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4 <-- 봄이 시작되고 -->
〈산딸기 사제〉와 17명의 사제들이 〈호수 마을〉에 도착했다. 이실레아는 그들을 〈성기사 케이슨〉에게 인도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우리의 영지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자작님과 총관이 신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상기해주십시오.”
이실레아의 말에 케이슨이 고개를 크게 숙였다. 이실레아는 경기병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드낙이 오기 전까지 〈파충류 초원〉을 제외하고 다른 곳의 치안을 크게 확보해야 했다.
‘펄 발드 토벌에는 반드시 내가 동참해야 한다.’
“반갑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케이슨이 그들을 안내했다. 사제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기에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일을 해서 순풍순풍 인구수를 늘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부지가 대단히 많군요.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산딸기 사제의 말에 케이슨이 대답했다.
“이 신전부지는 신전이 시민들을 치료하지 않는 순간까지 신전의 부지입니다. 세금도, 귀족들에 할당되는 신성력도 없습니다. 만약 귀족들에게 신성력이 꾸준히 사용하게 된다면 그 양만큼 시민들을 위해서 귀족이 돈을 써야 합니다.”
신성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때때로 신성력보다는 돈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질문 외의 것도 말해준 케이슨의 모습에 산딸기는 거침없이 이것저것을 물었다.
“허···”
그리고 혀를 내둘렀다. 그 어떤 외압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파겐 영주〉가 신전에게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신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의견이 일치하는 내내 분란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케이슨은 산딸기 사제부터 함께 온 사제들의 일대기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기록하여 〈교리〉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사제가 될 이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자신이 길을 참고할 수 있는 역할이 된다는 소리에 크게 상기된 모습을 하는 사제들도 있었다.
자신의 신념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만큼 가슴 떨리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면, 자신이 죽어도 자신이 하던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받아서 한다는 소리였다.
‘〈계승〉···’
산딸기 사제가 가장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15년을 노력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자신이 발악해도 기득권이 행하는 수탈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신념을 지닌 이들이 계속 많아진다면.’
그 끝은 낙원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서를 보관해야 할 곳도 계속 지어야 하고···”
“걱정 마시오.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에 산딸기 사제가 팔을 걷어붙였다. 건축에도 경험이 풍부한 것이 그였다.
신전에 오랜만에 활기가 크게 일어났다. 18명이나 되는 사제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력이었고, 새사람이 새로운 곳에 투입되었기에 절로 시끌시끌했다.
3일 뒤.
덜그럭. 덜그럭.
거칠기 짝이 없는 길에 수레를 끄는 당나귀가 힘겨워했다. 이에 남자가 말했다.
“얘들아. 내려, 당나귀가 힘들어하잖아.”
“네에~!”
세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내리자 당나귀가 한결 편하게 걸었다. 남자는 뒤로 가서 밀어주기도 했다. 여자는 아기를 둘러업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고단했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신성력을 베풀어주던 사제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주민 1천 명은 〈석지 마을〉에 그렇게 힘들게 도착했다. 이들에게 마중 나온 병사들의 숫자는 10명이었다. 그들은 대충이라도 머릿수를 세 알렸다.
“가족끼리 함께 있으시오! 나중에 번거롭게 한다면 시간이 크게 지체되기 때문이오!”
병사들은 결코 반말을 쓰지 않았다.
제법 건장한 청년들이 흩어져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뒤늦게 이스핀이 전신갑주를 입고, 마갑을 입힌 말을 타고 왔다. 썩 좋은 종마는 아니었기에 마갑의 무게가 매우 적은 놈이었다. 체인 메일에 천을 덮은 것에 불과했다. 게제라스가 목장 관리자들과 친분을 쌓고, 큰 사업으로 만들어 하나로 엮으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주자들이 몇 명이더냐.”
“대략 1천 명쯤 됩니다.”
이스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실레아 경에게서 받은 내용과 일치했다.
“들어라! 이주민들이여! 내 이름은 이스핀 롤레온이다! 석지 마을을 장원으로 두고 있는 불파겐 가문의 방계에 속하는 기사다! 너희들은 모두 석지 마을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모든 집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결코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침착하게 따라오라!”
웅성거림은 있었지만 이스핀이 앞장서고, 병사들이 2개 조로 나뉘어서 중간과 후방으로 향하자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 비켜!”
가장 앞에 서려고 몸싸움이 일어났는데, 병사들이 번개처럼 달려와서는 창날을 들이밀었다.
“허억!”
바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이주민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질서를 지켜라! 너! 너! 너! 길 옆에 서서 가장 마지막에 따라와라!”
“벼, 병사님! 저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제 어깨를 쳤다고요!”
“예외는 없다!”
병사가 거칠게 뒷목을 잡아서 무리에서 끄집어냈다. 반항을 하기에는 다른 병사가 당장이라도 창을 휘두르거나 검으로 벨 것처럼 흉흉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온다! 온다!”
석지 마을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젊은 문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새파란 문인 레이 라이터〉였다.
마을 입구 밖에 임시 천막과 테이블이 여럿 놓였고, 싸구려 종이도 가득 쌓여있었다.
“배운 대로. 배운 대로. 배운 대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게제라스에게서 배움을 받으며 가장 성적이 좋았던 그였기에 석지마을의 문인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아래에만 견습 문인이 다섯이나 있었다.
선임 없는 일병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어찌어찌 석지마을을 잘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밑에 인력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족씩 천막의 앞으로 오게 하라!”
“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한 가족이 왔다. 7살 난 딸이 하나 있고, 노부부를 모시는 남녀였다.
“나중에 거짓이 들통나면 영주께서 나서실 것이다. 그분이 나선다는 뜻은 보통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는 것이 좋을 거다.”
“예!”
남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무슨 일을 했나?”
“농사를 짓고, 장작을 팔며 살았습니다!”
“소리는 크게 지르지 않아도 된다.”
“예! 예···”
가족력에 대한 서류가 완성되고, 그것을 견습 문인에게 넘기자 견습 문인이 몇 번 후후 불면서 나무판자에 끼워 넣고 상자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나무판자는 높이가 있었기 때문에 종이끼리 붙어지지 않아 잉크가 번질 일은 없었다.
“농부용 서류입니다. 레이 님.”
다른 견습 문인이 빼곡하게 글씨가 써진 문서를 주었다. 레이는 그것을 잡아서 제목만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탈자가 있을 수는 있었지만 워낙 대기자들이 많았기에 모두 검토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앞으로 농부 일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나?”
“예. 그게 안 된다면 나무꾼이라도···”
긴장한지 주먹을 꽉 진채 무릎에 올린 남자의 말에 문인이 문서를 건네주었다.
“토지 대여에 대한 계약서다.”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받아들였다. 내구력을 위해서 조금 굵은 종이였다. 겉이 까칠까칠했다.
“토지는 대여의 방식으로 지급이 된다. 1명이 경작하기에는 살짝 많은 수준이다. 더 필요하다면 나를 찾아오면 된다. 물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
“예.”
“세율은 열 중 셋이다. 3할이지. 거주지를 옮기거나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에는 항상 그 사유를 나한테 말해야 한다.”
“삼이요?”
꿀 중의 꿀이었다. 소작농으로만 살았던 남자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항상 남는 게 3할은커녕 2할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10중에 8은 빼앗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열중셋이라니?
“개간이 안 된 농지를 배정받는다면, 개간에 대한 임금이 지불될 것이다.”
“예!”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그 뒤로 간단한 주의사항이 말해졌다. 그다음에는 〈새파란 문인 레이 라이터〉가 마을 입구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끝났으니, 마을 입구에 있는 병사들에게로 가라.”
“예!”
가족들은 병사들에 의해서 집을 배정받았다. 오두막이었고, 평수가 제법 되었다. 방만 4개나 되었다. 거실은 좁았지만 만족스러웠다. 나무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을 보니 새집이 분명했다.
“허. 허허허. 허하하하하!”
농부 일로는 가족을 지킬 수 없어서 위험한 산에 올라 도끼질을 했던 그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부농 패거리들도 상담을 받았다.
“농지를 여럿 관리했다고?”
“예! 농부들 관리하는 건 이골이 날 정도로 전문가입니다!”
벤이 힘을 주어서 확신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듣는 문인 레이는 썩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농부 관리인은 필요가 없다. 문인들이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경력은 없나?”
“어··· 음식점도 영업을 해봤습니다.”
“어떤?”
“그냥 간단한 거랑 술을 많이 팔았었습니다.”
그 말에 레이가 또 고민했다. 이미 호수마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술 때문에 석지 마을에도 술집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공무원 수준으로 여겨지는 것이 술집 주인이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엄청났다.
“미안하지만 그 경력도 필요하지 않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술집을 차리는 데에도 혹시 허락을 맡아야 합니까? 세금만 잘 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과 술집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래서 자네가 허락 없이 술을 판다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런···”
부농의 주수입이 밀주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었다. 팔기 위해서는 술집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까지 관리를 받고 있다니?
‘깐깐하네. 니미.’
절로 욕이 나왔다. 그 뒤로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1차적인 생산에 필요한 인력만을 원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전문적인 것이 필요한데 〈부농 벤〉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상인일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나?”
“그것도 무슨 제한이 있습니까?”
레이는 손사래를 가볍게 쳤다.
“아니. 마을을 들어오고 나설 때마다 물품에 대한 목록을 신고하는 것 외에는 없다.”
‘지독하다! 지독해!’
물건을 파는 것에 대해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마을에 들어서고 나갈 때마다!
“그렇게까지 세금을 걷습니까?”
“마진의 3할을 걷을 뿐이네.”
절로 벤이 고갯짓을 쳤다.
“죄송합니다.”
“그런가. 그럼 마을에 집을 줄 수가 없다.”
“예?! 그런 게 어딨습니까!”
“이놈이! 어디서 언성을 높이나!!”
병사가 들이닥쳐서는 단번에 벤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무릎으로 허벅지를 가격했다.
“아악!”
벤이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균형을 잃고 엎어졌다. 다시 병사가 그를 일으켜 세우자 벤이 벌벌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가 다시 벤을 자리에 앉히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벤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병사의 숏소드에 피부가 조금 베여져서 피가 흐르며 따끔한 통증이 왔다.
“후욱. 후욱!”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마을을 돌아다녀도 좋다. 하지만 〈석지 마을〉에 집을 원한다면 내가 제시한 일자리를 선택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호수 마을〉에 가서 문인을 찾아라. 거기는 조금 더 큰 마을이니 네가 원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벤이 절로 공손해지며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레이가 턱짓을 했다. 해보라는 소리였다.
“혹시 여관업도 술집처럼 가득 찼습니까?”
“식당을 겸업한다면, 석지 마을에서도 받아줄 수 있다.”
“그,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마을 입구를 가리켰다.
“병사를 따라가라. 나중에 여관업에 대해서 집을 주겠다.”
“예! 감사합니다!”
벤이 굽실거렸다. 물론 몸을 싹 돌자마자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부농인 자신이 여관업이라니?
‘여기서 대충 돈을 벌고 다시 떠나야겠어.’
아주 거지 같은 곳이었다.
‘고리 대금으로 단번에 농부들이 배급받은 땅도 빼앗고. 흐흐흐.’
자신을 따르는 패거리도 있었다.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농부 전용 문서에 대한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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