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68화 (367/1,239)

0368 <-- 귀환 -->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은 원탁회의에서 볼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쉬이 보여줄 자들도 아니었다. 그저 날 선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혼자서 먼저 치고 올라선 〈케이샤 킹슬레이(Keisha Kingslay)〉는 확실히 사업을 해봤기에 감각이 뛰어났다.

그 덕에 다른 이들은 표정은 숨겼지만, 그녀의 활약에 벌써부터 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을 혼란케해서 자신들이 활개를 쳐야 하는데,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해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춤을 출 때, 자신은 조용히 품위를 세운다 이건가?’

‘세율은 적겠지만, 그래도 모으면 어마어마할 텐데. 두려움도 모르는 건가?’

불파겐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것은 킹슬레이 가문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북부의 서부에 있는 것이 킹슬레이 가문이었고, 정반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불파겐 가문이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나이에 맞지 않음에도 결혼을 추진시킬 정도였다.

멀리 있는 세력과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는 창칼로 다루어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었다.

“······”

‘이게 끝이네. 역시 만만히 볼 게 아니야.’

그녀 덕분에 불파겐 자작령 특유의 장원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문제를 세우면 세울수록 케이샤만 점수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법 늙은 시녀들의 안목이 실로 대단했다.

역시 명문가답게 조언자를 제대로 딸려보냈다.

‘에오윈 가문과 플래티넘에게 버림받은 공주는 아예 참석도 안 했고.’

자신들의 발판이 될 격이 낮은 것들은 드낙에 의해서 미리 쳐내졌다. 그 덕에 원탁회의 자체는 빠르게 안건이 통과되었다. 서로 세력이 비슷하면 쉽게 지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부인들에게 장원을 하사하고 싶은데, 서쪽, 남쪽, 북쪽 이렇게 거리를 두고 내어주고 싶습니다. 괜찮으시지요?”

“대단히 감사할 일입니다.”

세 사람은 당연히 동의했다. 솔직히 말해서 장원을 하사받으려면 더 많은 것을 불파겐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호수 마을〉에 도착하고 첫 번째 원탁회의에서 하사받을 줄은 몰랐다.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드낙이 생각보다 여자에게 약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드낙은 순수한 배려이고, 앞으로의 일에 순풍을 만난 배처럼 향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해준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낙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처럼 여겨졌다.

“크흠. 위치는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게제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그 순간을 틈타서 드낙이 손짓하며 말했다.

“게제라스 총관도 이제 어엿한 영지의 내정관이 되었는데, 총관이라는 말보다는 내정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예?”

게제라스가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내정관이라는 이름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북부의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부인들은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가진 마을도 몇 안 되는데, 급하십니다. 더군다나 내정관의 이름이 아무에게나 어울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작은 회의장에서 임명하기에는 너무 큰 직책 아닙니까? 시일을 조금 더 늦춰서 때를 보고 하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북부 귀족들도 곱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드낙은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부터 이래라저래라 하려는 것입니까?”

부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시녀들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드낙이 눈으로 회의장을 한 번 휩쓸었기 때문이다. 멈칫한 시녀 중 하나는 넘어져 무릎을 땅에 박기도 했다.

그만큼 드낙의 명성은 대단했다. 딱히 기세를 피울 필요도 없었다.

대통령 이름 석자 함부로 부르는 것들도 진짜 대통령 앞에서는 간신처럼 고개를 숙이기 바쁘고, 악수를 요청하는데 극성인 법이었다. 하물며 드낙의 명성은 북부를 크게 흔들어놓았다.

새로운 신성이나 다름없었다.

“드낙 자작님. 저 또한 아직은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흠···총관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드낙이 게제라스의 청에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주변 시녀들과 부인들의 고개 숙인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엄청난 총애를 받고 있구나.’

‘자신의 사람에게는 잘해준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진짜였다니.’

‘그래도 귀족에 정실과 첩의 말보다 한낱 비천한 문인의 말을 더 듣다니···’

생쇼를 하고 난 뒤에 다시 게제라스가 기침하며 주제를 돌렸다. 능숙했다.

“남쪽에는 아샤 파이룬 님의 장원이 들어설 것입니다. 서쪽에는 록시 몽펠리에 님의 장원이 들어설 것이고, 북쪽에는 킹슬레이 가문의 장원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좋았어!’

케이샤가 원탁 아래에 내린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국과 거리가 가까운 북쪽에 장원이 생기면 무조건 좋았다.

‘이런··· 어떡해···’

아샤 파이룬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도로 사업 때문이라도 파이룬 가문이 서쪽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건 너무 의도적인데. 나와 파이룬끼리 잘 해보라는 소리잖아.’

록시 몽펠리에는 한순간에 방위에 따른 배치에서 수작질을 부린 드낙의 노림수가 풍기는 누린내를 맡았다.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이번 일을 통해서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불파겐 영지에서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며 첫 단추인 만큼 잘 해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제법이야.’

문제의 수준에 록시는 싱글벙글해졌다. 재미났기 때문이었다. 외교적인 문제이기도 했고,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이 이곳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여기기에 가장 먼저 판단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당연히 킹슬레이보다 자신과 저 파이룬 박쥐들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파이룬 놈들의 기둥을, 확? 다 뽑아버려?’

록시가 순식간에 강경하게 나오면 파이룬은 결국 남쪽을 크게 경유하는 도로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면 불파겐 영지는 덕을 많이 볼 수 없어.’

파이룬에게 한 방을 크게 먹여주는 대신에 불파겐은 도로 공사를 완전히 망치게 될 것이다. 즉, 몽펠리에의 판단에는 불파겐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고민해야 할 것이 많은 문제였고, 결과는 두 가문은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샤 파이룬은 드낙에게 호소했다.

“도로를 개통하는데 제가 하사받은 장원을 경유해야 가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로를 더 넓고 빠르게 짓지 않겠습니까?”

“하하. 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드낙은 웃으면서 그대로 흘려버렸다. 아샤 파이룬에게 귓속말을 한 늙은 시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시녀의 귓속말에 아샤 파이룬이 결국 록시 몽펠리에에게 말을 건넸다.

“양보를 해주시겠어요?”

“글쎄요. 고민을 많이 해보고, 이야기를 자주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요? 중요한 문제이니.”

록시의 말에 파이룬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드낙은 그런 두 가문에게 말했다.

“최대한 잘 마무리하세요. 앞으로 자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나는 서로 가문이 달라도 내 부인이 된 이상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급한 것은 파이룬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었다. 파이룬이 차라리 안 바꿔주면 몽펠리에 또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의 총애를 위해서라도 불파겐 영지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문의 불화로 망하게 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이 있었기에 파이룬을 크게 압박하지 못할 터였다. 지금의 상황은 내일만 되어도 금세 역전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드낙의 총애였고, 그의 혈통을 지닌 아이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드낙은 티타임을 아샤 파이룬과 가지며 잘 다독였다.

저녁에는 케이샤가 호수 마을의 동쪽, 대산이 있는 방향에 짓고 있는 화장품 작업장을 방문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작업자들도 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녀는 양피지를 겹겹이로 들고 있었다. 배낭에도 양피지 두루마리가 제법 있었다.

“홀로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말에 서둘러 왔습니다. 부인이 하는 일인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장품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어느 정도는요. 특히 머리카락이 자주 떡져있어서, 그것에 대한 것도 있습니까?”

“그럼요!”

케이샤가 열정적으로 대화를 주도했다. 드낙은 리액션을 해주면서 작업장의 설계도를 통해 완성되는 모습을 말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상당한데.’

뭐라 뭐라 말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샴푸의 성능은 알아도 그 성분은 모르는 것이 드낙이었다. 스마트폰을 쓰는데 내부 구조물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날 밤은 케이샤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에 게제라스와 드낙 두 사람은 원정의 전리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만족하는가?”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헛웃음을 내었다.

“지나칠 정도입니다.”

철괴 5천 개.

무기 1500자루, 방어구 1000벌.

30년의 세금 면제와 불파겐 영지에 대한 토지문서, 자작 귀족위까지.

트롤 90마리 부산물과 북부 귀족들의 선물.

트롤을 팔아서 사온 식량 3천 포대.

범죄자지만 몽펠리에의 대장장이와 그 가족 또한 큰 재산이었다.

“헌데, 식량은 왜 사셨습니까? 시세가 엄청나게 폭등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병사들이 서로 대치하였기에 밀 값이 폭등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백금 왕가가 모으고 있던 은화를 풀면서 은화의 가치도 떨어졌다. 그 덕에 드낙은 트롤 부산물 10마리로도 식량 3천 포대를 가진게 전부였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지. 안전이 최고 아닌가.”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드낙 자작님 답지 않으신 선택이다.’

게제라스가 턱을 손으로 문질렀다.

“어떻게 쓰는 게 옳겠나?”

“지금은 묵혀두는 것이 최고입니다. 때를 봐서 필요할 때 꺼내면 될 듯합니다. 병사들을 판금 갑옷과 무기를 보급하고, 대장장이에게 체인 메일을 만든다면 중보병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수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묵혀두는 게 좋다는 것인가?”

“예. 트롤 부산물은 두고두고 남겨놓을수록 이득입니다. 찾아오는 상단마다 조금 조금씩 정량을 정해서 판다면 많은 상단이 이곳을 찾아올 것입니다.”

드낙이 눈을 빛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럴려면 은화도 제법 풀어야 하는데?”

“제가 벌여놓은 공사에 대한 대금을 아직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드낙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게제라스는 원정 나간 드낙이 뭘 들고 오더라도 적어도 토목 공사비는 능히 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믿음을 여실 없이 봤으니 드낙은 크게 기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이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바로 대금을 지불하라. 선물 받은 은화가 썩어넘칠 지경이다.”

“예! 모든 이들의 앞에서 정확하게 계산하여 내어줌으로써 노동하면 대가가 철저하게 약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그 뒤로 3일 뒤에 이실레아와 도렌이 호수 마을에 돌아왔다.

“오랜만이다.”

“드, 드낙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원정을 성공적으로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도렌은 게제라스의 칭찬과는 다르게 입술을 떨 정도로 놀랬고, 이실레아 경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래, 두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이 많다. 대략적인 것은 게제라스 총관에게 가서 듣도록 해라. 내일이나 오늘 저녁에 나와 자리를 가지지.”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짧게 대답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드낙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도렌을 위해서라도 고민을 해봐야겠어.’

드낙은 오늘 밤만큼은 홀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스핀과 도렌을 위해서 자신이 해줘야 할 일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민이었고, 제대로 된 귀족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보다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단순히 성씨를 하사하고, 불파겐의 주력 비전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조금 있었다.

‘미래적으로 확실하게 나에게 보증 받았다는 증거.’

드낙이 고민 끝에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검은 회의〉로 가즈아!’

========== 작품 후기 ==========

5830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내일이 수능이더라구요. 참고로 저는 수능 날에도 판타지 소설을 가방에 넣고 갔었죠···그냥, 그렇다고요. 저 같은 어른도 살아가니, 수능 실패해도 파이팅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