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2 <-- 대산 너머 -->
엘프 1250개의 도시에서 나온 대표자들이 한곳에 모인지 〈99일〉이 지났다.
천 개가 넘는 곳에서 온 대표자들이 중요한 안건을 논의한다하여 〈천중회의(千中會議)〉라 불리는 큰 의회기구였다. 물론 실상은 중견 엘프들의 모임이었다. 원로 엘프들은 자신들을 서로 묶어서 〈원로회〉를 조직하고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안건을 결정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짓누르고, 다시 하라고 하거나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원로회는 그런 조잡한 짓을 잘 하지 않기는 했다.
대부분이 현실적인 〈조언〉들을 내어줘서 천중회의는 원로회에 호의적이었다.
“오늘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희석된 엘릭서, 〈세계수의 술〉을 통해서 관계를 맺던 대상인의 라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수천 명이 모여있었음에도 조용한 곳에서 천중회의에 새로운 정보가 이어져서 나왔다.
“별의 힘을 계승하여 이 세계에 별의 힘을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간의 이름은 〈드낙 불파겐〉이며,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불파겐 가문의 적통이라 불리고 있는 자입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웅성거림 하나 없었다. 입을 달싹거리면서 정보를 나눌 뿐 나긋나긋했다.
둥···
중후한 소리가 나며 초록색의 불이 켜졌다. 약간 끄는 소리였기에 그 사이에 다른 엘프들은 조용히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한 엘프가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프 도시 〈호로나 반타(Hrona Vanta)〉의 대표자 중에 한 명이었다.
“열등한 불파겐의 정통 후계는 우리 도시에서 관리에 두고 있습니다. 방계가 별의 힘을 여럿 가질 수는 없는 법이지요.”
엘프 대다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둥···
“인간들의 혈통 관리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간악하고, 야만스러운 하등한 잡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런 놈들에게 엘프의 혈통을 주다니. 〈우마-멜레타(Uma-Meleta)〉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강하고 거대한(Strong Mighty)〉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위대한 엘프의 단 하나의 오점이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조사단을 파견해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합니다.”
“충분하다? 조사단의 파견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프로젝트 SD(Selection Destruction)의 부활을 논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발언을 하는 엘프가 천중회의의 대표자라니! 방금 발언은 엄연히 문제가 있는 발언입니다! 우월하기에 다른 종족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자만이기도 하고!”
“우린 자격이 있습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탕! 탕! 탕!
“천중의회의 규칙을 따르시오!”
그제서야 엘프들이 지긋지긋한 스위치를 누르며 딜레이 걸리듯이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엘프와 인간의 혼혈은 모조리 사멸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죄악이고, 실패작이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간 〈완성된 그릇의 형질 변환〉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희대의 반역자를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둥···
“사멸이라니요? 엘프의 피는 누구의 손에서도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엘프가 가지는 정당하고 오롯한 권리입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엘프라도 〈엘프〉이기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게 바로 위대한 엘프가 태어나면서 가지는 정당한 권리였다.
둥···
“반쪽짜리라도 말입니까?”
주제가 다른 곳으로 향하자 단상에 있는 엘프가 중단시켰다.
탕! 탕! 탕!
“의회의 안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시오!”
“······”
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
“조사단을 보내야 합니다.”
둥···
“천중회의 도중에만 얻은 별의 개수가 2개는 됩니다. 조사단이 도착한다면, 이미 조사단으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둥···
“조사단의 목적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프로토콜 하나 없이 보내는 것도 안 됩니다. 남부 왕국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시험적인 행위입니다. 무엇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둥···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제국의 마법 발전이 저희를 본뜬 것인 것을 생각한다면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합니다.”
둥···
“그 프로토콜을 누가 마련할 것입니까? 말 그대로 아무것도 바탕이 없지 않습니까.”
“제국을 베이스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결국에는 같은 인간 아닙니까.”
“제국과 남부왕국은 격차가 심합니다! 남부 왕국은 200년 전부터 제국이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맞는 말 아닙니까?”
천중회의는 결국 다음으로 안건을 또 남기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자 엘프들의 대표자들은 흩어졌고, 다시 그들만의 팀에게 돌아가서 수많은 데이터를 검토하고 확정 짓고 연관했으며 자신의 도시와 줄이 놓여 있는 〈원로회〉의 인물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비될 것은 분명했다.
*
빠삭. 빠사삭.
드낙이 얼음으로 된 늪을 걸어나갔다. 균열이 일어나며 발이 조금 들어갔지만 살얼음으로 가득했기에 깊게 빠져들지는 않았다. 수분이 가득한 진흙이 드낙의 발자국에 스며들면서 새하얗고 조금 푸른색을 지닌 인위적인 얼음을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눈만 나온 거대 개구리에게 드낙의 롱소드와 도렌의 숏소드가 틀어박혔다. 고원지대이지만 정글 같은 이곳의 특이한 환경은 롱소드도 다루기 힘들었다. 물론 드낙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퍼걱!
검의 긴 궤적을 방해하는 것은 모조리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렌은 수월했다.
쑤걱!
숏소드와 아래가 길쭉한 카이트 실드의 아랫부분을 뚝 자른 것 같은 히터 실드를 지닌 도렌이었다. 운신이 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고원의 가장 안쪽이면서도 중심인 곳으로 향했다. 새벽에는 그곳에서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주변으로 퍼지기 때문에 그곳으로 목표를 잡은 것이다. 제법 큰 수원이 존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안개가 걷어진 늦은 오전에 드낙과 도렌 그리고 늑대의 무리는 큰 못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각수.’
드낙은 가장 먼저 적부터 살폈다. 대부분이 뿔이 나온 〈거품 거대 개구리〉들이었다. 그 숫자는 40마리는 되었다.
일각수가 40마리라는 엄청난 전력으로 보였지만 뿔이 나있는 것치고는 덩치도 성장하지 않았고, 피부가 변한 것도 없었다. 대신 일각수 개구리들은 다른 것이 크게 발달했다.
‘생식기가 뭐 저렇게 돌출되고 거대해.’
거북할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탈장된 것처럼 생식기 부분이 컸고, 암컷 개구리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설사를 누듯이 알을 토해내고 있었다.
“저런데도 개구리의 세력이 고원에서 유지되고 있다니. 고르곤, 이 녀석은 어디에서 개구리를 사냥하고 있는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드낙은 손을 풀면서 지형을 살폈다. 움푹 들어간 지형이었다. 안으로 진입하기는 쉬웠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운 진형이었다. 백두산 천지의 소형화? 약간 그런 지형이었다.
자연히 원거리로 후려패기 좋았다.
“이곳에 있는 개구리를 다 잡으면 고르곤도 이곳으로 오겠지. 이곳에 대해서 잘 알 테니까 말이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늑대들이 경계를 서고 드낙과 도렌은 슬링하기 좋은 돌을 골랐다. 그 뒤에는 쓰러진 나무나 생나무를 이용해서 장애물을 만들었다. 45도로 솟아있는 나무창들을 엮어서 단단히 고정했으며 나무의 아래에는 돌을 놔두어서 쉽게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나무가 대단히 많고,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코앞에서 누가 지나가도 모르는 정글과도 같은 지형이라서 좋았다.
작업은 3일 동안 이루어졌다. 땅에 굴을 파서 숨어서 잠에 들기도 했다. 몇몇 거대 개구리가 지나갔지만 들키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거대 개구리는 〈일각수〉도 아니었다.
태어난 거대 개구리는 쫓겨나듯이 못에서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는 것은 예사였다. 자신의 새끼들에게 왜 저렇게 매정하게 대하는지 두 사람은 전혀 몰랐다.
“더. 더.”
“더.”
나무와 나무 사이에 통나무 함정도 설치했다. 그네처럼 좌우로 훙훙 움직일 터였다. 이 때문에 3일이나 걸린 것이기도 했다.
“올라오려는 놈들만 집중적으로 노려라. 알았지? 그리고 충분히 모이면 내가 신호를 줄 테니 전신갑주에서 마법을 사용해라.”
“어느 정도 사용합니까?”
“넌 딱 절반. 나는 전부.”
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이 끝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야습〉이 시작되었다. 늑대들은 사방에 흩어지지는 않았다.
“출발해. 도노!”
“컹.”
도노는 무리를 이끌고 후방으로 향했다. 도주로를 위해서 거대 개구리들을 사냥할 것이다. 딱 3분 뒤에 드낙과 도렌도 작전을 시작했다.
“후우, 후우웁!”
드낙이 거침없이 내달리며 그대로 끝이 망치처럼 뭉툭한 돌창을 던졌다. 돌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돌 부분이 아래로 향한 창이 멀리 있는 거대 개구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껙!”
소스라치게 놀란 거대 개구리 때문에 곳곳에서 일각수 거대 개구리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뒤이어서 도렌이 쏜 돌창이 거대 개구리의 눈을 짓이겼다.
“퀙!”
“개굴! 개굴!”
일각수 개구리들이 던져진 방향을 갈피를 못 잡았다. 어둠 속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 더 던지고 피해를 입고 나서야 날라온 방향을 대충 짐작했다. 방향은 알았지만 정확한 것은 몰랐기에 서로 가는 방향이 미묘하게 다 달랐다.
그다음에 투척한 돌창으로 정확하게 목표물을 포착할 수 있었다.
쩌저적!
드낙의 〈얼음 구역〉이 펼쳐지며 일각수를 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살이 얼음에 그대로 붙어버렸지만 일각수들은 좀비처럼 날뛰면서 달려왔다. 혀를 덜렁덜렁거리면서 오는 놈도 있었다.
극도의 흥분 상태!
‘일각수가 되면서 단점이던 〈산액땀샘〉은 사라졌구나!’
드낙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흥분한 것이 역력함에도 자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켁!”
얼음을 달고 달리다가 뜯겨진 얼음판에 뒷다리가 부딪치면서 발이 엉킨 일각수 개구리가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서 반바퀴 돌며 등이 바닥에 부딪쳤다. 뒤에서 달리던 개구리가 놈을 그대로 밞고 지나갔다.
뿌지직!
배가 밞힌 암컷 일각수 거대 개구리가 알을 수백알 자궁에서 토해냈다.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도 없었다.
쿠구구구!
빙판이 튀어 올라왔다. 드낙의 방어 마법인 〈솟구쳐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이었다. 개구리들은 폴짝 폴짝 뛰었으므로 빙판이 솟아오른 곳에 가까이 있던 개구리는 회피도 못한 채 머리를 처박고 뒤로 넘어가며 빙판에 깔렸다.
곧 깨어부수고 다시 날뛰었지만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분명했다. 빙산을 피하는 순간 슬링의 거리에 들어왔기에 어둠 속에서 돌이 소리 없이 쏘아졌다.
퍽!
드낙의 슬링에 맞은 놈은 그대로 끝이었다. 움푹 패어서 내출혈이 시작되거나, 재수 없게 머리를 맞으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서 죽어야 했다.
퍽!
도렌의 슬링에 맞은 일각수는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옆으로 픽하고 쓰러지더니 이내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힘을 주며 걷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도렌! 지금!”
드낙이 소리를 질렀다. 못에는 나무가 없어서 달빛을 통해서 놈들을 알 수 있었지만 가까이 오면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르륵!
위에 구멍 하나 뚫어놓고 아래에 구멍을 여럿 뚫어놓은 토벽을 도렌이 거칠게 허물었다. 불이 절반 정도 붙어진 나무가 가득, 차곡차곡 쌓아져 있었다. 거침없이 강철 글러브를 물에 담그고 장작을 사방 팔방에 던져대었다.
서걱, 푸르륵! 텅!
드낙은 그 사이에 함정을 발동했다. 무식한 통나무가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오르막길을 올라온 개구리를 후려쳤다.
뻑!
뒤에 있던 개구리의 고개가 젖혀지며 그대로 목뼈의 한 부분이 분질러지면서 허물처럼 쓰러지더니 눈만 데굴데굴 굴리다가 사지를 바들바들 떨면서 오물을 토해내며 죽어버렸다.
시야가 확장된 곳에서 도렌이 입을 달싹거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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