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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46화 (345/1,239)

0346 <-- 트롤 토벌 -->

펄럭!

북부로부터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이 깃발을 거칠게 흔들었다.

백금 가루를 갈아서 염료에 섞은 검은색의 자수로 새겨진 흑룡(黑龍)이 바람과 함께 거칠게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입을 쩍 벌린 채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흑룡의 주위를 빙 두르고 있는 8개의 노란색의 별이 박혀있었는데, 〈남부 왕국〉의 8개에 달하는 지방을 뜻했다. 북부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지방인 〈메디오 지방〉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메디오인〉이라고 생각했다.

〈백설산맥(白雪山脈)〉의 오크들에게 빼앗기고 폐허가 되었지만 붉은 요새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이 남부 왕국의 북부인들이었다.

〈3왕자 길게이 플래티넘〉은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파이룬 가문의 하찮은 군세가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법이지.’

400여년 전에 있었던 불파겐과의 전쟁. 그곳에서 〈혈통〉을 위시로 한 기사의 무서움은 백금 왕가를 지금까지도 겁먹게 하고 있었다.

두려우리만치 강렬한 삶을 살고,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 대영웅(大英雄)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존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의 기사 수련장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상이 있을 정도였다.

기사에 대한 무력을 논할 때 빠질 수가 없는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북부의 땅도 나쁘지 않구나. 겨울이 빨라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남부 지방보다 살기 어렵기 때문에 고위 기사가 많은 것일지도 몰랐다. 기사란 인류의 적을 상대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혈통이 개화할 확률이 높았다. 양식된 몬스터로는 〈혈통〉을 얻을 수 없다는 연구결과가 〈중앙 마탑〉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격차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내달리는 언덕〉은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하나의 경계선이었다. 그곳을 먼저 선점한 백금 왕가의 군세는 지형적으로 이점을 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완만하고 드넓은 언덕인 이곳은 특히나 백금 왕가에게 좋았다.

〈볼레티안 기사단〉 700명이 느긋하게 전투마를 몰며 언덕을 도는 모습은 진풍경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왕가에서 하사하고, 허락한 길게이의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2100기에 달하는 중갑기병이 말들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도 훑었다. 오직 그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1200기의 경기병 또한 자벨린을 단체로 손질하고, 연습 사격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깃발이 언덕 진지에 가득 펄럭였다. 물론 그중에 백금 왕가의 깃발은 딱 중앙에 있는 1개뿐이었다. 나머지는 거진 원색으로 된 깃발들에 불과했다.

연합군의 성격을 띠는 북부의 군대와는 겉모습부터 크게 차이 났다.

“당겨으아!”

장궁병들은 모든 환경 조건이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 바빴다. 허리를 숙이고 장력이 70kg(154파운드)에 달하는 2m짜리 장궁을 당기고 있었다. 대단히 잘 먹고 자란 장궁병들의 키는 180이 넘었기에 장궁을 사용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몇몇 베테랑 장궁병들은 척추가 조금 변형이 되어있기도 했다. 허리 즉, 코어의 힘까지 사용하여 장궁을 당기기 때문이었다.

장궁병의 숫자는 4300명이나 있었다. 〈백금 왕가〉의 또 다른 고위기사 대처법이기도 했다. 판금을 뚫을 수는 없지만, 낙마를 시키게 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10개의 군단으로 나누어진 1만 보병이 진형 연습에 한창이었다. 파이룬 가문이 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숫자가 많아도 모두 정규병이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과 같았다.

장궁병들은 근력을 크게 사용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방어구는 하나 착용하지 않았다. 몸에 무게가 조금만 들어가도 장궁을 당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력을 극대화한 병종이었다.

반대로 보병들은 모든 보병이 트랜지셔널 아머(Transitional armour, 鏡幡甲)를 착용하고 있었다. 판금과 체인메일의 합일이었다. 중보병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북부 보병과는 다르게 팔에 대한 방어도가 높았다.

잘 죽지 않고, 피를 뿜어도 다리를 공격하는 몬스터들의 질긴 생명력 때문에 북부 보병은 다리에 대한 방어도를 잘 챙겼기 때문에 팔만 차이가 났다.

거기에 〈중앙 성기사단〉 500명까지.

가히 1만 8천에 달하는 병력이 겨울을 앞두고 있음에도 출정했다. 그만큼 여력이 되는 것과 동시에 불파겐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흉악한 짓거리였다. 북부의 고위기사를 대단히 과대평가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왕자 전하.”

백금 왕가의 유일한 고위 기사이자 남부 귀족의 배신자라 낙인이 찍힌 〈불릿 발레아르〉가 3왕자 길게이에 다가왔다.

“날씨가 춥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아직 해도 저물지 않았소. 하하하.”

그가 웃었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에 불릿은 연이어서 몇 번이고 간곡하게 말했다.

“내 건강을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되네.”

불릿 발레아르는 무인답게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만 듣고도 길게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며 정확하게 불릿의 내심을 간파했다.

“파이룬 쪽에서 내 모습을 버젓이 보고 있겠지? 지금 이 사달이 났으니 종군 마법사고 뭣이고 상관없이 마법사를 전장으로 끌고 왔을 테니까.”

“〈마법 마차〉가 있는데 그 어떤 마법이 저희를 침투할 수 있겠습니까? 쥐새끼 한 마리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독을 풀어도 중앙 성기사단이 있습니다.”

“인간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네. 난 파이룬 가문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더더욱···”

“더더욱! 내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간단한 위력시위가 아니야. 북부는 3번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면 백금 왕가는 한 겨울에 놈들의 성을 불태우고, 남자는 고문하여 비전을 토해내도록 하고, 여자는 첩으로 맞이하여 그들 가문의 혈통을 빼앗을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2만 대군에 달하는 병졸들이 이곳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파겐의 후예 또한 내 두 눈으로 평가를 내릴 것이다.”

“역사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사람이 어찌 2만의 군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단호한 말에 〈황실 기사단장〉 불릿 발레아르가 냉큼 맞장구쳐주었다.

그때, 전령이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호위 기사가 양피지를 받아듣고, 전령의 말을 들은 다음에 다가왔다.

“무슨 내용이냐?”

“〈게실리안 파이룬〉 소가주의 말입니다.”

“계속해라.”

호위 기사가 양피지를 펼쳤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전령에게 들은 것이기에 양피지를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백금 왕가에 대한 찬양.

겨울이 와서 힘들어하는 시민.

북부와 남부의 한핏줄.

작위에 대한 올곧은 충성.

그것을 말하고 난 뒤에 본론이 끝에 적혀져 있었다. 그것까지 말하고 호위 기사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갔다.

“쩔쩔 매는 것이 보이는군. 그것이 흑인지 백인지 어떻게 구분해야 할 것 같소? 기사단장.”

의견을 묻는 말에 불릿 발레아르가 목례를 하며 대답했다.

“응당 군대를 보내어 반응을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50점짜리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플래티넘의 핏줄들은 〈불릿 발레아르〉를 신용했다.

“불파겐의 후예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파이룬을 친다? 이겨도 남는 것이 없는 싸움 아닌가. 하하하.”

재미난 농담을 들은 것처럼 길게이가 웃어넘겼다.

이 전쟁은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북부가 자신들의 군왕을 선택하듯 〈드낙 불파겐〉을 선택했다. 그 믿음이 진실인지 아니면 허세인지 반드시 알아야 했다.

“파이룬 가문에게 전해라. 야지에서 대치하지 말고, 〈몽펠리에 성(Montpellier castle)〉으로 가라고 전해라. 그 어떤 약탈도 없다고 전해라. 나라의 영토를 왕족이 왜 황폐화를 시키겠느냐? 안심하고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라고 해라.”

“예!”

백금 왕가의 전령이 파이룬 가문의 1200명으로 이루어진 진지에 들어갔다. 절반이 용병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백금 왕가의 군세와는 모든 면에서 하자가 있었다. 파이룬 가문은 일부 척후병을 제외하고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쯧쯧. 저렇게 왕족의 지엄한 말을 신용하지 못하다니.”

“진정으로 충성스럽지 못한 반역도들입니다. 너무 마음 가지지 마십시오.”

불릿 발레아르가 입에 침을 묻히며 맞장구를 쳤다.

회군을 결정한 아크온을 따라서 남부, 동부의 병력 2천은 허둥지둥 내려가고 있었다. 그 속에는 드낙 또한 있었다.

‘혼자서 트롤을 잡을 수는 없지.’

일의 우선순위를 따지면 백금 왕가 쪽이 더 높았다. 여기에서 딴 소리를 했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몰랐다. 드낙은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속속들이 전령이 소식을 가져오며 1주일을 쭉 내려가는데 사용했다.

“전쟁터는 몽펠리에 성이 될 것이다. 적의 군세는 2만이다.”

“으음···백금 왕가의 여력이 그 정도라니.”

귀족들이 사색이 된 채로 신음했다. 이번 겨울은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백금 왕가가 질질 끌며 자원을 소모하기보다는 빨리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한다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었다.

“한 번만 막으면 되오. 속도를 늦춰서 최대한 많은 병사와 기사를 기다려야 하오.”

아크온의 그 결정 덕에 〈쌍둥이 성채〉에 도착했을 때에는 서부의 킹슬레이 가문과 나쉬 가문의 병사들이 합류할 수 있었다.

“겨울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 캬하하하!”

성인 남자를 때려 넣은 것처럼 거대한 양날 도끼를 어깨에 짊어진 킹슬레이 가문의 기사는 한눈에 시선을 잡았다. 아크온이 드낙에게 말했다.

“킹슬레이의 가주이자 영주인 〈반 킹슬레이〉 경이다.”

오른팔이 기괴할 정도로 근육으로 부풀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혈통〉인 듯했다. 사람 키만 한 양날 도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거한 중의 거한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군. 드낙 불파겐 경.”

반 킹슬레이는 척척 움직여서 드낙의 앞에 바짝 섰다. 체급을 재 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근슬쩍 앞으로 밀기도 했지만 드낙이 버티자 제법 놀란 눈치였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싸움에서는 패배한 귀족들과 왕가가 불파겐을 신격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았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하고 반이 차이가 나는 드낙이 밀리지 않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뜻은 체급이 무의미하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오. 빠르게 내려가야 하오. 백금 왕가 쪽에서 제법 급한 눈치이기 때문이오.”

“이런 겨울에 2만 군대라니. 폭군도 그런 폭군이 없을 텐데, 이번 일은 시민들의 입에 크게 오르내릴 것이오. 안 그렇소? 드낙 경?”

“맞소. 민심을 저리 쉽게 여기다니. 백금 왕가는 지금까지 얼마나 승승장구한 것이오?”

“덩치가 크다고 누구도 덤비지 못한 것이오! 내 전부터 북부의 군왕을 뽑아 크게 한 탕 하자고 해도 누구도 내 말을 안 듣더니! 잊힌 가문 따위나 들먹거리고 안 그렇소? 지금 보니 그렇게 할 만도 하면서도~!!”

반 킹슬레이는 드낙의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이가 60이 다 되었음에도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다.

‘귀청 떨어지겠네.’

결국 총 18일에 걸려 그들은 〈몽펠리에 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양옆으로 산이 있고, 앞뒤로 평야가 있으며 두 곳의 산에서 흐르는 강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수로를 따라서 평야를 가르고 있었다.

몽펠리에 가문의 시작을 알린 곳이었다.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생산 거점이나 다름없는 이곳의 성은 수성하기 불편할 정도로 성의 크기가 대단히 컸다.

그들이 입성하자마자 백금 왕가의 진영에서 사절단 10명이 몽펠리에 성 안으로 들어섰다.

“작위도 가지지 않은 비루한 반역자의 후예는 당장 나와서 무릎을 꿇고 투항하라!!!”

콧수염만 기르고 왜소한 체격이지만 고집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젊은 문인이 내성에 있는 넓은 대전에서 귀족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홀로 고함을 바락바락 내질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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