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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드낙은 이 초록색으로 가득 찬 동굴 내부를 능숙하게 움직였다. 천장이 있는 숲과도 같았다. 곳곳에 이끼가 자라나고 있었고, 밖에서 가져온 나무가 곳곳에 규칙적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잘린 통나무에는 버섯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신기하네.'
통나무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져 있었는데, 시큼한 썩은 냄새가 났다. 비료 같았다. <오크 나무>와는 질적으로는 낮아 보였다.
오크 나무는 나무에게 한약을 먹이는 것과 같을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을 한 그루의 나무에 집중한다면, 이 통나무는 재배를 위해서 쓰일 뿐이었다.
'젠장. 오물 냄새네.'
흙냄새와 뒤섞이고, 시간이 지나서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드낙이 지닌 추적자의 재능은 놀라웠다.
<고블린 재배 통나무>의 비료는 오물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개체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오크와는 비교조차 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좋은 양분이기는 했다.
'버섯부터 약초까지. 이게 무슨 나무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다. 좋은 버섯은 좋은 나무에서 나기 때문이다. 드낙이 나무를 쩍 갈라서 장작 패듯이 하나를 패어 가져갔다. <산지기 산골 마을>의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초록 동굴>은 그 외에도 특이한 것이 많았다. 고블린들이 동굴 내부에서 어떻게 식량 생산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었고, 세월과 함께 쌓여온 노하우가 깃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노하우는 배울 수 없었다.
하찮게 여겨져도 똥오물로 버섯과 약초를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은 귀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칠흑과도 같은 동굴 내부에서 키운다는 것이 용했다.
부욱! 북! 삭삭!
무언가 긁는 소리가 났다. 드낙은 몸을 숨겼다. 솟아오른 종유석의 그림자에 그대로 드낙의 몸이 스며들 듯이 들어갔다.
순간적인 움직임이었음에도 어둠과 동화되는 듯한 모습은 실로 귀신과도 같았다.
"헉헉! 난 이제 끝이야."
콥고블린 하나가 굴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콥고블린의 젖이 보이는 피부 가죽으로 만든 가죽 주머니를 쥐고 있었는데, 안에는 흙과 자갈이 가득했다. 그것을 내려놓자 다른 콥고블린이 그것을 가져가며 적당히 뿌리고 다녔다.
동족의 피부로 만든 가죽에 드낙은 잠시 시선을 놓았다가 이내 굴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이야기를 엿들을 수는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할 때마다 가슴이 떨려."
손이 떨릴 정도로 힘들게 굴을 판 콥고블린 하나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건 <희망의 웃음>이었다.
지옥 같은 곳에서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희망이었다.
"웅타는 우리를 밖으로 이끌어줄 거야. 새로운 땅을 찾고, 새로운 동굴을 찾을 거라고."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데."
웃음소리가 퍼져나가 드낙의 귀로 들어왔다. 그것은 콥고블린들의 반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전쟁이 아니라 도망이었다. 또한 드낙은 <용맹한 콥고블린 웅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콥고블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독방에 갇혔을 때의 이야기는 지금 또 말해도 질리지도 않아!"
"갇혔는 고블린의 말을 들어보면 간수에게서 벌레를 얻어냈다며?"
"바로 다음 날에 풀어주기까지 했지!"
말하면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만큼 웅타는 콥고블린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드낙은 그런 놈을 보고 싶었다. 약간 기대하기도 했다.
'검은 문을 줄 수도 있겠는데.'
분명 콥고블린답지 않은 외모를 지녔을 것 같았다. <녹색 동굴>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블린 언어를 훔쳐들은 드낙은 이내 웅타를 볼 수 있었다.
외팔이에, 절름발이.
피부병을 앓고 있는지 등에 나 있는 고름을 짜는 콥고블린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등은 곱추처럼 굽었고, 체격은 고블린 전사의 반도 되지 않았다. 등이 굽어서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서 드낙은 밝게 빛나는 노란색 눈을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자의 활력이 샘솟는 그 눈동자는 정확하게 드낙과 마주쳤다.
벌떡!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 웅타는 반사적으로 나무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괴이한 자세는 그가 외팔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기민했다. 종유석에 도착했지만 분명 어떤 움직임도 없었음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콥 고블린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하지만 웅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작은 기분의 변화도 철석같이 따라믿는 것이 웅타였다. 그 분위기를 읽고, 기세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콥고블린의 보스가 될 수 있었다.
"무언가를 느꼈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탐색해라. 물론 다섯 명만 돌아다녀라."
"예!"
콥고블린들이 종유석의 끝을 따거나 돌을 갈아서 만든 돌을 묶은 창을 쥔 채 움직였다.
'기감이 대단한데.'
드낙은 그런 웅타의 재능이 탐이 났다. 하지만 죽이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세파리아스의 계획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콥 고블린의 노역자들이 이런 걸 꾸미고 있다면, 오히려 나중에 죽이는 게 더 쉬워지겠지.'
드낙은 9천 마리의 고블린을 죽인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건 콥 고블린들의 음흉한 속셈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로 결집해있었다.
하나가 된 힘은 대단한 힘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의 목적과 희망으로 뭉친 세력은 나약해도 목을 찌를 송곳 하나는 쥘 수 있다.
그것을 확인한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그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고블린 지하도시와 협력한다.'
드낙은 녹색 동굴의 출구로 거침없이 향했다.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
파자작!
고블린 전사들이 있는 야영지에 다수 마법을 사용하고, 입구에 의자에 앉아서 지네껍질을 손으로 손질하며 반들반들하게 내부를 만드는 고블린 전사의 두개골을 부수었다.
퍼석!
순식간에 고불린 전사들을 죽인 드낙은 거침없이 지하도시로 되돌아갔다. 만나는 족족 얼음 마법을 사용해서 흔적을 남기고, 생존자도 한 명 정도는 살렸다.
빠르게 타협하고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힘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줄 셈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사들이 밖으로 돌면, 내부로 들어가서 주술사를 여럿 죽이고 그대로 협의를 이끌어낼 생각을 가졌다.
밖에서 흔들면 안을 지켜야 한다는 모순적인 답안지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대산에서 살기 위해 웅크린 이 작은 우물에 도시를 만든 고블린들은 그 진리를 결코 모를 것이다.
"으아아악!"
저쪽이다! 저쪽!"
'뭐야? 무슨 일이야!'
하지만 지하 도시에 도착한 드낙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막 도착했음에도 소란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드악은 크게 달려나갔다. 고블린 한 마리, 한 마리가 아까운 상황인데, 서로 내전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슴이 쫄깃해졌다. 괜히 하루를 더 지체한 것 같았고, 그냥 세파리아스의 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죽이는 게 나았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제기랄!'
드낙이 욕을 하며 누구도 지키지 않는 지하 도시의 입구를 지나쳤다.
집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골목 곳곳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은 고블린들을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드낙은 지붕 위로 단박에 뛰어올라갔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결국 드낙은 소란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화륵! 탁!
모닥불에 앉은 오크 주술사가 식은 재를 쥐고, 손뼉을 쳤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모닥불 속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휘청거리는 것을 유심히 봤다.
맞은편에 있는 <속굽이 부락>의 <대전사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침을 꼴딱 삼켰다. 큰 눈망울이 절로 순해 보였다.
속굽이 부락의 오크들은 눈이 큰 것이 특징었기에 그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횃불에서 나오는 불빛에 주홍빛으로 물든 얼굴은 전체적으로 황소발굽이 박힌 것 같은 타투가 있었다.
"음···"
"어떻소? 빨리 말해봐."
손을 까딱거리며 재촉하는 모습에 오크 주술사가 흥을 망친 것처럼 에잉, 소리를 냈다.
"놈이 <캉카라쿰(Kankaraku, Black scales Wyvern)>의 선택을 받은 것이 진짜요?"
"봐놓고서는 왜 이런 걸 시켜? 당연한 소리를. 놈은 더 큰 산이 될 재목이야. 그러니 그만 마음에 담은 것을 풀어."
벅벅.
규르소모스가 뒷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제기랄. 마을 밖에 나가는거 귀찮은데."
"대전사가 또! 또!"
주술사가 땅바닥에 든 나무지팡이를 휘둘렀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둔탁하고 무게가 무거운 지팡이였다. 평범한 오크 전사라면 펄떡 펄떡 활어처럼 날뛰었겠지만 규르소모스는 속굽이 부락의 대전사였다.
"허흐하하하."
맞아도 웃기만 했다. 육중한 움직임으로 일어나서 방뎅이를 넓은 손으로 털었다.
"퉤퉷!"
흙먼지가 거칠게 일어났다. 주술사가 눈을 찌푸리며 기침소리를 냈다.
"고맙소!"
푸레질을 하듯이 한 소리를 쭈욱 내뱉은 규르소모스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오크 전사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앙증맞게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땋은 머리의 끝을 조금 남기고 그 위에 철로 된 장식품도 끼고 있었다.
물론 규르소모스 또한 그러했다.
"대전사. 표정을 보니 내가 한 말대로 되었구만. 그러니까 그냥 가자니까."
"퉤!"
규르소모스는 침을 자신의 손에 뱉어서 비비고, 겨드랑이에도 비볐다. 체온이 많은 덩치 큰 오크들이 가지는 공통된 습관이었다. 거침없이 버팔로에 올라타서는 마을 밖으로 향했다.
"누구누가 온다더라?"
"백설산맥에 있는 대전사란 대전사는 모두 모이는 자리요. 지금 가도 지각이요."
전사의 말에도 규르소모스는 느긋하게 버팔로의 허리춤에 매어둔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서 씹었다.
"지가 오라고 했으면서, 난 분명 가기 싫다고 했다고! 그런데도 가는 거잖아. 그럼 지각해도 괜찮겠지."
짜증을 팍팍 냈다.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이 자자한 것이 규르소모스였다. 집채만한 덩치 때문에 도네투스와 끝까지 각을 세운 대전사이기도 했다.
"이제 어쩌냐? 좋은 세월 다 갔다. 오크 주술사가 놈은 더 큰 산은 되었지 작은 산은 안 된다더라."
"그럼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닌가? 백설산맥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이렇게 부락끼리 평화로웠던 적이 없지요."
"에휴. 그래서 더 걱정이다."
규르소모스의 순박한 눈망울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있었다. 그는 도네투스와 그의 동생 아만투스가 지닌 거대한 증오심.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오크에게도 인간에게도 무엇게에도 쏟아부어질 것이다.
"요즘 순찰자들의 상태는 어떻더냐?"
"그림자 같아서 볼 수도 없죠. 그리고 저희들이랑은 제법 사이가 좋아서."
북부의 순찰자들은 부락마다 태도가 제각각이었다. 황소 같은 소국이 부락원들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해서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생각을 좀 하던 규르소모스는 이내 고개를 우루루 거칠게 돌렸다. 그렇게 각을 세워도 도와주지 않던 다른 부락 놈들이었다. 일단은 이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고민해봤자 소용없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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