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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12화 (41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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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

케이샤 킹슬레이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게제라스는 조용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외척이 멀리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 드낙파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지.’

선두를 달리면서 다른 이들을 챙겨주지 않으면 뒤에서 그냥 규칙이고 나발이고 머리에 사커킥을 날리는 게 이 바닥이었다.

때가 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외척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들과 한 배를 탄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렇기에 게제라스는 침을 꼴깍 삼키며 케이샤의 표정을 살폈다.

아는 것은 많고, 사료도 충분히 쌓아놓은 게제라스였지만 실질적으로 선진문화를 구축한 제국과 상업으로 교류를 직접적으로 행한 케이샤는 난적임이 틀림없었다.

“회의는 어떠셨나요? 참관자도 받지 않으셨다던데··· 굉장히 중요한 안건이 올라왔나 보죠?”

“예··· 파충류의 초원에 대한 토벌에 대해서 조금 깊이 다루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이룬 가문의 도로 사업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 말입니다.”

게제라스가 솔직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케이샤의 비위를 맞추었다.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진실성이 있는 회의 안건을 말한 것이다. 특히나 드낙은 전투, 전쟁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전공을 자랑했으므로 사실상 외척에게는 의미가 없는 정보이기도 했다.

토벌 종목으로 달리기를 해봤자 1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쓰기 나름이지.’

케이샤는 그런 게제라스의 정보를 애지중지하듯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몰랐다.

“헌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아아. 이거 <오후 회의>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져서 저도 모르게 실례를 했네요. 다름이 아니라, 북부에서 곧 움직임이 있는데 총관께서 미리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북부의 정보?’

게제라스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의문이 생겼다.

“소식이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 있습니까?”

“빠를 필요도 없죠. 북부 귀족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미 외척들은 모두 본가에서 압력을 받았을걸요?”

“그렇게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말씀하시니, 킹슬레이는 아닌가 봅니다.”

케이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들어 올렸다.

“왜 자작님은 절 첫 번째 아이를 낳도록 하셨을까요?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게제라스가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게제라스는 분명 드낙에게 조언을 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아니면, 제가 그토록 통찰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게제라스가 헛기침을 했다.

‘자작님과 자주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어떤 인물인지 알지.’

케이샤가 웃음 지었다. 자신이 드낙이었다면 모두 관계를 맺으면 맺었지, 1명과 관계를 맺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안젤리카 에드윈의 존재 때문이었다.

비교가 가능하니,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알고는 있지만, 제 입으로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케이샤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총관이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작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통했나?’

게제라스는 표정을 조금씩 풀며 기분 전환을 하는 시늉을 했다. 차갑게 식은 찻잔을 들어 올려서 한 모금했다. 갑갑함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연기한 표정을 풀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크흠···그래서 북부에서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입니까?”

“철을 제한할 거예요. 먼 거리를 오고 가는 상단 중 8할은 귀족들에게 속해있다는 걸 잘 아시죠? 나머지 2할 또한 한 소리를 들으면 오지 못하겠죠.”

귀족들이 점거한 땅을 통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고, 한다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치인 셈이다. 그렇기에 남부 귀족은 몰락한 것이다.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고, 권력이었다.

“하지만 남부가 있지 않습니까?”

“불파겐에게 남부가 철을요?”

케이샤의 반문에도 게제라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가 등을 의자에 기대며 계속 이야기해보라고 몸짓언어를 사용하자 게제라스가 입을 열었다.

“백금 왕가의 행정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떻게 모두 걸러낼 수 있겠습니까? 또 아직 서부의 오우거를 토벌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뭐라도 하려는 자들은 미리 전략물자를 옮겨놓을 겁니다.”

“그럴듯하네요. 아니, 확실히 그렇게 하겠지만, 물량은 금방 바닥을 드러낼 텐데요?”

“불파겐 영지는 대단히 많은 군사력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의외군요.”

케이샤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서부의 오우거 토벌이 해를 계속 넘겨도 진정되지 않는다면, 불파겐은 남부를 물어뜯어 성을 하나씩이라도 점령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자작님은 생각하신 것만큼 인간과의 전쟁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대신 명예를 드높이는 일을 좋아하시죠.”

“트롤 원정을 말씀하시는 것처럼요?”

“그분의 행적을 추적해보신다면 능히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케이샤는 찻잔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시녀가 받아서 비운 찻잔을 흰 천으로 말끔하게 닦아 새롭게 내어주었다. 자연스럽게 주제가 돌아갔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탁.

찻잔을 놓으며 케이샤가 운을 뗐다.

“첫 추수에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식량이 돌아가도록 자작님께 말씀을 드려 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첫 추수>.

의미를 담기 좋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떼먹기도 쉬웠다. 상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아무렇게나 쓰일 수 있기 딱 좋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세수를 걷고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케이샤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가만히 총관을 바라봤기 때문에 총관 또한 외척과 관계도를 올려야 했으므로 결국 승복하는 척을 했다.

“좋습니다. 세금에 대해서는 한 번 말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브릴리언트 가문을 말하는 건가요?”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척들에게 있어서 언터처블은 두 명이었다. 드낙과 이실레아였다.

“이제 슬슬 영지가 확장되어가고 있는데, 한 명에게만 군사력이 집중된 것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자작님의 총애가 대단합니다. 건드렸다간 저도 벌집 신세라···”

케이샤는 그 말을 듣고도 도와준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만큼 군사력에 관련된 조언, 견제는 위험했다. 돈이 적으면? 상인의 집이라도 죄목을 덮어씌워서 털면 된다. 하지만 땅과 군사는 달랐다.

“흠, 그녀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보세요. 만약 차도가 있다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셨으면 해요.”

“예. 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게제라스가 일단은 동의했다. 여기서 왈가불가해봤자 안 좋은 이미지만 남길 뿐이며, 자신은 이미 드낙과 외척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눈지 오래였다.

극단적으로 외척들이 게제라스에게 협작질을 하라고 한다면 게제라스는 그렇게 하면 될 뿐이다.

겉으로는 친외척파가 되어야 하는 게 게제라스였고, 이를 위해서는 진짜로 그렇게 해야 하는 필요성도 있었다.

“세금 관련해서 회의를 여신다면 참가해도 되겠죠? 장원에서도 세금을 걷는 것이 불파겐 영지잖아요.”

“물론입니다. 민감한 주제이지 않겠습니까? 자작님은 거부할 생각도 없으실 겁니다.”

게제라스는 천천히 케이샤의 저택에서 빠져나갔다.

늙은 시녀가 케이샤에게 말했다.

“그를 믿습니까?”

“두고 봐야죠. 첫물에 뭘 어떻게 하겠어요? 그리고 총관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겠죠.”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에는 세금으로 강렬하게 부딪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휴양을 하고 있던 드낙은 낚싯대를 놓고, 케이샤를 보러 가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품고 있었기에 들어줄 만한 것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스스로 뭘 건네줄 정도로 적극적이지는 않았고, 부탁을 하면 들어주자는 식이었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애를 품었다고 특별히 케이샤가 바뀌지는 않았기에 서로의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케이샤는 편안함을 느꼈다. 드낙이 자신의 아기에게 집착했다면,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아이는 킹슬레이 가문으로 가야 했다. <혈통>을 위해서. 그렇게 계약한 것이다.

“걷는데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케이샤 킹슬레이는 드낙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라고 하기에는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마을 밖이기도 했기에 탁 트인 풍경에 케이샤는 조용히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제 봄도 끝이네요. 햇빛이 강해지고 있어요.”

“더위는 잘 참으시는 편입니까?”

“물에 항상 발을 담그고 독서하는 걸 즐겼죠. 피부가 타는 게 싫어서요.”

두 사람은 적당히 잡담을 나누었다. 케이샤는 아기 이름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말했다. 드낙은 거기에 대해서 케이샤의 의견을 집중하여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장품 사업은 잘 됩니까?”

“네. 작업장 돌아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걸요?”

들릴 리 없는 소리였지만 귀를 기울이는 척을 하는 케이샤를 보며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전 안 들리는데요?”

“관심이 없으셔서 그래요. 자주 좀 찾아와주세요. 은화를 버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 말을 들으니 절로 관심이 생겼습니다.”

케이샤는 눈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드낙은 경제, 돈 모으는 것에 큰 재미를 못 느낀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인 거 다 알아요. 관심이 없으시잖아요. 총관이 얼마나 큰 경제력을 휘두르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보시잖아요.”

갑자기 총관이 등장했다. 물 흐르듯이 주제가 변해갔다. 드낙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당황했다.

“그건··· 아시다시피 내가 밖을 자주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돈이라는 게 사람을 때때로 미치게 만들거든요.”

케이샤가 드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드낙은 그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균열이 큰 균열로 변하는 법이지.’

“철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으셨나요? 어제 말을 해놨는데.”

“처음 듣습니다.”

드낙은 금시초문인 것처럼 굴었다. 케이샤는 입을 조금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너무 총관을 헤집는 건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요즘 많아요. 자작님도 조금씩은 내정이든 행정이든, 병사들의 훈련이든 둘러보는 게 어떠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귀찮은 마음이 불쑥 나왔지만 케이샤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한 마디를 하고 있었기에 드낙은 짧은 휴식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해야 할 일이긴 하지.’

그와 그녀는 손을 잡은 채 <호수 마을>로 다시 들어갔다.

그날부터 드낙은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자작님! 자, 잠시! 종이의 질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올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종이 제작 장인이 기겁을 했다.

“조금 더 이렇게 얇게는 안 되는 건가?”

드낙의 손에 묽은 종이가 두르륵 움직이며 흐트러졌다.

“허억!”

지옥의 시작이기도 했다. 짧고 단편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기괴한 현대인의 생각이 들쑥들쑥 튀어나왔기에 생지옥에서 불타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모두가 느껴야 했다.

“자작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에게 맡기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총관이 넘어지면서 허둥지둥 달려왔다. 무릎에 흙이 묻어있었지만 털지도 못한 채 드낙을 끌고 나왔다.

“그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그냥 보는 거랑 훈수를 그렇게 두시는 거랑 천지차이입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근데 내가 종이를 좀 아는데···”

“전혀 모르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게제라스가 드낙을 안내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드셨습니까? 적당히 아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직접 손을 대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알았다. 알았어.”

드낙이 짧게 대꾸했다. 물론 게제라스와 드낙이 가볍게 작업장과 농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은 크게 들썩이는 건 똑같았다.

“자작님이 몽상가라며?”

“종이를 얇게 만들어야한다고 그냥! 한 방에 작업을 박살을 냈다던데?”

내정력이 낮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호수 마을에 퍼져나갔다. 자연스럽게 게제라스 총관에 대한 이미지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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