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1 <-- 마신장(魔神將) -->
데에에엥!
길고 웅장하게 퍼지는 종의 크기는 실로 대단했다. 사람 다섯 명이 둘러도 못 잡을 정도로 컸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메아리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 〈우뚝 솟은 첨탑성〉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기세를 돋아주었다.
화르르!
봉화가 거침없이 올라갔다. 자신들의 성이 아직도 건재하며, 적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뿌뿌뿡!
금색으로 칠해지고, 붉은색과 푸른색의 얇은 천이 장식으로 있는 나팔이 병사의 손에서 불어졌다.
도망칠 사람은 도망칠 장소를 제공했고, 싸울 사람은 싸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무, 무거운데?”
“익숙해질 거야. 잘 때 입고 자면 더 큰 도움이 될 거고.”
체인메일을 몸에 입은 농부가 무게감에 움츠러들었다. 보급을 담당하는 병사는 등을 두드리며 자신감을 넣어주었다. 농부의 손에 농기구 대신에 방패와 철로 된 곤봉이 들렸다.
“그냥 창을 주면 안 되나? 병사 양반.”
곤봉보다 더 좋은 무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다치게 만들 것이다. 창은 가누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다면 창이 다루기 쉽다는 것이었다.
무게가 가볍고, 길이도 짧은 단창이라면 몰랐지만 철로 된 창은 대단히 쓰기 힘든 무기였다. 길이가 길어서 회수하는 것도 일이었고, 힘이 적으면 창 끝을 제대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걸. 통짜 철이야. 안에 파여진 창이 아니라고. 마수를 죽이기 위해서 무게도 많아.”
“웃. 무, 무겁네.”
철창을 든 농부가 혀를 내둘렀다. 이걸로 찌르려고 하면 창끝은 그냥 땅바닥으로 향할 것이다.
첨탑성에서 싸우는 자들은 1만 8천 명이 넘었다. 그중에 1만 3천이 민병대였다.
한편 내성에서는 〈내성 수비대장 봉골레 판〉이 자유기사들을 끌어안으며 크게 대우해주고 있었다.
“고맙소. 아직도 맥시멈 가문의 후예가 살아있을 줄이야!”
단신인 〈벤 맥시멈〉은 자유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민병대를 끌고 이곳에 합류했다. 그의 확실한 위명에 나이가 좀 있는 자유기사이라도 감히 벤을 낮게 대우하지 못했다.
“생각이 있을 것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모두 봉골레 판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7일을 버티고, 도주하는 것이 이번 일의 임무요. 도주로는 하수로를 이용할 것이오. 성주 벨렌 하이타워는 내정에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 하수구의 관리가 특히나 대단하오.”
“그 끝은 어디입니까?”
“북서쪽에 호수가 있지 않소? 〈물고래 호수〉에 닿아있소. 이미 그곳에 병사들을 보내어 둑을 쌓고, 흘러들어오는 물을 제어하라고 일러두었소.”
퇴로까지 마련한 것이 봉골레 판 경이었다. 물론 살아남는 자들만 갈 수 있을 것이다.
“공성병기가 너무 적소. 오우거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오.”
“성 내부에서 싸워야 한다는 소리라면,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편이 이곳에 오우거를 막아놓기 좋습니다.”
장단점이 있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략이기도 했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국적으로 본다면, 이곳에서 7일을 묶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최전방에서의 하루는 후방에서의 5일과 동일하게 간주되기 때문이다. 만약 7일을 막을 수 있다면 가히 35일의 가치를 얻는 것과 같았다.
“집 중에 큰 곳에 발리스타를 놓고, 오우거를 깜짝깜짝 놀라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사실상 외성벽을 포기해야 하는데, 마수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막아야 하지요. 규합되지 않은 마수들입니다. 오히려 외성 지역의 복잡한 골목길에서 맞이하는 게 전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자유기사들이 오랜만에 자신들이 〈계승〉받은 전술과 전략을 이야기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마신장(魔神將) 오우거(Ogre) 발라쿠(ballakeu)〉는 결코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수 약탈자〉를 통해서 사방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심 없이 움직이는 인간들. 뭉쳐서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야 하지만, 주변 정리를 하지 않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
던전 밖으로 나오면 마신의 은총 중 하나가 사라지며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했다. 이 때문에 발라쿠는 완급 조절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다.
2일 뒤부터 본격적으로 인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우우우웅!!!!
첨탑에 마력이 한가득 모이며 대단히 높고 큰 첨탑에 푸른 마력이 차오른 마법진이 빛을 냈다. 동시에 첨탑의 앞과 양옆에 돌출된 주춧돌 같은 돌출된 넓은 곳에 배치된 대형 투석기 3대가 돌덩이를 던졌다.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바위였다. 오우거라도 맞으면 뼈도 못 추릴 충격량을 지니고 있었다.
큐루우우우웅!
바위 둘은 엄한 데를 타격하며 흙먼지를 가득 피우며 추수가 끝난 땅을 박살을 냈다. 발라쿠는 자신에게 정확하게 들어오는 돌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손에서 번개(son-eseo beongae)〉!”
소리 없이 생겨난 전격이 그대로 바위를 꿰뚫으며 박살을 냈다. 그럼에도 큰 것이 오우거 발라쿠의 몸을 두들겼지만 상처 하나 나지 않았고, 피부가 곤죽이 되거나 멍이 들지도 않았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소서러(Sorcerer)인 것이 오우거였다. 그들의 마법은 마법사처럼 마법진과 긴 영창을 요구하지 않았다. 발동이 곧 마법의 발현이었다. 천부적인 마력 재능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엘프의 복잡한 마법과는 발전 방향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계속 발사해라! 놈은 무적이 아니다!”
“좌로 삼!”
“위로 하나!”
빗나간 투석기를 재조정하고, 다시 한 번 자유 사격이 계속 이루어졌다. 모두 오우거의 마력을 바닥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총 5번에 달하는 사격을 실시할 수 있었고 15개의 바위 중 마법에 맞은 바위는 9개였다.
“온다! 밧줄 준비이이이이!!!!”
위에 있던 자유기사가 빠르게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성벽에는 수많은 허수아비들이 폐기 처분하거나 대장장이가 아직 만들지 못한 무구들을 쓰고 있었다. 밧줄을 좌로 우로 당기자 허수아비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병사들로 보였다. 또한 연극하듯이 조잡하게 만든 발리스타도 보였다. 오우거는 특히나 공성 무기에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벼락!”
하늘에서 벼락의 줄기가 성벽을 난타했다. 허수아비에 불이 화르르 타오르고, 발리스타 모형은 단번에 조각이 났다. 흉악했지만 벼락의 물리력은 그리 대단하지 못했기에 성벽은 아직 건재했다.
병사들은 다시 올라가서 오우거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병사들은 그곳이 아닌 곳의 성벽 뒤에 바짝 붙었다.
“들어라! 놈이 난동을 부리고 지나가고, 50초를 헤아리고 성벽 위로 올라가 올라오는 마수들을 타격한다! 다섯 놈을 잡고 외성 지역의 거점으로 합류해야 한다! 알았나!!”
“예!!”
붉은 깃발을 든 전령이 허둥지둥 달려갔다. 외성지역의 한 집에 있는 봉골레 판에게로 정보들이 수집됐다.
“10번의 마법 사용! 시작이 좋다!”
양피지에 그대로 횟수를 쓴 봉골레 판은 지도에서 오우거가 오고 있는 곳에 오우거의 작은 흉상을 세웠다. 그곳의 성벽은 단번에 박살이 날 터였다.
“오늘 하루가 매우 중요하다. 민병대에게 우리들의 소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 최대한 소극적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싸우더라도 외성 지역에서 피해가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봉골레 판의 전언이 다시 전령을 통해서 퍼져나갔다.
쿵! 쿵! 쿵!
발라쿠가 성벽에 도달하자마자 거대한 할버드를 휘둘렀다. 새까만 재질의 그것은 어떤 재질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콰앙!
한 방에 성벽이 무너져내렸고, 돌가루와 쌓인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 올라왔다. 그 먼지 속에 큰 바위가 들어갔지만 오우거의 거대한 음성에 박살이 났다.
“〈거대한 충격(geodaehan chung-gyeog)〉!”
퍼엉!
거대한 충격음과 동시에 흙먼지가 충격파에 휩쓸리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큰 바위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 지붕 몇 개가 이에 휩쓸려서 날아가 사정없이 뒷집의 지붕과 부딪쳤다. 2층이 박살이 났다.
쿵!
한 걸음 크게 들어온 오우거가 주위를 훑었다. 발밑에 있는 병사들이 움츠리며 숨을 죽였다.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 꽁꽁 숨었구나!!!”
쿵!
할버드의 도끼날이 바닥에 부딪치며 소리를 크게 냈다. 마신장이 들어 올린 왼손에 거대한 화염이 모이기 시작했다.
“〈파멸의 불꽃(pamyeol-ui bulkkoch)〉!”
대단위 범위 공격 마법이었다. 물리력은 적지만 인간들의 구조물을 태워버리는데 제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우거의 마법 공격을 첨탑이 가만히 놔두고 보지 않았다.
쮸웅!
작은 선이 커져가는 불덩이에 겨누어졌고, 이어서 마력이 쏟아졌다. 서로 상쇄되자 오우거가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한 번 해보자는 소리였지만 그 싸움을 방해해야 하는 것이 인간들이었다. 집 곳곳에서 발리스타의 공성 화살이 쏘아졌다. 고래잡이용 화살보다 더욱 관통력이 커진 화살들이었다.
푸부북!
“끄응!”
오우거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 공성 화살에 집중이 흐트러졌고, 마법이 박살이 났다. 할버드가 반월로 휘둘러지며 집을 부셨다. 하지만 외성지역은 대단히 많았다.
“와아아아아!!!!”
먼 곳에서는 함성을 내지르며 대로에서 고함을 지르는 민병대도 있었다. 소란에 오우거가 고개를 돌리면 반대쪽에서 재빨리 발리스타를 쏘고 숨겼다.
“올라가라! 올라가!”
오우거가 외성지역을 박살 내며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했고, 그 사이에 파괴되지 않은 성벽에 올라간 병사들은 달려오는 마수들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물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숫자였다. 적어도 인간은 그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키악! 칵!”
마수 약탈자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고, 무너진 곳으로는 쇠사슬 괴인들이 모였다. 그곳에는 짚들이 던져 저 있었는데 순식간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오우거는 뒤에 불이 났는 것도 몰랐다.
촤르륵!
“억?! 우아아아아악!?!”
쇠사슬 괴인의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쏘아진 쇠사슬이 순식간에 병사 하나를 잡아서 떨구었다. 머리부터 떨어진 병사의 목이 그대로 꺾였다. 힘없이 쓰러진 놈을 보며 쇠사슬 괴인은 다른 병사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후퇴!”
성벽에서 제법 재미를 보기도 잠시였다. 〈진흙 해골〉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자 인간들이 썰물처럼 성벽에서 도망쳤다. 허수아비에 놓아놓은 밧줄을 단단히 다른 곳에 묶어놨기에 주르륵 줄사다리를 타는 것처럼 타서 내려와서 외성 지역으로 호다닥 뛰어갔다.
“그에에에!!”
〈진흙 해골〉은 순식간에 성벽의 안으로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삐져나왔다. 그리고 도망가던 중인 인간 병사 하나를 그대로 덮쳤다.
“컥!”
순식간에 몸을 휘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얼굴을 덮는 일이었다. 패닉에 빠진 인간 병사가 버둥거렸지만 양팔과 다리 또한 조여졌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찐득한 검은 액체가 들어갔다. 부르르 떠는 인간 병사는 느리게 서서히 죽어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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