦어진다면 오우거가 딴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예!”
한 명이 냉큼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규병 3천을 제외하고 5천을 <던전 진입로> 봉쇄를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어라.”
“하지만 지상에 있는 마수 중 <쇠사슬 괴인>과 중대형 마수와 아직 전투를 하지 않았습니다. 징집병은 결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도 상관없다. 최대한 전선을 유지하도록 하고, 후방에서 오는 정규병으로 막으면 된다!”
폼포스는 던전 입구를 막는 것에 큰 투자를 감행했다. 그만큼 오우거가 없는 지상은 승기가 보였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푸른색의 연기가 마법사들의 손에 의해서 뭉게뭉게 피어 올라갔다. 붉은색이 적극적인 색채를 뜻한다면 푸른색은 후퇴를 의미하거나 수비를 명령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정규병들이 모여들 것이다.
후방에 있는 <1왕자 아라온 플래티넘(Araon Platinum)>에게도 소식이 들어갔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
“예. 실패하기가 힘듭니다.”
정황상 마수들은 경보병이 시간을 끌고 중요 전력은 던전 안으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건물과 건물 잔해로 막혀진 곳에서의 전투는 인간이 많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을 했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군.’
마신장의 모습이 없는 것이 컸다. 15m에 달하는 거체다. 던전 내부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정규병은 이미 보냈습니다. 하지만 공성 병기는 아직 해체하지 않았습니다. 왕자전하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라곤이 신음했다. 폼포스의 판단이 이미 내려졌기에 그것에 편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잘못된 판단이라도 하나가 되어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승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성 병기는 또 달랐다.
“거리가 안 되는 소형 공성 병기는 지금부터라도 보내라. 하지만 중대형은 사태를 보고 움직이겠다. 어차피 안에서는 쓰지 못한다.”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마법사들과 마법 마차는 어찌하겠습니까?”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후방에 있는 막사에 잠자코 있던 이들이 모두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아라온이 눈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한 명씩 일어나서 답했다.
“마력도 채워지지 않은 마법 마차와 마법사들입니다. 지상을 어느 정도 접수했고, 마수 전력이 던전으로 내빼었다면 마력을 충전하고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은 따로 들었지만 마음에 내키는 것이 없었으므로 아라온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상의 완전하고도 완벽한 점령>은 지난했다.
<진흙 해골> 때문이었다.
벽, 바닥, 건물의 구석진 곳, 죽어서 나자빠진 전회차 공격전 때 죽은 시체들 등.
곳곳에 숨어있다가 달려드는 마수 진흙 해골은 끔찍할 정도로 인간들을 물고 늘어졌다.
“꾸륵! 거걱!”
“이 씨발 해골 새끼가!”
손으로 뭉텅이로 뜯었지만 한 번 덮쳐지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반투명한 갈색 슬라임에 해골을 집어넣은 듯한 모습을 지닌 <진흙 해골>은 사람을 덮치면서 순식간에 내부로 침투해버리기 때문이다.
“커컥! 꺽!”
기침을 해도 꾸역꾸역 들어갔고, 단 5초면 충분했다. 폐에 슬라임의 덩어리가 가득 채워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폐는 더 이상 공기를 들어보낼 공간이 없어지면서 액체가 찬 것처럼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진흙 해골>도 갈기갈기 뜯겨진 채 죽음을 맞이했지만 후방에서 달려온 <정규병> 또한 하나씩 죽어야 했다.
기사의 경우에는 단 한 마리의 마수 때문에 마법을 써야 했다.
말 그대로 끔찍한 교전 비율이었으며, 야비한 수법이나 다름없었다.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도 전투 요새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던전 진입로>는 완벽하게 포위가 되었다.
“소형 발리스타 1500대 모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오우거가 튀어나온다면 300대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곳곳에 투석기로 집들이 박살 나서 잔해를 치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많은 발리스타를 놓도록 하라. 지금이 가장 우리가 취약할 때다. 전력을 다해라! 지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한 번 승기를 잡았을 때, 놓치지 않으려고 인간들은 곳곳에서 발악을 했다. 특히 계단 형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멍처럼 나있는 <던전 진입로>를 아예 봉쇄하고 있었다. 온갖 것들을 닥치는 대로 던져대었다.
마수들이 오우거와 함께 뛰쳐나오는 것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오우거 하나라면 능히 막을 수 있었다.
<검은 돔 대타격> 때, 오우거의 마법을 막기 위해서 마력을 모은 마법사들이 폼포스의 3번 이상의 독촉 때문에 이곳에 와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정규병 5천.
마법사 1200명.
발리스타 300대 [email protected]
막강한 전력이 배치되어졌다.
“시건방진 인간 놈들. 그렇게도 내가 우습게 보였더냐?!”
마신장 오우거 발라쿠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면서 아래에서 들려왔다.
“불을 붙인 기름을 부어라!!”
콸콸콸! 화르륵!
장애물을 던지던 정규병들이 가져온 가죽 포대를 풀어서 기름을 쏟아냈고, 마지막에 포대에 불을 붙여서 그대로 떨어뜨렸다. 어둠이 밝혀졌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서 오우거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쿵!
하지만 확연하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인간들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발사 준비이이이!!”
끼릭! 끼리릭!
이제 막 장애물을 치우고 발리스타가 또 한 대 들어서며 순식간에 장전하기 시작했다. 태엽을 미친 듯이 감는 정규병의 턱밑에 구슬땀이 주륵하고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져서 점을 하나 만들어냈다.
장전이 되자마자 병사 둘이서 양옆에 서서 발리스타의 방향을 고쳐잡고, 한 명이 서둘러 뒤로 가서 높낮이를 맞추어서 거리를 가늠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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