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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70화 (369/1,239)

0370 <-- 아바레스트에 이끌린 자들 -->

드낙은 곧장 출정 명령을 내렸다.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며 무엇보다 못해도 봄이 끝나기 전에 놈들을 끌고 와서 아직 개간하지 못한 석지를 개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00년의 세월이 어떻게 이 넓은 평야를 석지로 만들었는지는 그도 몰랐지만, 놈들은 훌륭한 노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두 사람이 일어났다.

‘보급을 준비하는데 3일은 걸릴 것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지만 병사가 움직이면 그것도 달라질 터였다. 저녁에는 더욱 바쁘게 일이 돌아갔다.

〈자유마을 진압〉을 위한 원탁회의가 있었다. 부인들은 당연히 참가했는데, 드낙이 참관을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명령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원하는 것이었다. 영지가 어찌 돌아가는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가치가 높은 기회였다.

안젤리카 에드윈과 레이시아 플래티넘 또한 참석했다. 두 사람은 지금 당장 눈에 띄지 않으며 처지가 비슷했기에 함께 벽에 있는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가문은 시녀들에게 둘러싸이다시피 했다. 외척의 힘이 절로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자유마을에 있는 자유기사의 숫자는 열다섯이고, 그들이 마을의 지배자가 되어있지만 군사적으로는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이실레아가 드낙의 바로 오른쪽에서 일어서서 말을 이어나갔다.

게제라스가 깊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드낙의 왼편에 있었다. 게제라스의 옆에는 도렌이 있었고, 이스핀은 원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며 게제라스의 옆에 서있었다. 그는 드낙의 호위기사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아바레스트가 강력한가?”

“석궁의 3배에서 크게는 10배에 달하는 파괴력을 지닌 것이 아바레스트입니다. 제국 공장에서도 생산량이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부품을 알아도 만들 수 없을 정도이며 마법사들도 혀를 내둘 정도의 복잡함을 보이는 물건입니다.”

〈기사 살해자〉로 이름을 높인 것이 아바레스트였다. 자유 마을은 그 정도로 상태가 좋은 아바레스트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었다.

‘제국 놈들. 하찮은 짓거리를.’

드낙이 부재일 때를 노려서 미리 약을 쳐놓고 드낙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들이닥친 것이 분명했다. 정황만으로도 사람의 목을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높은 직위, 높은 신분의 생각이 곧 증거였다.

〈아바레스트〉가 그 증거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그 품질이 심히 낮거나 도난된 것이라고 말할 터였기에 그런 생각 따위를 원탁회의에서 말하는 자는 1명도 없었다.

부인들은 참관만이 가능했고, 책임자들 중에서는 이실레아와 도렌, 이스핀을 제외하면 규모있는 전투를 경험한 적이 없는 자들뿐이었다.

“그러면 병사들을 동원하는 것은 피해가 너무 큰 것 아닙니까? 목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못해도 3발은 쏘지 않겠습니까? 정확한 사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이실레아가 즉답했다. 전신갑주를 획득하는 일이 대단히 힘든 것이 자유기사였다. 〈기사 살해자〉라고 불리는 석궁, 아바레스트는 꿈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숙련된 자라면 200~300걸음의 밖에서도 죽일 수 있습니다.”

“헉!”

이스핀이 눈을 부릅떴다. 부상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라 죽일 수 있다니? 놀라서 눈이 부릅 떠졌다.

“하지만 대놓고 쓰는 것으로 보아서 그리 품질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끽해야 200걸음 내외일 것입니다. 또한 장전하는 것이 대단히 힘듭니다. 잘해봤자 2발일 겁니다.”

이실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병사들을 투입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스핀 호위기사의 말대로 병사를 직접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최고이며, 기사로 들어가 꺾는 것이 차선입니다.”

그 말에 자연히 항복에 대한 것을 먼저 짚었다. 물론 누구도 그들이 쉽게 항복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국에게서 받은 것이 거의 확실한 아바레스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이라도 싸울 겁니다.”

“싸우면 끝장을 내야지.”

이실레아와 드낙이 쿵짝을 치듯이 말했다. 한 번 칼을 빼어들어 공격한 놈을 〈선의 업〉을 쌓기 위해서 용서한다는 생각?

‘미친 개소리지.’

검을 쥔 놈은 악인(惡人)이다. 동족인 인간부터 다른 동물과 몬스터까지 모조리 죽이고 다니기 때문이다. 명예를 위해서 자유기사는 자신의 실력이 닿는 것 중에서 안 죽여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놈들을 죽이고 부려먹는 것에 대해 드낙은 〈자비〉를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용서해서 생기는 선의 업보다 불파겐을 쉽게 보는 악인들이 몰려와서 치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가서 흐트러 놓으면 이실레아 경, 도렌 부대장, 이스핀 호위기사가 목책 위를 점령하거나, 혼란케하면 병사들이 들어오면 될 것 같은데.”

“마법을 사용한다면 식은 죽 먹기입니다.”

상대가 코앞에서 날뛰는데 침착하게 아바레스트를 겨누고 쏠 담대함이 있는 놈은 몇 없을 것이다. 드낙이 휩쓸고 나면 자연스럽게 들어온 나머지 3인은 적의 후방에 있는 격이었다.

‘불파겐의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 후방으로 고개를 돌릴 놈은 없지.’

드낙의 존재감, 그것만으로도 적은 강제적으로 전방을 드낙이 있는 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전술적으로 드낙은 앞과 뒤를 한순간에 바꾸는 조커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군대, 병사들의 무리에서 이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자신들은 가만히 있는데, 상대가 알아서 뒤통수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전술보다 확실한 강점을 손바닥 뒤집듯이 가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무시무시한 전술이지.’

간단하고, 알기 쉽지만 그것을 파훼할 방법은 드낙을 막는 방법뿐이었다. 당연히 〈자유 마을〉은 불가능했다.

“불파겐의 방식대로 한다면 자유마을은 손쉽게 항복할 겁니다.”

“주동자만 죽인다고 외치고, 나머지는 노예로 삼으십시오.”

“그럴 생각이다.”

자잘한 것에 대해서 말하던 도중 드낙이 입을 꾹 다물었다.

‘···?’

뒤통수가 쎄했다.

그건 국민게임을 할 때, 상대가 도박(날빌)을 한 낌새를 느낀 기분과 흡사했다. 얼마나 치사하게 하냐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자작님?”

게제라스가 그를 부르자 드낙이 손으로 제지했다. 주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깊게 고민한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냥 드잡이질 한 번 하자고, 이 짓을 벌렸을까?’

아니다. 드낙이 이 세계에서 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진짜 지독하게 비열하고, 똑똑하고, 치사한 새끼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명예를 떠받들던 놈들도 뒷짐 쥔 손에는 이권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귀족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무력으로 명예를 드높여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만들어 시민들을 뒤흔들고 있었다.

위대한 전투. 힘든 토벌 등.

‘제국이 스스로를 알린 것이 아바레스트다.’

이실레아와 도렌은 아바레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자유 마을의 병력 때문에 본인들의 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곧, 내가 와야지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드낙이 해결해야만 하는가. 그런 조건을 위해서 제국이라는 것을 뻔히 보이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무력을 알기 위해서. 아직도 불파겐다운 짓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렇다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제국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 불파겐다운 짓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제국이 일찍 싹을 자르겠다고 나올 수 있다.’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판단에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접근도 다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방도를 모색하며 시간을 소모할 것이다.

제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데 자신의 전력을 아끼기만 해서는 꿀도 똥이 될 수 있었다. 드낙이 지닌 것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결코 예전 불파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옳았다.

‘핏빛쥐들을 단단한 산에 남겨둔 것이 아쉽다.’

불파겐과 정반대의 능력치를 지닌 것이 핏빛쥐들이었다. 그들이 있었다면 능수능란하고 쉽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호수 마을에도 스파이가 들어와서 귀동냥을 하고 있겠지.’

드낙은 자유마을과의 일에 제국이 자신을 시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과거의 망령이 튀어나왔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흠···게제라스 총관, 이실레아 경, 이스핀 호위기사와 도렌 부대장을 제외하고 모두 물러나라.”

드낙의 진중함에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바레스트는 곧 제국의 일이다.”

“어떻게 나오는지 알려는 것 아닙니까? 대단한 자들도 없었습니다. 운 좋게 아바레스트를 얻은 것뿐입니다.”

“그걸 어찌 아는가?”

이실레아의 빠른 대답에 드낙이 물었다.

“자유기사들 모두 북부를 떠돌던 자들이며, 그들과 규합한 이들은 하나같이 규율이 없었습니다. 제국은 그저 아바레스트를 준 것뿐입니다. 불파겐 영지가 제대로 운영되는 시간을 줄이고, 한 번 보겠다는 겁니다.”

“그래?”

드낙은 자신이 헛발질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귀가 팔랑거렸기 때문이다.

“놈들이 정말로 수를 썼다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벌였을 겁니다. 하룻강아지들이라도 뭉쳐서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감당하기 힘든 법 아닙니까.”

맞는 소리였다. 하지만 드낙은 이 일에 신중함을 넣고 싶어 했다. 그래야 제국이 자신을 다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서를 조금 바꾸고 싶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축제를 크게 벌리고, 〈둥근 언덕 마을〉의 케샤스를 비롯한 순찰자들을 이용해서 자유 마을에서 도망을 치거나 그 주위에서 은신하고 있는 제국의 끄나풀을 최대한 많이 잡고 싶다.”

반대는 없었다. 이래나 저래나 제국이 당장 그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남부 왕국이 크게 내전에 휩싸여도 침공하지 않았다. 오지라고 생각했고, 침략해서 지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원탁회의는 끝이 났다.

드낙은 레이시아 플래티넘과 남은 하루를 보냈다. 성관계는 하지 않았는데, 다른 부인보다 1년 늦게 아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일선상에 서면 그녀가 힘들어질 수 있었다.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하루 번갈아 집을 달리하며 밤 자리에 드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저를 빼주셨으면 합니다.”

드낙이 레이시아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깃든 두려움에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방문하겠습니다. 제대로 대우를 받는지 직접 봐야 하고 자주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차 마실 시간은 다른 이들도 이해해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추억에 대해서였다. 드낙은 듣기만 했다. 드낙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해도 대부분이 거짓이었기 때문에 레이시아의 추억을 듣는 것에 집중했다.

같은 침대에서 누워서 드낙이 잠에 빠져들었다가 레이시아의 비명에 벌떡 일어났다.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를 드낙이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괜찮습니까?”

“악몽을 조금···”

침대에 앉혀서 데운 차를 가져다주었다. 무슨 악몽인지는 물어보지도 못했다. 가냘픈 그녀는 드낙이 옆에 앉았음에도 조금 옆으로 움직이며 그를 밀어냈다.

그게 그녀가 살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새하얀 피부와 윤기 있는 은발, 가냘픈 어깨를 드낙은 눈을 돌려 외면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드낙은 말을 건넸다.

“내가 끓인 차는 어떻습니까?”

“맛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해드려야겠습니다. 솔직하지 못하시니.”

“음··· 첫맛은 너무 달고, 끝 맛은 떫은 맛이 심합니다.”

“너무 끓여서 떫은 맛이 나길래 설탕을 넣었는데, 아마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드낙이 다시 찻잔을 회수하려고 했다. 자신이 마셔도 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시아가 웃으며 드낙의 손길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도 따뜻해요. 이대로 마셔도 괜찮습니다.”

그가 볼을 긁었다.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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