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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62화 (361/1,239)

0362 <-- 에필로그 -->

다음 날에는 파이룬 가문의 여식과의 점심시간이 예약됐다. 드낙은 아침에 아군 하나 없는 레이시아를 방문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라도 찾아가지 않으면 귀족들이 더욱 그녀를 괴롭히겠지.’

백금 왕가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이 북부 귀족들과 사람들이었다. 레이시아는 괴롭히기에 충분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것이 올바르든 그릇되든 상관없었다.

욕받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낼수록 도리어 몽펠리에 성의 분위기는 더 좋아질 것이다.

“드낙 님. 왜 그렇게 빨리 가십니까? 좀 천천히 좀 걸으십시오. 너무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드낙아, 진정하자.’

은발에 새하얀 피부, 근육 하나 없는 슬렌더한 체형의 레이시아 플래티넘은 남자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가슴은 작았지만 드낙은 그런 것까지 우선순위를 매길 정도로 카사노바가 아니었다.

눈이 크게 높은 것도 아니었기에 눈이 봉사라도 예쁜 여자는 그냥 예쁜 여자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죄, 죄송합니다. 오신다는 연락도 못 받아서···”

화장도 안 한 레이시아가 서둘러 드낙을 맞이하며 사과했다.

“오히려 화장 안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목구비가 워낙 뚜렷해서 드낙은 웃으면서 식사를 했다.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장애에 대한 주제가 올라왔다. 나긋나긋하고 조용조용한 레이시아는 드낙의 긴장을 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법이 크게 발달한 것이 수도 아닙니까? 어째서 치료하지 않습니까. 신전의 신성력도 있는데.”

엘라한 가문의 유전병조차도 치료하는 것이 신성력이었다. 그 힘은 말 그대로 〈초월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력에 대한 거부 반응 때문에, 비슷한 힘인 신성력도 받아들이면 발작 증세가 있습니다.”

레이시아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이 그녀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다면 순수했다. 다른 전략을 쓰기에는 그녀가 쌓아올린 정치력은 전무했다.

의도적이든 고의적이든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향된 지식만 가진 것이 그녀였다.

“그것참 안타깝습니다. 그림은 허면?”

“선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게 아니라서 상상하며 곱씹는 게 재밌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30분째 나누면서도 음식 하나 나오지 않았다. 잔을 두 잔이나 비운 드낙이 결국 요리사를 호출했다. 시녀와 함께 땀이 나도록 달려온 요리사가 그대로 절을 했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려면 식재료를 가져와야 해서···”

변명을 하는 모습에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먹는 것까지 은근히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듯했다.

“내 두고 볼 것이다. 공주의 식사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라.”

“예!”

“일어나서, 음식 준비를 하러 가라.”

“가, 감사합니다!”

요리사 또한 어쩔 수 없이 저랬을 것이다. 먹고살면서 권력자와 부딪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었다. 드낙은 이를 잘 알았기에 요리사를 용서해주었다. 레이시아는 왕족이기에 암살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된다면 드낙이 어찌 나올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드낙은 식사를 결국 하지 못했다. 시간 때문이었다. 몇 입 먹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게실리안 파이룬과 아샤 파이룬과의 식사 자리였다. 아샤 파이룬은 드낙과 동갑인 16살이었다. 공부를 많이 한다길래 차분할 줄 알았지만 눈에서 활기가 넘실거렸다. 햇빛을 많이 받아 주근깨도 조금 있는 것이 드낙의 눈에 보였다.

화장은 완벽했지만, 화장이 어색한 듯 자꾸 손가락으로 얼굴을 비볐다.

‘또 저런다!’

그때마다 게실리안의 눈총이 쏘아졌다.

“공부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걸 하시고 계십니까?”

“저는 그냥···”

불편한 식사였는데, 대화가 뚝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말주변이 지독하게 없는 것이 아샤 파이룬이었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파이룬 가문은 첫 만남부터 아샤 파이룬이 결혼하며 가지고 갈 재산을 양피지로 적어 드낙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혹여나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보여주는 것일 뿐이오. 드낙 경의 것은 말해주지 않아도 되오.”

“일단은 고맙소.”

드낙이 양피지를 훑었다. 마음이 피폐해진 이들이 모이는 수도원을 여럿 아샤에게 준 것이 파이룬 가문이었다. 또한 그곳에서 나오는 포도주를 비롯한 곡물의 수입이 짭짤했다.

버려진 영지로 가는 딸에게 쥐여주는 용돈 주머니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규모로 본다면 마을 대여섯은 쉬이 운영 가능할 정도의 이득이 뽑아지고 있었다.

‘허미. 스케일이 다르네.’

“드낙 님. 시간이···”

이스핀이 귓속말을 했다.

“아, 이런. 내가 삼왕자와 독대를 하겠다고 약속을 해버려서 이만 일어나 봐야겠소.”

“우린 괜찮네.”

“조심히 가십시오오오···”

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오를 길게 늘어뜨리자 게실리안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공부와 마법에만 미쳐살아서 기본이 없는 것이 아샤 파이룬이었다. 또 놀기는 잘 놀아서 알아서 잘 하겠지 싶어 했던 가문의 사람들도 문제긴 문제였다.

“잠깐, 드낙 경!”

“말하시오.”

길게이 플래티넘을 방문하러 가는 드낙에게 게실리안이 말했다.

“미안하네.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오늘은 많이 긴장한 듯하오.”

“아니오. 활기찬 것이 눈에 훤히 보였소.”

꼼지락, 꼼지락대며 산만했던 것이 그녀였다. 이곳 귀족들은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예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귀족이 워낙 적어서 애초에 그런 예법을 가지지 않아도 존경받고 희소하기 때문이다.

“아! 그런가? 하하! 다행이오.”

오후의 티타임은 3왕자, 길게이 플래티넘과 가지게 되었다.

“와주어서 고맙소. 이쪽에 앉으시오.”

길게이는 스스로 자리를 먼저 권하고, 생쇼를 하듯이 찻주전자까지 들어서 따라주었다.

‘새끼.’

그는 크게 드낙을 대우해주었지만 드낙에게는 어림도 없는 짓거리였다. 하는 짓이 뻔히 보였다.

“무슨 일로···”

“성질도 급하시오. 하하하.”

길게이는 드낙이 제법 예뻐하는 듯한 여동생을 팔았다.

“레이시아는 어떻소? 눈이 안 보이지만 그래도 왕족이라 기품은 있지 않소?”

“예. 오늘 아침에도 만나고 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점심이 돼서야 먹을 수 있더군요.”

“어허··· 북부 귀족 놈들, 그런 쓰레기들이 하는 짓을 보시오. 그게 명예요?”

‘넌 그럼 어떻고?’

“그러게 말입니다. 실망이 컸습니다.”

드낙은 길게이 앞에서는 친왕족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백금왕가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드낙에게 결함품을 준 것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트롤을 그렇게 때려잡은 드낙 경의 호승심이 샘솟을 소식을 말하고 싶어서 그대를 불렀소.”

“굳이 이런 곳에서 말할 것이 됩니까?”

“오우거요. 마신장을 토벌한다면 모든 기사가 그대를 경외할 것이오. 대단한 위업 아니오?”

명예를 통해서 공짜로 부려먹겠다는 소리였지만 드낙은 난색을 표했다.

“이제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영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무슨 소리십니까. 작년 가을부터 영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버려진 영지의 정상화도 시급하지만, 마수들이 서부를 강타하고 있소. 무엇이 더 중요하겠소?”

“둘 모두 중요하지요. 그리고 〈불파겐 영지〉는 아직도 온갖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피의 광신도〉들조차 암약하고 있는 지독한 곳입니다.”

“으음···”

길게이가 입맛을 다셨다. 결국 드낙은 오우거 토벌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드래곤 로드 전투 요새가 함락되면서 백금 왕가는 서부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어차피 너에게 줄 생각도 없었다.’

꾸준히 토벌을 진행하면 놈을 던전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백금 왕가였다. 때문에 길게이는 한 번 찔러보는 것으로 끝을 냈다.

“〈불파겐 영지〉에 대한 공식적 수여와 작위 수여식은 내일 정오에 올리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자리를 파하고 헤어졌다.

‘오우거를 잡을 생각은 전혀 없다.’

〈검은 회의〉의 뜻이기도 했고, 드낙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우거가 건재할수록 백금 왕가는 결코 북부와 불파겐 영지를 노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를 이용해서 세력을 키우는 것이 드낙이 할 일이었다.

〈안젤리카 에드윈〉과도 식사를 한 번 했다. 그녀는 병사 다섯을 데리고 이곳에 있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바쁘십니까?”

“조용한 계곡 성채의 정상화를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이왕 있는 영지이기에 그곳을 버리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아 하셨습니다. 제법 긴 시간을 그곳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이들 병사 다섯이 데려올 이들의 전부입니까?”

“예. 패물이 좀 있지만 대단히 많이 가져가는 것도 아니라, 따로 도움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날에는 드낙의 작위 수여식과 영지 수여가 있는 날이었다. 중앙 광장에서 의식이 치러졌다. 5가문의 병사들이 드낙의 기를 세워주었고, 많은 이들이 관람을 하러 와서 그의 명예를 높여주었다.

“······ 이러한 공적들로 드낙 불파겐에게 〈버려진 영지〉를 수여한다. 또한, 자작 위를 수여하는 바이다.”

쿵! 쿵! 쿵! 하!

병사들이 무기를 땅에 3번 내려치고 무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짧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 뒤로는 온갖 음식이 베풀어졌고, 곳곳에 술통이 굴러가며 놓였다.

축제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6일간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하루마다 한 가문씩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걸 위해서 먼 마을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배불리 먹기 위함이었다.

〈결혼 순서〉를 드낙이 당사자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드낙은 거진 통보를 받았다.

‘어라?’

“정말 이대로 하는 것이오?”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통보하는 자리에서 드낙은 양피지를 고쳐잡았다.

‘검은 회의의 예상으로는 몽펠리에나 파이룬이 정실이 될 것이라 여겼는데.’

뜬금없이 킹슬레이가 튀어나왔다. 킹슬레이의 공작이 제법이었고, 동시에 몽펠리에와 파이룬이 서로 타협점을 못 찾은 것이 분명했다. 두 가문이 타협점을 못 찾자 킹슬레이가 어부지리를 취한 것이다.

에드윈 가문과 플래티넘 가문은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북부 귀족에 해당하는 에드윈 가문은 순서가 4번째가 되었고, 플래티넘 가문의 도움을 못 받는 레이시아는 마지막에 결혼을 올리게 되었다.

다섯 번째 첩이 되는 것이다. 굴욕적이었다.

또한 그 순서를 통해서 북부 귀족들은 백금 왕가가 이 결혼식을 어떤 태도로 일관했는지 여실 없이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들의 영향력이 이곳에 투입되었다면 정실 혹은 첫 번째 첩이 되는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썩을 놈들.’

형식에 불과한 결혼이며 언제든지 박살 낼 수 있기에 북부와 불파겐에게 긴장감을 주려하는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결혼 동맹의 장점을 박살 낸 것이고 그 균열은 계속 눈에 보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오우거 토벌에 간다고 해도 바뀌지 않겠지.’

그럴 작정으로 드낙과 한 번 싸운 길게이 플래티넘이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잘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백금 왕가의 의도가 사람의 인선에서도 절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뒤로 5일 동안 드낙은 결혼식을 올렸다. 많은 이들이 축복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 누구도 레이시아와 드낙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지 않았다.

음식도 술도 없었기에 관전을 하던 이들은 결혼이 진행되는 와중에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 누구도 깃발을 들어 올려주지 않았다. 시녀들조차도 이곳을 떠나면 볼 수 없었기에 오지 않았다. 돈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레이시아 플래티넘은 눈을 감은 채 오히려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사실 저는 이 결혼조차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저와 결혼을 해도 그 어떤 이득도 없기 때문이었거든요."

드낙은 그 말에 짧게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드낙은 왜 레이시아가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끝없이 추락한다고 생각했는데, 드낙이 그 손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레이시아의 처지는 드낙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에 드낙은 떠날 준비를 마치고 몽펠리에 성을 나설 수 있었다. 오고 가고 할 병사만 300명이었고, 식량부터 시작해서 온갖 가구와 그림들이 실어진 이삿짐을 두둑하게 쌓아올린 마차도 많았다.

그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그중에는 드낙이 잡은 트롤의 부산물도 있었다. 절반은 이곳에 온 귀족들이 구매하며 금화, 은화, 보석 등으로 교환했음에도 엄청난 양이 남아있었다.

“만세! 만세!”

길 가던 이들은 무슨 행렬인지도 모르고 만세를 불렀다. 육포나 곡물가루가 든 포대가 그들에게 쥐여졌다.

〈불파겐 영지〉로 향하는 길 내내 드낙의 마차에는 하루에 한 번씩 잠자리를 다르게 하며 지냈다.

“이 책이에요.”

물론 록시 몽펠리에와는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발딱 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드낙은 록시에게서 외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듣고 드낙이 질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록시는 잠을 안 잘 정도로 극성이었다.

그다음으로 성적인 의미로 극성인 것은 〈케이샤 킹슬레이〉였다. 28살인 그녀는 말 그대로 드낙을 빨아버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자식을 놓을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전 언제까지고 아이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1년에 한 명은 꼭 낳을 거예요!"

커리어 우먼인 그녀는 빨리 일을 하기 위해서 성욕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엄청난 행동력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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