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1 <-- 대산 너머 -->
중립신에 의해서 하루에 한 번의 제한이 있던 검은문의 제약이 풀렸다. 그 덕에 드낙은 사실상 닥치는 대로 죽여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황색 연기를 뿜어내는 기괴한 개구리 때문이었다.
‘해체를 해서 뭔지 알아봐야지.’
쯔걱!
드낙이 거침없이 〈거품 거대 개구리〉를 해체했다. 장기가 여럿 나왔고, 뒤적거렸다. 장기를 훼손하기도 했지만 독낭은 나오지 않았다.
‘음··· 봐도 모르겠다.’
괜히 의사가 전문직인게 아니었다. 보고도 모르는 것이 까막눈 아닌가? 드낙은 대신에 특별한 것만 찾아다녔다.
“점액에서 자꾸 거품이 올라옵니다. 뭔가 능력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렌의 말에 드낙의 시선이 개구리의 피부로 향했다. 몽글몽글 거품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색을 지니지 않았고, 공기방울에 불과했다.
‘피부 호흡을 하는 건가. 개구리니까 그럴 수 있지. 올챙이 때부터 피부호흡을 하던가?’
잘 기억은 안 났지만 그런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못 배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스윽.
피부를 문지르자 뭔가 톡 터지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점액을 녹이며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땀샘이구나!’
그렇기에 그렇게 빠르게 독을 피부에 내뿜을 수 있는 듯했다.
〈산액땀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눈 또한 물에서 움직이기 좋게 두꺼운 막이 하나 더 있었다. 눈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더러운 물에서 시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더럽지 않아도 작은 나뭇가지가 눈에 박히면 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두툼한 또 하나의 속눈꺼풀은 신기하기도 신기했다. 마치 고양이가 잠잘 때, 눈을 위로 당기면 보이는 것이랑 비슷했다.
주르륵.
혀를 끄집어내자 악취가 심하게 났다. 나뭇가지의 겉을 뜯어내고 부드러운 속껍질로 혀를 한 번 긁자 액체가 긁어 나왔다. 간만 믿고 드낙은 살짝 맛을 보았다. 혀가 단번에 마비가 되었다.
“마비독이네. 그것도 효력이 상당하다.”
혀를 갈라보았지만 독낭은 보이지 않았다. 몸 내부? 그러기에는 혀에 지나치게 많았다. 해답은 입천장에 있는 돌기에 있었다. 뱀이 이빨을 통해서 물면 독이 나오는 것과는 달랐다.
‘몬스터니까 그냥 상시 입에 침처럼 머금고 있다. 미쳤다.’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북북.
“창날이나 화살촉으로는 점액에 미끄러집니다.”
도렌이 몇 번 그어보고, 직접 던져보며 얻은 정보를 말했다. 슬링이 개구리 상대로 좋았다. 그렇기에 시간을 들여서 동물 가죽을 이용해서 슬링 기구를 만들었다.
‘타격 면적이 넓은 것이 거대 개구리한테 좋다.’
정보를 도렌과 도노에게 이야기했다. 늑대들은 사실 이번에 사용하기가 꺼려졌다. 덩치부터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감당 가능해도 여럿을 상대로는 묶어두는 것이 전부였다.
“도노! 만약 전투가 커지면 견제만 하고, 혼란케해라. 네가 중심이 되어서 피해가 적게 나오도록 해야 한다.”
“크르르.”
도노가 으르렁거리며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일단 고원까지 향하며 거대 개구리를 죽이고, 적의 전력을 파악한다.”
“천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지 않겠습니까. 고원 밑에 함정을 파놓는 건 어떻습니까.”
드낙이 고개를 저었다.
“개체수는 유지되고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대산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적어도 산 몇 개는 점령했을 것이고.”
개구리는 체외수정을 한다. 그 덕에 대량으로 자식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개구리의 개체수를 조정하고 있는 것은 고르곤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드낙은 확신할 수 없었다.
천적이 고르곤이라면 개구리들이 그렇게 배를 벌러덩하고 평화롭게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이다. 일단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원래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전신갑주의 성능에 미쳐있었을 때는 무대포 기질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퍽!
소리 없이 날아간 두툼한 돌이 그대로 〈거품 거대 개구리〉의 두개골을 움푹하게 만들었다. 흉악한 위력! 슬링의 파괴력을 모르는 골리앗이 다윗에게 처맞아야 했던 것처럼, 거품 거대 개구리 또한 모르면 맞아야 했다.
치이이이익!
순간적으로 찾아온 죽음의 공포 속에서 땀이 전신으로 뿜어지면서 쓰러진 거대 개구리의 전신에서 주황색의 독한 연기가 튀어나와서 스스로를 녹여버렸다.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특수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거대 개구리였다.
‘어떻게 저렇게 진화하게 되었을까.’
우월하든 열등하든 우성인자가 개화하는 법이었다. 그 덕에 거대 개구리들은 개체수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포식자는 개구리를 죽여도 얻는 게 적고, 산액가스를 모르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도렌 또한 슬링을 능숙하게 해내었다.
이실레아와 토벌을 함께하며 여러 가지 무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두루두루 적당히 할 줄 알았다.
〈고원〉에 들어선 드낙은 그 규모에 감탄했다. 못해도 요새 하나는 자리 잡을 수 있는 평야가 산에 있었다.
‘느껴진다! 광맥이!’
드낙이 감각을 느끼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엄청난 대물의 느낌.’
꽉 찬 손맛이 확실하게 잡혔다. 또한 눈을 통해서 광맥의 빛깔도 알 수 있었다.
‘은이다.’
“휴우···”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산지기 산골 마을〉까지만해도 7일 거리였기 때문이다. 왕복은 14일, 보름이나 걸렸다. 운송비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곳곳으로 은괴를 통해서 온갖 자원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식량이야말로 인류가 수많은 땅을 가질 수 있는 이유였다. 고대 문명이 강가 위주로 있는 것도 모두 쉽게 잡을 수 있는 생선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는 곡물보다 생선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았다.
“자작님?”
“아. 잠깐, 생각을 좀 했다. 고원에 지금 들어가는 건 좋지 않다. 외곽을 돌면서 놈들의 규모를 짐작해보겠다.”
“예.”
외곽으로 숨어들어갔다. 물론 그러면서도 보이는 개구리들을 단숨에 슬링으로 죽였다. 두툼한 돌이 안 보이면 땅을 파서라도 찾았다. 그 덕에 고원을 둘러보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질퍽! 질퍽! 퍽퍽!
거대 개구리가 쌀쌀한 고원지대에서 땅을 파면서 늪지대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땅은 패이면서 계속 물이 줄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깊은 구덩이를 파면 물로 가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철퍽! 철퍽!
거대 개구리는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고도 물장구를 치면서 흙탕물을 만들어냈다. 물이 뒤섞여서 점성이 높아지고 색이 탁해져만 갔다. 이내 조용히 눈만 빼꼼 밖으로 내놓았다.
‘새끼들. 저렇게 사네.’
고원지대는 봄이지만 낮이든 밤이든 추웠다. 거대 개구리들은 땅을 파헤치면서 저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속에서도 드낙은 지금까지 놈들이 낳은 알을 본 적이 없었다.
‘개체수를 많이 못 낳나. 아니면 개구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출산을 하나.’
모를 일이었다.
화륵!
도렌이 동굴의 안에서 마른 똥에 부싯돌을 부딪쳐 불똥을 놓았다. 단번에 모닥불이 만들어졌다. 능숙했다. 습지에서 잡은 도룡뇽이 다섯 마리 올려졌다. 늑대들의 몫도 있었다.
부글부글!
무식하게 머리통까지 넣은 물고기가 잔뜩 들어갔다. 늑대들을 위한 것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잠잘 준비를 마치고 도렌과 드낙은 술을 한 잔 걸쳤다. 봄임에도 고원지대는 겨울처럼 쌀쌀했다. 이런 곳에서 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얼음 마법〉에 대단히 취약한데도 용케도 버티고 있었다. 그 비밀은 물렁물렁한 땅에 있었다.
“깊은 웅덩이와 늪이 정말 많습니다. 차근차근 박멸하듯이 가지 않으면 순식간에 포위될 겁니다. 얼마나 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얼음 마법으로 활동할 곳을 만들어야겠다.”
드낙이 바닥에 고원을 그렸다. 길쭉한 형태의 원이었다. 항공모함과 비슷하게 생긴 지형이었다. 그곳에 선을 화살표를 하나 만들어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주변이 얼음으로 가득 차면 개구리들도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 그런 놈들을 처리하고 중앙으로 가서 고르곤을 확인해볼 생각이다.”
“개구리와 고르곤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는 고원에 와서 고르곤의 흔적이 없다.”
거대 개구리들이 자주 땅을 엎으면서 늪 안으로 기어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없는지도 몰랐다. 〈죽음의 고르곤〉의 흔적은 무엇이든지 오래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중앙을 확인해보면 알겠지.’
드낙이 잠에 빠져들었다.
중립신이 드낙을 맞이해주었다. 검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만 골라야 합니까?”
“필요한 것만 취해라. 나의 챔피언이여.”
드낙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수중 호흡 피부〉.
‘피부 호흡.’
강력하다면 강력한 검은 문이었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00%의 효율을 내지는 못했는데 그건 드낙의 육체 베이스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트롤의 재생력도 〈완벽한 트롤의 능력〉은 아닌 것과 같았다.
초월적이긴 하지만 정말로 비교한다면 드낙의 재생력은 트롤의 반에 불과했다.
‘이것만 해도 어디야.’
〈수중 추가 망막〉은 포기했다. 눈꺼풀이 안쪽에 하나 더 생기는 것인데, 환상을 통해서 그 감각이 너무 이질적이라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컨트롤하는 것도 단번에 숙련되는 것이 아니었다.
날개 없는 인간이 날개를 다루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탁수에서의 시야 확보를 위해서 몇 년을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드낙은 신체 적응력이 결코 뛰어나지 못했다.
〈산액땀샘〉.
‘에바지.’
땀이 나면 자신의 신체마저 녹이는 산액이 튀어나온다. 독가스도 맡는 순간 내출혈이 일어날 수 있었다. 강력했지만 스스로 사용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점액 폐!’
〈점액 폐 추가〉.
드낙도 예상하지 못한 능력이었다. 인간의 폐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추가적인 장기는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특히나 점액 폐는 폐에 있는 수분을 스스로 빨아들여서 간으로 보내는 독특한 기능 또한 있었다.
거기에 점액으로 폐의 표면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한 가스가 들어오면 물을 분무기처럼 분출해서 물로 농도를 희석함은 물론 그 수분을 빨아들여 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강력한 검은 문이지.’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역시 몬스터야. 언제나 새로워.’
드낙이 희열을 느꼈다.
“흐흐!”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고르곤을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
〈단단한 산〉
〈21번째 선술집〉
돌로 만들어진 곳은 입구도 없었다. 하지만 핏빛쥐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뿔쥐의 도시〉에 살아가는 하층민이나 다름없는 핏빛쥐들이었다. 왜냐하면 뿔이 없기 때문이다.
열등함의 표식이기도 했다.
“찍찍! 어서 와라, 무엇을 찾나.”
술집 주인의 말에 광부 일을 마치고 온 뿔 없는 핏빛쥐가 말했다.
“가장 센 놈으로! 지네 독까지 우려낸 걸로.”
술집을 뿔 있는 핏빛쥐에게 허락 맡아서 하는 술집주인의 눈이 반짝였다.
“허, 내일에도 일을 나가는데, 그래도 괜찮겠나?”
“쓸데없는 소리.”
“찍찍!”
술집 주인이 성질을 내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술집주인은 주위를 살폈다. 미행은 없어 보였다.
두더지 가죽으로 된 입구를 팔로 휘적거리며 들어간 광부 핏빛쥐가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주위에는 뿔없는 핏빛쥐로 가득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의심스러운 일이라도 있었나?”
“그랬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
“〈대장쥐〉는 노련한 왕이다.”
“그는 왕이 아니다!”
광부 핏빛쥐가 으르렁거렸다. 하루에만 해도 곡괭이질을 하다가 죽어가는 동족만 해도 십여 마리가 넘었다. 〈뿔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는 것이 우월한 핏빛쥐들이 만든 법이었다.
“우리가 살려면 놈은 죽여야 할 썩은 뿌리에 지나지 않는다.”
찍찍! 맞다, 맞다!
찍찍! 모두를 위해서 왕좌를 무너뜨려야한다!
뿔없는 핏빛쥐들이 찍찍거리며 그 소리에 동참했다.
단단한 산은 핏빛쥐들의 엄청난 개체수로 지하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동시에 불온한 움직임 또한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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