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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67화 (36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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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제라스가 도통 납득하기 어려워하자 드낙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갔다.

“그만큼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외척들의 세력에 그대가 큰 힘을 못 쓰더라도, 다른 힘이 있지 않나.”

“그들이 덤비면 자작님께서 절 보호해주신다는 겁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게제라스는 쳐내야 할 존재였다. 이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살과 암살만 안 당하도록 조심하게.”

게제라스는 그 말을 듣고는 심히 속이 거북해졌다. 뭐라도 제대로 못 먹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태평했다. 결국 게제라스가 꾀를 내었다.

“제가 앞잡이 노릇을 해도 됩니까?”

자신이 살 길은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배를 타는 것이었다. 드낙의 의심병을 생각한다면 자충수나 다름없었지만 드낙의 변화 때문에 한 번 던져본 말이기도 했다.

“박쥐 노릇을 하며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겠다는 건가?”

“예. 그리한다면 저 또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관없다. 이 동부를 부흥시키는 것에만 집중해라. 내부 알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찌 다스릴 생각이십니까?”

드낙은 조금 뜸을 들였다. 게제라스에게 말을 해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굳이 내 계획을 고칠 생각은 말았으면 하는데, 그리한다고 하면 말해주지.”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붓 든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이 아 다르고 어 다르는 법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럼에도 입을 열었다.

“자식을 통해서 후계자 싸움으로 끌고 가 다른 가문의 역량을 받아들일 생각이네.”

“그러다가 급사(急死) 하시면 어쩌시려고···”

드낙이 흘흘 웃었다. 말도 안 되는 걱정이었다.

‘그렇게 착각할 만도 하지. 내가 중립신의 챔피언이라는 걸 모르니까.’

벌써부터 예성(譽星)의 힘이 느껴졌다. 다른 악성과는 다르게 어느 상황에서도 힘을 어느 정도 주고 있는 예성은 실로 빛의 별이라고 부를 만했다.

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할 때마다 예성의 백업은 더더욱 강해질 터였다.

‘많은 이들을 끌어모아 그들을 먹기 살기 좋게 만든다.’

그게 드낙의 노림수였다.

“후계자가 장성하는 동안에는 조용할 것 아닌가.”

“맞기야 맞습니다만 그 이후가 문제 아닙니까?”

“그 때가서는 내 명성으로 찍어누를 생각이네. 혹은 상황이 변할 수도 있겠지.”

“음···”

계획대로만 된다면야 괜찮은 방법이었다. 특히나 후계자를 많이 낳아준다면 〈혈통〉을 구매한 대가를 가문들이 치러야 하기 때문에 영지의 발전과 성장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북동쪽에 치우쳐져 있지만 백금왕가의 토지 인정으로 〈동부〉가 된 것이 불파겐 영지였다. 엄청난 양의 토지에 비해서 자원은 척박했다.

끽해야 밀, 나무 등과 같은 일차적 자원 생산으로 먹고살아야 할 것이다. 엘라한 가문의 석재는 불파겐 영지에서 먼저 소모해야 했다. 적재량 추산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상품으로 수출할 수 없었고, 그곳에 있는 물의 정령이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큰 그림은 나쁘지 않다. 장점도 확실하게 있고, 목표점도 뚜렷하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 많다.’

지금 세대를 위해 다음 세대가 희생하는 격이었다. 100년이 채 가지 못할 영광이었다.

“몇 가지 기름칠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필요한 것이네.”

“물론 제가 했다고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또한 당장 내일에 선포해서 드낙 자작님께서 미리 생각한 것처럼 해야 합니다. 저와의 연결고리가 없이 보여야 합니다.”

“그만큼 다른 이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예.”

게제라스가 입에 침을 묻혔다. 어차피 주군의 뜻을 거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드낙을 통해서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었다. 동시에 외척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재물을 영지에 풀어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었다.

창고에 박혀서 썩고, 쥐에 먹혀도 밑의 계층에 풀지 않는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게제라스는 잘 알고 있었다.

‘누워서 떡 먹기다.’

항상 시간이 나면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재상이 되어서 나라를 관리할 때, 귀족놈들이 꽁친 것을 어떻게 뜯어먹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대한 상상! 그런 것을 상상할 때가 가장 재밌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심한 것은 할 수 없겠지.’

드낙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었지만 못 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결코 유능한 행정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드낙 자작님께서 말씀하셨던 조금 변형된 장원 정책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거기에 문인을 하나 더 추가해서 〈장원 관리자〉로 두고, 겨울마다 번갈아가면서 직무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아! 그게 있었지!’

드낙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공무원이 생각났다. 이리저리 옮기는 공무원들! 들으면 그제서야 생각날 때가 많았는데, 이번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상식 없이 살아온 결과였다.

“좋은 방법이다.”

“이미 제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반발이 있을 수 있으나, 지금 상태에서 자작님께 반대하는 자는 부인들조차도 없습니다.”

밤 자리가 무기인 것이 드낙이었다. 그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이 적기였다.

‘아예 장원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싶지만 그래서야 민간에 자원이 쏟아부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기에 돈을 들이 부울 수 있었다. 장원 관리자도 세금에만 관여할 뿐이었다. 공통된 법이 없는 것이 남부 왕국이었고, 실제로 백금 왕가가 공포한 법률을 따르지 않는 북부 영지가 많았다.

남부왕국의 남부와 북부의 풍속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외척을 중심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도록 불파겐 영지의 삼방에 그들의 장원을 두십시오.”

“부인은 다섯인데 왜 삼방인가?”

게제라스가 웃음소리를 냈다.

“에드윈 가문은 그럴 여력이 없고, 공주님께서는 더더욱 없으십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조금 감정적으로 기분이 상했다. 이에 게제라스가 첨언하였다.

“에드윈 가문이 전체적으로 이주를 온다고 하여도 기둥으로 삼으면 견제를 받아 피를 볼 것입니다. 격차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주님께 장원을 준다면 더 심한 꼴이 날 수 있습니다.”

증거를 잡기 힘든 것이 이 세상이었다. 하수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레이시아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마력과 신성력이 듣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암살 시도가 빈번해질 수 있었다.

“그건 부정하기 힘든 소리군.”

일단 독살, 암살하고 보는 게 이 세상 아닌가? 백금 왕가와의 인물과 첫 만남 전에 독살에 당했던 것이 드낙이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독을 많이 먹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자들보다 아이를 늦게 주려고 하고 있고.’

드낙 또한 레이시아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차이가 나지 않으면 차이를 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북남과 서쪽을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동쪽은 대단히 오지라 내치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남쪽에는 파이룬, 서쪽에는 몽펠리에, 북쪽에 킹슬레이로 하는 게 좋겠다.”

게제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 맞습니다. 원정을 한 번 다녀오신 뒤로 많이 변하신 듯합니다.”

“내가? 하하.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

“치, 칭찬입니다. 욕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드낙은 게제라스의 사과를 받았다.

‘전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귀찮았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재밌다.’

이 일, 저 일에 끼어들고 생각을 말하는 게 재밌었다. 왜 그런지는 드낙도 몰랐다. 마치 〈족쇄〉에서 풀려난 것처럼 자유로운 바람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오래된 감옥에서 벗어난 상쾌함이 때때로 들 정도였다.

“외척은 드낙 자작님께서 잘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명하신 대로 그들과 잘 지내며 영지의 발전과 성장만을 위해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나는 그대를 이 영지의 재상으로 만들 생각이다. 사람들이 웃음 짓는 영지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돈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그 말에 드낙과 게제라스가 서로 웃었다. 하나를 대충 마무리하고 술이 당겨서 술을 한 병 비우고 난 뒤에 게제라스와 드낙은 헤어졌다. 너무 오래 있으면 눈에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 드낙은 레이시아 플래티넘과 안젤리카 에드윈을 호출했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도착했다. 레이시아는 불면증이 조금 있고, 예민해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었다. 안젤리카의 경우에는 기사이므로 새벽 훈련을 위해 드낙이 부를 때는 바로 출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잠을 잠 못 잔 듯한데, 괜찮습니까?”

드낙이 걱정하자 레이시아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자려고 노력했는데, 환경이 달라 쉽지 않았습니다.”

“공주 전하께서는 사죄하는 것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제 앞에서는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네···”

드낙은 안젤리카에게도 말을 건넸다.

“잠자리는 괜찮았습니까?”

“시체 아래에서도 잠을 자는데, 천국이었습니다.”

〈조용한 계곡〉은 험지이기 때문에 몬스터와의 전투가 잦은 편이었다. 그 덕에 기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부른 것은 점심에 원탁회의가 있는데, 참가하고 싶은지 묻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참석합니까?”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들은 불파겐 영지에서 활동을 크게 할 수 있기에 강제적이라도 참석을 하도록 했습니다.”

“음···”

안젤리카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레이시아는 빠르게 대답했다. 이미 전부터 결정했을 터였다.

“저는 참가하지 않고 싶습니다.”

드낙은 수긍했다. 그것이 현명했기 때문이다. 쥐 죽은 듯이 지내야 하는 것이 그녀의 현실이었다.

“용무는 끝났으니 서둘러 돌아가십시오. 다른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레이시아는 지극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드낙이 자신의 사정을 면밀하게 이해하고 깨닫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행운이었고, 대단한 총애이기도 했다.

〈무관심〉이야말로 그녀가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하사품이었다.

“저는 이번에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는 참가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건···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서 에오윈 가문이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할지를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드낙은 조금 고민했다.

“내 총관과 상담하여 알려주겠습니다. 결코 그대에게 큰 것을 주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기에 시일을 결정하는 것으로 상의하겠습니다.”

“현명하십니다.”

안젤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식사 겸 원탁회의가 열렸다. 벽에 의자만 있는 참관석에는 외척들의 시녀들이 앉아있거나 서있었고, 게제라스 총관은 드낙의 왼편에 앉았다. 오른편은 공석이었다. 힘이 중요한 세상이었기에 오른쪽은 대개 총애하는 기사가 앉는 편이었다.

식사는 조용했다. 서로를 탐색하는 자리였기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게제라스의 눈치에 드낙은 침묵을 깨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상투적인 말로 일관했다.

전과 다르게 날이 지나치게 서있었다.

“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장원은 세금을 걷기 때문인데, 제대로 세금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겨울마다 매년 교체하는 〈장원 관리자〉를 둘 생각입니다.”

그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제법 나이가 든 시녀가 3가문의 부인들에게 들러붙어서는 귓속말을 나누었다.

이곳에서는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가 후순으로 밀려나있었다. 모두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때였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자도 있었다.

“귓속말을 굳이 왜 하시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요. 적극 찬성합니다.”

그 말에 다른 부인들이 눈총을 쐈다.

‘저 여자가···’

‘가문을 버렸나? 저럴 수가 있다니.’

‘킹슬레이 가문이 딴 생각을 하는 걸수도···’

〈케이샤 킹슬레이(Keisha Kingslay)〉는 벌써부터 노선을 달리한다는 것을 태도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와 끝까지 함께하기로 한 시녀들이었기에 더더욱 극명하게 다른 부인과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화장품을 만드는 기술자부터 노동자에 공장의 부품마저 다 뜯어서 가지고 왔다. 여기가 내가 살아갈 곳이야. 킹슬레이는 너무 멀어. 아버지께서도 이곳에서 꿈을 찾으라고 하셨고.’

무식하게 모든 기반을 뜯어서 온 것이 그녀였다. 기술자와 노동자의 가족까지 몽땅 한 방에 끌고 왔다. 가문은 개뿔, 제국에서 자신의 명성이 더 중요한 것이 그녀였다.

“어차피 불파겐 영지의 주인이 드낙 자작님 아닌가요? 저는 최대한 북부와 가까운 곳에 장원을 받고 싶어요.”

논란이 될 세금에서 그냥 빨리 벗어나자며 총대를 매기까지 했다. 드낙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였고, 먼저 장원 위치를 선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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