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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86화 (385/1,239)

0386 <-- 봄이 시작되고 -->

드낙은 일어나자마자 도렌을 치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심각했었나?”

“서둘러 신전으로 가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뚜둑하고 소리가 납니다.”

도렌의 왼팔은 말 그대로 노쇠화가 진행되어있었다. 피부는 쭈글쭈글했으며, 피부에 생기가 없이 바짝 말라있었다. 근육은 그대로였지만 곳곳에 검버섯이 피워져 있고, 손목은 돌릴 때마다 비명을 질러대듯이 소리를 냈다.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죽음의 숨결〉을 정통으로 맞지 않고, 흩어진 것에 노출되었음에도 이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것조차도 전신갑주의 마력과 부딪쳤기 때문에 약화된 것이다.

‘고르곤의 죽음의 숨결··· 엄청 강력한 것은 분명하군.’

하지만 대놓고 쓴다면 드낙은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고르곤의 심장과는 다르게 〈죽음의 숨결〉은 누가 보더라도 고르곤 중에서도 강력한 〈죽음의 고르곤〉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평범한 고르곤의 힘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선의 업을 쌓기도 전에 불파겐이 세력을 얻게 못하게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

드낙이 고르곤의 숨결을 고르는 것은 위험부담이 남들보다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고르곤과의 싸움 이후에 나는 신성력을 얻게 되었다. 남들에게는 함구하도록 해라.”

“예? 예!”

도렌이 반문했다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은 단숨에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법의 형태가 없이 튀어나오는 신성력은 다루는 것이 어려웠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기는 움직였지만 디테일한 컨트롤에는 상당한 집중이 필요했고, 수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웃.’

드낙은 도렌의 왼팔에 신성력이 집중되기는커녕 흘러서 도렌의 전신으로 타고 흐르자 결국 신성력의 출력량을 줄였다.

황금빛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금빛 가루가 주변으로 흩날렸다. 드낙의 제어가 그만큼 허술하다는 뜻이었다.

‘마력과는 크게 다르다.’

드낙은 갈피를 못 잡았다. 처음 하는 일이었기에 가슴이 뛰면서 당황하기도 했다. 출력을 줄여서 겨우 난잡하게 흩어져서 도렌에게 갔다가 어물쩍 땅에 떨어지는 금빛가루도 줄어들었다.

“하아아···”

도렌이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운 것처럼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전신에 활력이 차올랐다. 몇몇 타박상도 순식간에 나았다.

치료는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드낙이 초보 사제였기 때문이다. 출력량을 줄여야지만 신성력의 집중을 할 수 있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수련이 더 필요하겠는데.’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마력은 마법이 단단히 묶어줘서 다루기 쉽게 느껴졌는데, 신성력은 아니었다. 드낙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는 한다. 하지만 세세한 컨트롤에는 드낙의 노력이 필요했다. 결코 단순한 힘이 아닌 것이다.

도렌은 신성력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어차피 함구해야 할 일이라면 아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을 죽일 줄 아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의 용감한 행동이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또 상황마다 그것이 다르기 때문에 지식의 알고 모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큰 재산이었다.

〈일반 사제〉의 신성력은 중상자 5명을 치료할 수 있는 힘! 도렌의 노쇠화는 금방 나았다. 드낙의 신성력은 알게 모르게 도렌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기에 몸 또한 날아갈 것 같았다.

“몸이 펄펄 날아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컨디션이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

드낙은 호기심에 자신에게도 신성력을 둘렀다. 활력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지만 도렌처럼 상쾌함을 주지는 못했다. 신체역량과 그릇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며 피와 관련된 검은 문의 능력을 다수 보유한 드낙의 컨디션은 정신이 무너졌을 때 빼고는 안 좋을 때가 별로 없었다.

남은 신성력은 도노와 카이야 그리고 늑대들에게 사용했다. 봄이 왔음에도 그냥 한 겨울처럼 느껴졌다. 겨울의 마지막 발악은 무시무시했다.

다시 활동성이 좋아진 늑대들을 보며 드낙이 미소 지으며 그들의 털을 거칠게 손으로 훑었다.

몇몇은 장난치는 줄 알고 체중을 실었다. 드낙 또한 어울려주었다.

“이제 일을 시작해볼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는 〈고르곤의 해체〉였다. 코뿔소만 한 놈이다. 해체해서 들고 갈 생각에 막막함이 찾아왔다.

“전부 들고 가실 겁니까?”

“전부 들고 가야지.”

드낙은 당연히 탐욕을 부렸다. 고르곤의 부산물이었다. 고기부터 뼈까지 모조리 가져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그럼 피를 씻어내야 합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또한 토막을 내어서 수십 개로 나누어야 했다.

“내가 해체를 할게. 도렌, 너는 늑대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체한 것의 피를 씻어라.”

“예!”

“컹!”

해체와 피씻기. 이것만 해도 2일이 걸렸다. 또한 그다음에는 수레를 만들어야 했다.

“산을 여러 번 내려가도 괜찮다. 너무 욕심을 안 부려야겠다.”

고원은 중턱에 있었기에 오고 가는 선택을 하기 좋았다. 적당한 수준의 수레가 만들어졌는데, 당연히 공을 들인 곳도 있었다.

“바퀴가 너무 큰 것 아닙니까?”

“험지를 탈 텐데 바퀴가 작으면 안 돼. 수레의 바닥 높이도 높아야 하고.”

산을 차 타고 오르는 다큐멘터리를 교육방송에서 짧게 본 기억이 있었다. 차량의 가격 때문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머리에 각인이 되어있었다. 그 덕에 드낙은 수레의 바퀴를 크게 하는데 공을 들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도렌은 넓은 나뭇잎과 넝쿨을 채취했다. 대량이 필요했다. 나무 밑동에 마련한 굴 속에 들어가서 손을 바짝 마르게 하고, 잡초 따위를 말린 것을 손으로 쥐고 넝쿨을 두세 번 쓸어서 자잘한 것들을 쳐냈다.

그다음에는 맨발과 맨손을 사용해서 넝쿨을 서로 비벼서 엮고, 꼬고를 반복하여 질긴 밧줄을 만들어냈다.

나뭇잎으로 부산물을 싸매고, 밧줄로 단단히 묵었다. 뼈는 수레에 마지막에 싣기로 했다. 수레는 몇 개나 준비됐다. 늑대를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준비가 모두 완료되고 천천히 산을 오르고 내려갔다.

내려갈 때가 가장 위험천만하고,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덜컹!

“조심!”

수레가 덜컹거리며 오른쪽이 크게 튀어오르자 체중을 실어서 몸으로 짓눌렀다. 도렌 또한 수레의 뒤에서 그냥 상체를 냅다 올렸다.

“우웃!”

주르르륵!

체중이 하도 높아서 내려갈 때마다 흙이 주르륵,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때는 드낙이 나무를 만날 때마다 발로 나무를 밟아서 멈추고, 다시 가고를 반복했다. 무릎 관절이 박살 나고 싶은 미친놈의 행동이었지만 드낙에게는 트롤의 재생력이 있었다.

당연히 도렌은 드낙의 미친 짓거리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크게 집중하게 되었다.

“헉헉!”

진땀이 주륵 내리는 도렌이 눈을 크게 깜빡였다. 그리고 허리를 뒤로하며 스트레칭을 했다. 뻐근함에도 드낙의 신성력 한 방이면 끝났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해서 반나절에 수레를 하나밖에 내리지 못했다.

드낙 또한 혼자서는 수레를 내려보내지 못했다. 속력이 계속 붙을 수밖에 없었고, 바퀴가 덜컹거리면 앞사람보다는 뒷사람이 몸으로 수레를 짓눌러줘야 했기 때문이다.

‘지독하다. 지독해.’

도렌이 속으로 진절머리를 쳤다. 살아가면서 〈야망〉이라는 것에 큰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에 드낙의 탐욕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도렌이 드낙의 방계로서 살아가며 대산의 너머에 장원을 가지는 것은 그저 책임감으로 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을 믿어준 드낙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드낙이 버리라고 하면 당장 버릴 자신이 있었다.

드낙이 연봉 1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도렌은 연봉 3천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서, 보답을 하고 싶어서 드낙과 함께 있을 뿐이었다.

“이걸로 끝입니다.”

“큰 산 하나 넘었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도렌과 사고 하나 없어서 안도한 드낙이 서로 보며 한 마디씩 했다. 드낙은 이 틈에 돌멩이 하나를 도렌에게 던져주었다.

“엇.”

도렌이 그것을 받았다. 〈은광석〉이었다. 주먹 만했고, 반절이 은으로 뒤덮여있었다.

“은, 여기가 꿈의 장소였습니까?”

“벌목하다가 꿈의 장소가 있더라. 고르곤에 대한 것은 꿈에 나오지 않았지만.”

“너무 멀지 않습니까?”

“그래도 은광산이 돌아가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영지를 만들 수 있다.”

드낙의 말에 도렌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드낙은 도렌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도렌은 은광석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광산을 제가 소유하는 건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게제라스 총관도 우려를 하더라. 관리만 하게 하라고 했지만, 난 너에게 줄 생각이다. 하지만 나 또한 걱정이 있다.”

“무엇입니까?”

“이실레아 경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크게 주지는 마라.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나의 영지에 많은 세력이 들어와있기 때문이다. 너는 오직 영지민을 위해서 은광산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은광산의 재력을 쓸 때에는 항상 게제라스 총관님의 조언을 듣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해주면 더 좋고.”

드낙이 웃음을 크게 냈다. 무력이 없는 게제라스에 기댄다는 도렌의 말이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도렌은 은광석을 다시 드낙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컸다.

그것을 받아들인 드낙은 은광석을 손에서 굴리다가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은광산 개발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증거였다.

고르곤의 부산물을 들고 돌아가는 길은 평소의 2배나 걸렸다. 근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산지기 산골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휘오오오오!!!!

칼날과도 같고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시야는 탁 트여있었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가까이서 외치지 않고서는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건 알았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미친.’

목책 위에서 마을 사람이 종을 미친 듯이 흔들려도 바람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걸 보고 드낙이 욕을 했다. 남부 겨울의 겨울은 진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봄이 찾아왔음에도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것처럼 버둥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름의 밤에도 서늘할 정도로 기후가 시원시원한 것이 남부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바람이 잘 부니, 겨울에는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목책 위에 지어진 가죽 더미에서 튀어나온 마을 사람은 미라처럼 누더기로 얼굴을 둘둘 말고, 양손도 권투선수처럼 둘둘 말고 있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서 제법 큰 규모의 창고로 들어설 수 있었다.

끼이이익! 텅!

“휴우!”

문을 닫고 나서야 겨우 한숨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도렌은 능숙하게 횃불 하나를 들어서 빈 창고 곳곳에 불을 지폈다.

“여기는 왜 비어있는가?”

드낙의 말에 안내를 맡은 마을 사람이 냉큼 대답했다.

“게제라스 총관께서 얻은 식량을 미리 똑같이 분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울도 끝물이라 만약을 위해 남아있던 것도 힘든 사람들에게 다 줘버렸습니다. 한곳에 사람이 모일 곳이 없고, 그럴 때마다 장작을 크게 써야 해서 미리 배분했습니다.”

“흠. 그래?”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제라스 총관은 이런 구휼을 통해서 주변 마을에 대한 충성심을 얻어내는데 노력했기 때문이다. 채찍과 당근 중에서 당근인 셈이었다. 지방 마을에 대한 행정력의 안정적인 유지는 게제라스가 매우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잘 하는 짓이겠지. 일단은 믿어주자.’

드낙은 그런 공짜 구휼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게제라스는 최소한으로 했다고 했지만 그것도 모아보면 큰돈이었다. 내년에는 따로 관리를 두어서 필요한 사람에게만 준다고 하지만 그게 잘 될지는 의문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마을 회관 같은 곳을 짓지 않으면 사람들이 겨울에 한곳에 모이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흐어어엉!!”

괴성을 지르며 칼바람 속에서 빠져나온 마을 청년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장작과 부싯돌, 마른 풀이 든 가죽 주머니와 식수, 식량 등을 가져왔다. 질 좋은 털가죽을 바닥에 깔기도 했고, 드낙을 위해서 침대까지 들고 오기도 했다.

대우가 극진했다. 산에 있는 마을에서 이 정도는 왕대접이었다.

“불파겐 자작님을 뵙습니다!”

40대 후반의 촌장치고는 젊은 산지기 산골 마을의 촌장이 허리까지 고개를 숙였다.

“일어나라. 겨울인데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드낙이 어깨를 토닥이며 일으켜주었다. 촌장의 눈이 수레에 떡하니 있는 고르곤의 대가리로 향했다.

‘기사 단 두 명이서 수염이 있는 늙은 고르곤을 토벌해서 오다니···’

수염이 있다는 것은 곧 늙었다는 것이고, 노련한 몬스터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죽음의 고르곤〉이 떠올랐다.

덜덜덜.

다리가 그냥 덜덜 떨렸다. 드낙이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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