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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72화 (371/1,239)

0372 <-- 아바레스트에 이끌린 자들 -->

삼일째에는 전신갑주를 하사하는 행사가 짧게 열렸다. 사실 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일정을 길게 두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제식 의례가 조금 길게 이루어졌다.

‘망할 놈의 킹슬레이.’

‘영지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아주 제대로 벌리는구나.’

탄식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신갑주를 내어준 곳은 다름 아니라 킹슬레이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터지자 케이샤가 두 벌을 내어준 것이다. 이실레아와 도렌이 전신갑주가 없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촥.

부채를 펼친 케이샤가 미소 짓는 입가를 가렸다. 정치력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입가를 가리는 문화 또한 존재하는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불파겐의 이후에 빠르게 귀족 문화도 바뀌어갔지만, 북부는 그 잔재가 제법 남아있었다.

‘가져오길 잘했어.’

무식한 짓이지만 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싸우지는 않지만 혈통부터 외모까지 초대 가주와 똑 닮았다. 성별만 달랐다. 그 덕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시작부터 드낙을 흡족시켜준 것은 케이샤 킹슬레이 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가문은 초장부터 많은 것을 불파겐에게 주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관계를 쌓고 후계자를 임신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굵어질 생각을 가졌다.

‘나와 그들은 처한 상황이 달라.’

케이샤는 화장품 사업과 제국에 있는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첫째로 두고 있었다. 실제로 킹슬레이 가문은 문제가 생겨도 많이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킹슬레이 가문의 자원이 불파겐에게 전해지려면 그 곱절에 달하는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드낙 자작은 생각보다 사업이나 영지 운영에 욕심이 없어.’

그저 위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가신들의 충성심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었다.

가신들이 진짜 권력자가 된 기분을 맛보게 하기 때문이었다. 〈드낙 자작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상관이 사사건건 관여하지 않고 일단은 맡기기 때문이다.

케이샤는 그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기에 이렇게 강수를 둘 수 있었다.

그 덕에 드낙은 축제를 하루 더 연장시킬 수 있었다.

“불파겐 영지를 위하여!”

“위하여어어어어!!!!”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는 환호성 속에서 전신갑주를 받았다. 그녀는 투구만 들고 있었는데, 손이 조금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멀리 있는 시민들은 그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드낙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기쁨, 모르는 게 아니지. 오히려 나보다 더 할 것이다.’

세상에 나온 지 1년도 안 되어서 많은 것을 이룩한 것이 드낙이었다. 그는 대영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실레아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드낙은 그녀를 그 때문에 존경하고 있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저 골방에 박혀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거친 풍파에 누구보다도 휩쓸린 것이 이실레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自身)을 지켜내고 이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세상조차도 그녀를 부러뜨리지 못한 것이다.

그 강고함은 드낙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꿈을 가지지 못한 자신이라면 몇 년 만에 이실레아처럼 전신갑주를 얻을 수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군.’

결과는 그저 전신갑주 한 벌에 불과하지만 그 업적은 진정으로 위대한 업적이었다. 적어도 드낙은 그렇게 생각했다. 평범한 삶과 검은 꿈을 지닌 삶을 동시에 살아온 드낙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이실레아의 업적이 달성하기 힘든 것을 알았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전신갑주가 있는 명문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드낙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 너의 위업은 많은 귀족들이 가볍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라.”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브릴리언트 가문을 위해서, 불파겐 영지를 위해서, 자신의 장원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하라.”

드낙이 직접적으로 이실레아의 우선순위를 인정해주었다. 그가 말한 순서에 이실레아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낙이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의 재능을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도렌! 도렌!”

“또 도렌이야? 또렌으로 가즈아!”

착한 사람만큼 놀림을 잘 받는 사람이 없었다. 동시에 축복하기도 쉬웠다. 다수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것 참. 너무 나한테 집중되는데.’

도렌은 겹경사나 다름없었다. 독기를 풀풀 풍기지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미녀가 이실레아였다. 그 날카로운 맛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남자의 상상력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축제는 그 뒤로 2일이나 더 진행되었다. 〈지하 하수구〉의 건설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드낙이 포상금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 돌 저수지〉 건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에 일한 자들에게도 돈이 떨어졌다.

“어흐흐흐흑!”

한 번에 세쌍둥이를 낳아서 눈이 퀭한 나무꾼은 펑펑 울기까지 했다. 마음고생이 대단히 심한 듯했다. 그야 이 세상에서 아이 3명을 돌보는 일은 지옥보다 더 심했다. 드낙은 그걸 보고 안쓰러워서 게제라스에게 따로 고용인 하나를 1년 동안 붙여주라고 말했다.

거침없이 쓰는 돈에 게제라스 총관이 눈을 찌푸렸지만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반대하기에는 그는 담력이 없었다. 음모를 꾸미고 암살을 계획해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게제라스였다.

그런 면모 때문에 드낙에게 굴복한 것도 없잖아있었다.

축제는 계속 이어졌다.

〈순찰자〉는 빛을 등지고 있는 곳에서 창문을 통해서 오가는 이들을 보고 있었다. 술집에서 나오는 이들과 눈이 마주쳐도 순찰자는 태평했다. 상대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창문에 있는 자신을 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방을 옮기며 그 짓을 반복했다.

‘4명 아니 6명?’

하루가 지날수록 용의자는 좁혀졌다. 이제는 1명에 2명씩은 붙을 정도로 추려진 상태였다. 호수 마을에는 술집의 숫자가 적었다. 일부러였다. 게제라스만큼 첫 단추를 좋아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술의 제조와 유통은 매우 엄격하지는 않았지만 술집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술집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 덕에 〈순찰자 케샤스〉와 순찰자들은 축제가 끝나기도 전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D-day는 축제가 한창 진행되는 혼잡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벌컥!

딱딱한 〈전투 로브〉를 대놓고 입은 채 술집으로 들어섰다. 서서히 파도처럼 술집이 조용해졌다. 그곳에서 한 놈이 그대로 1층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억!”

단번에 철사에 걸려 넘어졌다. 목이 짓눌리고, 다리가 걷어차여서 x자로 걸쳐짐과 동시에 밧줄이 발을 묶었다. 순식간에 제압을 당했다.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순찰자라니···”

“보기 힘든 자들인데. 왜 이런 동부에?”

오크 때문에 순찰자라는 존재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보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순찰자가 가지는 선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진정한 〈붉은 요새〉의 계승자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자들이었다. 병사들조차도 함부로 〈전투 로브〉의 안쪽을 검문하지 못할 정도였다.

귀족이 그 상황에 있어야지만 검문이 가능할 정도였다.

오크를 성벽 밖에서 주시한다는 것은 보통 정신과 실력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낙 자작님께 가면 되오.”

“알겠습니다.”

병사들에게 제국의 끄나풀을 넘겨주었다. 술집에서 오래 지내면서도 술에 취해 살지 않으며 출퇴근하듯이 들락날락하는 놈들이었다. 그 숫자는 6명이었다. 걔 중에는 무죄인 자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무죄를 증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황 증거를 엎을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무죄추정원칙을 개뿔로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단어조차 없는 세상이었다. 의심스러우면 죽이는 게 최고다.

작은 혼란이 있었지만 금방 흩어져 버렸다.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망친 순찰자〉와 〈병사〉들의 협력으로 파고들면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읍! 흐으읍!”

재갈이 물려진 채 그대로 끌려갔다. 침이 질펀하게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땅! 땅! 땅!

몽펠리에의 대장장이였던 〈붐베일 블랙스미스〉는 망치를 두드렸다. 달구어진 체인 메일은 거칠게 뜯겨졌다.

취이이익!

끊어진 고리를 식히고 잣대로 대충 대어본 붐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나며 붐베일 또한 망치를 손에서 놓았다. 엄청난 크기의 마갑이 완성되었다. 이실레아에게 껌뻑 죽은 발룬을 위한 마갑이었다.

다른 주문도 많았지만 붐베일은 영물 발룬을 선택했다. 숫사슴에 엄청난 덩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놈이었다.

그가 공을 탐하는 이유는 당연히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다. 범죄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강제 이주를 당했기 때문이다. 드낙과 불파겐 영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 첫 단추가 〈발룬의 마갑〉이었다.

이실레아는 당연히 한달음에 달려갔다. 못 해도 반년 혹은 일 년은 기다려야 나올 줄 알았는데, 축제가 끝나고 출정 준비를 하는 와중에 나왔기 때문이다.

“허, 대단하십니다.”

이실레아가 마갑을 뒤집어서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붐베일은 조용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촘촘하고 섬세하다.’

“후면에는 체인메일을 끊어서 판금과 연결을 시켰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붐베일이 대답했다.

“체중이 어마어마한 것이 발룬 아닙니까? 그 몸체의 뒤를 찌를 놈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고 그럴 상황도 얻기 힘들 겁니다. 오히려 후면까지 두툼하게 만들면 더 위험할 겁니다.”

이실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일하는 번거로움으로 갑주의 무게를 줄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이미 더 무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발룬의 체중은 대단히 높았다. 다른 것을 노리는 게 좋았다.

“화살이나 투창 때문에 앞가슴의 판금은 더 굵습니다. 관절을 보호하는 체인 메일은 볼록하게 튀어나와있을 겁니다. 확인해보십시오.”

그 말에 이실레아가 손으로 철두철미하게 발목까지 내려가는 다리를 집었다. 보통 마갑은 천으로 말을 덮은 것처럼 되는데 이것은 발룬 맞춤형이었다.

“사이즈도 한 치수 크고, 볼록해서 크게 굽혀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여러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하셨다니.”

“발룬이 날뛰는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나중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말해주십시오.”

전면 강화에 후면 약화를 통한 무게 감소. 판금과 체인 메일을 통한 다채로운 방어능력. 합격이었다.

“질 낮은 아바레스트도 막을 수 있습니까?”

“뚫립니다. 발룬의 털과 가죽을 생각하면 잔상처로 끝날 겁니다. 체인 메일이 있는 관절의 뼈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관통의 속성을 지닌 화살은 살과 가죽을 뚫는 것보다 뼈를 부수는 것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실레아가 자신의 마음이라며 은화를 수십 닢 얹었다. 마갑의 가치에 비해서 형편없는 값이었지만 붐베일 블랙스미스는 죄인이었다. 이것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병사들이 마갑을 들어서 밖으로 나갔다.

끼익.

문을 닫은 붐베일 블랙스미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크온 몽펠리에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불파겐 영지의 군사용도를 위한 장비 제작에서 일인자가 되어라.]

[언제까지 말씀이십니까?]

[불파겐이 등을 돌리기 전까지.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해라. 그것이 곧 몽펠리에를 위한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철두철미하신 분. 자신의 붕우를 믿어도 그 가문은 못 믿으신다, 이것인가···하지만 몽펠리에와 불파겐 영지는 결코 멀지 않다.’

붐베일이 지친 몸을 이끌고 작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귀족적인 남자였다. 그는 우정을 믿었지만, 그 우정이 가문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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