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87화 (386/1,239)

0387 <-- 봄이 시작되고 -->

드낙은 새롭게 교체된 촌장과 술 한 잔을 했다. 봄이 왔지만, 꽃샘추위와도 같은 거센 저 칼바람이 줄어들어야 호수 마을에 갈 수 있었다. 오면서 신성력을 꾸준히 사용해야 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였다.

쪼르륵.

“받아.”

“예. 감사합니다.”

촌장이 굽실거렸다. 그의 옆에는 반질반질할 정도로 닳아있는 오래된 책이 놓여 있었다.

‘항상 들고 다니는가 보네.’

책은 시민들에게 있어서 권위나 다름없었다. 그 덕에 산지기 산골 마을에서 촌장의 위세가 더 강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드낙이 〈산지기 산골 마을〉에 하나의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게제라스의 의견을 받은 지 오래였다.

‘대산을 그냥 놀게 놔둘 수는 없지.’

대산 너머에 있는 은광산까지 개발해야 하는데 대산을 그냥 놔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늑대들로 산을 점령하고, 인간들로 개발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봄이 오긴 왔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번 년도에는 겨울이 오랫동안 저희와 함께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소리가 작게 흘러갔다. 농담이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억지로라도 잇몸을 드러내야 했다. 분위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산은 요즘 어떤가?”

“날씨가 오늘처럼 추워지기 전에는 곧잘 다녔습니다. 자작님의 늑대 덕분에 위협이란 것도 없었고,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삐었을 때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주었을 정도였습니다.”

“도노가 똑똑하긴 하지.”

드낙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도노를 칭찬해주니 당연했다. 촌장이 그것을 보고는 이러쿵저러쿵 도노에 대해서 떠들어대었다. 드낙은 딱 2절까지만 듣고 주제를 돌렸다.

“내가 요즘 생각해둔 것이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자작님.”

“그, 대산의 곳곳에 버섯이나 약초가 자라지 않나?”

“예. 그렇습니다.”

촌장은 드낙이 한 마디 할 때마다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그만큼 드낙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약초와 버섯 같은 것들을 대산에서 키워보는 것이 어떤가?”

“음··· 해, 해보겠습니다.”

촌장이 고민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서 냉큼 대답했다. 즉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썩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하하하. 어렵겠나?”

“그것이··· 할 수 있으면 하겠습니다만,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

“대충 농사짓듯이 잡초 따위만 뽑고, 낙엽이나 분(糞)을 섞어 뿌리면 되지 않나.”

“농사와 같겠습니까? 버섯은 나무에서 자라는 것이라.”

드낙은 손사래를 쳤다. 거기에 대해서는 까막눈이기 때문이었다.

“산에서 살았으니 여러 가지 알 것 아니냐. 여럿이서 하다 보면 방도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지. 또 그렇게 규모를 키우면 큰 사업이 될 것이고. 마을도 크게 발전할 수 있겠지.”

“해보겠습니다.”

촌장이 즉답했다. 하지만 드낙이 속을 리가 없었다. 딱 봐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당근 하나 없이 할 수 없었다.

‘쩝. 게제라스의 말이 맞네.’

일을 벌이기 싫어하는 것을 확인한 드낙은 아쉬워했다. 산지기 산골 마을의 사람들은 야망이라는 것이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큰 원동력이었다.

술잔이 한 잔 돌고, 게제라스의 구휼에 대해서 가볍게 대화했다.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소금을 적게 바르고 바람에 말리는 고기는 역해서 영지의 구휼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곡물가루를 넣어서 끓이면 밀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고, 거기에 각종 산에서 나는 야채를 넣어서 고기를 넣으면 비린내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좋은 일이야. 영지민이 겨울에서 굶어 죽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예. 예···”

“그런데 사실 그런 구휼도 마을마다 베풀어주면 엄청난 돈이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예. 엄청난 일입니다. 저 같은 촌부는 감히 하지도 못할 대단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드낙이 촌장의 말에 짧게 웃었다.

“너무 그렇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결코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래. 그래. 그 마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라도 세금의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안 그런가?”

“예? 세, 세금 말씀입니까.”

드낙이 고개를 두어번 적당히 끄덕이며 술을 마셨다. 촌장은 드낙의 대답을 기다렸다.

“베풀어주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금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지. 그렇다고 구휼을 줄이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 죽어야만 하고. 그건 이치에도 맞지 않지. 적당히 잘 사는 사람들이 조금 힘들어도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 아니겠나.”

“예···”

“대산을 한 번 개발해보게.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니 산을 민둥숭이로 만들지 말고. 인간들을 위한 것들로 가득 채우란 소리네.”

촌장이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예. 해보겠습니다.”

“잘 되면 굳이 세금을 늘릴 필요가 없지. 양이 많으니 오히려 세금이 내려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촌장이 의심하여 드낙의 확답을 얻기 위해서 되물었다. 드낙이 입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당연하지! 원래 산골 마을에서 걷어지는 세금이 100이라면 대산을 개발한다고 쳐봐. 500이든 800이든 걷어지는데 굳이 왜 세금을 올리겠나? 오히려 낮추겠지.”

세금을 낮춰준다는 말에 촌장이 눈을 빛냈다. 드낙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산지기 산 골 마을의 작은 호족 세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곳에도 적당히 방계를 둬야 했다. 물론 게제라스 밑에 있는 세금 관리원을 1명 배치해서 세금을 빼돌리지 않도록 감시를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문인의 후예라지? 성씨는 기억이 나나?”

“그때는 잊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책이란 책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구두로 이어져오다 조상의 급사로 끊어졌습니다.”

드낙이 정말로 안타까운지 한숨을 내쉬며 아쉬워했다.

“그런가. 일이 잘 풀린다면 이곳 마을을 관리하며, 다른 이들에게 꿇리지 않을 가문이 하나 나와야 하지 않겠나. 문인이라고 해도 마을을 관리하는 것은 무인보다 잘 할 수 있는 법 아닌가.”

촌장이 깜짝 놀라다가 냉큼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말했다.

“예? 예! 맞습니다. 산지기 산골 마을에서 저희 가계도는 오랫동안 대산과 이 마을을 관리해왔습니다.”

드낙은 일어서서 촌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산지기 산골 마을의 관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나. 난 굳이 토착 세력을 밀어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드낙은 그것으로 촌장과의 만남을 끝냈다.

칼날바람이 사라질 동안 도렌과 대련을 하며 수련을 도와주기도 했다. 아직 기사라도 부르기에도 부끄러웠고, 자유기사라고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급에 약간 턱걸이하고 있는 것이 도렌이었다.

“헉! 허억! 헉!”

“호흡을 그렇게 대놓고 보여주면, 어떻게 된다고?”

“날숨에 적이 견제를 심하게 하고, 무호흡을 계속 강요하게 한다고···헉헉.”

“호흡이 무너지면 50합도 못 넘긴다.”

“예. 헉헉.”

도렌이 벌러덩 뒤집어졌다. 죽을 것 같았다.

“자작님. 그렇게 미친 듯이 방향 전환을 하면 무릎이 안 아프십니까?”

“타고난 강골이라서.”

“흐흐.”

도렌이 웃었다. 좌로 움직여놓고는 무릎에 큰 무리가 갈 정도로 체중을 무릎에 실어서 비틀어버리며 순식간에 우로 움직이는 드낙의 정신 나간 전투 스타일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축구 선수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기술과 같았다. 무릎에 체중이 실어지며 가속된 힘까지 비틀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혈통 하나 못 이기네.’

그런 것에 엉망진창 당한 도렌은 불합리함을 느꼈다. 그냥 강골이면 된다니! 스리슬쩍 일어나서 한 번 해본 도렌은 무릎에 느껴지는 체중 때문에 시도도 못하고 포기해버릴 정도였다.

〈크니에 뷜데스 포이어(무릎의 사나운 불꽃, Knie Wildes Feuer)〉

‘단기간에 적을 죽이기에는 좋네.’

드낙은 오늘 사용한 자신의 전투 스타일을 복기했다.

장점은 적의 코앞에서도 돌진력을 만들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파괴력이 올라가고, 좌우로 순식간에 움직이기에 회피에도 쓸 수 있었고, 교란도 쉬웠다.

단점은 단순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트롤의 재생력을 좀먹는다는 것도 아쉬웠다.

‘세파리아스였다면?’

세파리아스가 봤다면 무릎에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움직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트롤의 재생력을 백분 활용해서 고통을 느끼더라도 확실하게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미친놈 같은 생각을 했겠지.’

드낙이 할 짓은 아니었다. 아픈 건 싫었다. 다쳐도 회복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이를 악물고 할 수 있었지만, 설계를 해서 고통 당하는 짓은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잦아들고, 다시 봄 날씨가 찾아왔다. 진짜로 겨울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호수 마을〉에 늑대들이 이끄는 수레가 우루루 안으로 들어섰다. 구경 나온 사람도 많았다. 고르곤의 가죽은 접혀져 있었음에도 두툼하게 불룩 수레에서 튀어나와있어서 가죽을 펼치면 얼마나 클지 예상이 될 정도였다.

“저게 뭐지?”

“고르곤 같은데.”

“저 울퉁불퉁하고 사각형 피부를 봐봐.”

“소머리에 수염이 긴 건 고르곤뿐이지.”

웅성거림은 곧 환호성으로 퍼져나갔다. 게제라스가 드낙을 마중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서로 가볍게 끌어안았다. 물론 드낙이 무식하게 들이댄 것이기도 했다.

“고르곤까지 토벌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대산 쪽은 안전할 것 같습니다.”

“들어가지. 할 이야기가 많다.”

드낙이 앞장을 서자 게제라스가 뒤따르며 도렌과 나란히 섰다.

“은맥은 못 찾은 것 맞습니까?”

게제라스가 도렌에게 물었다. 도렌이 웃음을 참았다. 게제라스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바쁜데 은맥까지 관리하기에는 머리통이 빠개질 지경이었다. 요즘 새치도 몇 개 생겨서 우울했기 때문에 도렌에게 바로 물어본 것이다.

“들어가면 다 아시게 될 겁니다.”

세 사람이 들어가고, 게제라스의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 정식 문인으로 드낙에게 인정은 받지 못한 견습 문인 2명이 고르곤의 부산물을 정확하게 양피지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병사들이 무게를 측정할 큰 저울을 가져왔다.

반대쪽에 놓일 것은 밀 한 포대였다. 훔치기 좋은 고르곤의 고기부터 올려졌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남부왕국 남부〉

“여기 장사 안 하시오!”

일단의 용병 무리가 길에 세워진 여관의 문을 두드렸다. 점심때임에도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몇 명이시오?”

안에서 여관 주인이 말했다. 산적처럼 생긴 얼굴에 비대한 몸 그리고 적당한 근육까지 절로 〈이쪽〉 업계에서 종사한 사람처럼 보였다.

“다섯이오.”

“음. 들어오시오.”

문을 열자 용병 7명이 우르르 들어갔다.

“이런 씨. 다섯 명이 아니잖아.”

“하하하. 좀 봐주시오. 배가 고파서 뒈져버릴 것 같소.”

용병단장은 선불을 하려는 듯이 가죽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여관 주인이 무게를 가늠했다. 부족하지는 않았다.

“휑하네. 바닥에서 먹어야 하네.”

“젠장할. 가는 여관마다 이 꼴이네.”

용병들이 투덜거렸다. 여관 주인이 아내를 불러 내려오게 하며 음식 준비를 하며 용병들에게 술을 5병이나 내어주었다.

“어이구야!! 이렇게 내어줘도 됩니까?”

“여관업보다는 술 만드는 게 본업이라. 더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갈 때도 더 가져가고. 어차피 버리는 것이라.”

“장사를 접으면 상인에게 다 팔지. 술을 버린다고?”

옆에서 듣던 용병이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급해서 그렇소. 누구는 생돈 날리고 싶나?”

용병대장이 순식간에 동화 다섯 닢을 여관주인에게 쥐여주었다.

“대체 무슨 사단인지, 말 좀 들을 수 있겠소? 오면서 여관 세 곳이 텅텅 비어있었소.”

“작은 마을도 하나 있었는데, 폐허가 되었고.”

“어려울 것도 없지.”

여관주인이 돈을 챙기며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입에 침을 발랐다. 용병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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