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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
벤은 앞장서서 걸었다. 도렌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드낙은 벤의 능력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이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술을 만들 수 있을까?’
고원이었기에 불도 작았다. 또한 은맥은 있어도 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벤이 간 곳은 특별한 지형이 있었다. 바위로 만든 통로였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바람이 꾸준히 들어왔고, 큰 바위에 통로가 생겼고, 바닥 또한 움푹 패어있는 공간이었다.
“이 장소입니다. 바람이 잘 부는 것은 물론이고, 햇빛도 가장 오랫동안 있습니다. 주변에 풀이나 나무가 조금 있었지만 치워냈습니다. 또 바닥을 보시다시피 바짝! 말라있습니다.”
드낙이 강철 글로브를 낀 채 바짝 마른 흙을 집어 들어 문질렀다. 가루가 일어났다. 내부까지 바짝 말라있었다. 워낙 바람이 많이 불고, 또 고원 밖의 바람이 들어오는 식이라서 습도가 높을 수가 없었다.
‘특이한 지형이네. 약간 내려가는 능선이 조금 있어서 그런 건가.’
다른 곳과 부는 방향이 달랐다.
‘기가 막히네.’
드낙이 바람을 가늠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런 곳을 찾은 게 신기했다. 보강을 한다면 오랫동안 쓸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인분을 말려 연료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속까지 바짝 마른 것을 담은 다음에 불씨를 바닥에 두고 위에 구멍만 뚫어놓는 식으로 뭉쳐놓고 바람을 부는 겁니다.”
바닥에 바짝 마른 것이 사람의 똥이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드낙이 손수건을 꺼내서 강철 글러브를 닦았다.
“사과는 지급된 것을 이용했군.”
“아뇨. 뒷거래로 얻었습니다. 술을 몇 명 주는 대가로 병사들에게서요.”
그 말에 도렌이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드낙이 그를 진정시켰다.
“가만히 있어. 도렌 경. 전쟁도 아니고 평시야. 기강을 잡아야 하지만 딱히 술 때문에 병사들이 헤이헤지는 건 아니지.”
인간의 욕심을 이길 정도의 강병은 현재 북부에서는 만들 수 없었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은고원 마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술에 손댈 수밖에 없었다. 술 때문에 보급 부대를 늘릴 게제라스가 아니었다. 최대한 맞춰주겠지만 그 최대한은 <행정관>으로서의 최대한이었고, 병사들의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무리를 지어 <고원산>을 돌아다니며 열매를 땄을 것이다. 사과의 질감과 향을 느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맛과 단맛이 나는 산열매인 듯했다.
“제법인데.”
“감사합니다.”
드낙은 숨을 깊게 내뱉으며 도렌을 보며 말했다.
“어때? 불법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네 책임하에 관리하는 게.”
“자작님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괘씸한 놈들.’
병사들에게로 주제가 옮겨졌다.
“모든 병사들을 모이게 해라. 벤! 마지막으로 너의 충성을 확인하겠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문맥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색이 된 벤이 손사래를 치려다가 이내 아무것도 못하고 허둥지둥거렸다.
“열매를 가져다주고 거래를 한 병사들을 지목해라. 한 명을 놓치든, 여러 명을 놓치든 그건 네 판단에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게 네 충성심이라는 것을 알아라.”
드낙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도렌은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실로 대단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선한 업을 하나 더 먹겠지?’
드낙은 히죽 웃었다. 병사 놈들을 쪼아놓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은혜를 베풀 생각이었다. 물론 벤과 병사들이 다시는 동조하지 못하도록 벤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것 또한 중요했다.
벤의 패거리를 손대지 않으므로써 확실하게 교통정리를 시키는 일이었다.
이것 또한 유능한 지휘관이 되기 위한 기초 군사학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군사 지휘관이란 거의 대부분의 능력치에서 유능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예시가 많았다. 특히나 <그라돈 토치라이트>가 건네준 군사학은 엄청난 두께를 자랑했다.
“병사들은 들어라! 벤에게서 밀주를 얻는 것은 딱히 불법이라고 할 수 없다. <호수 마을>에서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은고원 마을>은 특수한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구역으로 몰래 들어가서 산열매를 따오는 것은 또 다르다!”
드낙은 거기에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최대한 다양한 단어를 사용해서 여러 번 충분히 말을 했다.
지겨울 수도 있었지만, 검을 빼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대단히 높은 주의력으로 귀를 기울였다.
한순간에 목이 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벤>은 범죄자의 신분으로 이곳에서 노역을 하는 자였다.
절로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제 충분히 이해했으리라고 본다. 벤, 지목해라.”
‘씨발.’
벤이 엉거주춤 단상에 올라와서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기세가 흉험했다. 돈에 휘둘리기는 해도 이실레아의 가혹한 지휘력 앞에 노출되어 강군의 조건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특히나 무력적인 면과 전투적인 정신 수치에서는 높은 등급을 지니고 있었다.
주르륵···
벤의 바지가 젖어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비웃지 않았다. 32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살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사제가 있었기에 진짜 전투적이고 실전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쿵쾅거리는 늑대인간의 거친 움직임 속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정규병이었다.
일개 밀주꾼 따위가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압박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벤이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드낙의 충성심> = <병사를 지목한 수>이기 때문이다.
서로 억지로 각을 세우게 만든 것이다. 곧 정식적으로 술을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벤이 만들어서 보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적어.’
인력(人力)의 중요성은 하루가 다르게 드낙에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평범한 사람 10명보다 제대로 된 술을 최대한 적은 자원으로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벤 같은 놈이 진짜 인력이었다.
병사 대다수가 지목되었다.
“불합리한 결과일수도 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병사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은 불법은 아니지만 군대의 군율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중에 때가 된다면 이실레아 경에게 특별훈련을 1계절 받도록 조치를 취하겠다.”
“제기랄.”
“휴···”
드낙의 판결에 욕을 하며 안도하는 병사들과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식은땀을 닦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일로 보복을 하려고 하지 마라. 벤은 앞으로 <은고원 마을>에서 술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보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급량은 차차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배급은 하지 않는다.”
벤 패거리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은고원 마을>에서 드낙이 한 일은 끝이 났다.
도렌은 남고, 드낙은 도노와 카이야와 함께 <산지기 산골 마을>을 경유하여 <석지 마을>에 들어섰다. 이다음이 <호수 마을>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다. 살이 더 쪘는 것 같은데?”
“이 근육이 안 보이십니까? 진짜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이스핀이 드낙을 크게 반겼다. 서로 근황을 물었다.
“아내가 요즘 입덧을 했습니다.”
“축하할 일이다. 하하하! 돌아가면 게제라스를 통해서 미리 더 챙겨주겠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영지에서 돈 쓰기 바쁜데 여기까지 쓰면 총관님이 힘들어할 겁니다.”
드낙은 그럼에도 손사래를 쳤다. 대우받을 이들이 대우를 받아야 영지가 더 맑고, 높아질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비로 가즈아!’
단순하게 생각했다. 드낙이 생각하기에는 인재영입으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나갔던 게 유비였다. 그리고 유비는 호구라는 이미지가 많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영주지. 총관이 영주인가? 그리고 가신의 후계자가 생긴 일인데 축하도 못 하면 왜 내가 영주를 하나?”
이스핀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그 정도로 드낙은 총애를 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가셨던 일은 잘 되었습니까?”
드낙은 짧게 대산에서 있었던 토벌을 말해주었다. 하나같이 고블린, 크놀, 펄발드, 그렘린 같은 무리를 이루는 몬스터들에 대한 토벌이었다.
물론 특별한 흔적을 확인하기는 했다.
“사람 상체만 한 발자국 말씀이십니까?”
“엄청난 크기였지. 바위를 찍고 지나가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
그저 흔적만 본 것이었기에 그 이상으로는 그 어떤 말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법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였다. 마법사나 역사학자에게 물어보면 추려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요즘 영지에 특별한 일이 있었나?”
그 말에 이스핀이 냉큼 대답했다.
“예. 저수지에 물도둑이 그렇게 많답니다.”
“물도둑?”
드낙의 물음에 이스핀이 상세하게 말했다.
“예. 그런데 그냥 물도둑이 아니라···몬스터일지도 모릅니다. 병사가 지키고 있는데도 저수지 밑에 바닥이 흥건한 부분이 보입니다. 그것도 매일 같이 축축합니다. 흐르는거나 그런 건 전혀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드낙이 절로 술에 손이 갔다.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또 특별한 건?”
“시간대는 항상 어두컴컴한 밤에 일어나고, 병사들이 지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달이 가려질 때마다 거주시의 어딘가에서 물이 콸콸콸! 하는 소리가 들린다던데 오싹하기 그지없습니다.”
드낙의 눈에 검은 탐욕이 서렸다. 뭐가 뭐가 되었든 일단 죽이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호수 마을에 가시면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짧게 보고 형식으로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저수지 쪽은 총관이 맡고 있으니.”
드낙은 일찍 잠에 들었다.
<검은 꿈>에서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 지하 도시> 이후로 처음 마주했다.
“고블린 주술사 151마리를 죽인 업. 그리고 다른 업을 엮은 <검은 문>이다.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립신의 뒤로 검은 문이 열렸다. 그것은 다른 검은 문과는 확실하게 차별화가 되어있었다.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똑같았지만, 문 자체가 검은색의 잘 잘린 보석이 엮어져서 만들어져 있었다.
‘<가공된 효과>인가? 중립신이 공을 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네.’
화려했다. 드낙이 눈의 초점을 다른 곳을 할 때마다 각진 표면에 반짝했다.
환상이 드낙을 덮쳤다.
‘윽!’
척수가 뻐근해졌다가 수축하며 힘이 바짝 들어가더니 이내 천천히 이완됐다. 그리고 드낙은 느낄 수 있었다.
34개의 척수뼈 하나하나에 담긴 주력이 척수뼈 내부를 대류현상처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며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주력이 많이 들어간 것은 <27번째 척추>였다. 다른 척추보다 더 굵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술 또한 새겨져 있었다. 그리 대단한 주술은 아니었다.
‘<내부 저항력(Inside Resistance)>.’
몸의 모든 부정적인 효과를 제거하는 주술이었고, 패시브 형식이었다. 전극처럼 끊임없이 하지만 즉각적으로 효과가 이루어지고 힘을 소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제서야 주력이 소모되는 식이었다.
드낙은 그 뒤로도 환상을 통해서 쓰임새를 확인했다.
‘저장소구나.’
소모되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환상을 통해서 척수에 저장된 주력이 모두 소모된다면 62일 동안 주력을 쓰지 않고 모아야지만 완전 충전이 가능했다. 또한 주력의 회복 속도는 결코 늘어나지 않았다.
‘왜 그렇지?’
<고르곤의 심장(核)>과는 달랐다. 하위 호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게 중립신의 최선이라고는 볼 수 없었으므로 주력이 가진 특징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혹은 중립신이 일부러 하향시킨 걸 수도···’
왜 그랬는지는 드낙도 몰랐지만 그런 생각이 그냥 들었다. 중립신은 믿음이 가면서도 미심쩍은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주력 저장 척수>를 그렇게 드낙은 손에 넣었다.
‘그래도 확실히 중립신이 눈을 뜨고 나서 검은 문의 수준이 높아지는 기분이다.’
눈을 뜬 드낙이 입꼬리를 올렸다.
씨익.
닥치는대로 뭔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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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