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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71화 (370/1,239)

0371 <-- 아바레스트에 이끌린 자들 -->

출정을 위한 준비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드낙의 명령이었기 때문이고, 그 내막은 최측근만 알 수 있었다. 부인들 또한 알 수 없었다. 확실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게제라스만 재미를 봤다. 은근슬쩍 말해줌으로써 부인들의 점수를 땄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몽펠리에, 파이룬, 킹슬레이에게서는 선물도 받았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큰 것을 주면 다음이 힘들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계는 처음부터 크게 나오면 안 되었다.

상대가 부담을 크게 느끼기에 오래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많이 주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졸부(猝富)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물론 게제라스는 레이시아는 방문하지 않았다. 드낙이 모든 부인을 그럭저럭 모두 아껴주기 때문이었다.

출정에 대한 이야기를 빠르게 덮기 위해서 다른 이슈가 필요했다.

당연히 방계 임명에 대한 것이었다.

“평민이 진짜로 불파겐 자작에게 성씨를 받게 되다니··· 허!”

술집의 매상도 커졌다. 자연스레 오고 가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업장은 게제라스의 손길을 안 받은 곳이 없어서 곧 세금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말 하기에는 일러. 이스핀 호위가 가진 전신갑주를 이실레아 경한테 양도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이스핀의 전신갑주에 대한 루머가 이어져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귀족은 역시 귀족이라는 건가. 퉷!”

다른 테이블에서 소리가 났다.

“누가 그딴 소리를 해? 그럼 왜 〈호위 기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냐고.”

“병신아. 그럼 왜 전신갑주 안 입고 다니는 놈들 보고 〈자유 기사〉라고 말하냐? 네 말대로라면 자유 기사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거 아냐? 엉?”

“개 같은 세상! 진짜로 이스핀의 전신갑주가 이실레아 경한테 가면 난 정말 빡돌꺼야!”

“내기할래?”

“싫어!”

누구도 출정이 오고 갔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병사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스핀은 남자다운 형제애를 가지고 있어서 병사와 친밀했고, 이실레아의 경우에는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녀가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이스핀의 압승이었겠지만 계절을 보내고 난 뒤로는 그녀를 존경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서로 반반이니 자연스레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호수 마을이 시끌시끌해지고, 방계 임명식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레 둥근 마을 언덕과 엘라한 토성에서 축하를 위해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신성력으로 유전병을 고친 엘라한의 인물들도 있었다.

“오랜만이다.”

“불파겐 자작님을 뵙습니다. 백금 왕가에게서 정식으로 작위를 받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심해색의 눈동자를 지닌 〈페슬라 엘라한〉의 말에 드낙이 웃어 보였다.

“몸은 좀 어떤가?”

“검을 쥘 만합니다.”

드낙이 페슬라의 손목을 잡아 손바닥을 보았다. 굳은살이 박힌 것이 열심히 한 듯했다.

“앞으로 살을 더 많이 찌워야겠어. 그런 몸으로 기사가 어찌 되겠나.”

“노력하겠습니다.”

잔소리도 한 번 해주고.

“물의 힘이 있으니, 단점만 고치면 불파겐 가문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칭찬도 한 번 해줬다. 엘라한 가문의 물의 능력은 전투적으로도 내정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 그들의 혈통이 크게 부흥하면 물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사방팔방 산이든 지하든 하늘의 빗물이든 닥치는 대로 모으려는 호수 마을의 형편을 생각하면 확 체감이 되는 힘이었다.

‘식량이 많아야 인구가 많아지고, 인구가 많아야 강국이 된다.’

드낙은 페슬라와 함께 호수 마을의 중요한 시설들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만큼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낼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다음 날에도 할 일이 생겼다.

“자작님! 〈고블린 작업장〉이 완성되었습니다. 게제라스 총관께서 한 번 봐달라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래? 내 곧 간다고 전해라.”

오전에는 〈고블린 주술사 사락스〉가 지내게 될 작업장을 방문했다.

“흐음.”

깊게 냄새를 맡았다. 나무 냄새가 물씬 났다. 고블린 하나가 지내기에는 제법 큰 시설이었다. 또한 사락스가 원하는 고블린스러운 물건들이 만들어져 곳곳에 배치되어있었다. 매우 인도적이었다. 무엇보다 사락스의 의견이 반영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둘러보는 드낙에게 2층에서 허둥지둥 내려온 사락스가 냅다 절을 했다. 식량 걱정 없고, 도리어 인간들의 맛있는 요리 문화 덕분에 천국에서 사는 것 같은 것이 그였다. 이곳으로 오면서 주술사인 것을 이용해서 암컷 고블린도 하나 데려온 사락스였다.

“애를 낳았다던데.”

“예. 셋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두 주술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사락스가 고개를 땅에 박은 채 대답했다.

“그래. 알아서 잘 하리라고 본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사락스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트롤들의 부산물을 보고 드낙에게 반항할 생각이 싹 사라진 것이 사락스였다.

“네가 할 일은 〈치료 도기〉를 만드는 일이다.”

“예.”

“공짜로 인간들에게 줘서는 안 된다. 동화 10닢은 받아야 한다.”

매우 싼값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드낙이 원하는 것은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돈을 풀고, 돈을 회수하고 그것이 규모를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 시대의 경제학과는 크게 달랐다.

〈중상주의(重商主義)〉처럼 강력한 보호무역과 동시에 국가의 부유함은 국고의 양이라는 소리와는 격이 달랐다. 그들은 그저 쌓아놓고, 필요할 때 푼다면 드낙은 쌓아놓지 않고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현대인의 강력함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각이었다.

〈돈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진리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저 인간의 본능대로 모으기만 할 뿐이었다.

〈고블린 작업장〉은 〈치료 도기〉를 싸게 팔아서 민간에 있는 동화를 회수하여 드낙의 사업을 도와줄 것이다. 공짜로 돈을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 선물을 가져왔다. 마음에 들 것이다.”

“어떤 것입니까?”

“작업장 입구에 세워두었다. 크기가 제법 크다.”

드낙이 밖으로 나가자 사락스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헉 소리를 냈다.

“저, 정말로 이것을 저에게 하사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이 트롤의 두개골은 이제 이 작업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나의 뜻이기도 하다. 소중히 대해라.”

“예!”

대답을 한 〈고블린 주술사 사락스〉는 손을 벌벌 떨었다. 저런 트롤의 두개골이 수십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이 드낙이라는 인간 지배자였기 때문이다.

작업장 입구 옆에 떡하니 있는 사람만 한 트롤의 두개골! 그것이 드낙이 사락스에게 주는 선물이자 그를 항상 두려워하라는 협박 도구이기도 했다.

되돌아가는 드낙의 눈에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보였다. 등에 큰 망을 메고 나무집게로 능숙하게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담았다.

“이보게.”

드낙이 그를 부르자 몸을 크게 들썩이며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등에 짊어진 쓰레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저런! 인사는 되었으니 어서 일어나라.”

“예!”

드낙은 쓰레기를 함께 다시 주워주며 말했다.

“마을에 쓰레기가 많은가?”

"매일 새로 생기는 것이 신기합니다.”

드낙은 청소부 또한 고용했다. 그들은 하루에 3번. 정해진 구역을 돌아다니며 돈을 버는 자들이었다. 선수금과 후수금을 두어 한 달을 기준으로 첫 날과 보름에 월급을 나누어서 받기 때문에 인기가 대단했다.

아랫것들에게 돈을 베푸는 직업이 매우 적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드낙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었다.

‘청소부가 되는 조건은 가족이 많아야 한다는 것뿐이지.’

가장 많은 가족을 지닌 자를 엄선하여 골랐다. 소비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집들이었다. 물론 계약직으로 1년마다 돌아서 하는 것이 청소부 일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일거리가 드낙의 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저수지 이용이나 하수구 세금 등 세금 또한 곳곳에서 평이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악! 내 물건! 이 개자식들아!”

병사들이 거칠게 좌판을 헤집었다. 물건들을 줍기 위해 버둥거리던 남자가 그대로 병사에게 짓눌리고 팔이 꺾였다.

“가만히 있어!”

몇몇 병사는 남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그제서야 남자가 조용해졌다.

‘쯧.’

서민의 돈을 빼앗고, 동시에 서민에게 돈을 내어주는 것은 균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길거리에 좌판을 까는 잡상인은 병사들의 손에 잡혀가고 있었다. 상점은 세금을 내는 것에 반해서 좌판은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건에 부가세를 남기는 것은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상점을 주고 관리를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었다.

‘상인들의 부정부패를 이용해서 놈들의 재산도 빼앗아야 하지.’

제법 부유해진 상인들의 창고를 터는 계략도 일단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었다. 낙수효과? 그딴 것을 믿으며 산 박호훈의 최후는 집 한 채도 못 사는 삶이었다.

〈둥근 언덕 마을〉에서 케샤스와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중에 순찰자만 30명이 넘었다. 드낙의 밀명을 받고 섞여 온 것이다.

밤이 으슥한 때에 케샤스와 드낙은 만남을 가졌다. 업무를 본다고 하며 밤자리를 피한 상황이었기에 집무실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닫힌 창문에는 틈 하나 없었고, 창문이나 엿들을 만한 곳에는 병사가 배치되어있었다. 드낙과 게제라스 총관의 안전을 위해서 드낙이 오고부터 행한 일이었다.

‘제국의 스파이가 있는 이상 더욱 철두철미 해져야 한다.’

드낙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케샤스는 높은 집중력으로 빠짐없이 들었다. 몇몇 질문들에 대해서도 드낙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축제를 하면서 이 마을에 있는 제국의 끄나풀부터 잡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잡을 수 있나?”

“못 잡을 거야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 잡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드낙은 그럼에도 찬성했다. 정보력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라고 봤다.

축제는 긴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첫날에는 트롤의 두개골을 전시하며 무투제를 열었다.

“하앗! 이야압!”

힘깨나 자랑하는 자들이 나서서 상금을 탔다.

“자! 골라, 골라! 새총으로 맞추면 무조건 이득!”

자잘한 놀잇거리로 작은 돈을 쥐기도 했기에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 물론 싸움도 일어났는데, 야바위꾼들 때문이었다. 놈들은 번 돈을 모조리 회수당했다. 그것으로 벌지 않은 돈조차도 빼앗겼다.

둘째 날에는 임명식이 이루어졌다.

캉!

“우!”

병사들은 그간 연습한 제식으로 창과 검의 길을 만들었고, 도렌이 그 길을 걸었다.

“와아아아!!!”

“도렌! 도렌! 도렌!”

도렌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단히 많았다. 스스로 모은 꽃들이 길에 떨어졌고, 돈을 쥐여주지 않았음에도 그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사회에 공헌하며 산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자유기사 시절일 때부터 나와 함께했으며!”

“집채만 한 붉은털을 지닌 일각수와의 싸움에서도 함께하였으며!”

드낙은 도렌과 함께한 것을 말해나갔다. 또한 이 마을에서 행한 선한 일들을 자신의 입으로 말해주어 사람들의 호응을 크게 끌어내기도 했다.

“··· 그렇기에 도렌을 불파겐 가문의 방계로서 받아들일 것이며, 성씨를 하사한다.”

드낙이 검을 들어 올려 옆에 놓인 길쭉한 형태의 큰 그릇에 검을 담갔다. 검을 대각선으로 검신을 전부 젖을 정도로 특수한 형태의 그릇이었고, 불파겐 가문 특유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 검을 들어 올려 도렌의 머리 위에 휘둘렀다.

팡!

파공성이 나며 물이 분무기처럼 터져나가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검을 직선으로 진중하고, 천천히 내려 도렌의 어깨에 놓았다.

“홀그린(Hallgreen)의 성씨를 하사한다.”

와아아아!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었다. 평민이 성씨를 받는 광경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인과 시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도렌을 축하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드낙이 말한 성씨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작정을 했구나.’

‘평민에게 어찌···’

‘정말로 자작이 도렌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보통 일이 아닌데.’

반면 이실레아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주식으로 치자면 도렌 코인이 엄청나게 떡상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날에 이스핀 또한 롤레온(Rollleon)의 성씨를 하사받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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