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0 <-- 대산 너머 -->
〈검은 회의〉에서는 그 흔적에 대해서 순식간에 답을 내었다. 그만큼 자주 보이는 몬스터라는 것은 아니었고, 그만큼 희소했기에 알고 있었다.
“〈고르곤(Gorgon)〉이다.”
“고르곤?”
“자주 보기 힘든 놈이지. 대산의 너머에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산에 있는 것은 이상하군.”
“왜?”
“늪에 살기 때문이다. 피부가 철판을 덧댄 갑주처럼 직사각형 껍질이 미늘 갑옷처럼 전신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랑 늪이랑 무슨 상관이야?”
“습도가 낮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건조한 곳에서는 살지도 못한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습도가 높은 곳에 살아야 했다.
“산에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지형이 있을만한 곳을 찾으면 되겠지.”
“고르곤은 어떻게 생겼지?”
“황소처럼 생겼다. 전체적으로. 하지만 앞다리가 굉장히 길쭉해서 상체를 들어 올려 팔처럼 휘두르기도 한다.”
“크기는?”
“못해도 2m. 큰 놈은 4m.”
“일각수인가?”
“몬스터다.”
드낙이 고르곤을 상상했다. 3미터나 되는 몸길이를 지닌 황소라니,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또한 직사각형처럼 박혀있는 철판으로 된 피부라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작은 철판을 덕지덕지 붙은 미늘 갑옷으로 여겨졌다.
‘괴이하게 생겼겠네.’
“입에서는 다양한 숨결을 내뱉는다. 독가스, 산액가스, 화염처럼 눈에 보이는 것부터 죽음, 충격파 등 이해하기 힘든 숨결도 내뱉지.”
“죽음의 숨결은 뭔데? 엄청 무시무시해 보이는데.”
“고르곤의 발자국은 얼마나 오래된 것처럼 보였지?”
드낙이 가늠했다.
“굉장히 딱딱했지만 땅이 습지처럼 물렁한 곳이라 몬스터의 특징이라고 밖에 모르겠던데. 발에서 불을 피우고 다닌다면 최근의 것이겠지.”
세파리아스가 웃었다.
“〈죽음의 고르곤〉이라는 뜻이다. 발굽에 찍히는 것만으로도 땅이 죽어버린 것이다. 죽은 대지가 되어버린 것이지. 순식간에 그 숨결에 닿은 것은 1천 년은 흐른 것처럼 바싹 죽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게 말이 돼? 너무 강하잖아.”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오히려 웃어 보였다.
“강해도 언제나 약점이 있는 법이지. 숨결만 조심하면 다른 것은 별것이 없다. 목뒤에만 들러붙으면 끝이다. 허무할 정도로 쉽지.”
하지만 드낙은 그런 세파리아스의 입전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와 자신의 격차는 상당했기 때문이다.
“나라면?”
“너라면? 글쎄. 방어 마법을 써야 할지도.”
세파리아스가 상상을 했다. 드낙이라면? 음흉한 놈이었다. 근접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고르곤 중에서도 무시무시한 〈죽음의 고르곤〉의 숨결을 피할 수 있을까? 혹은 목을 잡아채도 실수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발도 조심해야 하나?”
“당연하지.”
“죽음을 뿌리고 다니는 놈이네.”
드낙이 뒷머리를 긁었다. 상대하기 싫은 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눈이 검게 물든 것처럼 탐욕이 들끓었다.
“주의할 점이 뭐가 있을까?”
“화살이나 투창 같은 투척물로는 씨알도 안 먹힌다. 성질 돋우지 말고 한 방에 승부를 보는 것이 좋다. 고르곤의 몸은 출렁거리는 철판의 집합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두정갑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것이 고르곤의 피부였다. 불룩불룩 튀어나온 특이한 피부는 안으로 움푹 들어가며 하나의 사각형을 만든다. 피부지만 딱딱하다. 하지만 피부이기에 화살과 부딪치면 피부가 출렁거린다. 피부 안쪽은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장력과 나무의 특징으로 위아래로 출렁거리면서 쏘아지는 화살과 투창의 파괴력은 여기에서 반감이 이루어져 제대로 된 피해를 못 줄 수밖에 없었다.
고르곤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투사체에 강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토벌 혹은 기사의 투입이 아니면 잡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터프해서 마법 몇 방으로는 끄떡도 안 한다는 점도 대단했다. 육신의 구조 자체가 인간과는 격이 달랐다.
두 발로 서서 원투를 후려갈기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근육과 덩치에 비해서 발굽은 작은 수준이었기에 파괴력이 한 점으로 몰리는 듯한 현상을 주어 박살을 내는 것에 특화가 되어있었다.
메이스를 쥐고 휘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드낙은 고르곤 사냥을 위한 주의사항을 듣고 검은 꿈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법조차도 쉽게 깨트리는 〈초월의 힘〉이 녹아든 것이 죽음의 숨결이었다. 그리고 그런 죽음의 숨결을 쏘는 고르곤은 열에 한 마리꼴이었다.
또한 고르곤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도 들었다.
‘역시 대산의 너머다.’
오지 중의 오지였다.
남부 왕국, 동쪽의 끝에 존재하는 문명이 없는 곳이었다. 리자드맨이 있다는 등 헛소문도 많았지만 증명한 자는 없었다.
다음 날에 드낙은 도렌에게 고르곤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했다.
“꾸준히 마법으로 타격하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도망치면 어쩌려고. 목표를 바꾼다. 놈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어.”
〈고르곤의 심장(核)〉!
보석과도 같은 질감을 지니고 있어서 마력의 보관소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심장 자체가 초월의 힘을 받아들이기 좋게 되어있었다. 이것은 고르곤의 숨결이 초월의 힘이기 때문이었다.
〈범용성의 마력〉은 성질이 달랐음에도 능숙하게 고르곤의 심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최고의 유틸성을 지닌 초월의 힘이었다.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생체갑주나 다름없었다. 가죽 갑옷으로 만들어 전신갑주 안에 입는다면 엄청난 방호력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울룩불룩한 피부를 두드려서 본래 방어력보다는 낮겠지만 방호력에 비해 납작하게 작업한 고르곤의 가죽 방어구는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웠다.
또한 그 외에도 내장까지 허투루 쓰는 것이 없었다. 피까지 가죽 주머니에 담아야 할 정도로 마법적 연구 가치가 있는 놈이었다.
제국에서는 고르곤의 부산물을 따로 구분하여서 백금괴로 교환을 할 정도였다. 워낙 보기 힘든 놈이고, 숨결 때문에 생포도 불가능했으며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서 생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화를 못 이겨내 죽어버리는 것이 고르곤이었다.
‘또 도지셨군.’
도렌이 이마를 긁었다.
“어떻게 사냥하시겠습니까?”
“일단 주변을 청소해서 변수를 원천 봉쇄하고, 마법으로 최대한 피해를 준 다음에 바로 뒷목에 검을 쑤셔 박아 단칼에 끝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제가 관심만 잘 끌어내면 되겠군요.”
“그러니까 너는 전신갑주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나중에 사용해라. 그렇지 않으면 따라잡힐 수도 있으니까.”
“예.”
몇 번 시뮬레이션한 내용을 전달해서 도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숙지하고 나서야 산을 올라갔다.
초입에는 동식물 하나 살고 있지 않았다.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벌레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씨발!’
드낙은 호흡하다가 투구 안쪽으로 기어들어오는 벌레에 기겁했다. 소변을 보러 간다면서 도렌 몰래 흑마법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사용해서 전신갑주 안쪽에 펴 바르듯이 방어막을 쳤다.
도렌은 벌레가 득실거려도 내색하지 않았다. 손을 휘젓기는 했지만 벌레는 벌레일 뿐이었다. 날파리나 모기가 달라붙었지만 굉장히 작은 놈이 아니면 파고들어오지도 못했다.
기이한 감각이 느껴지면 그냥 주먹으로 쿵쳐서 짓누르면 되었다.
중턱에 들어서자 기이한 환경이 그들을 마주했다.
“점액···”
고르곤의 특징에는 없는 것이었다.
찐뜩하고 투명한 점액이 나무에 들러붙어있었다. 제법 큰 넓이였다. 나무의 표면을 자세히 훑었다.
‘몸을 긁은 게 분명하다.’
“고르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피부에 점액이 있는 다른 것이 나무에 비볐어.”
습도가 많고, 울창한 숲이었기에 햇빛도 자연스레 차단되었다. 그래서 점액은 바짝 마를 수가 없었고, 금방 긁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흔적이 생긴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중턱부터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드낙은 도렌과 늑대 무리를 이끌고 사냥꾼처럼 움직였다. 바람을 가늠하고, 지형을 살피고, 지독하게 천천히 수색했다. 적의 존재가 고르곤이 아님을 알았기에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상대보다 자신이 먼저 알아차려야 했다.
“개굴!”
묵직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자 드낙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것은 거대한 개구리였다.
뿔은 없었다. 하지만 덩치가 2m는 되어 보였다.
불룩 튀어나온 흰 배와 나무에 등을 긁고 있는 것이 절어 보였다. 전신이 번들번들한 것이 점액으로 피부를 반들반들하게 만들고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피부였지만 나무껍질이 뜯겨져 나가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화살에 약해 보이는데. 피부층이 생각보다 두꺼울 수도 있다.’
“뭔지 아는가?”
“저런 건 저도 처음 봅니다. 개구리가 야수가 된 것 같은데.”
개구리의 숫자는 세 마리였다. 모두 이곳에 천적이 없는 것처럼 태평하게 놀고 있었다. 긴 혀로 벌레를 잡아먹는데 꿈쩍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으로 배를 긁기도 했다.
드낙은 가장 먼저 포위망을 형성하도록 명령했다. 단숨에 때려잡고, 해부해서 어떤 능력을 지닌지 알기 위함이었다.
“개굴!”
그때 거대 개구리가 서로 들러붙으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뭐 때문인지, 왜 싸우는지도 몰랐다. 서로 뒤엉키자마자 피부에서 누런 거품이 피어 올라오더니 탄산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위험해 보이는 주황색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미쳤네.’
점액이 빠르게 타버리고, 피부가 녹아내리자 두 개구리가 서로 펄떡 높이 뛰면서 거리를 벌렸다. 튀어 오른 높이는 5m가 넘었고, 이동한 거리는 2m나 되었다. 작정하고 멀리 뛴다면 엄청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인 마법으로 잡는 게 낫겠다.’
순식간에 옳은 판단을 내린 드낙이 입을 달싹거렸다. 연거푸 대인 마법, 〈얼어붙은 표적 독수리(Frozen Target Eagle)〉를 사용했다.
퍼버벙, 빠자작!
하늘로 튀어 오른 얼음 독수리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가르며 그대로 방심하고 있는 세 마리의 〈거품 거대 개구리〉를 때려 박았다. 액체인 점액을 몸에 두르고,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개구리에게 얼음 마법은 카운터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꽁꽁 얼어버렸다. 타격받은 곳은 사람 머리통보다 더 크게 패어버리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상황은 그대로 종결되었다.
“시체를 옮겨라. 난 흔적을 지우겠다.”
*
주점의 술집에서 3명의 평범한 보부상이 짐을 내려놓고 술과 음식을 시키며 앉았다. 시시껄렁한 밀이나 가죽의 시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식과 술이 오자 본격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아차린 것 같다. 상식적으로 가볍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꼬리가 밟혔나?”
“아니. 그런 움직임은 느끼지 못했어. 하지만 확실하게 꼬리를 잘라야 해. 들킬지도 몰라. 조용히 일을 해결하고 있을지도? 우리들의 목소리조차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한 명이 거칠게 고기를 썰다가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옆에 있는 사내가 다리를 잡으며 주위를 쓱 훑었다. 순식간에 훑어서 찰나의 시간에 불과할 정도였다.
“다리 그만 떨어. 미쳤어?”
“씨발. 내가 그래서 토치라이트 가문의 의뢰는 받지 말자고 했잖아.”
“후회해도 늦었어. 네놈 목소리를 들은 놈들을 기억하지?”
다리를 떨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까지 모두 죽이고, 자연스럽게 여기서 물건을 다 팔고 떠나면 된다. 알겠어?”
“후우···.”
서로 잔을 채워주고 들어 올려 부딪쳤다.
“완판하고 거하게 벌어보자!”
“내일은 분명 다르다!”
“간도 쓸개고 다 팔아버리자!”
흔한 보부상의 술자리처럼 보였다.
짧으면 1년, 길면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토치라이트 가문은 드낙과 결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수작질을 하는 것은 자연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런 짓을 하는 미친놈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미친놈은 항상 현실에 있는 법이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모든 이들의 적이나 다름없는 백금 왕가의 공주를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건드려서 드낙이 외척을 견제하며 분란을 만들어 시간을 벌게 만들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드낙은 선의 업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암살 시도에 최소한의 인명을 죽인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다양한 사업을 벌여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줌과 동시에 인구수를 폭증 시키는 것! 그게 드낙이 이 영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독살이라고 퍼졌지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었고, 레이시아는 은폐만을 원했기에 드낙이 급히 종결시킨 이유도 있었다. 부인들도 하나같이 부인하며 레이시아에게 시비를 고용하게 만들었다.
드낙에게 한 걸음 양보한 것이다. 레이시아는 드낙의 무관심 내지는 후계자를 낳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도 괜찮다는 뜻을 시비를 고용하라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레이시아는 잠을 못 들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좋게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6110자
평추코! 다양한의견추!
생각보다 흉수가 누군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어서 ㅎㅎ. 사실은 그냥 말 안하려고 했는데. 분위기 좋은데 귀족 부인들이 그런짓 할리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