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84화 (383/1,239)

0384 <-- 대산 너머 -->

고르곤은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순식간에 뒤로 빠졌다. 압도적인 체중, 뒷발로 거침없이 땅을 짓밟으며 소리를 크게 낸 것과는 다르게 여력이 있었던 것이다. 뒷걸음질에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아뿔싸!’

드낙이 경악했다. 인간이 보기에는 고르곤이 전력으로 돌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뒷걸음질 치며 간격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낸 고르곤이 입을 쩍 벌렸다. 〈죽음의 숨결〉이 용솟음치듯이 쏟아져 나왔다.

“꾸어어어어어어!!!!!!”

귀를 찢는 것 같은 괴성과 함께 튀어나온 검은 연기를 드낙은 무리를 해서라도 옆으로 몸을 내던지며 피했다. 엉망진창으로 구르는 드낙을 향해 고르곤이 앞발을 내리며 그대로 돌진했다.

“크윽!”

드낙은 왼손의 통증을 느꼈음에도 힘을 줘서 낮게 튀어 올라 굴렀다. 발목이 나무 등치에 부딪치며 다니 넘어졌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흙은 물렁해서 드낙의 힘을 준 움직임에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고르곤은 무너진 드낙을 무려 세 번이나 공격했다.

쾅! 퍽!

바닥이 푹 패이고, 나무가 통째로 박살이 났다. 그 모든 공격을 피해낸 드낙이 다시 검을 고쳐잡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옆으로 어깨를 틀었다. 둥실 떠내려가는 구름처럼 느릿하게 내려앉아지는 〈죽음의 숨결〉 덩어리가 눈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다.

‘으···’

드낙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입을 동그랗게 만 고르곤이 흩어지는 게 느리고, 아래로 가라앉는 특성을 지닌 죽음의 숨결을 볼을 부풀리며 가득 입안에 모았다가 입을 쩍 벌리며 살짝 후 불어서 곳곳에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숨결 운용이 대단하다.’

일차원적인 능력이 분명했다. 조금 무겁고, 잘 흩어지지는 않지만 공기의 특성을 지니고 입김이나 콧김으로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쏘아보내거나 가죽 주머니나 다른 곳에 담아서 쓴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저렇게 입을 오물거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보면 볼수록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고르곤의 턱밑에 자라난 생기가 없으며 탈색을 하고 난 뒤의 머리카락처럼 바짝 말라있는 검은 회색빛의 수염이 드낙의 눈에 다시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다.

‘늙은 고르곤.’

늙는다는 표현은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수염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생기와 힘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에게 웃으면서 도발과 함께 여유로움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이미 몬스터라고 볼 수 없었다.

“말을 할 줄 아나?”

드낙이 혹시나 싶어서 입을 나불거렸다. 고르곤이 앞발로 흙덩어리를 물장난 치듯이 던졌다. 가볍게 그것을 피한 드낙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고르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양식장을 쳐부순 개망나니 새끼가 바로 드낙이었기 때문이다. 늙으면서 그냥 느긋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고르곤이었다. 사계절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깊은 못에서 하마처럼 태평하게 지내는 것이 고르곤이 원하는 안빈낙도의 삶이었다.

〈거대 개구리〉를 일각수로 만들고, 지켜주며 그들의 알을 냠냠하면서 지내던 것이 고르곤이었다. 드낙과 도렌은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으며, 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을 생각해서 순식간에 내부로 들어가서 일망타진을 했기에 고르곤이 손쓸 도리도 없이 끝났다.

드낙의 사냥 계획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늑대 무리를 이끌기에 사전에 간파될 수가 없었고, 까마귀 또한 있었다.

“뻐금! 뻐끔!”

고르곤은 〈죽음의 숨결〉 덩어리를 곳곳으로 날려버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먼저 달려든 것은 드낙이었다.

“자작님! 제가 돕겠습니다!”

돌격의 순간에 도렌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르곤이 매우 노련한 몬스터임을 모르는 눈치였다. 고르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빌어먹을!’

드낙이 단번에 소리쳤다. 강자와의 싸움에 약자가 끼어든다면 약자부터 죽이는 것이 강자의 가장 보편된 생각이었다. 귀찮은 파리 새끼 하나 때문에 전투의 호흡이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작은 도움으로도 종이 한 장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현실의 싸움은 얼마든지 작은 힘으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르곤이 팔 세 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헉!”

도렌이 근접하다가 갑자기 전신갑주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자 기겁했다.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기에 가라앉아있는 〈죽음의 숨결〉은 마력과 부딪치면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다행스럽게도 희석된 것이기에 상쇄가 일어날 수 있었다. 드낙의 경우에는 마신장의 붉은 머리카락이 있었기에 전신갑주 또한 기능장해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빠져! 여기서 죽으면 용서치 않겠다!”

드낙이 고함을 질렀다. 도렌이 끼어들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르곤은 그대로 도렌을 향해 돌진했다. 드낙이 이를 악물고 도렌을 지키기 위해 내달렸다.

드낙의 휘하에 들어가 있으며 제법 기간을 두고 관계를 증진시킨 가신은 매우 적은 숫자였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이 아니라 성과 적당한 숫자의 마을을 관리하는 것조차도 사람이 많이 필요했기에 도렌은 꼭 지켜야 하는 존재였다.

홱!

다시 고르곤이 몸을 홱 돌아서 내달리는 드낙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보았다. 입을 쩍 벌렸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넓적한 혀의 양쪽이 들어올려져서 o자형이 되었다.

‘큭! 저새끼가!’

영악한 것이 실로 대단했다. 어그로가 미친 듯이 뛰는 보스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드낙이 서둘러 멈추려고 했지만 그전에 고르곤이 그대로 브레스처럼 〈죽음의 숨결〉을 대량으로 쏘아보냈다.

부채꼴로 10m 이상을 쏘아지는 죽음의 브레스는 드낙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아아악!

그대로 드낙이 검은 숨결에 1초 정도 노출되고 옆으로 튀어나왔다.

“끄허억!”

〈죽음의 숨결〉이라는 특이한 초월의 힘에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드낙이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숨을 거세게 토했다. 몸은 괜찮았지만 〈죽음〉이라는 감각을 짧게 느낀 드낙의 정신은 칼에 쑤셔 박힌 자처럼 패닉에 빠졌다.

담력이 아무리 큰 자도 오줌을 지릴 정도의 끝없고, 바스러지는 감각 때문에 드낙이 그간 쌓아올려온 정신력이 휘청거렸다.

‘······’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뇌가 그냥 죽은 것처럼 멍했다.

정신이 무너졌으니, 육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컨디션이 크게 나빠진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오고, 한쪽 무릎이 그대로 꿇려졌다.

“꾸어어어어엉!!!!”

고르곤이 크게 포효했다. 자신의 힘에 굴복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만하지 않고 그대로 벌떡 서서 드낙을 향해 땅을 두두두 치면서 달려갔다.

“모래폭풍(Sand storm), 환상급습(Illusion Raid), 사막 빗물(Desert rain)!”

도렌이 그대로 남은 3번의 마법을 사용했다.

“크흐으으으응!!!”

고르곤은 모래 폭풍이 갑자기 생기자 그대로 콧김을 킁하고 장시간 뿜어냈다. 고르곤의 몸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숨결이 공기의 흐름을 따라 모래 폭풍과 뒤섞이자마자 그대로 모래 폭풍이 스파크를 튀기며 사라져버렸다.

환상급습은 고르곤에게 환상도 주지 못했다. 고르곤의 몸에 들러붙기도 전에 몸을 타고 아래로 흐르는 죽음의 숨결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마법을 죽이는 힘! 그것은 죽음의 숨결이 초월의 힘이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다만, 드낙을 위해서 치료의 마법은 효과가 조금 낮아졌지만 확실하게 드낙에게 닿았다.

사아아아···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드낙의 전신에 빗물이 어린아이가 노크를 하는 것처럼 똑똑똑 두드렸다. 인간의 체온보다 시원한 빗물이 드낙의 턱 밑에 고이고, 떨어져 가슴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크으으···”

드낙이 고갯짓을 하면서 앞으로 엎어졌다. 주먹을 쥐고 서둘러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고르곤은 근접했다. 흉악한 앞발이 훅처럼 들어왔다. 드낙은 그대로 슬라이딩을 했다. 진창과도 다름없는 땅 때문에 주륵 미끄러졌다.

고르곤의 발목을 왼쪽 팔뚝으로 걸어서 빙글 돌아서 들어온 방향을 꺾어 고르곤의 후방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향하듯이 이어져서 일어났다.

“놈!”

고르곤이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였다. 동시에 고르곤의 긴 소의 혓바닥이 왼쪽 콧구멍을 막았다. 왼쪽의 다리를 걸면서 지나갔기에 오른쪽으로 갔다고 판단했다. 시야의 사각이었기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하게 맞췄다.

노련함이 있었다.

“크응!”

한쪽 콧구멍을 막은 고르곤의 콧김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단번에 바닥까지 죽음의 숨결을 뱉어냈다.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드낙이 끝도 없이 사용하는 죽음의 숨결에 짜증을 팍 냈다. 마력으로 치면 이미 마법사 열명의 양을 쓴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체에 단번에 도달한 죽음의 숨결 때문에 드낙이 뒤로 빠졌다.

뒤로 물러나면서 붉은 머리카락이 드낙의 눈에 보였는데, 드낙의 눈이 커졌다.

장발이었던 붉은 머리카락의 절반이 허옇게 변하면서 뚝뚝 부러져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머리카락을 더듬었다. 어깨까지 그대로 절단이 된 것처럼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아, 안 돼!’

대머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드낙이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처럼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결코 대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단단하게 마음속에 들어찼다.

‘휘둘리는 것도 여기까지다.’

대머리는 곧 인생의 패배. 드낙이 정신을 곧추세웠다. 고르곤의 노련함에 전투의 첫 단추부터 잘못된 것이 순식간에 바로잡아졌다.

전투의 흐름이 변화는 것은 드물었지만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고르곤은 상대가 지금까지의 전투 과정을 싹 무시하고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은 고르곤에게 드물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있다는 것이 힘들었다.

여기까지 버티는 놈은 대체로 고르곤보다 덩치가 큰 놈이었고, 죽음의 숨결에 알아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고르곤이 실수를 해도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고, 고르곤은 살면서 수세에 몰린 적이 없었다. 그는 태어나면서 강자였다.

“꾸어엉!”

쾅! 쾅! 쾅!

고르곤은 땅을 쾅쾅 치며 위압감을 토해냈다. 드낙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것을 보고 그대로 고르곤이 돌진했다.

흉악한 앞발이 위아래로 훅훅 휘둘러져서 내려쳐졌다. 체급이 낮은 드낙이었기에 고르곤은 등을 굽은 채 휘둘렀다. 이 때문에 고개가 자연스레 내려가 있었고, 드낙의 간합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을 공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드낙은 마법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앞발을 피하고 그대로 한 바퀴 굴러서 크게 근접했다. 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후우욱!”

고르곤은 기다렸다는 양 숨결을 토해냈다. 하지만 드낙은 또 피하지는 않았다.

“이야아아아아아!!!!!”

주력(呪力)을 통째로 발산하며 죽음의 숨결과 맞서 싸우며 롱소드를 우겨 박았다. 스파크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찌른 감각을 느꼈다. 곧바로 드낙이 허벅지를 팔로 치면서 넘어갔다.

주르륵!

아래턱을 찔린 고르곤이 휘청거렸다. 보통이라면 그대로 넉다운이 되어야했지만 인간과 구조가 조금 달랐다.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추가타가 들어왔다.

푹!

드낙이 전세를 크게 지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도렌이었다. 드낙과의 교전에서 알게 모르게 옆구리의 가죽이 너덜너덜해진 것이 고르곤이었다. 그곳에 정확하게 도렌의 숏소드가 박혔다.

“커허헝!”

고르곤이 앞발을 휘둘렀다. 히트 실드가 그대로 우그러들면서 도렌이 수 미터를 그대로 날아가 미끄러지며 땅 깊이 처박혔다.

서걱!

그것이 흥분한 고르곤의 실책이었다. 고통에 시선이 도렌에게 간 것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쥐새끼처럼 은밀하게 휘둘러진 롱소드가 그대로 목을 찢겨버렸다. 목이 사람의 허벅지처럼 굵은 고르곤의 목 앞쪽이 그대로 훅하고 패이며 살점이 뜯겨지고 피가 터져 나왔다.

왈칵! 왈칵! 주륵! 주르르···

대량의 피가 두 번 펌프질을 하듯이 튀어나오고, 그 뒤로 조금 한 번. 이내 주르르 흘러내렸다.

“꺽. 꺽!”

고르곤이 앞발을 휘두르다가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검은 숨결이 꺼져가듯이 조금 조금 목의 상처에서 튀어나왔다. 드낙은 도렌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숨은 쉬고 있다.’

전신갑주 중에 우그러든 것도 없었다. 양팔이 교차해서 우그러든 히터 실드에 놓여 있었다. 자신이 맞을 줄 알고 있었다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고르곤의 공격을 한 번 막은 것이고, 드낙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드낙이 도렌을 들쳐매었다.

파직.

킹슬레이의 전신갑주에 있는 마력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숨결과 부딪치며 스파크를 냈다. 높은 곳에 도렌을 놓고 드낙은 그곳에서 하루를 쉬었다. 도망친 도노와 늑대들이 다가왔다.

“까악!”

한 것이 없는 카이야는 괜히 늑대들을 닦달하며 곳곳을 살피라며 날개를 이곳저곳 가리키며 요란하게 움직였다. 드낙은 피식 웃더니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온몸이 이상할 정도로 피곤했다.

========== 작품 후기 ==========

6057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