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3 <-- 마신장(魔神將) -->
찍찍!
굴 속에서 튀어나온 〈핏빛 쥐〉가 주변을 훑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제외하면 칠흑처럼 어두웠다. 시골의 할머니 집의 담벼락 너머의 새까만 곳과 다를 바 없었다.
핏빛 쥐는 그 그림자 속에서 바닥을 기어 바퀴벌레처럼 움직여서 벽에 착 달라붙었다. 창문은 조잡한 나무 창문이었고, 그 틈으로 따스한 온기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인간들의 이야기 소리도 새어 나왔다.
손으로 뽑아서 맨들하게 만든 귀를 돌돌 말고 있는 털가죽이 벗겨졌다. 한 쪽만 털을 제거한 귀였다. 첩보에 제법 재미를 붙인 〈핏빛 쥐〉들은 스스로를 〈짝귀 정보원〉이라 칭했다.
붉은 털이 제거된 귀는 나무 창문으로 쓱 들이밀어졌지만 누구 하나 알아차리지 못했다. 갈색의 피부는 나무와 아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이야?”
“이미 사와놓고는 왜 그걸 자꾸 물어? 그럼 진짜지. 나도 짐마차 세 대나 꽉 채웠어!”
말들이 없는 짐마차에는 단단히 봉해둔 천 속에 식량이 가득했다. 사방 팔방을 돌아다니며 있는 발, 없는 발을 총동원해서 모은 식량들이었다.
집 내부에서는 이렇다 할 재능 없는 보부상부터 제법 자리를 갖춘 소상인들이 십여 명이나 있었다.
“돈처럼 사람을 빠르게 움직이는 게 어딨어? 이미 쫘악 퍼졌다니까.”
소상인의 말에 모두 침을 삼켰다. 일단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식량을 긁어모아왔지만 계속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에 물은 것인데 자신감이 실로 대단했다.
“우리가 가기 전에 오우거 침공이 끝나면 어찌하려고 그래?”
“멍청하긴! 거기까지 어떻게 가? 내려가서 큰 상단에 팔아서 마진만 두둑하게 남기면 돼. 부르는 게 값이라잖아?”
북부와의 전쟁 때문에 밀 값이 빠르게 올랐지만 서부 오우거의 침공은 아직까지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 덕에 값이 더 오른다고 판단한 상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마법사의 보호를 받지 못했음에도 돈 때문에 정보력과 정보 전파력이 실로 대단했고, 〈짝귀 정보원〉이라는 겉멋이 번지르르한 5마리의 핏빛쥐들의 표적이 되었다.
꿈실꿈실!
토실토실한 입이 숨을 쉬면서 위아래로 움직였고 수염 또한 까딱거렸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중요한 정보다! 찍찍!’
곳곳에서 오우거에 대해서 떠들어대었는데, 큰 줄기는 같았지만 잔가지는 모두 달랐다. 〈우뚝 솟은 첨탑〉에서 전선이 고착되었다고 말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이미 함락되었고 서부를 포기했다는 공문이 나도는 것을 봤다는 놈도 있었다.
온갖 루머 속에 깃들어있는 진실은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었기에 보부상과 소상인은 갈팡질팡했다.
“인생 별것 있어? 한 방이지!”
그 말에 십여 명의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서로 사업하면서 발은 넓은 이들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가즈아아아!!!”
“밀값으로 떡 벌어지는 저택이라도 사보자!”
핏빌쥐의 귀가 쏙하고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짝귀 정보원〉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뚫어놓은 굴도 뒷발로 메꾸었다.
곳곳에서 이러한 첩보 작전이 이루어졌다. 마력을 뿜어내거나 마법사가 있는 곳에서는 활동하지 못했지만 핏빛쥐들은 상인들을 중점적으로 스토킹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챱챱!”
생고구마를 훔쳐서 다락방에서 뚝딱 먹어치운 핏빛쥐의 밑으로 테두리에 은박이 그려진 값비싼 지도를 펼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부상(富商)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고용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정보들은 3~10일의 간격으로 드낙에게 되돌아갔다.
“뜨낙!”
척!
경례를 하는 핏빛쥐에게 똑같이 경례를 한 드낙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훑었다.
또옥.
물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곳은 〈몽펠리에 성〉의 하수구였다. 관리를 위해서 거대한 크기를 지닌 하수구는 음험한 짓거리를 하기 좋았다.
기사라기보다는 암살자의 재능이 매우 뛰어난 드낙이 이곳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오는 것은 식은 죽먹기나 다름없었다.
“보고해라.”
“예! 마력이 번쩍이는 곳을 말씀대로 피했고, 돈독이 오른 자들을 추적하여 정보를 얻어내었습니다.”
핏빛쥐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귀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털가죽을 벗겨내어 맨들맨들한 귀를 보여주었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 한다는 생색이었다.
“탈모냐? 털을 왜 뽑았어?”
“예? 아, 붉은털로는 잘 들켜서···”
“억지로 왜 뽑아. 아무리 그래도, 탈모 진짜 조심해야 해. 계속 뽑으면 큰일 나.”
“예? 예!”
드낙이 귀를 매만졌다. 털이 벗겨져서 그런지 인간보다 높은 체온이 손에서 확 느껴졌다. 살이 워낙 쪄있는 것이 핏빛쥐들이었기에 말캉말캉하기도 했다.
“음···”
“보, 보고는···”
“아! 해. 해야지.”
분위기가 이상하자 핏빛쥐가 다시 드낙에게 경례를 했다.
“뜨낙!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끄덕.
드낙이 고개를 위아래로 휘젓자 핏빛쥐가 말했다.
“식량이 금이라며 사재기가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목이 줄줄이 날아간 〈볼텍 상단〉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상단을 박살 낸 자는 누구인지 알아냈나?”
“예! 간악한 길게이 플래티넘입니다. 놈의 형편없는 카리스마로는 피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놈이 머릿수만 믿고 우리들의 영원한 창조주이신 드낙 님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계속해라.”
“찍찍! 북부로 향하는 식량은 모조리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1만 명에 달하는 북부 전선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내로 먼저 싸움을 건 반병신 길게이 플래티넘은 스스로 고개를 조아릴 것이 분명합니다!”
드낙이 흡족하게 웃었다.
‘오우거 하나 때문에 일이 재밌게 흘러간다.’
상단이 돈에 미친 것은 누구나 아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발 늦은 길게이 플래티넘을 비롯한 백금 왕가의 간부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막대한 돈으로 다시 사들이거나.’
‘북부에 화해를 요청하거나.’
자연스럽게 드낙은 전자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백금 왕가는 결코 정치적 패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놈들은 400년 동안 제대로 된 전쟁 하나 치르지 않고 연전연승했다.
“또 달리 말할 것이 있어?”
“들은 것에 불과하지만, 제법 상세하게 떠들어대어서 신뢰성이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뭐냐?”
“어찌 관리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리석은 일이지만, 보급 때문에 병사들이 싸우기도 했답니다. 하루에 두 끼도 근근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싸우지 않으니 병사들의 보급량을 줄인 것 같습니다!”
“그래?”
“예! 병사들의 입을 줄이려고 발악하는 것이 절로 보이지 않습니까?”
핏빛쥐의 말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군량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
“그 외에는?”
“정말 돈 많은 인간 놈들의 회의를 엿들은 〈짝귀 정보원〉의 정보가 남았습니다.”
‘하이라이트군.’
“무슨 회의였느냐?”
“백금 왕가와 제법 큰 거래를 하겠다는 소리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식량 값을 최대로 높이려고 먹을 수 있는 밀도 파묻거나 태워버리고 있답니다. 많은 농부가 이미 이들에게 포섭되어 있습니다.”
‘미친놈들! 하지만 진짜 있을 법하다!’
거래할 돈이 없으면 그냥 농부들과 함께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 밀을 사지 않아도 되었다. 비상한 머리였다. 정말 돈 굴릴 줄 아는 놈들이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농부였지만 부상들은 그들 사이에서 교통정리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돈을 얻을 기회였다.
‘상인 놈들도 멍청한 놈들이 하나 없구나!’
드낙은 그들의 움직임에 혀를 내둘렀다. 농부들과 작당하여 시장에 나오는 밀의 양을 대폭 줄인다면 백금 왕가는 엄청난 값을 주고 밀을 사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는 북부는 결코 먼저 화해하지 않을 것이다.
‘오우거가 좀만 더 버텨주면 북부는 누워서도 떡을 먹을 수 있다!’
드낙이 흥분한 기색을 내비치자 핏빛쥐의 앞가슴이 절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고개를 빳빳히 들어 올려서 자랑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이것은 〈대장 쥐〉의 자신만만한 자세였다.
“잘 해주었다. 오늘은 이만 하수구를 통해서 물러가라. 상인들을 통해서 계속 정보를 모아라. 결코 성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예!”
드낙이 몸을 돌리자 핏빛쥐가 경례를 했다.
“뜨낙!”
드낙은 말년병장처럼 흐물거리는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몽펠리에 성〉
〈3차 원탁회의〉
“그 정보의 출처는 어디에서 오셨소? 어찌 그렇게 상세할 수 있소?”
귀족들의 물음에도 드낙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제가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
“까악!”
새하얀 털을 지닌 카이야가 소리를 지르자 주변인들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불파겐의 혈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까도까도 양파같은 혈통이로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백금 왕가의 군사적 행동이 모든 것을 증명해주고 있소. 병사들의 제식이 무너지기 시작했소.”
아크온 몽펠리에는 매우 객관적인 지표를 들어냈다.
병사들에게 있어서 〈제식〉이라는 것은 사실 힘들기만 하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휘관들이 보는 제식은 전혀 달랐다.
그 군대의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제식이었다. 칼처럼 날카로운 제식을 보여줄수록 그 군대의 상황이 좋다는 뜻이었다.
병사가 그런 힘들고 쓸모없는 짓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확히 어젯밤부터 조짐이 있었고, 이제는 창을 제대로 곧추들고 다니는 병사가 거의 없소.”
“흠··· 확실히 상황은 백금 왕가의 편이 아닌 듯합니다.”
순식간에 판단이 기울었다. 그 모습에 드낙은 괜히 쓴맛을 느꼈다. 자신의 의견과 아크온의 의견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부는 다시 한 번 존버를 선택했다.
원탁회의가 끝난 드낙은 빨빨거리며 몽펠리에 내성을 돌아다니며 귀족들과 1:1로 대화를 가졌다.
“이거 이거 드낙 경이 웬일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화를 원하는가? 하하하!”
〈반 킹슬레이(Ban Kingslay)〉가 큰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를 권했다. 드낙은 앉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몽펠리에, 파이룬, 에드윈 가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오?”
“그런가? 몰랐네.”
“킹슬레이 가문에서는 딸이 없소? 다른 가문의 혼사에 이리도 관심이 없을 줄은 몰랐는데···”
그 말에 반 킹슬레이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짧지만 극명한 변화였다.
“그 말의 의도는 뭔가?”
“킹슬레이 가문에 딸이 있으면 정실이든 첩으로든 어떻게든 받고 싶다는 말이오.”
“허, 허허! 허허허!”
반 경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찾으며 드낙을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자네의 혈통을 노리는 이들은 별의 숫자만큼 많겠지. 하지만 정말로 씨를 뿌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루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잠자리를 가지면 누구라도 아기를 낳을 수는 있지 않겠소?”
“흠··· 정말로 하는 소리인가?”
“원한다면 비밀스러운 약조를 해드릴 수는 있소.”
반 킹슬레이는 정말로 드낙에게 밀약을 들이밀었다.
“아들, 딸 구분 없이 둘을 낳아서 하나를 우리 가문에게 주게. 물론 판단은 우리 가문의 기사가 할 것이네.”
“촛불과 씰링 왁스는 어디에 있소?”
드낙의 거침없는 말에 킹슬레이가 웃음을 크게 두 번 터트리고는 양피지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이차가 제법 있는데, 괜찮은가?”
“어느 정도이길래 그러시오?”
"스물여덟이네. 막내인데 결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화장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수도에 연줄이 많고 때때로 제국에서도 시제품이 있나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상단도 있네.”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케이샤. 케이샤 킹슬레이.”
“따님의 결혼을 미리 축하드리겠소.”
“고맙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킹슬레이 가문에 철이 좀 있습니까?”
“하하하! 딸을 잘 봐달라는 뜻으로 넉넉하게 보내주겠네.”
순식간에 추가적인 철도 구했다.
드낙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애의 춤을 추었다. 대부분의 북부 귀족들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왜냐하면 몽펠리에와 파이룬, 킹슬레이 등과 같은 명문가들과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해도 되겠소?”
야망이 있는 가문들은 1년이나 3년 뒤에 하자고 말했다. 드낙은 이것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조용한 이때에 드낙은 더욱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 작품 후기 ==========
5857자. 늦어서 죄송합니다. 월요일에 가지 못했던 안경집에 갔는데, 거진 1시간 동안 검사받고···대구에서 검사 제대로 해주는 몇 없는 곳이고, 원장님이 매주 목요일마다 세미나가시는 매우 전문적이신 분.
제가 눈병신 중에 상병신이라 오래 걸렸는데, 활자를 보면 눈의 초점이 양옆으로 벌려져서 겹쳐보이는 때가 많았습니다. 약간 사시같지만 사시는 아닌 그런 겁니다. 난시도 심하고요.
이게 1년전보다 3.5배 이상 벌어지는 각도가 더 커졌다면서 잘못하면 큰일난다고해서 30~50분에 10분씩 눈을 쉬어줘야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많이 늦게 되었습니다. 한 번 쓰면 3시간~5시간 한컴만 보고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 흐름도 뚝뚝 끊기고.
무엇보다 저는 문장을 쓰면서도 딴생각을해서 문장의 처음과 끝이 달라져서 비문이 심합니다. 나쁜 습관이지만 상상을 많이하는 저로서는 고칠 수 없고 퇴고가 답이라 어쩔 도리가 없는 부분이라···아무튼 이러한 상황이라서 오늘 지각하였습니다.
내일부터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연재주기를 바꿔야하는지 고민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오른쪽 위쪽 끝에 네임펜을 대고 보면 양쪽 눈이 똑같은 각도를 지닌게 아니라 하나가 이상하게 다른 곳을 보고 있는···그런 상황입니다.
이상 지각 변명이었습니다. ㅠㅠ 11월 6일에 나오는 정산금 공개입니다. 이번 달에도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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