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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10화 (40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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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

날이 밝아왔다.

<석지 마을>의 목책은 엄중하게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흙으로 빚어진 거인이 한밤중에 나타나 대지를 늪처럼 빨아당기며 돌로 된 언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스핀은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봉화를 지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 덤벼들었다가 접근하지도 못한 채 토사물에 휩쓸린 게 열 번이 넘었기 때문이다.

[장난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난 드낙 불파겐과 이야기를 나눈 <석지의 거인>이라고!]

“맙소사.”

그 정신 파동을 들은 모든 이들이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과정으로 이렇게 된 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흙을 하도 무식하게 빨아들였기 때문에 석지 거인과 맞댄 목책은 밖에서 안으로 기울며 엎어졌으며 집이 무너지거나 다친 이들이 생겼다.

상주하던 사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주민 다섯 명과 범죄자 세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정도로 폭압적인 공사였다.

아침해가 떠서야 비로소 주변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엄청나군. 단 하룻밤 사이에···”

석지 마을의 옆에는 주변의 돌들을 모아놓은 돌로 된 언덕이 좌르륵 펼쳐졌다.

이스핀은 과일을 촘촘하게 자르고 빻은 것을 뜨거운 물에 넣은 것을 마시며 돌로 쌓은 탑을 바라보았다. 그건 언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작님은 도대체 무슨 타협을 하신 거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하루의 텀을 두고 드낙이 보낸 전령이 도착하고 나서야 이스핀은 자신이 할 일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이네.”

이스핀이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한 정령이라는 보고를 적은 보고서를 둘둘 말아서 인장으로 찍어서 단단히 봉한 뒤에 다시 전령에게 전했다.

“범죄자들은 돌을 대산으로 옮길 준비를 해라! 이주민들은 비옥한 땅에 밀을 심어야 한다!”

이스핀의 주도하에 범죄자들은 돌을 수레에 담아서 나르고, 이주민들은 밀을 심을 준비를 오늘부터 하게 되었다. 또한 땅이 순식간에 경작이 가능해져서 몽펠리에의 박힌 마법봉을 추가로 더 설치해야 했다.

“뭔 잡초가 벌써 자라나고 있지?”

시작부터 잡초에 눈을 담은 농부가 있는가 하면.

“끙차. 이거 보라고, <황금 평야>보다도 땅이 좋아 보이는데.”

땅의 비옥함을 손으로 느끼며 웃음 짓는 이주민도 있었다.

푹! 푹!

이주민들은 돌이 사라진 곳에 들어서며 벌써부터 자라나고 있는 잡초 따위를 작은 삽으로 뿌리째 뽑았다. 나중에 고생을 안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땅을 깔끔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고고.”

등을 펴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하는 만큼 들어왔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라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의 땅을 표시하기 위해서 돌을 가져와서 주르륵 놓는 것부터 먼저 하는 농부도 보였다.

“아니, 저기는 대각선이고, 여기는 직선이고! 미쳤어?”

“미쳐? 대충 그렇게 하라고!”

분쟁이 일어나면 이스핀이 병사 두 명을 이끌고 와서 깔끔하게 정리했다. 물론 이스핀이 보기에만 깔끔했다. 아프리카 국경선처럼 보기만 좋았다.

“더 불만이 있다면 문인을 찾아라.”

“예···”

찍소리도 못했다. 특히나 처음 선을 그은 농부들은 죄다 다른 곳에 배정되었다. 알아서 서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이주민들에게 좋았다.

동시에 돌을 굴러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돌을 내려보내는 작업이 돌언덕에서 이루어졌다.

“조심! 조심!”

“아니, 말을 하고 굴러야지!”

“돌 굴러간다아!”

<석지의 거인>이 요구한 대로 대산 옆에 돌산을 만드는 척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이차!”

“던지지 말고! 미친.”

킬킬킬.

어느 정도 돌이 모이면 밑에 사람이 돌을 주워 담아서 짐수레를 끌었고, 빈 짐마차에 다시 옮겼다. 석지마을에서 대산까지 가는 데에는 며칠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노동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았다.

저녁이 되고, 해가 저물 때, 집 곳곳의 굴뚝에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왔다. 빈집을 제외하고는 전부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마을의 경제가 활기차다는 뜻이었다.

해가 저물면서 세 명의 보부상이 <호수 마을>에서 <석지 마을>에 도착했다. 그들은 염지된 고기를 상품으로 들고 왔는데, 이스핀이 그 모든 것을 사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적당히 배분시켰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생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있는 일이었다.

보부상들은 거의 마진이 없다시피 염지고기를 넘겼는데, 모두 이 마을에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이스핀은 그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했다.

“휴우! 무거운 걸 지고 왔더니, 땀이~ 땀이. 그렇게 납니다.”

보부상의 리더격인 사내가 거침없이 앞섬을 풀어헤쳤다. 가슴팍에 나있는 흉터가 절로 보였다. 이스핀이 던진 주머니를 사내가 챙겼다. 아주 가벼웠지만 은화였으므로 무게는 따지지 않았다.

“왜? 그만두고 싶냐?”

“뒷골목보다는 낫죠. 형님. 제가 칼침만 몇 방을 맞았는데.”

너스레를 떨며 딱딱한 빵을 뚝 부러뜨려 수프에 넣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자작님의 부인들이 크게 한 번 모였습니다. 제대로 회동을 했던데요.”

“다른 사람들은 알더나?”

“하루를 차이를 두고, 3일에 걸쳐서 모였기 때문에 누구도 몰랐습니다. 감시를 붙여놓기에는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자가 없지 않습니까.”

순찰자를 호수 마을에 남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둥근 언덕 마을>은 숲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호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알게 되면 영향력이 크게 뛸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고?”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모이는 것에 비해서 너무 일찍 끝냈습니다.”

“흠. 중요한 안건이었나 보네.”

물밑에서 의견과 상의를 시녀들이 했을 것이다. 이스핀이 씩 웃자 보부상 세 명도 웃었다.

“물밑작업을 오래 했으니, 뭐라도 알 텐데?”

“시녀들이 보통 시녀들입니까. 정말 지독한 년들입니다. 당근도 아래에 넣으면 똑 부러뜨릴걸요? 진짜 살다 살다 그렇게 철로 된 여자들은 처음 봅니다.”

깡패답게 저급한 묘사를 입에 담았다.

“협박은 안 했겠지?”

“아이고! 그럼요···. 사실 몇몇 놈에게 의뢰를 놓았는데, 하루도 안 가서 광산으로 끌려가더군요. 제압도 금방 당하고. 겉보기에는 설거지만 하게 생겼는데, 미친. 그냥 갑옷만 안 입었지 정예병입니다. 정예병.”

이스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중요한 일이다?”

“예. 마음의 준비는 해놓으십시오.”

이스핀이 손을 주억거렸다. 머리가 지끈 했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장원에 대한 걸까?”

“모르죠.”

이스핀은 그들과 술 한 잔을 걸치고 일어났다.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우고 싶지 않았다.

“간다.”

“예. 가십시오.”

이스핀은 문을 열고 나서며 말했다.

“술 몇 병 더 전해줄 테니, 앞으로도 잘하고.”

“걱정 마십시오!”

집으로 돌아온 이스핀은 아내와 함께 있다가 잠에 들기 전에 게제라스 총관에게 보고서를 짧게 작성했다. 똑똑한 그라면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보부상들은 텅텅 빈 상자를 메고 다시 <호수 마을>로 돌아갔다. 원래라면 며칠을 더 지내며 이 일, 저 일을 도와줬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바삐 움직였다.

어두운 밤, 게제라스는 창문의 틈이 열리며 양피지가 툭하고 떨어지자 그것을 받아들였다. 인장은 롤레온의 인장이었다. 그것을 뜯고 내부를 확인했다.

‘음.’

눈을 감은 게제라스가 조용히 있다가 일어나서 몇몇 책을 꺼내듣고 사료를 찾기 시작했다.

드낙은 휴양을 보냈다.

<검은 산골 마을>에서 평온함이 일상이었기에 거친 삶을 원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였다.

‘좋다.’

햇빛을 받으며 하루 종일 호수 전경을 보며 빈둥거렸다. 그것도 하루면 끝이었다. 베짱이처럼 휴양을 하고 나서는 부인들과 며칠을 보냈다.

그것은 그의 의무나 다름없었다.

“제법 배가 불렀지요?”

“그렇네요.”

케이샤와는 조용히 지냈다. 서로 책을 읽고 그것을 공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썩 재미가 있지는 않았지만 드낙은 케이샤가 생각 외로 남을 배려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낙이 책에 별 재미를 못 느끼자 체스를 두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드낙은 억지로라도 케이샤가 하고 싶어 했던 책 토론을 다시 했다.

“킹슬레이 가주의 말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안전하게 출산한다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래도 첫째는 불파겐 영지에 남아야지요.”

드낙은 손사래를 쳤다. 정말로 외척을 이용하고, 이 버려진 영지를 다시 한 번 단기간 내에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식이 걸음마 정도는 할 수 있을 때, 킹슬레이 가문으로 보내야 했다.

단호한 드낙의 모습에 케이샤는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안젤리카 에드윈>은 부재였기에 드낙이 쉴 때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엘라한 토성>에서 거주하며 엘라한 가문원의 신체를 훈련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의 허락을 맡은 것이기에 거리낌 없었다.

가문의 힘이 적은 에드윈 가문으로서는 드낙의 방계 중에 하나이며 이미 가문원이 제법 있고, 장원도 이미 있는 <엘라한 가문>과 공조를 하는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록시 몽펠리에와 아샤 파이룬과도 시간을 투자했다. 서로 식사를 함께하고, 나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는 귀족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두 명은 드낙에게 말을 최대한 많이 유도해서 뭐라도 얻고 싶어 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 꼬임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게제라스가 그 광경을 봤다면 눈물을 흘리며 드낙의 성장에 엄마처럼 기뻐했을 것이다.

<레이시아 플래티넘>과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다. 대신 게제라스 총관에게서 근황을 들었다.

“과수원 일을 한다고?”

“네. 제법 식물에 대해서 조예가 깊어서 사제들이 감탄한다고 합니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게 전부였다.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드낙은 레이시아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갔다.

“자작님. 오늘 오후 회의는 잊지 않으신 것으로 압니다. 밖에 낚싯대가 있던데.”

“아, 그랬나? 깜빡했네.”

“비서라도 붙여둬야겠습니다.”

“비서는 무슨···내가 자주 토벌을 다니는데 거기까지 따라오게 할 셈이야?”

게제라스는 웃어보였다. 당연히 그럴리가 있나. 문인이 드낙을 밖에까지 따라다닌다면 과로사할지도 몰랐다.

“최소한 호수 마을 내에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필요 없다니까. 내가 치매 걸린 노인도 아니고···”

드낙은 거부했지만 정말로 다음 날에 사람이 붙였다.

<오후 회의>에는 게제라스와 이실레아가 참석했다. 며칠 전부터 단단히 준비했는지, 원탁에 질 나쁜 종이가 수북했다.

“<브릴리언트 장원>을 모색하러 갔다더니, 언제 이런 걸 준비했나?”

“자작님을 뵙습니다. 본래 목적은 그것이었지만, <파충류 초원>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튀어나와서 조금 노선을 변경해서 움직였습니다.”

이실레아는 오랜만에 드낙을 봤기 때문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대단히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드낙이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내며 일으켜 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이번 회의에는 참석할 필요가 없어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보고서의 형식으로 정보만 내어줄 생각입니다.”

“도렌은 번거롭다고 쳐도, 이스핀은 와도 괜찮을 텐데?”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이실레아가 추가로 말했다.

“아내가 입덧을 하자마자 잠시라도 아내 곁을 안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것 때문이겠죠.”

드낙이 웃음소리를 냈다. 하는 짓은 난폭한데 아내나 아기에게는 껌뻑 죽는 모습을 벌써부터 보이는걸 보니 애처가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드낙이 웃자 게제라스가 냉큼 말했다.

“해산물도 구해서 바쳤답니다. 염장이 되어서 온 건데 짜다고 하니까 흐르는 물에 하루 종일 놔둔 다음에 구워서 어찌도 그렇게 하는지···”

이스핀의 애처가 기질에 회의의 시작은 제법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이번 안건은 뭔가?”

“첫 번째는 이스핀 경의 정보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무엇 하나 모르지만, 그래도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작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드낙이 게제라스의 말을 기다렸다.

“외척 세력이 크게 회동을 가졌습니다.”

“어떤 걸로?”

“그건 모릅니다. 그래서 경계심만 가지고 계시길 바랍니다.”

드낙이 표정을 굳히자 게제라스가 침을 튀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까지 심한 것은 아닐 겁니다.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나중에 알 수 있을 겁니다.”

모인다고 해서 항상 나쁜 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 물음에 게제라스가 고갯짓을 하며 부정했다.

“아니요. 하지만 정도껏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와서 벌써 이룩한 것을 보십시오. 앞으로 해가 달라질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겁니다.”

손해를 끼쳐도 이득보다는 낮게 끼칠 것이라는 말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그렇게 하나 둘 해주면 아예 저울질해서 그짓거리를 할텐데? 어떻게든 잡아봐. 꾹꾹 누르지 않으면 바로 튀어나올텐데, 우리가 약한 소리를 내면 안 된다. 결코.”

“그럼 지금부터 뭘 하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게제라스 총관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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