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89화 (388/1,239)

0389 <-- 봄이 시작되고 -->

“너무 먼 곳입니다.”

게제라스는 조곤조곤 말했다. 드낙 또한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많은 준비를 했다. 〈검은 회의〉를 통해서 그리고 회의를 하면서 떠오른 현대의 지식들! 그 이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주민들에게 일을 시킬 겸 산에 통로를 뚫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하고, 언덕을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토지사업! 저소득층의 소득 대부분은 소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서 경제를 크게 활성화시키겠다는 드낙의 노림수는 시도는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은이 갑자기 풀리면 가치가 폭락할 것이고, 레이디 케이샤에게 고용된 제국 상인들이 모조리 은을 가져갈 것입니다. 또 킹슬레이 가문에게 크게 의지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드낙이 코웃음을 쳤다. 너무 비약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을 무시하는 짓이었다. 또한 게제라스가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은맥을 찾아오겠나, 싶었겠지.’

방심했기에 게제라스는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단단히 준비했고, 게제라스는 꿈에서 본 은맥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고로 은광 개발에 대한 논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벌써부터 은광이 활성화된 것처럼 말하는데, 아직은 아니지 않나. 동화도 많다. 또 식량으로 대체해서 급여를 줄 수도 있다. 물물교환은 일반적이기도 하지.”

게제라스가 이마를 긁었다. 자신이 말한 것은 나중에 겪을 문제였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그 문제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기적으로 봐도 은광 개발은 필요하지. 동부의 농지를 모두 개간하는데 걸리는 세월만 해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인데. 그 사이에 일을 하는데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하지 않겠나.”

선한 업을 쌓는데 눈이 벌겋게 되어버린 드낙의 발언이었다. 게제라스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부랑자, 구걸하는 자까지 모두 구휼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중에 슬럼가가 생긴다면 억지로라도 그들을 압송하여 농사일을 시키든, 광산에 밀어 넣든 할 것이네. 일하지도 않고 밀을 받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낙의 단호한 말에 게제라스가 일단은 수긍하는 척을 했다.

‘제발 저 말이 실현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드낙은 간단한 두 마디였지만, 저 말을 실현하기 위해서 갈려질 행정관들과 군사지휘관들은 스트레스에 위염이 걸릴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이었다. 삐끗하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폭압적인 행동인 것이다.

물론 저 의견은 당연히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해결 방법이었다. 실제로 400년 전 불파겐 영지는 거지와 방랑자들이 가면 안 되는 영지로 소문이 자자했다. 억지로 급여를 주면서 3년 동안 광산 혹은 농지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3년 동안 묶여지며 인간관계가 쌓아올려진 자들은 그곳에 정착했지만 방랑을 좋아하고, 손비벼서 양식을 얻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거지에게도 일자리를 주고, 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선한 업으로 여기고 있었다. 다분히 결과론적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드낙이 선한 업을 쌓는데 눈이 돌아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제가 다시 은광산 개발에 대해서 돌려졌다.

“자작님. 오고 가는 데만 보름이 넘습니다. 군대를 주둔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송에 있어서도 많은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은을 노리는 온갖 잡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단단히 준비할 것입니다.”

성 옆에 있어도 털리는 게 은광산이었다. 그만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곧 죽어도 은을 먹고 한탕 하겠다는 심리가 존재했다.

“늑대가 대산 너머를 주름잡고, 도노가 잡기 힘든 놈이 오면 내가 잡을 것이다. 그러니 강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둔 것이 있는데, 〈철조망 길〉이라고···”

게제라스가 눈을 깜빡였다.

“철조망 길··· 어떤 걸 생각하십니까?”

“늑대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위협이 되지 않은 동물들은 놔둬야겠지. 그래서 길 양옆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거지.”

“······? 저희 영지는 철이 안 납니다.”

드낙이 웃었다.

“철을 구입하면 되지 않겠나. 물론 구입하는 철 모두 철조망으로 만들지 말고, 적당히 축적하는 거지.”

“군사적 자원을 그렇게 쓴다면야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조심해야 나쁠 것 없었다. 불파겐이 철을 대량으로 매입한다면 자연히 경계심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철조망 길이 완료되면 오지로 가는 길도 쉬워질 테고. 안 그런가?”

“예. 그러기야 그렇습니다.”

투입된 자원을 생각한다면 안 하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게제라스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했다.

“자작님. 은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것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너무 많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농지 개간만 해도 쓰이는 돈이 무시무시합니다.”

불파겐 영지에 있는 노동자 중 절반이 개간에 힘을 쓰며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광산 개발까지 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빠져나갈지 몰랐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국가의 국력은 인구와 은과 같은 화폐를 많이 보유하는 것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이 은을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게제라스가 말하는 것은 중상주의였다. 금과 은을 기축 통화로 보는 경제체계였다. 인구가 많아야 하고, 군인을 고용할 수 있는 금과 은을 많이 보유하면 할수록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사치품까지 제한할 정도로 독한 경제체계였다.

수출을 많이 해서 은을 나라에 모으고, 수입을 줄여서 은의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 세계 또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드낙이 하는 행동은 미친놈과도 같았다. 인구를 늘리고, 유지해도 그들을 병사로 만들 돈이 없는 것이다. 고로 하나마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드낙은 그런 판단의 기준을 통해서 말하는 게제라스를 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화폐란 것은 굴리고 또 굴려야 했다. 은행에 굴리든 주식에 굴리든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쌓아두기만 하는 이 시대의 경제관념이 황당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은을 보관하는데 보관료를 받는 금고쟁이들 때 느꼈던 것이다.

‘돌고 돌아야 한다.’

“게제라스. 만약 우리가 은 10만 근을 1년이고 5년이고 계속 묵혀둔다고 생각해봐.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은 10만 근이겠지. 맞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10만 근으로 5년 동안 모조리 써서 영지를 부흥하게 했다면 들어오는 세금은 매년 늘어날 것이다. 맞지?”

“예. 하지만 10만 근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만 엄청난 돈을 쓸어 담는 것보다는 못했다.

“그러나 영지민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 다양한 자원이 그들의 삶에서 이용되겠지. 인구가 많으면 식량 생산량도 많아지고 더 많은 군량미를 축적할 수 있어. 그건 곧 많은 병사를 운용 가능하다는 것이고.”

게제라스는 드낙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대했다.

“그 병사를 고용할 은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에 드낙이 말했다.

“어음을 주면 되지.”

“어음··· 말씀이십니까?”

“뭐, 1년마다 일정 금액씩 주면서 10년 동안 준다거나 그런 계약서들을 주는 거지. 당장 은이 없어도 충당이 가능하겠지?”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이내 다시 앉았다. 엄청난 충격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건 빅뱅과도 같은 압도적인 깨달음이었다.

‘은이 없어도 계약서를 통해서 차순으로 지급한다면. 애초에 은은 필요가 없는 것이 된다.’

공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자가 인정하는 가치를 지닌 계약서가 있다면 애초에 은이 필요 없는 것이다. 금은 물론이고 백금도 마찬가지였다. 종이 쪼가리로 사람들은 거래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아!”

게제라스가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다.

“자작님의 말대로 정말 그렇습니다. 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광산 개발이 아니라 농지 개발부터 해야 할 일입니다. 자급자족을 먼저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너무 늦다. 농업도 중요하지만, 상업 또한 중요하다. 은광산을 개발해야지만 영지에 필요한 다양한 곳을 발전시킬 수 있다.”

드낙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게제라스가 항복을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드낙은 더 많은 말을 했다. 〈검은 회의〉에서 얻은 근거들이 주르륵 나왔다.

“사방이 적이다. 한쪽만 성장해서는 다른 쪽을 통해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귀족들은 언제고 경계심을 드러내고,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지금은 불파겐의 혈통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지만 언제 그것이 박살 날지 몰랐다.

“대산 너머로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면, 귀족들의 위기감을 줄일 수 있다. 가까이 있는 명문가들의 경계심을 낮출 수 있다면, 많은 은을 써도 상관없다. 불파겐이 대산 너머의 오지로 방향을 돌린다면 그들은 계속 우리의 우군이 될 수 있다.”

게제라스가 감탄했다.

“그렇게까지 멀리 내다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드낙이 원탁회의장의 상석에서 일어났다.

“농지를 개간하는 시민들 중에 지원자를 받도록.”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불파겐 영지는 은광산에 대한 개발을 위해서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곧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남부왕국 수도〉

〈남왕궁(South Palace)〉

〈황금대전(黃金大殿)〉

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전은 천 평이 넘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공간 속에서 수백의 근위병들이 할버드를 높이 세운 채, 장식처럼 서있었다.

중앙에서는 거대한 마법 장치가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흑색으로 이루어진 알 수 없는 광물로 만들어진 〈마력회로선〉이 지하를 통해서 이어져 있었다. 이 마력회로선은 전기선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더 위험했고, 크기가 더 컸다.

〈중앙대신〉 10명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들은 앉자마자 마신장 토벌에 대해서 말을 했다.

“이번 토벌은 성공하지 않겠소?”

“그럴 수밖에 없지요. 감히 야만적인 마신장이 버틸 힘이 아니오.”

“산 채로 놈을 잡아오면 좋을 텐데, 아쉽소. 드래곤 로드 전투 요새를 능멸하듯이 터를 잡은 오우거요. 곱게 죽이는 것조차 은혜롭지 않소.”

중앙대신들이 모두 수긍했다. 토착세력을 쥐어짜서 개발을 한 서부였지만 애착이 있기는 했다. 들어오는 세금이 확 줄었기 때문이었다.

“3왕자 길게이 플래티넘 왕자전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모두 일어나서 예를 표하십시오!”

문에 있던 근위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엄선된 병사였기에 깔끔한 발음과 높은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 대신들이 일어섰다.

길게이 플래티넘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북부 정벌〉에 있어서 이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은 크게 벌려놓고 얻은 것이 없으니 왕궁에서의 위치가 끝도 없이 하락해버렸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만, 그전까지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것이 〈실패〉가 주는 고통이었다.

“왕자전하를 뵙습니다.”

“앉아계셔도 되는데, 허리가 안 좋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도 몸은 살피십시오.”

“하하하.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길게이는 중앙대신들과 악수를 하며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후계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지금 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중앙대신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쇼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생쇼도 못하는 잡것들도 수두룩했기 때문에 점수를 딸 수밖에 없었다.

길게이가 앉아서 중앙 대신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이에 다른 왕자들도 들어왔다. 수많은 왕자들이 있었지만 〈황금대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이들은 오직 3명의 왕자들뿐이었다.

〈2왕자 폼포스 플래티넘(Foamforce Platinum)〉은 체격이 대단했다. 외척이 남부 귀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혈통을 보유했던 굴리데라스(Gullidearas)의 후손다운 육체였다.

“하하하! 자주 보던 사람들만 가득하니, 내 기분이 좋소!”

일어나있는 대신들을 보며 폼포스가 대차게 웃으면서 포옹했다. 거침없는 행보였다. 큰 덩치와는 다르게 사업이란 사업에는 항상 이름이 올려져 있을 정도로 재력이 대단했다.

길게이와 폰포스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1왕자 아라온 플래티넘(Araon Platinum)〉이 황금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외척을 통해서 혈통을 쌓은 폰포스와 길게이와는 다르게 순수 플래티넘 가문의 형질이 강한 것이 아라온이었다.

백설과도 같은 백금의 머리카락과 색조가 옅은 청색의 눈동자는 유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유약함에 속았던 자들이 수두룩했다. 누구보다 뱀과도 같은 것이 1왕자 아라온이었다.

〈남부왕 플래티넘 42세〉는 모두 도착하고 1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로 52살인 그는 왕으로서 최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법과 신성력으로 활력과 생명력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남부의 태양을 뵙습니다! 남부 왕국에 무한한 영광이 있으리!”

모두가 합창하듯이 외쳤다. 남부왕이 왕좌에 앉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하자 그제서야 모두 앉았다.

“시작하라.”

심드렁한 말에 대신들이 대답했다.

“예! 폐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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