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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63화 (362/1,239)

0363 <-- 귀환 -->

〈검은 꿈〉에 들어선 드낙은 눈을 감고 있는 중립신을 볼 수 있었다.

상체만 나와있고, 색채가 없는 삭막한 백색의 몸이었다. 인신(人神)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 중에는 드낙에게 위화감을 안 주기 위함도 있었다.

감정은 없으나 남을 살필 줄은 아는 것이 중립신이었다. 그가 살아온 세월은 까마득했다. 작은 인간들의 인신에서부터 인신들을 이끄는 대신의 자리까지 오른 그였다.

“할 말이 있다. 나의 챔피언이여.”

“예. 말씀하십시오.”

“별의 힘에 대해서다. 트롤들의 업과 악마의 힘까지 업으로 삼았기에 이 행성에 있는 인간들에게서 다시 힘을 받게 되었고, 그에 대해서 도움을 너에게 주려고 한다.”

별의 힘! 드낙은 흉성과 살성 두 가지를 현재 보유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입니까?”

“네가 보유한 것은 악업(惡業)을 쌓아서 얻을 수 있는 별들이다. 죽이고, 부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얻을 수 있는 별들이지. 하지만 그래서는 언젠가 파멸에 이르고 만다.”

중립신은 말을 이어나갔다.

“선성(善星)의 선택을 받으려면 악성(惡星)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렇기에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내가 힘을 보태겠다. 어차피 별들이 가지고 있는 힘 또한 나에게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드낙의 눈이 부릅 떠졌다. 중립신이 눈을 뜨자마자 자신에게 벌써부터 베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치면 성향 선택지에 상관없이 선과 악 양쪽의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무시무시한 신의 힘이었다.

“며칠 뒤면 너에게 예성(譽星)이 붙을 것이다. 네가 토벌한 악한 것들과 큰 전투 때문이다. 악성의 선택을 받았기에 선택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내가 친 장막으로 인하여 가려질 것이다.”

선한 별과 악한 별의 선택을 동시에 받는 것이다. 그러나 드낙 또한 〈흰여우 세린〉에게서 점성술을 어느 정도 익혔다.

“그로 인한 반동을 제가 버틸 수 있겠습니까?”

“네 육체는 충분히 버틸 것이고, 정신 또한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하지 않다. 그리고 별들이 지닌 각각의 나쁜 기운들은 내가 받겠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선한 업을 쌓도록 노력해라. 혼란의 시대이기 때문에 쌓기는 힘들겠지만, 그것이 너를 받치는 큰 기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예. 노력하겠습니다.”

중립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또 다른 소리를 했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중립신의 발언은 모든 것이 목표에 따라서 태도가 다르고 방법이 달랐다. 그것은 인간이 보기에는 모순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내가 눈을 뜨면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의 업이 나에게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치 않다. 네가 그것을 해결해야한다.”

“어떻게 해결하면 됩니까?”

“마법을 숭배하고 있는 제국의 인간들은 나에게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라. 동시에 나 이외의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멸해라. 또한 서부에서 내 신체를(행성) 좀먹는 마수를 깔끔하게 토벌해야한다.”

‘허.’

드낙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더더욱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나 엘프들은 어찌합니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니, 챔피언인 그대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립신은 대답을 회피하였다.

“제가 들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인간, 오크, 엘프 중에 무엇을 주(主)로 삼을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에 드낙이 신음했다.

‘이 세계의 주종족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 선택은 자연히 엘프에게 기울어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이 세상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가장 세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종족적으로도 강함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제국이 멸망하면 인간은 쩌리 신세.’

드낙이 있었기에 멸망당하지는 않겠지만 그 수준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꼭 제국을 멸망해야 합니까? 엘프나 드워프는 모두 중립신을 섬기고 있습니까?”

“그건 나의 근본이 인신이기 때문이다. 약해진 지금의 모습으로는 나를 통해서 잉태되었다고는 하나 드워프와도 엘프와도 오크나 다른 몬스터와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아···”

“그렇기 때문에 업의 수급을 위해서라도 인간은 죽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세계를 묶을 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드낙은 무미건조하게 그런 말을 하는 중립신을 보며 심장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결과적으로는 이 세상은 생명체가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만 그 과정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길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립신의 부활을 위해서는 업이 필요했고, 그 업을 위해서 인간이 죽어야 했다.

약해진 중립신은 자신의 자식들 중에서도 드낙을 통해서 업을 얻고 이제는 인간을 통해서 업을 얻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직접적으로 들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려는 드낙을 보며 중립신이 말했다.

“대의를 보라. 지금 있는 인간들의 희생은 결코 잊지 않겠다. 그것은 너를 통해서 계속 이어질 것이며, 내가 진정으로 부활할 때 다시금 보일 것이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드낙이 선한 업을 최대한 많이 쌓는 것 뿐이었다.

드낙의 귀환은 폐허가 된 〈바세안 토성〉에서 잠시 멈춰졌다. 일단의 경기병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성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던 자들의 구성원이었다.

“멈추시오! 이곳은 바세안 마을이요. 어찌 이 땅을 침략하는 것이오!”

‘뭔 미친 소리를···’

드낙이 투구 속에서 인상을 찡그렸다. 귀찮음이 확 튀어 올라왔다.

“여기는 내 땅인데, 네놈들이야말로 그 무슨 말이냐? 거기에 평민 주제에 기사를 앞에 두고 그 말투는 뭐냐?”

드낙이 검을 뽑아들자 경기병들이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마치 ‘이게 아닌데.’라는 모습이었다.

“그, 그것이 이곳은 〈올란 바세안〉 님의 영토라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자 드낙이 손수 그들의 앞에 밧줄을 던졌다.

“서로 묶어라.”

“예?”

“아니면 내 손에 죽겠느냐?”

멍청한 소리를 하자 드낙이 살기를 내뿜었다. 이런 자잘한 일 자체가 이제는 짜증 날 지경이었다. 자신은 〈중립신의 챔피언〉 아닌가?

경기병은 미적거리면서도 스스로를 포승했다.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백의 군세를 보고 그렇게 말을 하다니, 네놈들이 말하는 올란 바세안이라는 자는 누구냐?”

“이곳에 100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가문입니다. 자유기사로 살아왔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세력을 키워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여긴 불파겐 가문의 영지다. 살면서 듣지 못했느냐?”

“그 가문은 400년 전에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말은 잘 하네.”

드낙은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먼저 바세안 마을로 향했다.

뚱땡똥!

순식간에 종소리가 울려대었다. 저급한 종소리는 오지에 있는 마을의 특색이나 다름없었다. 일정한 종소리를 내는 것은 어마어마한 기술력이 필요했다.

철검의 강도조차도 부위마다 편차가 매우 심한데 종소리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균일한 탄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라!”

“무슨 의도로 이 마을을 쳐들어 온 것이냐!”

자경단이 소리치자 드낙은 〈얼어붙은 표적 독수리(Frozen Target Eagle)〉을 사용했다. 드낙의 등에서 튀어 오른 대인마법은 거대한 크기를 지닌 채 날갯짓을 한 번 했다. 그것만으로도 목책 위에 있던 자경단이 허둥지둥거리며 도망쳤다.

쾅!

나무로 된 성문이 그대로 박살이 났다. 새하얀 한기가 주변을 안개처럼 만들며 서서히 퍼지면서 사그라들었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농기구나 나무로 된 창을 꼬나쥔 자들이 막아섰다.

“올란 바세안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나!”

쩌렁쩌렁 울리는 드낙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드낙이 한 걸음 내딛자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뒤로 넘어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길을 열어라! 기사를 보고도 무기를 들고 있다니,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드낙이 나무창을 쥔 젊은이의 무기를 잡아서 당겼다.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버티려고 한 젊은이가 턱부터 바닥에 찍으면서 넘어졌다.

“억!”

빠직!

한 손으로 움켜쥔 것만으로도 나무창을 부러뜨린 드낙이 그럴듯해 보이는 2층 집으로 향했다.

“그, 그곳에는 안 된다! 그분을 어찌할 셈이냐!”

늙은이가 이번에는 드낙을 막아섰다.

“나는 드낙 불파겐 자작이다. 이 영지를 백금 왕가로부터 하사받았다. 그런데,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이곳을 자신의 토지라고 말하는 올란 바세안은 더더욱 모른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이 침을 삼켰다. 대부분이 떠돌이였기에 누구 하나 드낙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가서 놈을 잡아와라.”

“예!”

병사 다섯이 울란이 있을 법한 2층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붉은 천이 창문마다 걸려있었기에 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아악!”

울란은 팔이 꺾인 채 단숨에 끌려왔고, 그와 함께 있던 여자 둘은 천하나만 두른 채로 포승이 당해 조금 뒤에 끌려왔다. 풍만한 가슴이 밧줄에 묶였음에도 확연하게 위로 튀어나와버릴 정도였다.

“기, 기사!”

울란 바세안이 벌벌 떨었다.

“내 마을 사람들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의 토지가 네놈의 것이라며?”

“나, 나는 귀족이오! 몰락했지만 바세안의 혈통이요!”

드낙은 뒤룩뒤룩 찐 놈을 보며 말했다.

“문인이 귀족이라니, 웃기는 소리 아닌가.”

“무인이오!”

“그럼 증거를 보여라.”

드낙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울란은 눈알만 굴릴 뿐이었다.

“켁!”

드낙이 놈을 걷어차서 등을 보이게 했다. 손은 말랑말랑했고, 굳은살 하나 없었다.

“이 자는 자유기사도 아니다. 손에 무예를 수련한 흔적 하나 없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돼지 손처럼 통통함 그 자체였다. 젤리처럼 말랑했다.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저희도 속은 것입니다! 기사님!”

“불파겐! 만세, 만만세!”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태세 전환을 했다. 드낙은 이들을 노예로 삼을 생각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성기사 케이슨〉을 비롯한 50인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원하지 않을 터였다.

“그대들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이 자를 스스로의 손으로 처형하라.”

“개자식! 우릴 속여?”

인파가 묶인 울란을 향해서 뛰어들어갔다. 돌이 그의 머리를 치고, 나무로 된 농기구가 허벅지에 박혔다.

“끄아아아아악!!!!”

원시적인 처형장이었다. 그것으로 드낙은 이 새로운 마을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며 드낙은 자신의 세력이 여기까지 뻗쳐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갖 곳에 도망자와 피난민들이 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몬스터들이 곳곳에 보이지만 소수라서 버틸만합니다.”

굽신거리면서 모든 걸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드낙이 겨울을 날 식량으로 온갖 것들을 멀리까지 나가서 대량으로 잡았기 때문에 이 땅은 텅 빈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사칭범과 다른 마을의 사칭범들이 모여서 〈귀족 회의〉라는 것을 달마다 바세안 토성에서 열고 있습니다.”

“그래?”

드낙이 헛웃음을 지었다. 〈귀족 회의〉라니 아주 제대로 사기를 치는 놈들인 듯했다. 한두 놈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서 서로 둥가 둥가 하며 자신들이 귀족이라고 말하니 처음 온 사람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힘을 증명하기에는 동부의 겨울은 혹독했다.

봄이 오면서 다시 슬금슬금 야수와 몬스터가 나타나도 있지만 아직은 평화 그 자체였다.

“이곳에 계속 살겠는가? 아니면 나와 함께 가겠는가?”

“따라가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서 내일까지 따라갈 사람들은 준비를 마쳐놓게.”

“예!”

마을 사람들이 흩어졌다. 드낙은 다른 마을까지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삭초제근(削草除根)!’

아무리 나약해도 세력을 크게 일구면 귀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드낙 홀로 가서 다 패 죽이는 것도 이제는 피해야 할 때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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