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90화 (38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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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에 대해서 먼저 말하겠습니다.”

중앙대신 중 하나가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길고 굵은 종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장 많은 양의 군량미를 거둔 것은 〈남발리안 지방〉입니다. 말은 적지만 목축지가 적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부 왕국의 남부는 크게 발리안 지방으로 일컬어지고, 수도를 중심으로 〈동발리안〉 〈서발리안〉 〈남발리안〉으로 불리고 있었다. 수도가 있는 지방의 경우 그냥 수도라고 불리고 있었다.

남발리안 지방은 엄청난 양의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마력이 적은 이들에게 종속적 계약을 맺으며 생산, 성장 마법만 가르쳐서 관료로 등용했기에 엄청난 곡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최대 10만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양이었다. 제국의 군단 하나의 병력수가 최소 1만에서 최대 3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압도적인 곡물 생산량이었다.

물론 그만한 병사를 동원할 수가 없었다. 병사수가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부에게 칼을 쥐여주는 병신은 이곳에 없었다. 적어도 〈남부왕국〉이 멸망의 가로에 섰을 때나 징집될 것이다.

다른 지방에 대해서도 줄줄이 읊었다. 세세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총량만을 말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서쪽으로 향하는 보급대는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남부왕, 플래티넘 42세의 말에 중앙대신 중 다른 이가 일어나고 보급에 대해서 말한 대신은 자리에 앉았다.

“소소한 것뿐이었습니다.”

“말해보라.”

“예. 백성들의 불만이 있어서 병사에게 덤벼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일어났고, 슬럼가에서 빌어서 밥을 얻어먹는 것들은 병사 한 명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처우는 어떻게 했나.”

“슬럼가 전체를 소각시켰습니다. 감히 왕가에 충성하는 병사를 죽였습니다. 죽음으로 만인들이 다시는 그럴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앙대신의 말에 플래티넘 42세가 흘흘 웃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불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반역도들의 공개처형 아닌가.”

“비루하기 짝이 없는 잡것들입니다. 하찮은 벌레 따위를 보려고 옥체를 움직이시다니!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나오는 악취를 맡으실까 봐 겁이 납니다.”

플래티넘 42세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부를 참 좋아하는 왕이 그였다.

“이처럼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보급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때, 3왕자가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 제가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그 말에 길게이 플래티넘이 일어났다. 어차피 이번 전쟁에서 참가도 못하는 것이 그였다. 북부와의 대치에서 기사만 100명이 죽임을 당했다. 남부 왕국에게 있어서 큰 손실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불파겐의 명성만 높여준 꼴이었다.

뒈져버리고 살이 먼지가 되고 뼈가 가루가 되어서 죽은 명성만을 지닌 불파겐이 기사 100명을 죽이고 피가 돌고, 심장이 다시 뛰는 명성을 얻은 것이다.

단순 북부에서만 명성을 키운 드낙 불파겐의 이야기가 남부왕국 전체를 흔들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플래티넘 왕가 소속의 병사들이 그 광경을 모두 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현재 전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폭로를 하는 것이었다. 다른 놈들을 깎아내어 무슨 직함이든, 일이든 얻어내는 것이 길게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전쟁은 엎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큰 것을 물지는 못했다.

“중앙대신께 보고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발리안〉의 철광산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중앙대신이 웃어 보였다.

“문서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왕자전하께서 잘 아시고 계시는군요.”

“그저 관심을 좀 가져보았습니다. 보급이 제대로 안 되면 병사들은 굶어야 하지 않습니까? 칼조차 쥐지 못하는 병사가 전투에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흐아암.”

플래티넘 42세가 하품을 했다. 길게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잿밥을 뿌리는 일이었다.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이가 입에 침을 발랐다.

“또 산적들은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산마다 하나씩 있다고 할 정도로 득실득실 거립니다. 산적 두목은 자신을 산군이라 칭하며 영주 행세를 하며 통행세를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중앙대신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전쟁은 그들을 가장 배부르게 하는 행위였다. 밑에 놈들이 가진 것을 더 거두어들일 수 있는 합법적인 대축제나 다름없었다.

“그 폭동은 금방 진압되었습니다. 또 보급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급관료의 부패가 문제였습니다. 이미 그 하급관료는 목이 잘리고, 몸은 돼지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착복한 재산은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작은 반지부터 걸레까지 모조리 수거되어서 광산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삼왕자 전하께서 걱정하실 만큼은 아닙니다.”

“산적이 왕가의 깃발을 짓밟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길게이는 반박을 받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귀를 열어두고 눈으로 좇아도 얻은 것은 이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북부 대치 이후로 그를 도와주던 이들이 몸을 웅크리는데 바빴기 때문이다.

“잘 알아들었다. 보급에 더 만전을 기하라.”

“예! 폐하!”

플래티넘 42세는 상투적인 말로 넘어갔다. 산적? 백성들이나 힘들 뿐이었다. 또 산적들이 규모를 키운다면 그때 병사를 출병해야 했다. 병사를 일으키는 것도 돈이 크게 들기 때문이었다.

“군대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당초 예상한 3만 대군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대신들이 많습니다. 폐하.”

“자세히 이야기해보라.”

“3만을 동원한다는 것은 총력전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마신장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1만으로 줄이고, 대신 그 1만을 정예로 꾸리시옵소서. 그들이 토벌을 하는 사이에 병사들을 훈련시켜서 계속 보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아뢰옵니다.”

이에 플래티넘 42세가 입을 열었다.

“토벌 세금을 내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소년병들을 징집하지 않았나? 다시 돌려준다면 그 불만은 어찌하려고 하려는 건가.”

“백성들이 감히 불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자식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뭘 알겠습니까?”

중앙대신들은 위험을 즐기지 않았다. 대부분이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안전이 최고였다. 실패는 두려움보다는 공포로 여겨졌다.

반대로 1왕자와 2왕자는 총력전을 원했다. 정치적으로 큰 재능을 보이는 막내가 군사적으로 손해를 본 지금 이 순간을 잘 이용해야 했다.

“지금 남부왕국 이래 최대의 위협이 마신장 오우거입니다. 그 크기는 산만해서 그 어떤 오우거보다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만이라니,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가봤자 큰 피해도 못 줄 겁니다.”

1왕자가 물꼬를 틀자 2왕자도 냉큼 이어받았다.

“아예 그럼 서부를 포기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위협부터 처리를 해야 합니다! 특히, 동부의 그 저주받은 핏줄이 다시 살려고 버둥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양쪽에 적을 두고 어떻게 승리를 원합니까.”

중앙대신들 또한 한 마디씩 내뱉었다.

“서부를 포기하다니. 그저 시일을 보자는 것입니다. 또 토벌을 왜 진행 안 합니까. 왕자전하께서 너무 흥분하신 듯합니다. 과대해석을 하시다니, 제가 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도발을 하는 대신이 있는가 하면.

“1만으로 못할게 무엇 있습니까? 자랑스럽고 그 어떤 군대보다 강력한 것이 플래티넘 왕국의 병사들입니다! 그것을 적다고 하시다니! 병사들과 기사들이 들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병사와 기사들을 운운하는 대신도 있었다. 이게 가장 저질스러웠다.

“이미 보급도 다 해놓고, 아직도 군사적인 판단을 결정하지 못한 걸 보니, 그림이 그려집니다. 시간을 더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길게이는 틈틈이 잽을 날리듯이 툭툭 말을 내던졌다. 기간이 길어지다가 뭔 일이라도 생기길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웅성거림에도 플래티넘 42세는 상석에 앉아서 하는 짓거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것은 큰 여흥거리이기도 했다.

‘꿈틀 꿈틀 거리는 벌레 같다. 하하하.’

추해지면 추해질수록 보기 좋았다. 특히나 늙은 대신들은 말을 많이 하면 침이 주륵 수염으로 흘러내리기도 했는데 화들짝 놀라며 닦는 모습에 플래티넘 42세는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쾌감을 느꼈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쳤기 때문이다.

〈플래티넘 42세〉가 정리를 하고, 결론을 냈다.

“우리들의 적은 서부를 지금도 황폐화하고 있을 마신장 오우거다. 또한 동부에서 똬리를 틀며 병사 몇 좀 쥐어보겠다고 발악하고 있는 불파겐이다. 북으로는 세금도 제대로 안 내는 귀족 행세를 하는 놈들이 있다.”

그의 눈이 좁혀졌다.

“사방이 적인데, 공격하려는 것은 우습다. 마음 같아서는 때를 보고 지금 가진 내실을 다지고, 성벽을 더욱 높게 쌓고 겹겹이로 쌓아야 하지만.”

플래티넘 42세의 눈이 왕자들에게로 흘러갔다.

“지금과도 같은 때에 전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를 겁쟁이라고 여길 것이다. 안 그런가?”

중앙대신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히 누가 그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폐하!”

“그대들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지. 잔치가 벌어졌는데, 술도 못 마시고 있는 꼴이 아닌가.”

남부왕이 몸을 일으켰다.

“3만의 군대를 일으켜라! 마신장을 때려잡는다면, 입 놀리기 좋아하는 자들은 감히 불파겐을 칭송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 부질없는 명성과 명예는 오우거를 잡았기 때문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또한 왕자들은 전쟁에 나가서 무훈을 세워라. 언제까지 내가 후계자를 정하는데 고민을 해야 하나. 확실하게 두각을 드러내라!”

“예! 믿어만 주십시오! 폐하!”

왕자 3명이 대답했다. 이에 남부왕은 3왕자 길게이 플래티넘만 콕 집어서 말했다.

“길게이, 너는 근신이다. 굳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왕국 외곽지역을 돌며 치안을 돕고, 힘든 백성을 격려하도록 해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길게이는 단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원탁 밑에 있는 길게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쉬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흔들리는 모습은 얼굴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보름의 간격을 두고, 준비된 이들부터 수도를 빠져나갔다. 가장 먼저 수도를 벗어난 것은 3왕자 길게이였다. 그는 〈볼레티안 기사단〉 300명만 이끌고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전쟁에 직접 참가할 수는 없지만, 곳곳에 있는 자들과 연을 맺는다.’

그중에서도 길게이는 〈서발리안〉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광산이 많은 곳이었다.

뚝! 딱! 뚝! 딱!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수 마을〉의 북쪽에 신전의 부지가 마련된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공사 소리였다.

“오랜만입니다.”

〈성기사 케이슨〉이 드낙을 반갑게 맞이했다. 드낙이 진실로 막대한 땅을 문서로 하여 내어주었고, 그 어떤 세금도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시민을 위해서 활동하는 한 신전은 영원토록 세금에서 자유였다.

“근데, 신전은 아직 건설 시작도 안 하셨습니까?”

드낙이 부지를 둘러보며 케이슨과 함께 걸으며 물었다. 엄청난 수준의 복지를 공짜로 베풀어주는 것이 신성력을 지닌 사제들이었다. 그들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오두막이나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립신께서 신전이 크다고 더 관심 있어 하지는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전보다는 보호를 못 받는 아이들이나 불구가 된 이들이 지낼 집을 먼저 짓고 있습니다.”

“허. 그렇습니까.”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신앙심을 큰 신전으로 보이는 것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신앙을 믿는 자들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택하기 힘든 일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굳이 어디서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교회란 교회는 떡 벌어지게 짓는 것이 한국이었고, 엄청난 숫자의 교회가 있는 곳이 한국이었다. 우뚝 솟은 십자가에서는 온갖 네온사인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그런 곳에서 살아보았기에 〈성기사 케이슨〉의 말에 대단함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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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강철의 전사 연재를 하지 않겠습니다.

사유 : 큰그림노트의 수정, 보완,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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