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01화 (40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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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

<높은 산 부락>

이름과는 다르게 느긋한 산의 능선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었다. 방위를 위해서 높은 산에 오크 전사 몇 명이 번갈아가면서 지내고 있을 뿐인 곳을 경유하여 수많은 오크들이 지나갔다.

본래는 <대전사(大戰士) 수브락키(Souvlacki, 단단한 발)>가 지배하던 부락이었지만, 도네투스에게 패배했고, 높은 산 부락은 도네투스의 부락이 되었다.

송곳처럼 솟은 목책의 끝부분은 붉은 염료로 칠해져있어서 거대한 색연필 같아 보였다. 음흉한 곳에 설치된 작은 움막은 오크 전사가 은신하기 좋았고, 주변을 염탐하기에도 좋았다.

순찰자를 대비하기 위한 곳이었다. 그만큼 이 주변은 삼엄했고, 먼저 기다리는 놈이 무조건 승리할 정도로 살얼음판이기도 했다.

마을의 북쪽으로 올라가면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번에 있을 <대회의>가 처음으로 열리는 곳이었다.

31명의 대전사들은 제각각 체격도 달랐고, 피부색도 조금조금 차이가 났다. 짙은 초록색부터 옅은 초록색에 검은 점이 두드러지게 많은 이도 있었다.

“아직 한 명이 안 왔다.”

이렇게 모인 31명의 대전사들은 벌써 3일째 빈둥거리고 있었다.

“황소 새끼 보이면 그 양갈래 머리를 쥐어뜯어버리겠어!”

가만히 잘 있다가 화딱지가 나서 소리를 꽝 지르는 대전사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씩씩거리는 이유는 그들 또한 오기 싫었기 때문이다.

몇몇 대전사들은 미리 밖으로 뛰쳐나가서 밖에서 오는 걸 기다리기도 했다. 대전사를 오라 가라 하는 데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기에 밖으로 잠시 도는 것이다.

“어어! 이거 오랜만이다!”

<대전사(大戰士)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손을 휘휘 저었다. 이에 늑대 털가죽을 허리에 맨 대전사가 그대로 냅다 도끼를 던졌다. 날이 무딘 것이었지만 뾰족하기는 뽀족했기 때문에 사람 하나 박살 내는 건 가능할 정도로 둔탁한 둔기가 도끼였다.

척!

규르소모스는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챘다. 손아귀에서 피가 조금 흘러나왔지만 무덤덤했다. 터프함이 인간과 차원이 달랐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느긋하게 버팔로에게서 내리는 규르소모스에게 <대전사(大戰士) 뚜쎠드(Tsusshud, 피묻은 이빨)>가 툭 튀어나온 아랫니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다가왔다. 던지는 도끼를 받아들여서 혁대에 걸었다.

“빨리빨리 좀 안 오냐? 그리고 시대가 언제인데 그 느려터진 버팔로를 타고 다녀?”

<거대 늑대(Giant Wolf)>에 올라탄 뚜셔드가 합류한 채로 그들은 회의를 하고 있는 동굴로 향했다. 대전사들은 세월아~ 네월아~ 했지만 따라온 주술사나 머리가 명석한 오크 전사는 매일 같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도네투스가 제대로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 내막을 대충 듣던 규르소모스는 하품을 했다.

“그놈의 가을. 매번 약탈만 하고 성은 공략도 못 한 채 빠지잖아?”

“이번에는 다르겠지.”

뚜쎠드는 뭔가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비록 방심했고, 개인적인 일로 서로 감정이 들쑥날쑥한 사이를 통해서 제대로 된 전투는 아니었지만 수브락키를 단 한 방에 죽인 것이 도네투스였다.

기대를 안 하는 규르소모스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탕탕!

가슴을 괜히 치며 뚜쎠드가 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팔로들은 천천히 걸어갔다. 흥을 잃은 뚜쎠드는 다시 다가와서 이 얘기 저 얘기를 꺼냈다.

“넌 싸웠었냐?”

“캉카라쿰 때?”

뚜쎠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규르소모스가 히죽 웃으면서 팔 근육을 보여줬다. 희미하지만 와이번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미친 새끼네. 진짜로?”

“못할게 뭐 있어? 딱!”

입으로도 소리를 내면서도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동시에 내며 규르소모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도네투스 고놈이 날 죽일 것 같지는 않더라고. 그래서 그냥 한 판 했지. 언제 와이번을 보겠어? 브레스 때문에 제법 누워있었지만 적당히 때를 봐서 백설산맥 곳곳을 돌아다녀 보려고."

와이번의 타투는 희소하기도 하지만 그 선택을 받는 것도 힘들었다. 날아다니는 와이번과 제대로 된 전투를 하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을 받은 이상, 어떤 식으로든 와이번을 죽이거나 그 피를 맞는 것을 꾸준히 반복하면 타투가 선명해질 것이다.

타투를 내려주는 것이 오크들의 신, <녹색 도끼>였기 때문에 내려받는 게 힘들 뿐이지, 얻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했다.

“산~액 브레스가 범위가 얼마나 엄청난지! 뒤로 빠졌으면 그냥 뼈가 보일 정도로 녹았을걸? 내가 그때! 딱! 판단을 했지. 아. 요건 숙여야 한다. 요건 앞으로 굴러야 한다.”

싸움 이야기를 하는 규르소모스는 활력으로 넘쳐났다.

<속굽이 부락>의 대전사가 도착하는 것으로 다시 대전사들이 모였다. 확 열린 동굴에는 오크들로 가득했다. 수백 마리가 넘었다. 31마리의 대전사가 모인 곳이었기에 그들이 함께 데려온 수행원들로 북적거렸다.

또한 동굴 밖에는 탈 것 또한 넘쳐났다.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만큼 판타지 세상에서는 탈것의 종류가 많았다.

<대전사 도네투스>가 도착하기 전에 모인 대전사들은 숙덕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하고, 비단 여기서뿐만 아니라 모든 오크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어떻게 오크가 특별한 타투 하나 없는 상태에서 <히드라의 타투(Hydra's Tattoo)>를 얻어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녹색 도끼의 챔피언이 아닐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녹색 도끼는 자신의 챔피언을 정하지 않아. 오크에게 평등하다고. 그저 운이 좋은 거겠지.”

“운이 좋다고 일곱 머리 히드라를 잡냐? 그럼 운으로 모든 일이 다 해결 가능하냐?”

“당연한 걸 왜 묻냐? 운 만 좋으면 당장 나라도 신이 될 수 있다! 하하하하!”

말을 하면서 서로 육체적으로 부딪치기도 했다. 단순한 레슬링이었지만 황소가 두 마리 붙은 것처럼 엄청난 힘의 싸움이 보여서 절로 흥이 돋아서 술을 찾는 대전사나 오크들이 많았다.

“새끼야! 덤벼!”

휘릭!

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덩치 큰 대전사가 도발을 했다. 체격은 작아도 단단한 바위과도 같은 대전사는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후우웁!”

“우욱!”

부들부들 떨리는 근육들에 오크들이 환호하기도 잠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캉카라쿰(Kankarakum, Black scales Wyvern)>을 탄 도네투스가 동굴 앞에 내려앉았다. 모든 오크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오른팔에 있는 히드라의 문신이 단박에 들어왔다. 조용해진 곳을 지나치면서 오크들은 그의 등판에 있는 <혼란무도(混亂無道)의 타투(Tattoo)> 또한 볼 수 있었다. 용과 온갖 짐승들의 모습이 그려진 등판에 있는 문신은 실로 어지러운 타투였다.

척.

“반갑다. 이번에는 모두 다 왔겠지?”

규르소모스가 혼자서 낄낄거렸다. 박수를 한 번 친 도네투스가 가죽 주머니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서 씹으며 말했다.

“이렇게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오크의 가을 때문이다. 비록 힘으로 굴복했지만 아직 하나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우리 아니냐.”

<굴복>이라는 단어에 오크들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딴죽을 거는 자는 없었다. 지성 종족의 사회에서 강력한 카드인 진실된 선동과 날조는 오크 사회에서는 그리 각광받지 못하는 화법이었다.

“그래서 굴복한 김에 똥구멍이라도 이번에 잘 핥아보라고 불렀나?”

규르소모스가 성을 냈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도네투스가 피식 웃었다. 그것을 본 규르소모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 따까리 할 심산으로 보였기에 보는 오크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싸우나?’

‘싸우겠지?’

특히나 어금니 부락의 대전사 뚜쎠드에게서 이미 규르소모스가 캉카라쿰을 상대로도 한 판 했다고 벌써부터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더욱 열기가 피어 올라왔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크의 가을을 앞두고 내 손으로 대전사를 죽이고 싶지는 않은데. 죽고 싶으면 무기를 꺼내던가.”

규르소모스는 코웃음쳤다. 그는 이곳에 오면서 무기 하나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져오고 싶었지만 주술사가 막았다. 힘이 강하다고 자기 멋대로 하는 오크가 아니었기에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인간들이 세운 <붉은 요새>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오크들의 것이 된지 오래다. 이제는 심으면 심은 대로 싹이 나는 풍요로운 대지를 가져야 되지 않겠나.”

“말이야 쉽지. 큰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얻지 못한다.”

그 말에 도네투스가 짧게 말했다.

“나에게는 캉카라쿰이 있다. 성벽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지만.”

대전사들은 낙관했다. 성벽이 없으면 인간은 정말이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지방에서 장기전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면 평야는 자신들의 것이었다. 인간들에게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것이 오크였다.

그들은 백설산맥에 들어선 뒤로 단 한 번도 인간에게 부락이 멸망당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 전수되었고, 상당한 역량을 지니게 되어있었다.

큰 전쟁을 한 번 치를 정도로 폼이 오른 것이다.

“이번 가을에 할 생각인가?”

“아니.”

도네투스는 짧게 부인하며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오크 주술사의 예지능력은 신뢰할 수는 없지만 한 번 생각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므로 <도네투스가 일으킨 오크의 가을>은 신중해야 했다.

“한 번에 폭풍처럼 휘몰아칠 생각이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될 수 있지. 그것을 위해 답답해서 머리에 열이 뻗쳐오를 때까지 준비를 할 생각이다.”

그 말을 끝으로 도네투스가 바위터의 위에 올라섰다.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한눈에 보였다.

“메디오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며 <붉은 요새>의 후예라 자칭하는 인간들은 천년이 넘도록 그들의 숙원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상 겁쟁이들뿐이다! 지금도 붉은 요새에는 버려진 거대한 방패와 강철 곤봉이 널브러진 채 패배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겁쟁이들에게 평야를 빼앗겼지만 이제 다시 되찾아올 때가 왔다! 오크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32명의 대전사가 모이고, 31개의 부락이 모여서 전쟁을 한 적은 단 한 번뿐이다!”

10만 오크 대군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붉은 요새를 함락할 때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엄청난 숫자의 오크가 결집할 때가 왔다.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하고 싶은 것이 도네투스였다.

“오크의 새로운 길은 비옥한 평야를 가지는 것이다! 백설산맥에서 동족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땅으로 향하자! 캉카라쿰이 성채를 무너뜨릴 것이고! 무너진 곳을 넘어 인간들의 목을 자르자!”

와아아아!

오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을 앞세우며 부락을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부락을 굴복시킨 도네투스는 오크 대전사들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비전을 제시했다.

그것은 꽤나 그럴듯했다.

도네투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트롤 때문에 북부는 아직도 혼란스러웠고, 뒤숭숭했기 때문이다. 적기(適期)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즈아를 외치면서 넘어지든 말든 일단 뛰고 봐야 할 정도였다.

‘주술사의 예언.’

그런 그의 거친 마음을 밧줄로 묶은 것은 주술사의 예언 때문이었다. 아직도 생생했다.

‘예언을 부순다.’

압도적으로 힘을 쌓고. 세력을 더욱 높이고.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을 때.

폭풍처럼 휘몰아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폭풍이 부는 가을에 인간들은 북부를 잃을 것이다.

도네투스에게 제국은 큰 메리트가 되지 못했다. 천리가 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성으로 지점 방어를 하는 남부 왕국이 더 공격하기 좋았다.

고블린의 두개골에서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왔다. 그 옅은 연기는 뭉치면서 농밀해졌고, 닿은 뼈는 썩어버리며 피와 뒤섞여서 검은 물같은 것이 주륵 흘러내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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