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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05화 (40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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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

새하얀 한기가 결정을 맺으며 바닥을 뒤덮으며 지나갔다. 그것을 보는 웅타는 조잡한 나무 작대기 하나를 쥐었다. 습기가 찬 동굴에서 나무는 썩 좋은 자원은 아니었다. 곳곳에 검은 곰팡이가 스며들어 있었다.

쿵!

파괴적인 소리가 나며 잔해가 터져나가며, 얼음 파편 또한 동시에 터져나갔다. 멀리 있던 웅타는 몸을 웅크렸다. 바람이 크게 불었는데, 너무 추워서 입이 달달 떨렸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과 함께 드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을 위해서 온몸을 진흙으로 두른 모습은 진흙으로 빚어진 전투 인형처럼 보였다.

“대화를 하고 싶다!”

웅타가 대범하게 소리를 냈다. 상대는 주술사들이 도망칠 정도로 강력한 실력자였다. 그런 자들의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일말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미친 고블린이네.’

드낙의 감평은 짧았다.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이 일, 저 일 모두 뒤엉켰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무엇보다 고블린이 이미 라우치터 때문에 무너졌는데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죽이려고 걸음을 내디디면서 먼지가 조금 가라앉았고, 이내 주술사들의 시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팡이도 안 챙기고 허둥지둥 왔지만, 온갖 장신품들을 끼고 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흠.”

드낙이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다. 매복은 없어 보였고, 있다고 해도 소수로 보였으며 특히나 대량으로 한 방향으로 도망친 흔적이 보였다.

짓밟히고, 눌리고 숲에 길이 만들어진 것과 같은 대량 이동은 <녹색 동굴>에서도 볼 수 있었다. 모든 바닥에 식물이 가득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콥 고블린들이 반란을 일으킬 줄이야.”

드낙이 눈웃음을 지었다. 상대는 결코 그 웃음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웅타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머금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될까?’

모른다.

“이곳에는 콥 고블린들 밖에 없다. 가치 있는 물건도 없다. 그러니 주술사의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어떤가.”

<고블린 지하 도시>는 대산 너머에 있었고, 강철을 두른 기사에 대한 묘사는 구두로 이어져왔지만, 진흙으로 범벅이 된 드낙의 모습으로는 추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웅타는 재물을 이야기했다.

“전리품? 하하하. 몇 마리나 이곳에 숨은 거지? 전에 봤을 때는 못해도 1500마리는 넘어 보이던데.”

움찔.

웅타가 움찔했다.

“시끄럽고, 다 어디로 도망친 거냐?”

드낙이 그에게 다가갔다. 남은 콥 고블린이라도 죽여서 업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웅타는 한쪽만 떠진 눈을 그냥 감아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도망치고 있을 터였다.

“말을 안 하네.”

드낙은 흔적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절묘한 타이밍에 웅타가 절을 했다. 그로서는 구걸이라도 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냉큼 말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이들은 평생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일만 하던 자들입니다! 가진 거라곤 손에 쥘 버섯이 전부고, 썩은 통나무가 끝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손을 싹싹 빌었다.

구질구질했지만, 그 덕에 드낙은 검을 내렸다.

척 봐도 등이 굽은 꼽추인데다가 등창에다가 곳곳에 흉터가 있었고, 고름이 피부에 버섯처럼 피어져 있었다.

불쌍한 척을 한다면 1등 상을 타먹을 정도였다. 물론 드낙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킬 더 배틀>의 효과를 위해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임산부라도 일단 단검을 던지고 보는 것이 드낙이었다.

전투에 있어서 그는 질척거리는 이 피 냄새가 진동하는 진흙탕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약자도 비수 하나는 꼬나쥘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놈들은 죄다 뒤질 수 있었고, 드낙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툭.

돌 하나가 드낙의 발밑에 떨어졌다. 수풀에서 뛰쳐나온 고블린이 씩씩거렸다. 흥분했으면서도 그 눈에는 공포로 가득했고,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요요요요, 용맹한 웅타를 위해서!”

말을 어찌나 더듬는지 꼴사나웠다.

“키야아아!!! 웅타를 지켜내자!”

콥 고블린이 너도나도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조잡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반란을 위해서 입은 갑주는 갑옷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덜렁거려서 자신을 불편하게 할 뿐이었다. 밧줄이 귀하기 때문이었다. 날카롭게 간 돌이나 잡광물을 녹인 것을 묶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어이가 없네.’

돌아가는 짓을 보고 드낙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웅타! 웅타! 소리를 빡빡 지르는데 짜증만 났다.

‘요사의 기적이야, 뭐야?’

이름은 잘 기억은 안 났지만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얻어먹을 때, 기도하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구세주 같은 모습이었다. 웅타의 앞에 서는 콥 고블린들은 전사들보다 체격이 더 작았다.

“아주 용을 쓴다.”

드낙이 그대로 뛰어들었다. 고블린들이 무기를 휘둘렀지만 무기의 리치도 계산을 못하는지 허공을 갈랐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있어서 그대로 자기 혼자 반바퀴 돌면서 다리가 고이며 넘어졌다.

뻑!

드낙은 뒤이어서 오는 콥 고블린의 골통을 주먹으로 함몰시키고, 넘어진 놈의 척추를 발로 밟아서 부수었다.

“함께! 싸우자!”

웅타는 이곳에 온 자들이 모두가 아님을 알자 크게 소리를 냈다. 도망칠 고블린은 도망치고, 웅타를 도저히 못 버리는 고블린들만 도우러 온 자들이다. 그렇다면 그 도움의 손길을 잡아서 더욱 시간을 버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나무 작대기가 투구의 눈구멍이 있는 곳을 후벼팠다. 물론 진흙을 걷어내고 눈구멍이 없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웅타가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리를 들어!”

웅타의 외침에 콥 고블린들이 얻어터지고 이빨이 드낙의 주먹에 맞아서 후두둑 떨어지면서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들러붙어서 한쪽 다리에 여덟 마리가 들러붙어서 들어 올렸다.

서걱!

단번에 검이 휘둘러져서 둘을 베었지만 세 마리가 더 붙었다. 한 쪽 다리가 들어 올려지자 드낙은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고, 왼손으로 엉거주춤 넘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검을 사방팔방 휘둘렀다.

핏물이 쏟아져 나오고, 죽어가는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졌다.

그 끔찍한 소모 속에서도 콥고블린들이 악다구니를 썼다. 팔이 베인 콥고블린이 소리를 꽥 내지르며 무기를 놓았다. 너무나도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앙 다물면서 드낙의 머리에 들러붙어서 이리저리 힘을 썼다.

주먹구구식의 형편없는 움직임이었고, 그저 발악에 가까웠다.

오른손에 들러붙은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내려가면서 칼자루에 얻어맞고, 주저앉았고, 드낙이 몸을 데굴 구르면서 체중으로 오른팔을 붙들려고 모인 콥고블린들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돌진에 당한 콥 고블린들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마아아안!”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콥 고블린들의 놀라운 분투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아예 검까지 집어넣자 웅타가 서둘러 동료들을 뒤로 물렸다.

80마리가 넘는 웅타의 동료들은 그 짧은 순간에 32마리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그중에 반은 죽어있었다.

드낙은 주술사들이 흘린 피 위에 다시 콥 고블린의 피가 덧씌워진 곳에서 덤덤하게 말했다.

“살려주마.”

“가, 감사합···”

드낙은 일부러 웅타의 발언을 묵살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잔혹했다.

“살아남은 놈들은 이곳에 터를 잡아라. <레우치터>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드낙은 마치 자신이 소환한 것처럼 레우치터에 대한 처우를 말했다. 하지만 웅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울부짖듯이 네라고 대답했다.

“매년 공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반항하려면 반항하고, 덤비려면 덤벼라. 하지만 그때는 이번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예!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드낙이 몸을 돌리며 굴을 빠져나갔다.

콰직.

살얼음이 드낙의 힘 있는 발걸음에 소리를 냈다.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웅타는 서둘러 살육이 펼쳐진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부, 부상자들을 찾아라!”

“예!”

콥고블린들이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웅타와는 다르게 그들은 하나같이 살았다는 쾌감에 히죽거렸다. 자신이 죽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웅타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들어 올려 이마를 맞대고 비비적거렸다.

‘여기서 죽을 자들이 아니었다.’

활화산 같은 분노가 그 마음에 피어 올라왔다.

“헉!”

하지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다시 드낙이 나타났다.

“아, 마음을 고쳐먹은 건 아니고. 주술사들의 전리품을 좀.”

궁색한 소리를 하며 드낙이 주술사들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금이나 은 혹은 보석이 박힌 구리 반지 등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빠져나갔다.

‘두둑하다. 이걸로 퉁쳐야지.’

드낙은 가죽 포대를 들고, 통로를 걸어가며 콥고블린에 대해서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선한 업이 아닌가?’

죽일 놈을 살려줬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해석이 가능했기에 드낙은 콥고블린들을 살려주었다. 죽여봤자 <조련술의 업>에 조금 도움이 될 뿐이었다. 오히려 살려서 선한 업을 쌓았다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이거지.’

적당히 살려주고, 제법 번성하게 만든다면 선한 업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아끼는 마음이 생긴 드낙은 다시 되돌아가서 웅타를 신성력으로 치료까지 해주었다. 그는 그 뒤에 유유히 지상으로 향했다.

‘주식 하나 한다고 치면 되는 거 아냐?’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수틀려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고, 대산을 기준으로 한 달은 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마음도 놓였다.

‘토벌은 여기까지 하자.’

대산 너머 한 달 거리에 있는 위협적인 것들을 모조리 청소하는 것이 드낙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었다. 매년, 꾸준히 자주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무리해서 많은 곳을 다니기에는 식량이 부족했다.

정확히는 좀 쉬고 싶었다.

1년 365일 수련, 일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헤헤헤. 이거 받으십시오.”

제국 상인이 손을 비비면서 은으로 된 작은 함을 건네주었다. 케이샤 킹슬레이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게 무엇인가?”

“제가 제법 소식이 빠른 게 특기 아닙니까. 이제 제가 갈 때가 되었으니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은함을 열자 그곳에는 물약이 세 병이나 있었다.

하나같이 붉은색이었고, 검은 찌꺼기들이 가라앉기는커녕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을 찌푸리자 제국 상인이 냉큼 말했다.

“<불임의 물약>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이번에 제국 쪽이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그 난리통 덕분에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귀한 것이었고, 위험한 것이었다. 취급 주의가 유리병 자체에 박혀있었다.

“아기를 못 가진다는 소리인가?”

“예. 약이 잘 받으면 반 병만 마셔도 못 가지고, 못 받아도 세 병을 채운 자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제국상인은 날카롭게 가꾼 턱수염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미꾸라지가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언제 꾸물거리며 물을 흐리겠습니까? 아예 제대로 그 근원을 잘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긴한데. 이거 정말 아쉽네.”

케이샤가 그것을 다시 밀어서 제국상인에게 내어주었다.

“엄청 구하기 힘든 물약입니다.”

케이샤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손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입덧을 하고 나서 부쩍 식욕이 높아지고 해산물이 먹고 싶어지면서 그녀는 제법 유해졌다. 임신을 하면 항상 신경질적이던 가족력과는 다르게 편안했다.

“공주의 체질 때문이라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대상이 대부분 귀족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몸 안에 들어가면 그 어떤 마력적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그래?”

케이샤가 다시 은함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내 고민하더니 다시 밀었다.

“···일단은 그냥 지켜보고 싶으니, 다시 가져갔으면 하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이것은 쓰지 않고 잘 보관해놓겠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잘 팔린 화장품, 못 팔린 화장품을 정리하며 생산을 그만둘 화장품을 선별하고, 다시 만들 화장품을 가려내고, 잘 팔리는 품목의 특징들을 모아서 신제품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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