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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02화 (40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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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

<진흙집>에서 두개골을 녹아내릴 정도의 강력한 저주가 깃든 검은 연기는 농밀해져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것은 검은 연기라는 형태는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시 저주>에서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쌓여진 두개골들에 깃들어진 사념의 잔재. 증오와 고통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였고, 일부는 드낙의 주력이 들어가 있었다. 그 균형은 크게 무너져 있었지만, 구성물질이 오로지 저주, 사령마력, 부정적 사념이 아니라 주력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주력이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농밀하여 잎의 굵은 줄기처럼 보이는 검은 연기는 허공에서 물처럼 흐르며 한곳으로 향했는데, 곳곳에서 똑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그것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움직였다.

“어때? 가능하겠는가?”

“충분합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이루어진 주술사들의 준비는 시종일관 계속됐다. 특히나 상당한 주력이 바닥에 즐비했다. 독특한 형태의 토템에서 호흡하듯이 주력이 뿜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사용한다면, 주술사는 토템과 도기 따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언제나 정신을 고달프게 하는 것이 힘의 소모와 마법진 혹은 토템의 제작에 있었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해도 막노동을 하다 오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서로 다른 에너지를 쓴다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몸이 피곤하면 공부를 하기 힘들고, 공부를 하면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력을 토템에 넣는 일은 피해야 했다. 적어도 공터에 적절한 토템을 놓고 토템끼리 공조를 하기 위해서는 주력을 소모하여 정신력이나 활력 혹은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아니지! 아니지!”

토템의 위력 또한 매우 중요했다. 작은 토템이 여럿 모여서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과 동시에 그것과 연관된 중간 크기의 토템 또한 버프를 받은 것처럼 영향력을 얻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주술은 마법과는 다르게 크게 체계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항상 주력을 뿜으면서 <다수의 토템>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주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그려놓고 마력을 그냥 부으면 되는 마법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완성된 마법진을 여럿 두고 대형 마법진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토템마다 들어가는 주력의 양에도 차이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조용하네.”

“언제 튀어나올까?”

“주술사가 이렇게 많은데 덤비겠어?”

시끌시끌한 주술사들을 보며 고블린 전사들은 주변을 경계했다. 이곳에 <고블린 전사 아타락뚠>은 없었다. 눈에 확 띄는 공적을 위해서 밖에 나갈 전사들을 가려내고 있느라 바빴다.

“응?”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에 고블린 전사가 움찔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은 곳에서부터 검은 줄기 같은 것들이 흐물거리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자연동굴 특유의 울퉁불퉁한 벽면 때문에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 뭐야. 이게! 검은 뭔가가! 온다!”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보고를 받아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검은 줄기라니. 손으로 잡아도 흐물거리며 달라붙다가 이내 주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형태를 잡기 위한 대형 주술>을 준비하면서 이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작은 토템들에게 이끌린 것이다.

“벌써부터 반응이 오다니!”

“무리해서 대형 주술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어!”

“저주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고블린 전사들은 앞으로! 앞으로!”

주술사들이 뒤로 빠지고, 고블린 전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뭐가 어떻게 된 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이끌림에도 끌려왔기 때문이다.

울컥! 울컥! 부르룩! 주르르···

검은 물을 두 번 펌프질을 하듯이 거세게 쏟아내고, 물속에서 방귀를 귄 것처럼 부륵부륵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물이 소량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로 뭉치고 얽히며 하나의 질척질척한 검은 슬라임이 되어갔다.

“기괴하다.”

“저게 대체 뭐지? <레우치터(Leuchter)>가 아니었나?”

주술사들의 물음에 늙은 고블린 주술사. <지혜의 볼마두> 또한 땀을 삐질 흘렸다.

“뭔가 이상하다! 공격! 공격!”

볼마두의 외침에 전사들이 창을 던지고, 활을 쏘았으며 슬링을 했다. 동시에 주술사들 또한 주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미 방대한 양의 <원시 저주>와 사령마력 그리고 주력이 한데 뭉친 검은 슬라임은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화륵.

작은 백색의 촛불과도 같은 것이 내부에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검은 슬라임의 질척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기화했다. 하지만 연기는 위로 뻗어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줄어들더니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간 거지?”

“그냥 사라졌을 리는 없다!”

공격 주술을 손아귀에 쥔 주술사들이 두리번거렸다. 경험이 많은 주술사 몇몇은 공격 주술을 그냥 허공에 던져버리고는 순식간에 다른 주술을 만들어서 뿌렸다. 반짝이는 나뭇잎과 갈색빛을 내는 무당벌레가 붕붕 날아서 주변을 훑었다.

파아앗!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온천수처럼 솟아올랐다. 단번에 주술사들의 공격 주술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위로 솟구쳐 오른 검은 연기는 펼쳐진 우산처럼 뻗어나가며 옅어져버렸다.

“······”

모두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방금의 그것은 생각할 수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도주>였다. 보통 도망도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찢어발긴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적은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흩어져서 찾아라!”

주술사들은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곳곳으로 움직였다.

더더더더덕! 파각, 훅!

2층에 있던 창문이 마약을 다이렉트로 냅다 뇌 속에 처박힌 것처럼 벽과 부딪치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전사가 그것을 방패로 막았지만 그 순간에 아래에서 검은 연기가 코로 쑥 들어갔다.

“껍!”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위로 쳐들어올리고 발작하며 뒤로 그대로 넘어진 고블린 전사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꺼걱. 꺽!”

“물러나라아아아!!!!”

주술사가 고함을 질렀다. 순수한 주력이 뻗어나갔다. 조금이라도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손에서 수인이 맺어지며 순식간에 주술을 완성시켰다.

옅은 파랑색의 실크와도 같았지만 발작을 일으킨 고블린 전사와 닿자 물에 젖은 천처럼 색감이 짙어졌다. 스파크가 일순 튀면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빠르게 튀어 올라와서는 창문의 안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끄아아악!”

안에 있던 고블린이 끔찍한 소리를 내뱉더니 이내 어두컴컴한 창문 안쪽에서 불똥이 크게 일어났다. 화덕이 엎어진 것이다. 불에 휩싸인 고블린이 그대로 유성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기, 키키키! 키키키키키키!!!!”

두개골이 깨지고 뇌수가 흘러내리면서도 추락한 고블린 기술자가 미친 듯이 웃었다. 피가 침과 뒤섞여서 질질 흘러내려왔다.

퍽!

고블린 전사의 철퇴가 그대로 머리통을 박살냈다. 푹 쓰러진 고블린이 힘이 쭉 늘어졌는데 갑자기 머리 없이 벌떡 일어나서 전력질주를 하다니 벽과 부딪쳤고 벌러덩 뒤집어졌다.

“어어!”

그것을 본 고블린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주술사 또한 입을 떡 벌린 채 보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튀어나오더니 골목길로 사라져버렸다.

“커컥! 콜록! 콜록!”

빙의를 당한 고블린 전사가 검은 피를 토하고 기침을 했다. 서둘러 상체를 일으켰다. 주술사가 앞으로 걸어나가며 그의 앞에 앉아서 눈을 마주쳤다.

“무엇을 보았느냐? 무엇을 봤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엄청나게 죽은 머리통들··· 동족의 머리통들이 사방에 가득했습니다.”

“다른 건?”

“울고 있는 고블린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모두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뒤엉키고 얽히고설켜있었습니다. 벗어나려고 제 손을··· 허, 헉! 그릅···”

고블린 전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끔찍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미칠 것 같고! 그리고···”

소리를 꽤액 지르다가도 감자기 기세가 줄어들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왔다.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꼈다.

“그대로 마음이 꺾였습니다. 엄청난, 엄청난 뭔가가 저를 짓뭉갤려고 했습니다!”

그 거대한 압박감.

한낱 고블린이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서리치는 고블린 전사는 침을 질 길게 입에서 흘렸다.

척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정신이 위태로웠고,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블린 주술사가 일어나서 검은 연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그것은 백색의 촛불이었다. 자그마한 촛불이 그의 동공에 새겨졌다.

동시에 검은 장막이 출렁거렸다. 그 장막이 흔들릴 때 주술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통증을 느꼈다.

절망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감각에 주력을 끌어올렸다.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레우치터···볼마두에게 지금 당장 가야 한다!”

주술사가 다시 되돌아가서 사태를 진압하려고 지휘부 노릇을 하고 있는 <지혜의 볼마두>와 마주했다.

“뭐라도 얻어냈는가?”

“레우치터다. 백색의 촛불 그리고 절망의 장막을 봤다!”

그렇게 말한 주술사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짝눈이 아니었음에도 짝눈이 된 주술사가 주변에게 연설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레우치터를 탄생시켰다! 형태가 없는 저주를 한데 모아서 하나로 만들었다! 하하하! 하하하! 우리가 우리의 절망을 만들고 말았어!!!”

웨애애액! 꾸왜애애액!

젊은 고블린 주술사가 안에 것을 토해냈다. 드문드문 검은 뭔가가 보였다. <지혜의 볼마두>의 황토색으로 만들어진 주술 주먹이 그대로 고블린 주술사를 크게 훑고 지나갔다.

눈, 코, 입, 귀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이내 선홍빛 피가 흘러나오며 피가 멎었다.

“헉! 헉헉! 헉!”

볼마두가 주술사를 잡았다. 하지만 젊은 주술사의 이빨이 우수수 뽑혀져서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끔찍한 생명력의 소모를 말해주는 단편적인 움직임이었다.

단번에 볼마두가 목에 맥을 짚었다.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쓰러진 젊은 주술사가 입을 뻐끔거렸다.

“도···망···”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9천 마리의 시체가 만들어낸 <사령 마력>.

훌륭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이 없는 <원시 주술>.

주술사들의 주력과 드낙의 주력.

죽은 고블린들의 사념까지.

그것이 한 데 어울려져서 만들어낸 <레우치터>는 평범함과는 달랐다.

고블린 지하 도시가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다.

그곳으로 들어선 드낙 또한 레우치터의 표적이 되었다. 물론 갈기갈기 찢겨 뻗어나간 레우치터의 힘은 드낙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상처는 주지 못해도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가능했다.

“윽!”

드낙이 비틀거렸다. 레우치터의 몸을 이루는 한 줄기의 검은 연기가 드낙의 호흡을 통해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얀색의 촛불.’

드낙은 환상을 경험했다. 검은 문을 통해서 자주 겪은 것이기에 환상에 대해서 제법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판별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감각이 괴이하게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제기랄!”

보유한 마력과 주력 때문에 금방 검은 연기의 영향력에서 사라질 수는 있었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

화륵!

검은 불꽃이 드낙의 전신을 뒤덮었다. 흑마법이었다. 검은 연기는 초월의 힘으로 만들어진 방어막과 힘을 겨루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드낙은 지붕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이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개판이라서 무엇 하나 판단할 수 없었다. 높은 수준의 인지력이 필요했다.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른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고블린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일이 꼬이다니.’

표정에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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