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8 <-- 지하 도시 -->
고블린 전사와 기술자들의 죽음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순식간에 박이 터진 고블린 기술자의 앞에 고블린 주술사가 여럿 모습을 드러냈다.
“음···”
주문을 읊기도 하고, 가져온 〈주술 도기〉 중에서 하나를 꺼내서 엄지를 안쪽에 넣고, 나머지는 밖에 둔 다음에 똑하고 부러뜨려 사용하기도 했다.
뚝!
주술 도기가 부러지면서 갈색의 나무색이 튀어나와서 빛을 내며 세 갈래로 나누어져서 두 갈래는 문과 창문으로 한 갈래는 시체에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시체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어어!”
주변에서 구경하는 고블린들이 술렁거렸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보일 정도의 스파크였고, 그런 스파크와 함께 흐물거리며 잠깐 보인 검은색의 연기 같은 것은 절로 흉험해보였다.
“사령마력이다.”
늙은 고블린 주술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블린 사회에 있어서 언데드는 빼려야 뺄 수 없는 존재였다. 때때로 튀어나오는 그런 것.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형편없는 사령마력을 지닌 언데드는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저주를 쓰는 언데드는? 죽이기가 아주 어려웠다. 음흉하기 때문이다.
“음! 집 내부에 뻗어나간 〈갈대의 감각〉이 소멸되었다.”
“생각보다 깊게 침투했나 본데. 집에도 잔재가 남아있다니.”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 어떤 저주인지 알아내야 한다.”
주술사들이 고블린의 언어로 쑥덕거렸다.
“토템을 놓아야겠다. 그래야 저주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고블린 주술사의 숫자는 3마리에서 20마리로 늘어났다. 그들은 1층 높이의 토템을 세우고, 그곳에 주술 각인을 양각(陽刻)했다.
“결코 음각(陰刻)을 해서는 안 된다. 토템이 오염될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예!”
견습 주술사들 또한 몇몇 있었는데 그들이 주술사의 말에 냉큼 대답했다. 양과 음은 거대한 자연을 보다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양분하여 단순화 시킬 수 있는 좋은 사상이었다.
물론 그것에 집착하면 결코 주술사가 될 수 없었고, 평생 견습에 머물러야 했다.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만들어진 온실을 깨부숴야 했다.
토템이 완성되었다. 붉은 염료. 초록색의 염료. 검은색의 염료로 된 토템이었는데, 붉은 염료는 조금조금 밖에 없었고, 초록색이 가장 큰 바탕색을 이루고 있었다. 검은색은 양각되어서 툭 튀어나온 곳에만 칠해졌다. 〈색깔〉 또한 주술 토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력이 스며들어가자 토템이 갑자기 뚝 부러지더니 쓰러졌다.
“이, 이런 일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쓰러진 형태를 살폈다. 그들은 고블린 주술사였다. 계속해서 세월이 흐르며 구두로 수많은 지식을 전수받은 자들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당황할지언정,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단은 멀쩡하니, 그전에 부서졌다. 제대로 된 저주가 아니라는 뜻이고, 우리들의 주술 토템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토템은 3등분으로 크게 나누어져서 기능했다. 가장 상단은 체계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위한 부분이었다.
“중단은 균열이 드문드문 있다. 음···”
고블린 주술사 하나가 중간 부분에 손을 대었다. 검은 것이 어느새 손에 묻어져 나왔다. 자세히 보면 검은 가루 같은 것이 묻어있었고, 손으로 쓸면 크게 묻어져 나왔다. 마치 쌓인 먼지와도 같았다.
중단은 토템의 위력, 효과 등을 내세우는 부분이었다. 그곳에 이상한 점이 생겼다는 것은 적어도 〈싸움〉은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초월의 힘과 부딪쳐서 생긴 흉터였다. 흉터는 싸워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술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하단의 박살 난 것을 손으로 훑고, 특수한 주술 도기를 이용해서 더듬었을 때, 표정이 다시 안 좋아졌다.
“주변에 구경하는 자들은 물러나라!”
주변의 고블린을 물리기까지 했다. 또한 집 한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대화를 나누었다.
“거대한 손자국을 보았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죽은 자의 숨결. 그 원한.”
“시리도록 차가운 사냥꾼의 보이지 않는 손길의 차가운 감촉!”
그리고 자신들이 하단에서 더듬은 환상, 예지, 느낌을 말했다. 하나같이 나쁜 징조들뿐이었다. 특히나 가장 늙은 주술사가 말한 〈거대한 손자국〉은 해답을 알고 있다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 키워드였다.
인간의 손은 항상 고블린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이라는 것은 지성 종족이 가진 특징이기도 했다.
“리치인가?”
쉽게 해답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주〉를 내리는 인간은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사령마력〉을 느낀 것이 고블린 주술사들이었다. 이 사령마력은 드낙의 〈원시 저주술〉 덕분에 형태를 가지고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연히 언데드 리치로 보였다.
“리치라면 체계를 지닌 흑마법이나 사령술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술 토템의 상단부도 피해를 입었어야지.”
“주술 토템이 버티지 못했을 수도 있지.”
“버티지 못했다면 중단이 무너져야지, 왜 하단이 박살이 나?”
하단은 주술 토템의 주력이 시작되는 저장소였다. 근본, 뿌리와도 같았고, 사실 가장 안 부서지는 곳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언데드가 분명하다. 지금 당장 〈콥 고블린〉이 있는 곳에 전사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보호하거나 태워 죽여야 한다.”
고블린 주술사들은 〈고블린 지하 도시〉의 지배계층이었다. 그들은 언데드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고, 콥 고블린을 보호하거나 소각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미 콥 고블린이 죄다 박살이 났다는 건 몰랐다.
드낙이 지닌 마력은 이미 인간을 초월했으며 〈일루전 운드〉의 경우 범위 마법이었다. 몇 번 실험하여 콥 고블린을 쇼크로 죽일 횟수를 알고 난 뒤로는 대규모로 죽이고 다녔다.
“밖에 있느냐!”
“예! 듣고 있습니다!”
“전사 300명을 보내어 콥 고블린들의 상태를 보고해라!”
“예! 바로 보내겠습니다!”
털가죽과 잡스러운 광물이 뒤섞인 합금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은 것이 고블린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12시간 이내에 한곳에 합류하여 콥 고블린 거주 지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300명을 모으는 데 12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체계가 바로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산 너머〉에서 고블린이 살아가는 방법은 지하 종족으로 살아가며 전투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투를 자주 하지 않으면서 주술사의 위상이 자연스레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군사적인 발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자질의 고블린은 일단 주술사가 되는 것이 평균적이었다. 누구나 사회의 지배계층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전사들의 기강이 해이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빨랐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블린 주술사 또한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형태가 없는 저주〉로군. 들은 적이 있지.”
늙은 주술사가 말하자 모두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저주인가?”
“사령술인가?”
묻기 바쁜 주술사들은 늙은 주술사가 가만히 있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형태가 없는데 그게 사령술이라고 할 수 있나?”
고개를 젓는 모습에 늙은 고블린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형태가 없으면 사령술도, 마법도, 주술도 아닌 게지. 그냥 그런 것이지.”
한쪽 눈이 실명된 늙은 고블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한 것이 와버렸다. 그놈이 지닌 힘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알아야겠다.”
“놈의 정체를 아는가?”
“확신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짚이는 것이라면 있다. 〈레우치터(Leuchter)〉라고 불리는 몬스터다.”
모두 의문을 띄웠다.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지. 〈대전쟁〉이 있을 때에 목격이 될 정도로 보기 힘든 몬스터다. 형태가 없는 저주를 두른 거대한 그림자다. 낮에도 어둡고, 밤에는 더 어두워서 그 모습이 절로 보인다. 또 때때로 저항을 하면 새하얀 불꽃을 내어 얌전하게 만들기도 하지.”
“어떻게 생긴 것인가?”
“형체가 없다. 만져지지도 않고.”
꿀꺽.
“놈에게 대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그렇게 강한 놈이라면 왜 우리를 직접적으로 노리지 않는 거지?”
“모르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는 몬스터다.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사용하는 것이 저주술이 아닌 그냥 감정이나 원한 따위로 이루어진 저주다. 체계적이지 않은 순수한 저주지.”
“그렇다면 〈주술 토템〉의 하단이 박살 난 것도 이해가 가는군. 애초에 주술이 발현되기도 전에 주력과 부딪친 것이다.”
그럴듯한 해석이었다.
주술사들이 할 일은 그다음에는 바로 결정됐다.
“형태가 없는 저주라면 그 형태를 잡아 주술로 타격하면 된다. 거대한 공간에 토템을 세우고, 저주부터 없애야 한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레우치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를 싸움을 위해서 더 준비를 오래 해야 한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계속되는 피해를 적게 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주술 토템이 들어섰다. 고블린에게 항마의 주술 도기도 혁대에 하나씩 걸 수 있도록 보급이 이루어졌다.
전사와 기술자는 고블린 피라미드 사회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요한 자들이었다.
*
〈고블린 전사 아타락뚠〉은 콥 고블린의 구역으로 들어갔다. 300마리의 고블린 전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가장 덩치가 커서 선두를 자처하는 것이 그였다. 고블린 전사들의 존경을 받는 것을 즐기는 놈이었다.
공명심이 높은 고블린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해?”
“사거리로 가는 게 어떻습니까. 항상 거기에 몰려있습니다.”
“좋다.”
주술사들은 서로 존대를 하지 않는 것에 반해서 전사 계급은 힘의 우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었다.
사거리 또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벌써부터 돌아가고 싶은 전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아타락뚠은 어림도 없었다.
“시체도 안 먹고.”
모닥불은 식어있었고, 걸려진 시체는 타버린 채 있었다. 무엇이 굶주림을 이기게 만들었을까? 답은 뻔했다. 하지만 이 주변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욕심이 드글드글 끓어올랐다.
“30명씩 짝을 지어서 흩어져서 뭐라도 발견해와!”
“예!”
고블린 전사들이 흩어졌다. 아타락뚠은 사거리에서 꺼진 모닥불에 석탄을 몇 개 넣어서 불을 지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히익! 히이이익!”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고블린 전사가 허우적거리면서 튀어나와서 그대로 넘어졌다. 그는 턱을 기괴하게 비틀고 있었는데, 턱이 너무 아파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헉헉!”
하지만 〈일루전 운드〉의 사정 범위에서 벗어나자 통증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첫 번째 사거리에 재빨리 복귀할 수 있었다.
“다른 놈들은?”
30마리 몰려서 갔는데 혼자만 돌아왔다. 그 과정이 탐이 난 아타락뚠이 냉큼 물어보았다.
“비명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턱이 미친 듯이 아파서 도망만 나왔습니다.”
“이 새끼가, 뭐라도 봤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아타락뚠은 돌아온 놈들을 추려서 되돌아갔다. 생존자는 100명도 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콥 고블린들의 시체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히 높아졌다.
하급 언데드를 방비하기 위한 준비가 분주하게 이루어지면서 시간 구분 없이 시끌시끌했다. 그 틈을 타서 드낙 또한 내부로 들어왔다. 2층이나 3층에서 염탐을 하고, 1층 창문을 반쯤 열어두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토템을 받았다고 해도 고블린 전사들이 〈두개골 진흙집〉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블린들은 계속 피해를 입고 있었고, 빈집이 드문드문 있었기에 드낙이 활동하고 몸을 숨기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드낙이 고민했다. 필요한 정보는 얻었지만 확실하게 끝마무리를 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서 주술사들을 격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전이 필요한 것이 당연했다. 자신은 한 명이었고, 상대는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고블린 전사와 기술자는 못해도 5천 마리는 되었고, 고블린 주술사는 300마리가 넘었기 때문이다.
‘〈검은 회의〉에서 방도를 마련해야겠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아보였다.
========== 작품 후기 ==========
5631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