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3 <-- 아바레스트에 이끌린 자들 -->
케샤스를 비롯한 순찰자들은 길목 곳곳을 확인하러 먼저 출발했다. 물론 그중에는 드낙과 이스핀 또한 있었다. 혹시나 적이 매복해있다면 후려치기 위함이었다. 특히 드낙은 아바레스트를 지닌 제국의 놈들이 결코 가벼운 자들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먼저 움직이고 싶어 했다.
“까악!”
카이야가 울었다. 도노는 이 자리에 없었다. 대산의 인근에서 늑대 무리를 이끌고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산의 너머를 엿보고 있는 것이 드낙의 다음 목표였다.
‘대산 너머를 개발하는 것은 중요하다.’
북부 귀족을 규합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동부의 개발이 끝나면 불파겐의 칼이 어디로 향할지 뻔히 아는 것이 귀족이니,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대산 너머를 봐야 했다.
그 첨병이 될 것이 도노였고, 늑대들이었다.
‘늑대는 생각보다 강하다.’
인간은 총기가 보급되고 나서야 늑대를 비롯한 맹수들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전에는 식인 늑대가 대도시에 출몰해서 사람을 죽이고, 무리를 지어 대로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국 또한 사람보다 호랑이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판타지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늑대들은 몬스터와 야수 때문이라도 지구보다 더 영악하고, 무리가 컸으며 곰조차도 살기 위해서 잡아먹는 놈들이었다.
인간이 이 지옥에서 살아남으며 국가를 세운 것처럼 늑대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강력한 사회를 만들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늑대를 조련한 고블린보다 고블린을 사냥하는 늑대가 많았다.
드낙이 호수 마을을 순찰자들과 함께 떠났다.
1일~2일의 간격을 두고 이실레아가 지휘하는 본대가 출발할 것이고, 도렌은 보급 부대를 꾸릴 것이며 게제라스는 후방을 책임질 것이다.
“엘라한 가문 또한 자유 마을을 경유하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이상할 정도로 없었다는 것이 걸립니다.”
이스핀의 말에 드낙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 기간, 출정 준비로 1주일은 보냈는데 자유 마을의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일까.’
수성으로 득을 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드낙에 대한 말이 전파되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면 놈들 전체가 제국의 기사이며 병사들이라고 봐야 했다. 오히려 그것이 더 그럴듯했다.
‘하지만 군대를 동원할 정도로 제국이 남부 왕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마법 문명이 된 제국은 영토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었다. 중국 같은 대국이 소국을 탐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민족적으로 하나가 된 제국은 다른 곳을 점령할 야망 자체가 적었다. 자신들의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다른 국가를 침공하여 다른 민족을 통치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었다.
또한 마법 때문에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제국민이었다.
‘게제라스가 괜히 고민한 것이 아니지.’
하나 된 민족에 흘러들어가서 관료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운도 따라줘야 했다.
“가는 길은 언덕과 평지가 고루 있는 곳입니다. 매복을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케샤스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카이야 때문에 사실상 기습은 불가능했다.
2일 뒤에 드낙은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에서 카이야가 독수리처럼 빙글빙글 돌았기 때문이다. 언덕의 뒤편에서 바짝 몸을 낮춘 채 매복병이 숨어있는 듯했다.
“순찰자들은 산개해서 좌우로 돌아가서 화살 공격을 하라. 이스핀! 너는 나와 함께 정면으로 간다.”
“예!”
“가자!”
순찰자들이 〈전투 로브〉를 입고 움직였다. 덜렁거리는 온갖 무기와 크고 작은 가죽 주머니 때문에 중보병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체력 보존을 위해서였다.
드낙은 말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육체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땅이 단단한 지반이 오히려 더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말위에서 싸우는 것은 일개 보병을 잡거나 기사가 도망간 것을 쫓을 때뿐이었다.
평범한 인간일 경우 기승하는 것이 좋지만, 드낙의 경우에는 달랐다. 이미 인간을 초월한 육체를 지닌 것이 드낙이었다.
“썩 나와라! 제국의 더러운 끄나풀아!”
드낙의 외침에도 언덕은 조용했다. 하지만 하나둘씩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이스핀이 입을 떡 벌렸다. 15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총길이가 200cm에 달하는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흑색의 망토가 겨울의 칼날과도 같은 바람에 휘날렸다.
검은색의 망토는 제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사실 그런 정황증거가 많았지만 그들의 전신 갑주는 철색이었고 그 어떤 문양도 새겨지지 않았다. 신분을 숨긴다는 뜻이었다. 겨우 망토가 칠흑이라는 것으로 제국이라는 증거로는 부족했다.
의심만 들 뿐이다.
“드낙 불파겐이라는 자가 둘 중에 누구냐!”
제국기사의 외침에 드낙이 검을 뽑아 겨누었다.
“나다! 왜 제국이 이런 짓을 하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대로 언덕을 내려오며 드낙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스핀! 물러나서 순찰자들을 데리고 도망쳐라!”
드낙은 자신의 최측근부터 챙겼다. 죽으면 영지 운영이 힘들어질 것이 뻔히 보였다. 기사와의 싸움에 아직 능숙하지 않은 것이 이스핀이었다.
“이실레아 경을 데려오겠습니다!”
이스핀은 그대로 도망줄을 놓았다. 드낙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며,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도망을 못 칠 수 있었다.
드낙은 이스핀과 반대로 뛰어갔다. 제국 기사들은 달려가며 온갖 마법을 사용했다.
쿠구구구!
흙이 거세게 튀어 오르며 거대한 몸체를 가졌다. 6미터의 신장을 지닌 골렘의 머리에 검을 쑤셔 박은 제국 기사들이 균형을 잡고, 온갖 대인 마법을 쏘았다.
추적하는 불의 창.
솟구치며 까마득하게 올라가는 얼음의 화살들.
땅에서 튀어나와 발목을 움켜잡는 진흙.
무형의 충격파.
허공에서 튀어나오는 공간의 일그러짐.
몸을 짓누르는 중력.
파지지직!
드낙의 몸에 닿으려는 마법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상쇄되었다. 투구에서 삐져나온 붉은 머리카락은 틀림없는 불파겐의 증거였다.
“틀림없는 드낙 불파겐이다.”
제국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 마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 외의 마법으로 후려친다.”
“도망친 놈들은?”
“목표달성에 위해를 끼칠 수 없다. 불파겐의 자신감을 생각했을 때, 원군은 하루 뒤에나 도착할 수 있다.”
판단 또한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공격 마법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완벽한 상쇄를 보였기 때문이다. 6개의 대인마법이 동시에 후려쳐서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면 거머리처럼 공격마법이 이루어졌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므로 제국 기사들은 깔끔하게 포기한 것이다.
콰앙!
마법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주먹이 내려쳐졌다. 드낙의 옆을 내려친 골렘의 주먹이 퍼서석 쏟아져내리며 형체를 잃으며 고운 흙이 뭉툭하게 쌓여졌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소환체 또한 드낙에게 일정한 거리 이상 근접하면 박살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골렘의 육중한 덩치는 드낙의 공간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제국기사의 대검이 드낙의 어깨를 찔렀다.
캉!
대검이 튕겨져 올라가면서 순식간에 제국기사의 투구가 드낙의 롱소드에 찌그러졌다. 그대로 제국 기사가 얼굴부터 엎어지고, 무릎이 땅에 닿으며 엉덩이가 하늘을 향했다.
“후욱!”
드낙이 호흡을 다시 한 번 정돈하며 긴장을 풀었다. 골렘의 주먹이 드낙의 정면으로 후려쳐졌지만 동시에 흙으로 변하며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흙을 뚫고 대검이 드낙의 가슴을 후려치려고 했다.
땅!
손바닥의 아랫부분으로 대검을 아래로 내려쳤다. 사타구니 밑으로 대검이 푹하고 바닥에 묻혔다.
쾅!
롱소드가 그대로 휘둘러졌다. 폭음이 들렸다. 제국기사의 팔이 꺾였다.
팡!
허공을 후려치며 흙먼지를 지운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투구가 찌그러진 제국기사가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개골이 함몰된 것이 분명했음에도 다시 검을 고쳐잡는 모습에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 뭐냐?”
“뭐냐니. 보고도 모르는 건가.”
“과거에서 튀어나온 망령 놈이다. 월등히 〈진화〉한 인간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팔이 꺾인 놈은 태평한 소리를 지껄였다. 보통이라면 전투불능에 빠져야 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고통으로 조금만 팔이 덜렁거려도 쇼크사할 것인데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극. 그그극!
우그러든 팔 방어구와 투구가 정상의 상태로 변해갔다.
팍!
제국 기사 중 하나가 흑색으로 된 완드를 하나 바닥에 꽂았다.
뚜둑. 뚜두둑!
동시에 살과 뼈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료마법인가.’
순식간에 빛을 잃은 완드였기에 드낙이 뭘 어떻게 하기란 힘들었다.
“〈공간 공격 마법〉조차 상쇄시키는 그 압도적인 혈통.”
“소환체의 붕괴 속도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으로 마신장을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인간이라는 단점이 있다.”
제국 기사들은 빙글빙글 돌며 드낙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하나의 제안을 했다.
“힘의 확인은 끝났다. 드낙 불파겐, 제국으로 와라.”
“별의 힘, 혈통의 끝에 도달한 그 비법이 있다면 인간은 엘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드낙은 고민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자 제국 기사들이 빙글 도는 것을 멈추었다. 대검을 어깨에 놓는 놈도 있었다.
“너희들이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답해줄 수 있나?”
“얼마든지.”
“불파겐은 400년 전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한 쪽은 붕우들의 도움으로 제국으로 흘러갔고, 하나는 홀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그 후예는 어떻게 되었나.”
순식간에 거짓말을 늘어뜨리며 떠보았다. 드낙의 음흉함을 전혀 모르는 제국기사가 대답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제국의 군단장을 죽였다. 도망친 후예는 추격당했고, 엘프의 영토로 넘어갔다.”
“그래? 엘프인가. 놈들도 혈통을 받나?”
“어리석기는. 〈계승〉조차 제대로 안 되었군. 엘프는 영혼과 마력으로 이미 완성된 존재.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 진정으로 완성된 그릇이다.”
“그런데 왜 받아준 거지?”
“엘프의 피를 받은 인간이기 때문이지.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드낙이 웃음소리를 흘리며 검을 고쳐잡아 상단으로 놓으며 상단세를 취했다. 공격일변도. 무시무시한 기세에 제국 기사들이 그대로 덤벼들었다. 드낙은 멈춰있다가 황소처럼 한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쿵!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바위와 바위가 부딪친 소리가 공기를 흔들었다. 단번에 도약한 드낙은 순식간에 포위에서 풀려났고, 몸을 빙글 돌렸다.
대검이 팔 보호구를 긁으며 자연스레 흘러졌다. 파이룬 전신갑주의 유려한 곡선이 제대로 한건 했다.
쾅!
드낙의 무릎이 그대로 제국 기사의 사타구니를 후려치며 들어 올렸다. 대검이 드낙을 후려쳤지만 발이 떠올려진 상태에서 대검이 아플 리가 없었다.
퍼걱!
흉악한 소리와 함께 목이 방어구와 함께 패여지면서 성대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동시에 왼손으로 투구를 잡아 몸 쪽으로 끌어당기며 무릎으로 얼굴을 짓뭉개버렸다.
핏물을 쏟으며 제국 기사가 그대로 벌러덩 뒤집어졌다.
“킥. 크흐흐.”
하지만 그렇게 쓰러진 제국 기사가 키득거렸다. 패여서 뜯겨져나간 목은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이 되어있었고, 수복된 피부 위로 강철로 된 목 보호대가 미립자처럼 모여지는 현상을 모이며 만들어졌다.
쾅!
드낙이 중단세로 검을 세로로 잡고 그 중앙에 왼손을 놓았다. 제국기사의 대검을 맞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우웃.’
드낙이 상당한 충격에 주춤했다. 일격을 넣은 제국 기사가 손목을 스트레칭하듯이 비틀었다. 수증기가 크게 피어올랐다.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강화 마법〉이 분명했다.
“대인능력이 인간을 초월했다.”
“포위를 형성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격렬한 싸움을 유도하는 수밖에. 기술의 정밀도를 낮추는 것이 먼저다.”
“별의 힘일지도. 변수를 많이 만들어서 확인한다.”
그들이 기계적으로 정보를 교환했다. 동시에 드낙을 다시 포위했다. 저번처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드낙은 잘 알았다. 적은 결코 프로그래밍된 AI가 아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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