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여름
“정지! 정지!!!”
직사각형으로 두들겨 패서 깎이고 쩍 갈라진 거대한 석재를 실은 짐마차가 천천히 멈추었다. 앞에 나무 작대기를 든 사람 3명이 바닥을 탁탁 쳤다.
움푹하지는 않지만 무른 바닥이 눌러지고, 돌 하나가 조금 더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제법 나이가 들어있는 모습이었고,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인력이 부족한 불파겐 영지의 고질적인 문제가 엿보였다.
“여기야? 더 이상 자갈도 없는데.”
“마른 흙이라도 가져와.”
손짓을 하자 오면서 바짝 마른 겉에 나온 흙만 채취한 포대를 짊어진 <애송이>가 달려왔다.
바닥을 충분히 메꾸고 단단한 석재로 만든 무거운 발판을 올리고 방방 뛰었다.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나무 바퀴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길이 좋아야지만 가는 게 편했다. 특히 높은 돌을 바퀴가 지나가면 내구도가 크게 손상되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했다.
<엘라한 가문>에서 보내온 석재는 <옹골찬 물의 정령>의 허락을 맡고 드낙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았다. 특히나 석재는 거친 면이 하나도 없었는데, 물로 도려내었기 때문이었다.
정령의 힘으로 만들어진 석재였다.
이 석재는 총 20석이나 되었는데, 수행 인원이 50명은 되었다. 그들이 <호수 마을>에 도착하자 드낙은 이에 대한 처리를 명목으로 드낙의 가신들을 모았다.
게제라스, 이실레아, 이스핀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드낙이 은고원 마을에 가기 전에 엘라한의 선물이 도착하면서 게제라스가 회의를 열 명목을 자연스럽게 얻었기에 밀어붙인 회의였다.
자연스럽게 부인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세금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참관을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믿어 보는 자세를 취했다.
한 번 맞아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세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기적으로 영지에서 활동하겠다는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단타로 치고 빠지는 게 아니라, 손해를 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대범함이었다. 금수저 찬스라고 할 수 있었다.
“<호수 마을>은 영주성이 없습니다. 저택이라도 지어야 합니다.”
“석재가 부족할 겁니다. 해봤자 드낙님이 거주할 집에 불과합니다.”
“더 달라고 하기에는 안 되겠지?”
“옹골찬 물의 정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적당한 품질의 석재를 지닌 엘라한 가문의 돌산은 그들이 주인이 아니었다. <옹골찬 물의 정령>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발은 불가능했다. 이번의 것은 엘라한의 자식들을 드낙이 도와주었기에 받은 선물이었다.
자연스럽게 회의적이었다.
“그럼 언덕이나 그런 곳에 회의장이라도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석지 마을>에서 도착한 이스핀이 의견을 냈다.
“나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만,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회의장은 썩 좋은 게 아닙니다. 저희들의 적에게 정보만 줄 뿐입니다.”
“묵혀둬야 하는 건가?”
드낙의 결론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석재 거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된다면 그때 영주성이나 큰 건물을 짓는데 쓰는 게 오히려 좋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예. 엘라한 가문이 이렇게 선물을 줄 줄은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드낙의 의미심장한 말에 게제라스가 대답하며 서둘러 종이를 돌렸다.
“받은 종이는 나가실 때 화덕에 넣어서 태워버리셔야 합니다.”
이스핀이 서둘러 종이를 봤다. 그곳에는 <북부 철 대책>이라고 크게 적혀져 있었고, 아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적혀져 있었으며 그 방법을 발의한 인물도 적혀져 있었다. 그 외에는 모은 데이터가 수치화되어서 적혀있었는데, 대단히 자세했으며 때때로 인물들의 발언을 토씨 하나 수정 없이 적어놓기도 했다.
“레이디 킹슬레이가 정보를 주었다. 다른 부인들도 허락했기에 총관에게 그 정보가 갈 수 있었다.”
드낙이 보고서로 이미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며 가신들이 외척에 대한 적의를 낮추었다. 후려쳐도 자신이 후려쳐야 했기 때문이다. 게제라스가 이미 경고를 했겠지만, 드낙이 태도로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했다.
“단순하게 수치화한다면, 철괴 1만하고도 5천 괴가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무기를 모두 녹였을 때의 양입니다.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계속 쌓아두어야 합니다. 영지에 철광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을 대량으로 단시간에 구매한다면 그 가치가 끝도 없이 올라가게 될 것이고, 불파겐 영지에서 철괴 1괴당 금화를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 꾸준히 구매해서 철을 보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철광산이라···”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생각에 잠겼다. 게제라스는 잠시 발언을 중단하며 눈치를 봤다.
‘개 같은 동부 영지.’
드낙은 동부의 척박한 땅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주 개 같은 땅이었다. 은맥조차도 보름은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땅에 터널을 뚫어도 10일은 걸릴 것이다. 그 정도로 자원이라곤 개미 다리만큼 없는 것이 동부였다.
‘철맥이 있기는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계속 이야기해.”
드낙이 손을 비비며 말하자 게제라스가 침을 삼키고 헛기침 한 번 한 다음에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영지의 상황이라서 철에 대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남부 몰락 귀족>과 접촉을 통해서 할 생각입니다.”
“음···”
모두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실레아는 그 속에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윈드밀 상단>은 이제 15명 아닙니까? 철까지 관리가 가능합니까?”
<윈드밀 상단>! 제국과의 교류가 아닌, 북부의 식량을 가져오는데 노력하는 상단이었다. 보부상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족이 호수 마을에 있는 <울베아르>가 책임자였다.
“아니요. <윈드밀 상단>은 오직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거래를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따로 상단을 하나 더 만들 생각입니다. <아이언 상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실레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규모가 커야 할 텐데. 가능합니까?”
“그 부분은 검토 중입니다.”
게제라스가 답을 피하자 이실레아는 고갯짓을 하며 드낙에게 말했다.
“자작님. 철을 취급하는 상단은 못해도 50명에서 100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말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외척을 이용해서 북부를 압박해야 하는 것이 차라리 좋습니다.”
“무슨 소릴. 철을 달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남부 상단과 거래만 틀 수 있다면 한 방에 싹 정리가 됩니다.”
“그들과 거래만 하다가 그들이 가격을 올리면요? 그때 북부에 손을 빌린다면 북부는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남부와 거래를 하겠다고 한다면 북부도 판단을 다르게 할 겁니다.”
이스핀이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공방을 지켜보았다. 날이 바짝 서있었다. 이것도 공이 되기 때문에 게제라스나 이실레아나 칼을 뽑아들기 바빴다.
첫 번째 쟁점은 남부 몰락 귀족과 접촉 or 외척을 통해서 북부의 문제 해결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것으로 갈라졌다.
“북부는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척들이 도울 것이고요.”
“그럼 외척에게도 뭔가를 줘야 하고, 그건 당연히 세금이 될 것이 뻔합니다.”
“철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속적으로 받아서 축적해놔야 합니다.”
“영지의 발전이 더 먼저입니다. 곡물과 약초 수많은 생산물들을 끝도 없이 높이고, 이를 통해서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을 초빙할 돈을 얻어야 합니다.”
“트롤 부산물 때문에 몇몇 마법사가 오고 있지 않습니까? 상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레이디 킹슬레이의 제국 상단이 트롤 두개골을 다섯 개나 큰돈 주고 갔지 않습니까. 잉여 생산물과 연금술사, 마법사는 관련이 없습니다.”
“인구가 많으면 군사력도 자연히 높아질 수 있습니다. 불파겐에게는 인구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나 봅니다? 철이 없으면 무슨 병졸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남부의 철을 끌어오자는 겁니다. 몰락 귀족 중에 상단을 하고 있는 자들은 옛날 장원이 있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실레아가 역정을 냈다.
“장원을 준다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세금도 얻을 수 있는 장원 아닙니까. 또 바로 주지는 않습니다. 10년 계약을 통해서 철의 안정적인 수급을 이루고 난 뒤에 마을 하나 줄 수 있겠지요.”
“그게 그거입니다. 앞으로 줄 대상이 많습니다.”
땅이 많다고 너도나도 주면 안 되었다. 드낙은 가만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모두 한다면?”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박쥐라고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 외척들에게 이번 세금이나 다음 세금을 면제해주실 겁니까? 결단코 안 됩니다!”
“동의합니다. 북부는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쪽에 모두 줄을 대는 건 아닙니다.”
‘이런 씨.’
드낙이 속으로 욕을 하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은 남부로의 철 공급로를 한 번 뚫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장원을 주는 것은 안 된다.”
드낙은 둘의 의견을 종합해서 말했다. 큰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결론이 되어버렸기에 게제라스는 추가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다면 <철조망>으로 길을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작님.”
“아. 그렇게 되는 건가.”
철조망길 랜드마크 계획!
드낙이 관광산업을 위해서 야심차게 준비한 것이었다. 한 번쯤은 걸어볼 만한 특이한 구조물이 될 것이 분명했는데, 철이 부족하면 할 수 없게 되는 게 당연했다.
이스핀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드낙이 발언을 허락했다.
“저도 들었지만, 자작님. 도둑놈들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철이라는 것이 돈이 되는 것이라 거기에 대한 대처를 하려면 감당이 안 될 겁니다.”
‘도둑···!’
드낙이 그제서야 자신의 랜드마크가 허점 투성이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행자의 유입을 원해서 그들의 코 묻은 돈을 원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그럼 계획을 취소해.”
깔끔하게 손을 털었다. 드낙이 황소같이 고집을 부릴까 걱정이었던 세 사람이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은 한 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아니면 아니라고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예. 자작님은 항상 귀가 열려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요.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획성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실레아가 계획성은 좋다고 말했을 때, 드낙이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거야! 석재 20석으로 벽화를 놓는 건 어떤가? <바세안 토성>이 폐허가 된 이유라던가, 고블린과 싸운 전투들 있지 않나.”
“···훈련용으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야기가 들어가 있으니 재미도 있겠지. 이야기꾼을 고용해서 실감 나게 말하는 거다.”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 불파겐 영지에 있었던 사건들을 그리는 겁니다.”
드낙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꾼까지 고용한다면 그럴듯한 박물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끝으로 드낙은 서둘로 <은고원 마을>로 향했다. 이실레아는 도렌과 함께 가고 싶어서 드낙과 함께 움직였다.
<파충류 초원>에 대한 작업은 못해도 여름이 한창일 때 용병들과 함께 시작하게 될 것이다. <체력 뺏기 전략>의 시작이었다.
*
쾅!
대형 투석기가 쏘아낸 거대한 바위가 칠흑과도 같은 검은 돔을 때렸다. 겉에 기름이 칠해져 있었기에 주르륵 기름이 돔을 타고 흐르며 불길이 만들어졌다.
<마신(魔神) 성현(Sung Hyun)>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검은 돔은 <마신장(魔神將) 오우거(Ogre) 발라쿠(ballakeu)>의 간청으로 들어진 것이었기에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할 정도로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아무리 무거운 돌이 두들겨도 균열 하나 나지 않았다.
“와악! 와악! 와아아아!!!”
수천의 병사들이 사각형을 만들며 방진(方陣)으로 다닥다닥 바둑알처럼 배치된 채 고함을 지르며 사기를 높이고 있었다.
“마법 마차 준비!”
“마법 마차 준비!”
<서부>의 초입에 존재하는 <드래곤 로드 전투 요새>에서 남부왕국군은 제8차 공격을 감행했다.
덜그럭. 덜그럭.
이번에는 <마법 마차>가 모두 동원되었으며, 마법사들이 마법 마차의 뒤에 좌르륵 서있었다. 그 숫자는 1만 대가 넘었다. 하나같이 흉악한 마법진이 그려진 마법 마차는 화력이 크고, 마법사가 한 명 더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발사!”
온갖 공격 마법들이 마법 마차의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솟구쳐 오르며 포물선을 그리며 검은 돔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꽈자자작!
검은 돔이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이번 8차 공격에는 이 돔에 막대한 마법 피해를 끼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단추였다.
투석기 공격이 내부로 들어갈 정도로 검은 돔이 박살 나는데 총 1시간 10분이 걸렸다. 마법사들은 오우거 발라쿠의 마법 공격을 방어할 정도의 전력만 남긴 채 모조리 마력을 사용했다.
<검은 돔 반파>를 위해서 동원된 마법 마차 중 820대가 과부하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투석기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상에 있던 마수들의 끔찍한 외침 소리가 퍼져나가자 남부 왕국군의 사기가 절로 높아졌다.
<2왕자 폼포스 플래티넘(Foamforce Platinum)>이 선두에서 그것을 구경하며 크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드디어 효과를 보는군.”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습니다. 저렇게 한다면 마수들이 저희들에게 덤벼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 8차 공격>은 장거리 공격에 치중된 공세였다.
이미 기울어져 있는 성벽에 돌이 맞자 그대로 무너지면서 폭삭 가라앉는 광경이 인간들의 눈에 들어왔다. 환호성이 멀리 퍼져나갔다.
어느정도 전선이 고착화되고, 박살나지 않자 추가 증원이 이루어져 현재 남부 왕국군은 4만명에 달하는 군세를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6424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오잉···갑자기 총 조회수가 엄청 깎여나갔네용. 독자님들 무슨 일 생기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