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5 <-- 아바레스트에 이끌린 자들 -->
“··· 그런데 뭐 하다가 왔길래 큰 난리를 모르나?”
“은맥을 찾아다녔지. 성공해서 주머니가 두둑해졌지.”
“바로 팔았나 보군.”
사내들은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서로 자신들에 대해 말하며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사이에 안주와 술이 새롭게 테이블에 왔고, 비어진 그릇과 술잔이 치워졌다.
“크으! 흑맥주는 정말이지, 최고라니까.”
“이제 자세히 좀 말해줬으면 하는데.”
“보채기는. 내전이 크게 있었다. 아는 군단은 모조리 동원되었을걸.”
낄낄!
그 소리가 테이블에 같이 앉은 3명의 사내 중 하나가 비웃었다.
“누굴 멍청이로 아나? 제국의 군단은 결코 내전에 동원되지 않는다.”
“흐흐, 이번에는 달랐지. 그래서 모두 날카로워져 있다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돼지고기 꼬치를 한 입 물으며 사내가 뜸을 들였다. 입술에서 육즙이 질질 흘러내렸다.
“쓰읍. 왜 그랬겠어? 왕위 쟁탈전이 일어난 거지.”
그 말에 두 사람 모두 어리둥절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제국의 황태자는 오직 한 명이고, 애초에 다른 왕자나 공주는 없지 않나.”
“그러니 뭐겠어?”
“······?”
대답을 내지 못하자 사내가 흑맥주를 들이키며 테이블에 쾅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통한 피를 지닌 두 분이 계시지 않나. 황태자가 스스로 황제 폐하를 폐위시켰다.”
“저, 정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때 산을 뒤지고 있었다는 것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미쳤군.”
“그래서 군단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야?”
“9개 군단 중 6개의 군단이 내전으로 사라졌다. 군단장은 4명이나 죽었다더군.”
“헉.”
“모두 해산될 정도의 피해를 입은 건가?”
“그래. 개박살이 났지. 더 이상 제국을 지켜줄 아홉 개의 군단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남은 건 3개인데, 서로가 서로를 죽였으니 군역에 종사할 맛이 나겠어? 매일 술을 마시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지.”
“그래도 여긴 형편이 나아. 남부의 야만인들은 제국을 넘보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말에 한 명이 맥주잔에서 손을 떼었다. 바르르 떨리는 손을 보고는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던 남자가 힐끗 보더니 턱짓을 하며 물었다.
“고향이 혹시 서쪽인가?”
“그래··· 그곳에 내 부모님이 계셔. 조부모님도, 그래도 요즘에는 드워프와 교역도 하고 있다잖아.”
“미친 소리지. 두들겨도 꽉 막혀있으니, 풀어주는 거 아니겠어?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벌컥. 벌컥. 크으!
“빌어먹을 난쟁이 놈들은 아기라도 봐주지 않는다고. 그냥 먼지가 될 때까지 쏠 뿐인 사이코 새끼들이야."
“난 먼저 일어나 봐야겠어.”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은광산을 신고한 포상금으로 메시지 마법이라도 보낼 생각인 듯했다.
“베르닉! 제기랄, 여기 계산!”
통화 수십 닢을 올린 작은 가죽 주머니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자마자 술과 안주를 먹던 남자가 냉큼 챙기며 무게를 가늠했다.
“와우.”
팁이 두둑했다. 물론 술집 주인과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돈은 딱 50:50으로 배분됐다. 이 술집에서 살면서 수다를 떨며 먹고사는 게 그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소식꾼이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무너질 거야. 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미친, 패륜아 새끼.”
“들어보니 엄청난 수준의 탑을 쌓아올리고 있다던데, 마법사들도 엄청나게 끌려갔다던데.”
“마탑까지 건들어? 황제라고 정말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
*
하루가 흐르고 이실레아가 발룬을 탄 채로 가장 먼저 도착했다. 발룬은 기껏 입은 마갑도 입지 않고 오직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괜찮으십니까!”
이실레아가 고함을 지르며 발룬에서 내려서 드낙에게 달려갔다. 이미 상황이 끝나있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투구를 벗으며 드낙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실책입니다. 제국을 가볍게 보았습니다.”
“그게 왜 이실레아 경의 잘못인가? 상식적으로 기사 열다섯을 동원하는 것이 우습지. 거기에 내가 스스로 선두를 자처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그 결과 자작님께서 홀로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군대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하하.”
드낙이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제국의 수준을 보고 이실레아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무력에 스스로 우월한 기분을 맛보는 것이 전부였다.
“전신갑주는 모두 회수했다. 병사들이 오면 자유마을로 향하겠다.”
“저항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겁니다.”
이실레아는 주변을 정찰했다. 혹여나 위협이 있을까봐였다. 물론 정찰 이후에는 전투의 흔적을 훑었다.
‘대량의 마력 흔적.’
하루가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얼음을 이실레아가 매만졌다. 마력의 결정체가 내부에 잔뜩 껴있었다. 마치 거울에 낀 흰 연기처럼 뿌옇지만 푸른빛을 내는 신기한 현상이었다.
주변에 인위적으로 마력이 많았다는 뜻이었다. 그 마력은 빠르게 흩어지지만 사용된 마법에는 흡수되어서 그 마법 현상을 오래 유지했다.
지형이 뭉개진 것 또한 엄청난 수준의 마법이 이 일대를 때려 박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승리를 손에쥔 드낙은 인간 같지 않았다.
돌아온 이실레아는 전신갑주를 살폈다.
“격전을 했는데 제국 기사들의 전신갑주는 왜 멀쩡합니까?”
“부서져도 새것처럼 되더라. 엄청난 수준의 전신갑주다.”
그 말에 이실레아가 침을 삼켰다. 남부왕국에서는 그 정도의 수리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사가 적었다.
인류의 기술발전은 기술자, 과학자 등 수많은 이들의 절대적인 양의 수치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발전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인 남부 왕국과 제국의 마법 발전에도 정확하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겠구나.’
이실레아는 이 전신갑주가 불파겐 영지의 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전신갑주들의 처우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게제라스를 통해 수를 내볼 생각이다. 묵혀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좋은 생각이십니다. 자작님께서는 지금까지 오직 베풀기만 하셨습니다. 지금은 받아낼 시기입니다. 이럴 때, 제국 전신갑주를 15벌이나 노획했다는 것이 퍼지면 상황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금덩이 앞에서는 가족도 없는 법이었다. 벼락처럼 찾아온 부(富) 앞에서, 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였다. 〈제국 전신갑주〉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전장을 은폐하기란 힘든 일 아닌가?”
그 말에 이실레아가 자신의 가슴을 퉁 쳤다.
“병사들의 입단속은 자신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도 절 보면 술이 확 깨는 것이 저의 병사들입니다.”
“좋다. 지형은 이스핀이 오면 흙의 마법으로 처리하겠다.”
드낙이 그녀의 일처리를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결과는 나와봐야 할 것이다.
〈푸른 슬라임 유리관〉 또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시간이 흘러도 내부에 있는 푸른 슬라임은 외부에 노출되어 순식간에 기화된 다른 푸른 슬라임과 다르게 계속 남아있었다.
“마법사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겁니다.”
‘아샤 파이룬에게 보여주긴 해야겠는데···’
흙의 주먹이 거칠게 빙판을 부수고, 움푹 파인 곳을 채우고, 튀어나온 것을 무너뜨렸다.
〈자유 마을〉에는 백기가 펄럭였다.
모두 줄줄이 사탕으로 밧줄에 묶여졌다. 반항은 없었다.
“허무할 지경입니다.”
“아바레스트의 회수는?”
“제국 기사들이 전신갑주를 입은 채 모두 회수하여 부수었다고 합니다.”
일처리가 확실했다. 자신들이 죽을 것을 몰랐을 뿐이다.
자유 마을의 노예들은 380명에 달했다. 그들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반항하는 기색이 일절 없었다.
‘호구 드낙이다. 싸우는 것보다 노예가 되는 것이 낫다.’
그들은 드낙이 곳곳에서 한 무료 봉사를 접한 이들이었다. 이곳에 몰려온 것도 그것 때문이기도 했다.
“석지에서 일하며 새삶을 살게 될 것이다.”
드낙은 짧게 말하며 그들에게 저항을 포기하도록 말했다. 모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만족하고 있는 눈치였다. 남부 왕국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았다. 대부분 소작농이나 산골 마을 출신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곳에서의 삶은 드낙 진영의 노예보다도 힘든 경우가 많았다.
자유 마을로의 출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돌아간 드낙은 곧장 게제라스 총관을 만났다. 제국 전신갑주는 이스핀의 책임하에 모종의 장소에 옮겨졌다.
“정말입니까?”
“그래. 못 믿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 기사 열다섯을 홀로! 대단한 위업입니다.”
“그래서,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기간을 길게 해서 본다면 나중에 푸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푸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케이샤 킹슬레이 부인께서 먼저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부인들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사업을 통해서 불파겐 영지에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할 것입니다.”
게제라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봄이니, 파이룬 가문의 도로 사업도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이 서로 각을 한 번 세워서 그 뒤에 협력하게 만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제국 전신갑주를 통해서 그것을 줄인다는 소리네.”
“주지 않고, 그저 확보하기만 있어도 움직일 겁니다. 또한 지금 저희 형편에는 그 전신갑주를 제대로 사용도 못 합니다. 어떤 마법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드낙이 턱을 문질렀다. 시기상으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것이 현재의 남부 왕국이었다. 백금 왕가는 서쪽의 오우거 때문에 끙끙 앓고 있고, 북부는 외눈 트롤 때문에 상당한 힘을 소비했다.
이 상황에서 힘을 하루라도 빨리 키우는 것이 좋았다. 지금 1년이 나중의 3년보다도 더 중요한 시기일 수 있었다.
불파겐 영지의 성장을 방해할 세력이 없는 것이다.
‘제국은 벌써 수작질을 했지만···’
제국에 대한 동향 파악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케이샤 킹슬레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화장품 사업은 제국으로 퍼져나가있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드낙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실레아와 도렌에게 장원을 주고, 이스핀에게도 장원을 줘야 하고 게제라스 총관 또한 사업적으로 부인들에게서 점수를 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구의 유입과 사업이 필요했다. 닥치는 대로 1차 산업의 규모를 크게 만들고, 귀족을 통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여야 했다.
‘기다려도 되지만, 그러기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중립신의 부활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운명일지도 몰랐다.
드낙은 장고(長考)하며 시간을 보냈다. 게제라스 총관은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엄청난 집중력이시군. 단 한 번의 원정으로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그가 혀를 내둘렀다. 자유 기사 시절의 드낙을 봤지만, 사실 그때 게제라스는 드낙을 주의 면밀하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의 드낙에 대해서는 인상이 희미했다.
“골고루 주는 것이 좋겠나?”
“몽펠리에와 파이룬이 장원의 위치를 교환하면 파이룬에게 내어주고, 몽펠리에와 사업이 진행되면 그에게도 주십시오.”
“사업 하나에 하나인가.”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연구자료에 대한 공유를 반드시 붙이십시오. 우리 영지는 범죄자지만, 전신갑주를 만들 대장장이가 있지 않습니까.”
붐베일 블랙스미스. 아크온 몽펠리에가 심어놓은 스파이였다. 하지만 그 실력은 출중했다. 불파겐 영지의 대장장이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역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참. 곧 이스핀이 결혼식을 올린다. 내가 주례를 서게 되었는데, 조금 성대하게 하고 싶은데, 재정이 괜찮은가?”
공신에 대한 경조사였다. 게제라스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돈 때문에 인망을 잃는 어리석은 일을 할 그가 아니었다.
“네. 충분합니다.”
“또 마을 하나가 생기면 바로 이스핀에게 장원으로 줘야 하는데, 어디로 생각하는가?”
“호수 마을과 하루 거리에 자유 마을의 노예들로 이루어진 마을을 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석지를 개간할 겸, 이스핀 경에게 장원을 줄 겸 말입니다.”
“인구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루 거리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매우 중요한 곳이 될 것입니다.”
나쁘지 않았다. 드낙은 진행하도록 명령했다.
바로 다음날에 〈제국 전신갑주〉 열다섯 벌에 대한 정보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드낙이 자유 마을에 대한 진행 과정을 벽보에 붙였기 때문이다.
그 날 바로 몽펠리에와 파이룬이 장원을 합의해서 서로 바꾸었다. 순식간에 일처리가 끝났다. 마치 표심에 휘둘리는 국회의원마냥 일처리 속도가 엄청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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