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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14화 (41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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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제8차 공격>은 백금 왕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굴욕적인 전술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8차에 가서야 사용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드래곤 로드 전투 요새>.

서부를 굴복시키며 만든 백금 왕가의 상징과도 같은 기지였다. 중앙과 서부 사이를 가로막는 위대한 역사적 건축물이었다.

그것을 투석기로 스스로 부순다는 것은 뼈아픈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무슨 말을 들을지.’

<1왕자 아라온 플래티넘(Araon Platinum)>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후방에서 시작되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무너지는 성벽에서 언뜻 보이는 드래곤의 석상은 정치적으로 물어뜯길 미래를 연상케했다. 지금 하고 있는 전술은 말 그대로 찍 눌러졌던 3왕자 길게이가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투석기 공격이 거리계를 통해서 더 멀리 더 깊숙이 이루어지면서 사각형의 방진을 이룬 군대가 본격적으로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진이 10갈래로 단번에 쪼개졌다. <왕국 분대> 10개가 곧 하나의 방진을 이루기 때문에 사전에 약속된 것처럼 곳곳으로 진입했다.

<선임기사 1명>

<기사 3명>

<중보병 50명>

<궁수 10명>

<마법사 1명>

총 65명으로 이루어진 것이 왕국 분대였다.

<길게이 플레티넘>이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달랐는데, 기사와 지방군으로 구성된 <북부 전선>에서의 모습과 <왕국 중앙군>의 모습은 현격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 왕국 중앙군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서 마구잡이로 집입하는 <징집병>들의 방진 또한 있었다.

“이크!”

헐렁한 투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징집병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진입해라! 진입! 왕국을 위하여! 우리들의 잃어버린 땅을 위하여!”

기수들이 말을 탄 채 징집병들을 내몰았다. 징집병들은 고분고분했는데, 처음 선두 <왕국 중앙군>의 분대들이 전투 없이 빠르게 진입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들었던 거랑은 좀 다르지 않냐? 투석기를 진작에 쏘지.”

“다르긴 뭐가 달라? 저 시체들 안 보여?”

징집병들은 들어서면서 서로 떠들어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가슴에서 답답한 것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뭐라고 씨부렁 씨부렁 거려야 했다.

4~7차 공격전은 검은 돔을 두고 마수와 인간의 치열한 근접전이 있었다. 대인 마법으로 확실하게 중형 마수를 잡을 수는 있었지만 점령하면 밀리고, 점령하면 밀리고를 반복했다.

그 싸움의 흔적은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툭. 쯔억.

시체의 팔을 발로 건드렸을 뿐인데도 부패된 목이 푹하고 터지면서 가스가 나오며 목이 쩍 벌어지며 머리가 기울어졌다.

“씨발···”

썩은 내에 징집병이 코를 막으며 그 시체를 외면했다.

위에에에에에엥!!!

“흐윽! 씨발! 파리 새끼!”

엄지만 한 파리들이 시체에서 가장 많이 썩은 아랫배에 모여있다가 징집병의 발소리에 날갯짓을 하며 일어났다. 징집병들이 그대로 허공에 손을 버둥거렸고, 가장 가까이 있던 징집병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기겁을 했다.

“병신 새끼. 파리 하나에 그게 뭐냐? 저런 놈도 남자라고.”

“고추 떼! 병신아!”

몇몇 징집병들은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투석기와 공성 화살에 맞은 마수와 마주하기도 했다.

“끄억. 그억.”

숨소리를 거칠게 내는 <쇠사슬 괴인>이 주둥이를 뻐끔거리면서 힘을 줬다가 뺏다가를 반복하며 들썩이고 있었다.

푹! 푹!

숏소드를 양손으로 쥔 채 그대로 내려찔러서 확인 사살을 감행했다.

“어후우. 씨발. 다, 다리가 후들거리네.”

쇠사슬 괴인의 목을 딴 징집병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양 다리를 쩍 벌린 채 엉거주춤 천천히 합류했다.

“그거 하나 죽이고 이러냐?”

이곳에서 친해진 징집병이 어깨동무를 하며 거칠게 말했다.

“숨결이, 진짜 엄청나더라고. 그 거칠고 느리고 큰 숨결이 귓가에 아직도 맴도는 것 같아···”

쇠사슬 괴인의 목을 딴 징집병이 홀린 듯이 말했다.

“야, 너 괜찮냐? 엉?”

“어. 어어. 하아··· 진짜 미칠 것 같다.”

징집병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온몸이 뭔가 이상했다. 팽팽 뭔가가 도는 것처럼 느껴졌고, 속이 울렁거렸다. 손발도 좀 저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봄이 끝날 때면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다.

징집병의 무리는 사거리에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뜨문뜨문 인솔에 동원된 경기병들도 제법 모여있었다. 대로를 오고 가며 전령이 될 경비병들이었다. 미리 말을 맞추며 동선을 짜고 있는 듯했다.

“저 깃발은 뭐야?”

“여기를 점령했다는 뜻이지.”

사거리에서 가장 크고 넓은 건물에는 굵은 깃발이 여러 개가 놓여 있고, 지붕과 2층에는 궁수들이 배치되었다. 궁수들은 석궁을 사용하지 않고, 장궁수였으므로 창문의 틀을 망치로 부수고, 안에서 벽을 내려쳐서 부수고 발로 걷어차서 2층에서 활을 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마수가 온다!!!”

지붕 위에서 궁수 하나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거기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시간적 차이가 조금 있었지만 남쪽에서 치고 올라온 인간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서 삼면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장애물을 준비하라!”

붉은 바탕에 황금색의 테두리로 된 천을 어깨에 두른 <선임 기사>가 밖으로 나오며 외쳤다. 징집병들이 엉거주춤하자 답답한 듯이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너! 너! 이쪽 집으로 들어가서 가구란 가구는 모조리 뜯어서 가져와!”

“예!”

상세한 명령을 하고 나서야 징집병들이 움직였다. 3열까지는 징집병들로 채워지고, 4열부터는 왕국 중앙군 소속의 분대가 자리 잡았다.

“비켜라! 비켜!”

화살이 든 상자와 기름통 그리고 화덕을 든 병사들이 서둘러 사거리의 건물로 올라가서 궁수들의 탄약을 보충했다.

피융!

조용히 마수를 기다리면서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진 건물을 언덕처럼 넘으며 마수들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끼에에에!!!”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길쭉한 목을 지닌 개가 미친 듯이 짖어대었다. <긴목 마수개>였다. 온갖 흉터와 기괴한 신체를 지닌 돌연변이 같은 <마수 약탈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긴목 마수개>가 마수 무리 중 소형, 경기병에 속한다면, <마수 약탈자>는 경보병이면서 순찰자와 비슷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마수들은 <쇠사슬 괴인>이나 <백두전갈>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치고 들어왔다.

“발라쿠! 빨라쿠!”

인간들의 화살 공격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진행 방향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직 전진밖에 남은 방법이 없었다.

“버티면 이긴다! 숙련된 궁수가 우리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버티자!!”

“2열 방패는 앞사람의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1열은 다리를 보호하려고 하지 마라! 강철 부츠를 믿어라! 괜히 지급된 것이 아니다! 무는 감각에 뒤로 가려고 한다면 삽시간에 진형이 무너질 것이다!!”

징집병들은 카이트 실드로 아래가 길쭉하게 늘어난 방패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래에는 틈이 있는 법이었다.

<방패벽>은 징집병들의 근력을 생각하면 마수를 상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 세계에서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겹겹이 병렬처럼 늘어서서 체중으로 버티는 방법만이 인간이 살 길이었다.

“꼑!”

숙련된 장궁수들의 장궁은 고탄성에 강력한 장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면서 날아갔는데, 화살이 안 부서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출렁거리는 게 눈으로 보였다.

거기에 맞은 마수 약탈자나 긴목 마수개는 튕겨져나가며 뒤로 벌러덩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몇 마리나 얽혀서 나뒹구는 모습에 징집병들이 한 손 둔기나 숏소드를 들어 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개 같은 마수 새끼들! 다 죽어라!!!”

징집병의 열이 크게 흐트러졌다. 앞으로 툭 튀어나오거나 비스듬하게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등 엉망이었다. 단순히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진형이 일직선을 유지하지 못했다.

팍!

“뒤로 와라! 진형이 엉망이다!”

“예!”

기사들이 장대로 투구를 후려치면서 진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워낙 조밀해서 맞아도 대충 좌우만 살피면서 어긋난 진형을 대충 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투구를 쓰고 있는 징집병이라서 제한된 시야에 속수무책이었다.

타다닷!

마수 약탈자들 중에서 능력치가 좋은 마수는 벽을 타기도 했다.

“제기랄!”

“벽을 탄다!”

장궁수들이 짜증 섞인 분노를 내뱉었다. 이미 활을 쏘고 나면 대로를 달리며 오는 마수들은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기 때문에 쏘면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벽 타는 <정예 마수 약탈자>는 화살을 맞을 리가 없었다.

“키키키!”

또한 마수 약탈자는 쓰러진 마수 약탈자의 시체를 방패막이로 쓰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처음과는 다르게 나자빠지는 마수 약탈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수들이 도착하는 시간이 느려졌다.

그 사이에 징집병들의 사이사이로 장애물이 놓였다.

“뒤로 도망칠 길은 없다! 뒷걸음질 쳐도 뒷사람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기사들이 고함을 통해서 병사들에게 협박 섞인 말을 했다. 실제로 <인간들의 진형>은 적과 부딪치기 위한 진형이라기보다는 아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진형이기도 했다.

“마법사! 준비는 되었나!”

단상에 올라가있는 선임기사가 1층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자 젊은 마법사가 사색이 된 채로 빠른 걸음으로 단상에 도착했다.

“후우···흐으읍···후우우···”

심호흡하면서 마법사가 미리 가져온 스크롤 중 하나를 미리 쥔 것을 들어 올렸다.

“이것을 찢으시면 됩니다.”

“좋다. 이거 한 장이 끝인가?”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순서대로 찢으시면 되는 게 여기에···”

단상 아래에 마법사가 양피지를 두고 빠르게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선임기사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수준도 낮은 놈이, 꼴에 마법사라고.’

“전방을 향해 소리를 내질러라!”

“우와아아아!!!”

“다시!”

“우와아아악!!!”

기사들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게 유도하며 빠르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징집병들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우욱!

징집병과 마수들이 부딪치기 직전에 선임 기사가 스크롤을 찢었다. 전방으로 빛이 강렬하게 터져나갔다. 섬광탄과도 같았고, 눈을 일시적으로 멀어버리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지금이다! 공겨어어억!!!”

“으에이익! 씨바아알!!”

징집병들 중 전술을 계속 곱씹었던 자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뛰쳐나가서 무기를 휘둘렀다.

퍽!

둔기로 내려치고, 올려쳐서 턱을 날려버리고! 다시 한 번···

“아악!”

앞에서 누군가가 거칠게 징집병을 밀었다. 잘 싸우던 징집병이 앞으로 철퍽 넘어지며 턱이 땅과 부딪쳤다. 전기에 통한 것처럼 전신이 저릿해졌고, 온몸이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재수 없이 바닥에 있는 돌이 턱과 만났다.

“밀지마! 이 개같은 것들아!”

“우와아아아! 마수들을 죽이자!!!”

마수 약탈자가 눈이 멀어서 웅크린 것을 누군가가 때린 줄 알고 그냥 지나가는 징집병도 있었다. 순식간에 혼전이 일어났다. 뒤에서 마수에게 공격당한 징집병이 머리채가 잡히며 뒤로 넘어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기, 기습이다! 적의 기습이다!! 꿰궭!”

퍽! 퍽!

마수 약탈자의 녹슨 무기가 고함을 지르는 징집병의 입을 쑤셔대었다.

“정말 개판이군.”

선임 기사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저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제대로 교환비율이 안 나올 정도였다.

<마수 약탈자>는 탁월한 전투병이었다. 4~7차 공격전 때 이미 분석이 되기도 했다. 특히 <긴목 마수개>와의 상성이 좋아서 진형을 갖춘 징집병과의 교전 비율은 끔찍할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결국 8차 공격전 때 남부 왕국은 혼전을 벌였다. 인간보다 마수가 더 잘 싸우는 상황이었기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방어구는 인간이 더 좋았기에 생환율은 높을 것이라는 전망 또한 있었기에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전술가들의 판단은 모두 옳은 건 아니었다. <마수 약탈자>는 방어가 되지 않는 곳에 무기를 쑤셔 박았기 때문이다.

“길을 뚫으면 고립된 자들과 만나야 한다!”

“징집병들을 계속 밀어붙여라!”

기사들의 명령 속에 <왕국 중앙군>의 보병 50명이 사거리를 밀기 시작했다.

“어이야! 아이야! 하!”

“어이야! 아이야! 하!”

그나마 징집병들의 후방에 있던 징집병들은 얼은 채로 있었는데, 왕국군이 혼전이 일어난 곳으로 밀어버리자 꼼짝없이 싸워야 했다. 골목길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4~7차 공격전 때 죽은 시체들이 가득했다.

“헉···”

골목길에 들어선 징집병은 죽은 채 고개를 뒤로 축 늘어뜨린 소년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눈알에 들러붙은 파리가 도르륵 하고 움직이더니 날아올라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익!”

징집병이 골목길에 있는 시체를 발로 밟으며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부패된 팔이 뚝 부러졌고, 병사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키아아아악!”

긴목 마수개의 길쭉한 목이 징집병의 눈에 들어왔고, 그대로 쩍 벌린 입을 보며 무기도 버린 채 도망갈 궁리만 한 징집병이 끔찍한 소리를 내뱉었다.

골목길에 피가 높이 치솟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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