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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09화 (40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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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

“큰일이 있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공정한 방법으로 줄일 수는 없습니다. 한다면 번거롭지만 거짓 장부를 맞추어야 합니다. 거래도 빈번하게 해서 문인들의 실수를 유도하고요.”

<록시 몽펠리에>의 현실적인 말이었다.

“비율을 맞추자는 건가요? 아니면 양을 맞추자는 건가요?”

<케이샤 킹슬레이>가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킹슬레이 가문은 현재 외척 중에서 가장 장원에 투자를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으로 하는 시늉만 할 정도였다.

“비율이죠. 킹슬레이 가문은 제국 상단에게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까?”

“말이 제국 상단이지, 저의 개인 상단이에요. 너무 경계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상만 다를 뿐 마찬가지네요. 하지만 화장품 쪽으로라도 세금을 얼추 맞출 수 있으니 굳이 장원에서의 세금만 따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케이샤의 긴 속눈썹이 조금 떨렸다.

“장원에 대한 세금이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그럼 킹슬레이 쪽에서 딴짓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요? 전혀요.”

“그러기에는 장원 세금이 너무 적어요. 다른 가문에 비해서 말이죠.”

“이 자리에 없는 에드윈 가문보다는 많죠.”

“이 자리에 없는 가문은 자격조차 없기에 없는 겁니다. 비교 대상이 아니죠.”

“······”

순식간에 말을 주고받았다. 절로 공기가 후끈해졌다. 미지근한 차를 마신 케이샤가 찻잔을 옆으로 밀었다. 시녀가 냉큼 받아서 빈 주전자에 담고, 다시 조금 뜨거운 차를 내어주었다.

바로 마실 수 있으면서도 따뜻함이 조금 강한 온도였다.

시녀의 소양이기도 했다.

잠깐의 침묵이 있고 결국 케이샤 킹슬레이가 항복 선언을 했다.

“좋아요. 세금은 가장 민감한 것이니까,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하지만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적어도 열 마디 이상은 제 화장품 사업을 위해서 말씀을 해주세요.”

“어렵지 않죠.”

거기에 대한 서명을 받아서 챙겼다. 케이샤가 얼마나 화장품 사업에 인생을 걸었는지 알기 때문에 딱히 반대는 없었다.

“가을 추수 전까지 자주 시녀를 통해서 만나게 될 거예요. 사전에 서로 조정을 하고, 맞추어서 세금을 낼 겁니다. 끝물에 가서 미묘한 조정을 하지는 말아 주세요.”

<록시 몽펠리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서로의 장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한 말씀하겠어요. 모두가 장부를 서로 교환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곳에서 레이디 케이샤께서는 공증을 해주셔야겠어요.”

“제가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의 장부를 받고, 두 분은 안 받겠다는 것이지요?”

케이샤의 말에 록시와 아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있는 서북부의 영지인 킹슬레이는 이용하기 좋았다.

“레이디 케이샤께서는 저희 두 가문의 장부와 실거래를 확인하시고, 다른 두 가문은 킹슬레이 가문을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에 케이샤가 미간을 모았다. 나쁜 습관에 절로 늙은 시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케이샤는 금방 얼굴을 풀었다.

‘그렇게 나온다는 건가.’

잡히고, 쫓기고를 반복하는 형세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과정에 있어서 주체가 달라질 뿐, 딱히 두 번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금에 대해서 말할 게 있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나중에 딴소리를 해서 재차 모인다면, 다른 이들이 눈치를 챌 거예요.”

자주 본다는 것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세 가문의 사이에 균열이 있다는 뜻이었다. 드낙의 측근이 한 번 찌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안 될 터였다.

“없어요. 모두 충분히 논의를 하고 오지 않았나요?”

“네. 이렇게 쉽게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줄은 저도 몰랐네요. 모두 레이디 케이샤 덕분이에요. 감사해요.”

“뭘요. 저는 사실 조금 마음의 짐이 있어서요. 자작님이 제법 나이를 보시더군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냥하신 분이시죠. 고지식하기도 하고요.”

드낙은 성적인 면에서 대단히 점잖았다. 그건 솔직히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귀족들의 성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고 소문이 퍼질 때마다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끝장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는 그 어떤 남자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귀족 간의 이혼이 자주 있는 편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재산을 미리 쓰고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갈라지면 깔끔하게 갈라져야 하기 때문이고, 재물에 깔끔함은 없었다.

“다른 분은 더 말씀하실게 있으신가요?”

록시의 말에 아샤 파이룬이 입을 열었다.

“나중에 있을 석재 때문에 말씀을 먼저 하고 싶어요.”

크고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석재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도로 공사가 끝나고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나요?”

“그전에 미리 작업이 들어올 거예요. <엘라한 가문>의 장원에 있는 석재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물의 정령이 허락했다가 변덕이 생긴 것인지 시끄럽다고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했어요.”

“제법 정보가 빠르시네요.”

“무거울수록 먼 길을 오고 가면 큰돈이 되니까요.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죠.”

아샤 파이룬은 케이샤에게로 눈길을 향했다. 강력한 상단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제국의 석재는 단단하기로 유명했다.

케이샤는 시큰둥했다.

“아직 먼 일인데 지금 꼭 해야 하나요?”

“어느 정도는 맞추자는 거죠. 사실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어요?”

“1석(石)에 은화 30개였나요?”

“거리로 따지면 그 정도죠. 하지만 불파겐 영지에는 좋은 석재든 나쁜 석재든 없죠. 물이 부족한데 물의 정령을 내쫓을 수도 없으니까요.”

돈맛이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안 팔면 큰 건물을 못 짓기 때문이다. 공사판 가기 싫어서 편돌이를 한 드낙은 결코 시멘트를 만들 수 없었다.

“음··· 너무 올리면 자작님이 화를 내지 않으실까요?”

“하지만 그분은 내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시는 걸요. 그리고 화를 낸다면 도로 공사를 통해서 퉁쳐도 되겠죠. 혹은 식량을 대량으로 끌고 와서 은화 거래를 통해 제 영향력을 높게 만들면요?”

나쁘지 않은 방책이었다. 그리고 파이룬 가문은 저 짓을 모두 할 것이다. 그만큼 드낙과 부딪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딪치고 싶지 않은데 석재로 장난질을 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였지만, 저렇게 해서 드낙의 화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서가 서로 뒤바뀐 셈이었다.

여기에서 <록시 몽펠리에>가 한 마디 했다.

“두 배든, 세 배든 올리세요. 재밌겠는데요?”

아샤는 그런 도발에 넘어가기는커녕 눈웃음만 지었다.

“수준은 좀 낮아도 제법 도움이 되는 연금술사도 이번에 제 장원으로 오게 될 텐데, 몽펠리에는 어떻게 자작님을 도와주시려고 하세요? 그런 고민하기 바쁘실 텐데.”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그래서 레이디 케이샤. 어떠신가요?”

“자작님이 부탁하면 석재를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물량은 100석 미만으로 가져올게요. 그럼 됐나요?”

“고마워요. 나중에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한 번 도와주면, 한 번 도움을 주는 법이었다. 서로 이득을 취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렇게 케이샤가 조금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렸다.

“잠시만요.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잘 되었는데, 이대로 그냥 가시게요?”

“또 뭐가 남았나요?”

세금을 비슷하게 안내는 것. 석재 담합. 그다음에 말할 것은 없어 보였다.

“북부 귀족들의 뜻이 제 편에서 도착했어요. 시간이 없어서 파이룬 가문과만 이야기를 나누었죠.”

“절 빼놓고요?”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서요.”

“뭔데요?”

케이샤가 궁금한 눈치를 보였다.

“철이죠. 아시다시피 이미 불파겐 영지는 최대 1만 명을 장비시킬 철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요?”

“북부 귀족들은 그 이상으로 불파겐 영지에 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또 들어간다고 해도 소량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죠.”

그 말에 케이샤가 미친놈년들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

“정신이 나갔군요. 그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하겠어요. 우리는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해요. 애초에 자작님이 외척을 크게 들여보낸 것이 왜 그런지 모르시는 건 아니시겠죠?”

“영지가 멀리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신 거예요.”

케이샤는 볼 것도 없다는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시녀들이 조금 들어 올려주었기에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뒤돌아선 케이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세요. 피투성이죠. 왜 그가 지금 평화롭게 지내는지 아세요? 사냥을 끝내고 동굴로 들어간 사자와 같아요. 빌미를 주지 마세요. 생각보다 그분은 상냥하신 면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조언 감사드려요.”

케이샤는 한 손만 이용해서 드레스 자락을 올리며 목례를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서로 귀족이고, 서로 한 남자의 아내들이었다.

약식 인사였음에도 정중함이 돋보였다.

“제국은 결코 철을 남쪽으로 보내지 않아요.”

케이샤가 빠져나갔다. 그녀의 공백 때문인지 몽펠리에와 파이룬은 철에 대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윤활유 하나 없는 두 명문가문은 차가 세 번 식고 나서 변변찮은 결론을 못 내고 만남을 끝냈다.

<철>에 대한 규제 혹은 협의는 그녀들이 원하지 않아도 북부 귀족들의 손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록시와 아샤는 가는 길이 편안하지 않았다.

밖에서 이미 난리를 친다면 안에서도 도와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에서 도와주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흐지부지될 수 있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보다 북부 귀족들은 강단이 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것이 북부 귀족들이었다.

철을 내어줬지만 이내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감은 가문의 존속 때문이었다. 그가 <불파겐>이라는 사실은 거대한 그림자와도 같았다. 항상 따라붙는 것이었다.

<석지의 거인>을 올려다보며 드낙이 입을 열었다.

“일 하나 해보지 않을래?”

[일? 어떤 일?]

“땅에 있는 돌을 치우는 일이야.”

[싫다. 재미없다.]

“그럼 넌 여기서 뭐 하는데?”

[난 석지가 좋아서 땅을 이렇게 만들었다. 근데 인간들이 다시 돌을 골라내기 시작했지. 이내 물도 모으기 시작했다. 짜증 나서 적당히 괴롭혀주고 있었지.]

괜히 자신을 <석지의 거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척박한 땅의 모습을 좋아하는 흙의 정령인듯했다.

“주력을 좀 주면 도와줄 수 있어?”

[음···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석지의 거인은 바닥에 앉으면서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갯짓을 치면서 거절했다.

[싫다. 역시 재미가 없어.]

“주력을 벌려면 싫은 일도 해야지.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싫다! 난 나보다 작은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싸워서 내가 이기면 날 도와줄래?”

드낙의 말에 흙의 정령이 웃었다.

[하하하! 미친놈이구나. 이기면 다 되는 줄 아냐? 멍청아! 너도 그런 방식으로 사니까 같은 인간들에게 호구라고 불리는 거다!]

“후우우우.”

드낙이 심호흡을 했다.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흙의 거인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뒷머리를 긁었다.

[음. 난 그럼 이만.]

“어딜 가? 아직 내 이야기는 안 끝났어.”

[난 나보다 작은 녀석의 말은 안 듣는다. 나보다 커지면 생각해볼게.]

“아니, 아니! 주력 먹고, 사람들도 도와주고, 일석이조잖아?”

[인간을 돕는 게 왜 이득이냐? 큰 돌산이라도 지어주나?]

그 말에 드낙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어엄! 여기 주변에 흩어진 돌을 모아서 돌산 하나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근데 그런 건 너도 할 수 있잖아?”

[나보다 작은 녀석들이 해주면 더 의미가 있지!]

그 말에 드낙이 이를 갈았다.

‘미친, 독재자 뉘앙스가 좀 나는데? 위험한 놈 아닌가?’

그래도 당장이 힘든 것이 드낙이었다.

“대산 옆에 깔끔하게 쌓기 시작하자.”

[좋지! 인간들이 돌산을 지어준다면, 이 주변의 흙을 비옥하게 해주겠다!]

“좋아. 대신 저수지는 부수지마.”

[거슬리긴 하지만, 이제는 대산 옆에서 지낼 거니까, 상관없다.]

<석지의 거인>은 그렇게 말하며 쏘오옥! 밑으로 들어가며 사라져버렸다.

‘뭔가, 뭔가 후려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써먹을까?’

드낙이 고민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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