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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55화 (354/1,239)

0355 <-- 어둠 -->

드낙은 싸늘한 길을 걸어갔다. 때때로 산길을 타기도 했는데, 체력적으로 우월한 드낙은 지형을 피하는 것보다는 직선로가 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으르르, 컹!”

도노의 으르렁거림에 수풀에서 누군가가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드낙이 성큼 걸어가 보니, 누더기 옷을 겹겹이로 입은 남자가 밧줄을 엮어서 만든 가방을 허둥지둥 집고 있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다니. 뭐 하는 놈이냐?”

드낙의 말에 남자가 벌벌 떨며 말했다.

“피난민입니다! 방향을 잃어서 겨울을 이 산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있습니다! 전 평범한 사람입니다! 몬스터가 아닙니다!”

그 말에 드낙이 검으로 가방의 입구를 자신에게로 돌려 내부를 확인했다. 뿌리부터 나무의 속이나 죽은 쥐의 시체 따위가 들어가 있었다.

“알겠다. 안내해라.”

“예?”

“자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네. 바람 때문에 들리지 않는 건가?”

“아닙니다!”

사내는 매우 긴장한 채로 드낙을 안내했다. 가면서 드낙은 주변을 훑었다. 기사, 기득권으로서의 재능도 경험도 적은 그였지만 숲과 산에서는 대가(大家)나 다름없었다.

‘사람의 흔적이 아니었는데.’

드낙은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기며 종종 남자를 멈춰세웠다.

“식량은 부족한가?”

“예···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도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어서···”

한 가족을 책임지는 기둥이었기에 더더욱 목소리가 들어갔다. 자괴감이 들어있는 말이었다. 드낙은 검지가 시퍼렇게 동파된 남자의 손가락을 볼 수 있었다.

‘쯧.’

괜히 기분이 복잡해졌다.

동굴의 입구는 좁았다. 운 좋게 좋은 동굴을 잡은 듯했다. 내부는 입구에 비해서 넓었고, 4명이 살아가기에 충분했다.

“후욱!”

도노의 입에서 불꽃이 튀어나와서 장작을 태웠다. 드낙은 밖에서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서 통나무 째로 무식하게 집어넣었다. 아껴 쓴다면 능히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퍽! 퍽!

장작을 패며 이야기를 더욱 나누었다.

“원래는 7명이었습니다. 늙은 부모님은 몬스터에게 잡혔고, 막내 아기는 열병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죠. 마을이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그곳에서 살아남았으니 말입니다.”

깡마른 애들과 광대뼈가 안으로 들어온 부부. 드낙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넝쿨을 엮어 만든 밧줄에는 식량이 최대한 많이 널러있었다. 또 한쪽에는 조잡한 도기가 있었는데 안에는 소금이라도 든 것처럼 보였다.

‘동물 몇 마리라도 잡아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검은 회의〉의 판단은 최대한 빨리 트롤을 이 겨울에 끝장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고, 드낙 또한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루만 지내자. 그때 안 오면 별 수 없는 일이겠지.’

정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밤이 찾아오기 전에 동굴 앞에서 소리가 났다.

“그륵?!”

드낙은 머리를 들이미는 헤드스 하이에나의 하체 머리를 발로 걷어차며 인간의 상체에 검을 쑤셔 박았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크억! 크아아아!”

밖에서 난리가 났다. 시체를 옆으로 밀며 드낙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돌도끼가 후려쳤다.

깡!

어깨에 맞으며 소리가 크게 났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몰골이 좋지 않고, 장비도 석기를 사용하는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패잔병들로 보였다. 숫자는 다섯이었는데 침을 질질 흘린 채 무식하게 덤벼들었다.

퍽!

머리를 밟고, 턱을 찌르고, 머리채를 잡아 옆으로 잡아당겨 다른 놈과 부딪치게 하며 달려드는 놈의 공격을 흘리며 그대로 어깻죽지를 찔렀다.

“꺽!”

급소에 경기를 일으키며 경직된 놈의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도망가는 놈까지 투척 단검을 쏘아서 맞춘 드낙이 기어가는 놈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목을 땄다.

순식간에 다섯을 죽인 드낙이 동굴 안에 대고 소리를 쳤다.

“나와보시오!”

“예! 예!!”

남자만 홀로 나왔다.

“밧줄을 가져오시오. 피를 빼야 하니.”

“예!”

허둥지둥 빠르게 움직였다. 겨울밤에 움직이는 동물은 없었다. 피를 뺄 순간은 지금뿐이었다. 땅을 열심히 파는 모습을 보니 삶에 희망이 크게 생긴 듯했다.

그를 도와주고 드낙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흐르고 드낙은 계속해서 〈단단한 산〉으로 향했다.

뚝! 뚜둑!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직접 판 곳에 모닥불을 지폈다. 잠을 자는 도중에 나타난 떠돌이 고블린은 새파랗게 질린 채 들어왔고, 자고 있는 드낙에게 접근하다가 도노의 불에 타죽기도 했다.

“키에에에엑!”

이미 영물이 된 도노와 카이야는 뿔이 나오지는 않았다.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 듯했다.

단단한 산을 앞에 두고 드낙은 하루를 보냈다. 〈검은 회의〉 때문이었다.

“드디어 왔군. 놈들의 기세가 느껴진다.”

세파리아스가 진중하게 소리를 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눈 다크 트롤〉이 출산하는 자식들은 악마의 힘을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나고 있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었다. 결국 〈그릇〉에 따라 달랐지만 마경(魔境)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흉악한 기세는 때때로 평범한 이들에게 섬뜩함을 주었고, 마산(魔山)이라 불리기에 충분하였다.

“훑어봤는데, 나무는 씨가 마르고, 풀은 시들어버렸고, 들짐승, 날짐승 구분 없이 보이지 않더라.”

뛰어난 시력으로 나뭇잎 하나 없는 산을 정찰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드낙의 말에 모두가 단단한 산의 저력을 깨닫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여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놈들을 천천히 무너뜨려야 한다. 핏빛쥐들을 이용해서 그들이 모르는 길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

“일단은 산을 돌아다니는 놈들부터 잡아야 한다. 밖에서 혼란을 주고, 그 뒤에는 내부로 들어가서 작업을 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전략의 뼈대부터 이루어졌다. 밖에서 들쑤시면 밖으로 나올 것이고, 그때 안으로 들어가서 난동을 피우는 것이었다.

“겨울인데 밖에 있는 놈이 있을까?”

드낙의 말에 발바룽이 툭하고 내뱉었다.

“고블린 같은 놈들은 충분하지. 주변에 잡을 동물이 있든 말든 함정을 설치할 것이 분명하다. 쉽게 안 바뀌는 법이지.”

그럴듯했다. 〈여주인 세린〉은 필요한 약초를 설명했다. 겨울에 은신하기 위해서는 밤의 어둠과 같은 색을 얻어야 했다.

“〈검은 덮개 물약〉. 그렇게 어려운 약초 배합도 아니야. 산에서 나는 것이고, 줄기만 봐도 알 수 있어.”

위장색을 위한 물약!

“산의 지하수를 찾아낸다면, 그곳에 독을 푸는 것도 필요하겠지.”

“수독(水毒)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자잘한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독까지!

수많은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전술로까지 이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드낙은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타며 움직였다. 카이야는 날지 못했다. 혼자서 이 산에서 날아오른다면 표적이 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없다고는 해도 나뭇가지는 많았다.

위에서 아래를 본다면 잘 안 보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카이야는 얌전하게 털주머니 속에 들어가서 머리만 빼꼼했다.

‘허이구야. 이놈들 보소?’

드낙은 곳곳에 배치된 함정들을 볼 수 있었다. 솜씨가 그럴듯한 것을 보니 확실히 고블린들이 이 한 겨울에도 밖으로 나와서 함정을 설치하고 있는 듯했다. 동물을 노리는 함정이었기에 매우 은밀했다.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함정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은폐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흔적〉을 지우지 않아 드낙에게는 훤히 보였다. 물론 그럼에도 작대기 하나로 앞을 두드리며 움직였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람에 지워진 함정 하나를 밟을 뻔하기도 했다.

적당히 낙엽에 몸을 숨긴 드낙은 포인트를 잡고 사위를 경계했다. 오면서 달군 돌을 흙에 파묻어서 온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이런 것이 필요 없기도 했다. 드낙의 인간 같지 않은 높은 체온은 사실상 겨울에 면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취익!”

고블린 몇 마리가 빨빨거리며 함정들을 체크했다. 그중에 가장 앞에 있는 고블린은 연신 재채기를 했다.

고블린 어(語)로 뭐라고 지껄였지만 거친 산바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겨울에 산을 타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뭔가를 죽이기 위해 산을 타는 것이 드낙이었다.

고블린들은 결코 그런 위협을 깨닫지 못했다.

퍽!

나무창에 뒤에 있던 고블린의 목이 뚫렸다. 울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3마리를 그렇게 죽이고 포를 떠서 살이 많은 허벅지 안쪽 살만 도려내어서 챙겼다.

하루 동안 불과 15마리의 고블린만 죽일 수 있었다.

퍽! 퍽! 퍼석! 주르륵!

얼음이 깨어지자 물이 새어 나왔다. 피를 씻겨낸 드낙은 고블린 허벅지살로 식사를 했다. 보존 식량은 힘들 때 먹어야 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데.”

그 뒤로 3일 내내 사냥을 했지만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는 더더욱 줄어들었고,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뿔쥐들아~, 어딨니?"

드낙이 2일 전에 떠돌아다니며 찾아낸 굴을 두드리며 말했다. 곧바로 〈핏빛쥐〉가 흙을 걷어내며 머리를 내밀었다. 한 손에 두더지 고기를 들고 있었고, 두더지 가죽으로 인간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작업은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어?”

“뜨낙! 밑에서부터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놀들의 땅굴이 많아서 중턱부터는 진행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놈들부터 죽여야 한다는 소리네.”

“크놀들의 땅굴은 정말 큽니다! 놈들의 몸집이 크기 때문입니다! 뜨낙 님께서도 능히 그곳에서 전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좋다. 크놀들부터 죽이자.”

“성전이다! 성전!”

핏빛쥐가 소리를 질러대었다. 드낙은 중턱의 지하 곳곳에 뚫어놓아진 크놀들과의 전투를 먼저 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크놀 정예 몬스터〉부터 잡아야 했다. 놈이 소식을 듣는다면 사방 팔방 알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미 크놀 포로를 통해서 놈들의 언어를 간파했습니다! 크놀의 두목이 어딨는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좋다! 너만 믿는다. 대장쥐!”

드낙은 그렇게 말하고 식량을 확보, 수독의 제조, 은신을 위한 검은 덮개 물약 제작, 수련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핏빛쥐들은 최대한 빠르게 크놀들의 지하 세력에 대한 정보를 보았다.

화륵!

드낙은 그 정보를 토대로 반듯한 바위에 정보를 새겼다.

‘교묘하군.’

〈크놀의 지하세력〉은 자연적이며, 난잡했지만 확실히 중심이 세워져있었다. 지도가 완성될수록 〈육각형〉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땅굴의 모습이 완성됐다. 마치 벌집과 같았다.

“뜨낙! 이번 전투에 위대하신 분과 함께 전투를 하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입니다!”

〈대장쥐〉가 꼿꼿이 허리를 세우며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말했다. 드낙은 말년병장처럼 설렁 경례를 받아주며 주위에 서있는 핏빛쥐들에게 말했다. 곳곳에 횃불이 세워져 있었고, 바위에 그려진 지도는 확실하게 그들에게 보였다.

“우리들의 목표는 〈중턱〉에서 지하방위를 건설한 크놀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시작은 놈들이 가장 촘촘하게 인구가 모여있는 〈중앙턱〉이다! 이곳은 언덕이 있는 지하땅굴이기 때문에 들키면 한순간이다!”

“예!”

“땅굴을 파서 언덕 밑으로 들어가 위에서 튀어나와 크놀의 두목이 있는 방을 타격한다. 병력의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의 세력이 대단히 넓기 때문에 오히려 숫자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

“예!”

“가는 도중에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곧바로 빠진다! 정예 몬스터가 아닌 다른 크놀들은 형편없는 잡것들이다! 요행으로 얻어낸 기회가 크놀 두목에게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

드낙의 전술토의를 핏빛쥐들은 신앙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서 핏빛쥐들의 기본 전술은 〈우두머리 치기〉가 되었다. 숫자도 많은 핏빛쥐들에게 있어서 상대의 우두머리부터 타격하는 전술은 맞춤형 전술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의 이 전술은 두고두고 전해질 것이 분명했다.

대장쥐는 〈우두머리 치기 전술〉을 〈제1전술〉로 명칭을 새로이 하며 모두 숙지하도록 명령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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