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6 <-- 귀환 -->
호수 마을의 가장 좋은 풍경인 호수가 잘 보이는 곳에 드낙의 부인들이 한 집씩 가졌다. 병사들은 돌아갈 준비를 하며 마을 내부에 머물렀다.
부인들의 시녀들은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가문에서 길러져온 고용인들이었기에 남았고, 그중에 한두 명은 무예를 단련한 시녀들이었다. 〈전쟁 시녀(War Maiden)〉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정이 특히나 중요한 워 메이든은 가문의 비전을 숙련한 자들이었기에 기사라고 불려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복장만 시녀일 뿐이었으며, 기사와는 다르게 한 방에 치중한 마법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여행이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드낙의 말에 레이시아 플래티넘이 당황했다. 새하얀 손이 얼굴을 만졌다.
“예? 표정에 드러났습니까?”
“입술이 조금 푸릅니다.”
드낙은 상의를 한 겹 더 걸쳐주었다. 다른 부인과는 다르게 마력에 거부감이 대단히 큰 것이 레이시아의 몸이었다. 그 때문에 〈초월의 힘〉에 대한 거부감을 지닌 신체는 신성력도 거부하는 몸이라 시력을 고칠 수도 없었다.
“서둘러 여독을 풀고 쉬십시오. 자연으로 만든 순수한 회복 물약을 내 만들어주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과분합니다.”
“내가 보기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공주 전하를 모셔라.”
“예. 자작님.”
여행 도중에 유일하게 잠을 많이 자고, 드낙과의 잠자리를 조용하게 보낸 것이 레이시아였다. 짧은 거리를 산책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몸이 굉장히 나약했다. 드낙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여행에서 병을 얻어 힘들게 살아야 했을지도 몰랐다.
당장 호수 마을에 이실레아와 도렌은 없었다.
그들은 〈엘라한 토성〉과 〈호수 마을〉 사이에 있는 〈자유 마을〉의 관리를 위해 잠깐 떠난 상태였다. 봄이 찾아오면서 순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드낙은 원탁회의장에 들어섰다. 전보다 커졌고, 관전을 위해서 벽에 의자가 수두룩하게 놓여 있었다.
“일이 커지면 책임자도 많아지는 법이라 확장을 한 번 더 한 곳입니다.”
드낙이 자리에 앉았다. 노을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정무에 임해야 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 그 간격을 빨리 매워야 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상세하게 듣겠다.”
“예.”
게제라스가 하나부터 열까지 간략하게 모든 것을 말했다. 드낙은 그중에 더 듣고 싶은 것만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자유 마을 외에도 책임지고 있는 마을이 더 있나?”
“없습니다. 그곳을 둔 이유도 도망자를 비롯한 자유기사들 때문입니다. 자작님이 오기 전에는 따로 격리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인가?”
“자유기사들을 따르는 피난민과 도망자들의 결속이 제법 탄탄하였기 때문입니다. 흩어져도 결국 때를 봐서 모일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될 바에는 한곳에 두는 것이 초기 분쟁을 일으키는데 적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어차피 드낙이 오면 끝이었다.
“놈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았든?”
“겨울에는 조용히 지냈습니다. 봄이 되면서 이실레아 경과 도렌 부대장을 보내서 찔러보러 갔습니다.”
“내가 올 것을 알았나?”
“아니요.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몰락했지만 귀족이 자유기사 아닙니까?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하지요.”
그 말에 드낙이 그럴듯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은 쉽게 승복할까?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딴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드낙이 오고 있는 것을 모를 공산도 컸고,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꾸며진 것 같다〉.’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것 또한 중립신의 안배인가?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중립신이 이렇게 세세하게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억측으로 판단되어졌다.
애초에 이곳은 수틀리면 그냥 목에 칼 박아 넣으면 끝인 세상이었다.
법의 테두리는 보잘것없었다.
반란 모의는 실패해서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모든 이의 두려움을 산 알렉산드로스 3세 또한 밥에 김치 얹어먹듯이 반란을 많이 진압했다.
물론 자유 마을이 깔끔하게 승복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드낙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접하게 될 때까지 꾸물적거리면 그렇게 될 것이다.
‘죽여봤자 소용없다.’
마법사나 특수 직업이 아니면 드낙은 더 이상 큰 재미를 못 느꼈다. 선한 업을 쌓기 위해서라도 인간을 잔뜩 잘 살게 만드는 것이 현재 목표였으므로 전쟁은 썩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지배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서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놈들이 신중했으면 좋겠는데, 전쟁을 해봤자 남는 게 없잖아.”
“마, 맞는 말씀입니다.”
게제라스가 당황하면서도 얼른 대답했다. 저 맹장(猛將)이 전쟁불가론을 외치다니, 실로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호되게 당하고 왔으면.’
철저하게 선두에서 굴러졌을 것이다. 게제라스는 그것 때문에 드낙이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큰 전쟁만큼 엄청나게 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문명이 쇠퇴한다고 말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것을 증명한 것이 인간의 역사와 엘프와 드워프 역사의 차이점이었다.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 끝도 없이 싸운 것이 인간의 역사라면, 엘프와 드워프는 내전을 경험하는 것이 역사에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른 자잘한 일들을 말하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게제라스는 이실레아와 도렌에 대한 것 또한 미리 말했다.
“정말? 도렌은 평민이잖아.”
“하지만 드낙 자작님의 곁에 있지요.”
방계가 되어 귀족이 될 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드낙은 결코 공신을 가볍게 내치지 못했다. 그런 짓을 하던 놈들을 자신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배신당해 죽는다면? 이런 소리보다는 일단 공신 대접을 해주고 생각하는 것이 정론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박호훈은 순욱의 충신 포지션을 특히나 좋아했는데, 조조가 내려준 텅 빈 도시락에 자살을 하는 것 때문에 토사구팽을 가장 싫어하게 되었다.
드낙의 표정을 읽은 게제라스가 한짐을 던 표정을 지었다.
“이실레아의 의중이 무엇일 것 같나?”
“도렌을 통해서 자작님과 다리를 놓고, 자신들의 가문은 가문대로 부흥하겠다는 겁니다.”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브릴리언트 가문은 생각 외로 속이 꽉 찬 가문이었다.
드낙은 어차피 이실레아와 친분은 있었지만 애정관계는 아니었다. 성적인 눈빛 교환도 없었다.
‘도렌은 괜찮지.’
요령 없는 놈이었다. 그래서 더 정이 갔다.
“누가 프로포즈 했는데?”
“누구겠습니까?”
드낙이 혀를 찼다. 자신도 만만치 않으면서도 지금은 영락없는 선수처럼 굴었다.
“남자라는 놈이. 마음이 있으면 먼저 할 것이지.”
“상대가 상대 아닙니까. 이실레아 경의 카리스마는 어느 기사보다도 대단한 점이 있습니다.”
드낙은 수긍하면서도 피식피식 웃었다. 이실레아의 용병술, 군사를 다루는 재능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드낙은 그녀의 반도 못 따라갈 것이다.
군대를 다루는 것과 전투를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드낙은 그런 면에서 장수로서 쌓은 것이 일천했다.
‘세파리아스 녀석은 〈진리〉라며 하나만 가르쳐주고. 미친 자식.’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진리는 단 하나였다.
적을 쳐부수고, 그것을 사기로 삼아 병(兵)을 다스린다.
오만한 말이지만 실제로 통하기도 한 것이기도 했다. 북부 귀족들의 배신이 없었다면, 역사의 주인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진정으로 그 말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입으로 하면 누가 못 이기냐?’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도 했다. 보급이 후달려도 승리하면 병사는 따라온다고 말할 정도로 세파리아스의 무위와 명성이 대단했기도 대단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결혼식은 올렸나?”
드낙의 무신경한 말에 게제라스가 손사래를 치며 대단히 크게 반응했다.
“결단코 아닙니다! 자작님의 허락 없이 어찌!”
“뭘 그렇게 날 신경 쓰는지··· 누가보면 내가 이실레아 경과 사귀기라도 한 줄 알겠네.”
“도렌 부대장은 드낙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실레아 경은 그의 배경이 크기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게 된 겁니다. 원래라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볼 수도 없습니다.”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귀족들의 결혼은 결국 배경이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로마조차도 결혼 전에 아내와 남편의 재산을 문서로 남길 지경이었다. 잘 살면 잘 살수록 그런 것이 더 심했다.
파이룬 가문을 비롯해서 부인들이 소유하게 된 재산을 드낙이 양피지로 받은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것이니 드낙이 가질 생각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소리지만···’
이해는 해도 납득하기 힘든 면이 좀 있었다.
“두 사람이 오면 후딱 허락해줘야겠군.”
“그래도 조금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도렌이 기를 못 펴나보지?”
드낙의 날카로운 말에 게제라스가 순간 말을 못 했다.
‘이런 분이셨던가?’
그가 생각하는 드낙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무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에서는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꿀꺽.
“왜 말을 못 하고 있나. 총관? 도렌은 내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제법 일을 하게 되었지 않나.”
“예?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그래서야 자네와 이실레아 경의 사이가 어긋날 수도 있지 않은가?”
게제라스가 도렌을 밀어주면 이실레아는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드낙의 총애로 병권을 휘두르고 있듯이 게제라스는 강력한 행정관으로서의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게제라스가 도렌을 통해서 이실레아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서로 친하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한다고? 이권 앞에서는 자식도 쳐죽이는 것이 권력자였다. 권력은 자식한테도 양보하지 않는 종류의 힘이었다.
“아,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도렌을 너무 아끼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큰 그릇으로 보입니다. 어려서 그런지 실수투성이여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천재는 아닐 텐데.”
드낙류 어레인지 비전을 가르치면서 항상 성취가 부족한 것이 도렌이었다.
“네. 하지만 꾸준함이 있습니다.”
게제라스가 도렌의 편을 들었다. 진실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이 된다면 도렌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지식과 행정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사상조차도.
“그래?”
드낙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적당히 균형 있으면서도 살짝 부족한 게 도렌의 장점이었다. 문무를 겸비하고도 배신의 걱정이 없는 것이 그였다. 심정이 착하기 때문이다.
‘도렌에게도 칠주 중 두 개를 가르쳐줘야겠지.’
그래야 방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드낙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저수지와 지하수로의 건설이 겨울에 있었던 사업의 큰 부분이었는데, 드낙의 순시를 필요로 했다.
“아주 큰 사업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셔야 합니다.”
“알았다.”
드낙이 한 번 둘러보겠다고 말했다.
게제라스의 보고가 끝난 다음에 드낙이 이제 말할 차례가 되었다.
“대체 어쩌자고 외척을 그렇게 끌어왔습니까?”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담아서 게제라스가 말했다. 드낙은 이에 오면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한 것대로 입을 열었다.
“북부 귀족들의 배신을 막기 위해서. 백금 왕가의 적극성을 빼앗기 위해서 그리고 이 동부를 하루빨리 정상화하기 위해서다. 물론 게제라스 총관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를요? 삐끗하면 암살은 물론이고 독살까지 당할 것입니다!”
“하하하. 누가 그 정도로 하라 했나? 조율이 아니라 방관을 하면서 적당히 공작하라는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문의 숫자만큼 장원을 내어주고 알아서 크게 할 것이다. 세금은 받기 때문에 완벽한 장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파겐의 이름 밑에 있는 땅이다. 누구나 투자하고 싶어 하겠지.”
‘특히나 자식이 생기면 더더욱.’
“외척을 영주처럼 내세우겠다는 소리이십니까?”
“그렇다.”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100년 가면 성공한 것이고, 300년 가면 전설이 될 것이며, 500년 가면 역사에 남을 정치 전략입니다. 정말로 이대로 진행하실 겁니까?”
“물론.”
드낙은 자신 있었다. 시간은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시무시한 뒷배가 드낙의 뒤에 있었다.
‘싫어도 성공할 수밖에 없고, 원하지 않아도 대박이 터질 것이 나다.’
“하하하!”
드낙이 중립신의 챔피언이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게제라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이 폭탄을 대체 어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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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아크 대기열 실화입니까. 시골섭인데···분명···주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