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345화 (344/1,239)

0345 <-- 트롤 토벌 -->

“일단은 남쪽으로 향해야 하오. 트롤 토벌은 내년을 기약해야겠소. 또한 서쪽으로 전령을 보내어 바삐 오라고 전령을 보내겠소.”

서부의 가문인 〈킹슬레이(Kingsley)〉와 나쉬 등의 가문과 혼선을 맺으면 안 되었다. 모두 당연한 듯이 트롤 토벌을 포기했다. 몬스터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드낙은 아크온의 〈기사 마차〉에서 함께 가며 귀동냥을 했다. 이미 한 배를 탄 것이었고, 몽펠리에는 장남의 결정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가 가문을 위해서 해준 것만큼 가문의 영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가주를 안 하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지만 가주가 바뀌기 전까지는 가주인 아버지 다음으로 영향력이 강한 것이 〈버팔로 나이트〉였다.

“겨울에 전쟁을 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허세일 것이고, 트롤 토벌이 마무리될 것 같자 판을 어지럽히려고 하는 짓이다.”

아크온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럼 오히려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야?”

드낙의 일차원적인 말에 아크온이 웃음을 터트렸다.

“순수하구나. 드낙! 상대가 바보냐? 그렇게 한다면 평야의 땅을 망가뜨리고, 강둑을 파괴하고, 물길을 덮어버리며 크고 작은 마을을 약탈까지 할 것이다. 강에 독을 풀지도 모르지. 숲에 있는 나무를 남김없이 벌목하여 가져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도시나 성에 공성병기로 타격을 주겠지.”

“개자식들이네.”

드낙이 그 더러운 생각에 짜증을 냈다. 하지만 능히 그럴 수 있었다. 자신들의 장단에 맞춰주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특히나 이미 불파겐을 받아들인 것이 북부 귀족이었다.

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면 아예 전면전을 하면?”

“그전에 백금 왕가가 협정을 맺겠지. 북부의 군대가 하나가 되려면 못해도 보름에서 한 달은 걸린다. 보급로까지 생각해야 하는 먼 곳에 있는 영지에서는 많은 병력도 못 보내올 것이다.”

병사만 많이 추려낼 수가 없다. 식량, 이번 겨울을 내야하고 구휼을 위해서 최대한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영주들로 권력자의 힘이 나누어져 있는 북부는 되려 적이 제법 깊게 들어와야지만 전쟁을 하기 편했다.

〈겨울〉 〈보급의 형편〉 〈영주마다 나누어진 권력〉 그 수많은 요인들을 통해서 국경지대에 병사만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몽펠리에와 파이룬 영지에서 난동질을 해도 북부의 힘이 고스란히 남쪽에 모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북부 전체를 상대하지 않는 꼴이다.

“······”

그 판을 아크온이 말해주자 드낙은 혀를 내둘렀다. 기차로 보급을 해도 한계가 있는데, 마소(馬牛)로는 더욱 한계가 있었다.

“그건 백금 왕가도 마찬가지 아니야?”

“지금까지 보급을 몰아넣어서 많이 쌓아두었겠지. 트롤의 난동질부터 준비를 했을 것이다.”

“기가 막히네.”

트롤 토벌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술수를 부리기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종군 마법사를 보낸다면서 시간을 끌기도 했다. 실제로 종군 마법사 이후에 움직였기 때문이다. 불파겐에 대한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데도 왜 그들이 마법사를 파견했을까?

이러한 수작질에 대한 밑바탕을 위해서였다. 〈토벌을 지연〉하기 위해서였다.

백금 왕가가 군대를 보내 대치하고, 북부에서 남쪽에 위치한 영지를 약탈하거나 작게 싸우는 것만으로도 트롤이 다시 힘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못해도 삼천~오천 명의 병사를 핏물로 만들어도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불파겐이 참전할 것을 예상해서 더 많이 준비할지도 모르지. 혹은 아예 전쟁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을 보냈을 수도 있지.”

“규모가···”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명문가에서 보유한 병력이 계절마다 편차가 심해도 500~1천이다. 물론 방계까지 합해서다. 실제로 몽펠리에가 이번 토벌에 투입한 병력수가 500에 달했다.

겨울에는 500명이 적당하다는 소리였다. 다른 영지는 그것보다 낮았다. 100명 이하였다. 그런데 백금 왕가는 기본이 3천, 5천이었다.

이런 배경을 말한 뒤에 아크온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최소한 한 번은 싸우게 될 거다. 그곳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백금 왕가도 연달아서 군대를 보내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농성으로 몇 시간을 싸우든, 산이나 숲에서 나무를 캐오려는 병사들을 죽이든 작은 전투는 불가피하다.”

“그 뒤에 협정을 하게 되고?”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나돌았다.

“유격전이라면 자신 있어. 나 혼자서라도 놈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자신이 있다.”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안 그러면 북부가 널 받아준 의미가 없다.’

백금 왕가를 상대로 검과 방패가 되어야 하는 것이 드낙의 상황이었다. 딴 소리를 했다면 북부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드낙을 내쳤을 것이다.

정치적 일관성은 드낙이 반드시 가져야 할 소양이었다. 그게 그의 빈약한 단점을 가려주는 장막이었다. 기구하지만 지금 드낙의 기반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백금 왕가의 명분은 〈제퍼 플래티넘(Zephyr Platinum)〉에 대한 모욕의 사과다. 북부 귀족에게서 작위를 받으면 그 가문의 방계가 되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구도 너에게 작위를 내리지 않았다. 어차피 백금 왕가의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쓸모가 없었겠지만, 혹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말해둔다.”

드낙이 수긍했다.

“이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힘을 못 쓰고 쩔쩔매면 넌 백금 왕가로 호송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싸워도 인간은 결국 한계가 있는 법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추격에 시달리고, 수천을 베어도 끝은 있는 법이다.”

“일이 잘 풀리면?”

“불쌍한 제퍼 왕자전하만 죽게 되겠지. 그게 아니라면 귀족들에게 제퍼에 대한 판결을 건네줄 것이다. 플래티넘 가문이 왕권을 쥐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평생 갇혀서 살게 하는 것뿐이고.”

백금 왕가 스스로 제퍼를 죽여야 한다는 소리였다. 귀족에게 넘겨주면 그것도 골치 아프게 된다는 말에 드낙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흐흐. 이게 정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지.”

아크온이 웃으면서 술을 한 잔 마셨다. 자신도 저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뛰어난 혈통 탓에 젖살이 빠지지도 않았을 때 남부 왕국의 수도에서 지내야 했다. 보통 인물이었다면 트라우마 속에서 망가졌겠지만 아크온은 태생이 난 놈이었다.

백금 왕가에 대한 분노만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은 뜨거운 분노가 아니라 차가운 분노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피해만 입겠네.”

드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싸우기도 전에 견적을 봤기 때문이다.

병사나 기사를 죽인다고 해서 백금 왕가가 크게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낙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상대가 정규군이었다. 하루에 백 명을 죽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잘해봤자 50명? 정규군의 진형을 붕괴시키는 것은 힘들다.’

드낙이 강철을 갈라낼 수 있는 소설 속의 오러 블레이드 그런 걸 터득하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방패가 겹겹이로 쌓이고, 빈틈마다 창이 튀어나오며 도끼는 물론이고 서로 하나가 된 정규병의 기이할 정도로 뛰어난 〈훈련도〉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병사들에게 마법 장비도 많이 보급되었겠지. 다수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부상이 고작일 것이다.’

세속화된 성전대가 있을지도 몰랐다.

‘상대하기 지랄 같겠어.’

진형을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고블린 광전사〉에게 손쉽게 피해를 당한 그림은 드낙이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드낙 불파겐〉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의 사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야.’

이상하리만치 뛰어났다. 몬스터 때문인지도 몰랐고, 항상 약자의 위치에서 국가를 세웠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자부심은 실로 대단할 것이다.

“휴우! 이거 이번 짧은 전쟁에서 날 죽이려고 작정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수백의 기사가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북부 가문들의 검을 들어 올리게 만들었으니까.”

잠시 생각에 빠진 드낙이 아크온에게 물었다.

“만약, 제대로 한 판 붙자고 하면, 할 생각이 있어?”

아크온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드낙, 지금은 겨울이야. 이 시기에 병사를 동원한다면 내년 가을 추수를 앞두고 백금 왕가가 반드시 어떤 명분을 세워서라도 싸움을 걸 것이다. 싸우지 않더라도 난동을 부리며 북부의 경제를 파탄 내려고 하겠지.”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한 번의 싸움이 아니라 그 이후를 염두해야 했다.

“그럼 애초에 백금 왕가를 상대로 전쟁도 못하는데 왜 나를 받아준 거야?”

“현상 유지. 남부 귀족처럼 땅이 빼앗기면 모든 것이 끝임을 아니까. 북부를 지키기 위해서다.”

‘현상 유지.’

드낙은 그것이 자신 또한 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뉘앙스가 달랐다. 이질감을 조금 느꼈지만 왜 그런지는 드낙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회의〉에서는 알 수 있을까?’

결국 이미 짜인 판에서 싸운다는 소리였다. 그 판을 깨야 하지만 그럴 역량을 낼 수 없는 것이 겨울이기도 했다. 흑마법사들이 왜 하필 가을을 앞두고 〈외눈 다크 트롤〉을 각성시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물론 흑마법사들은 트롤이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후에 밤에 이루어진 원탁회의에서는 북부의 뜻을 하나로 해야 하는 것과 백금 왕가에 대한 적의를 불사르는 이야기가 주류로 이루어졌다.

백금 왕가의 군사적 행동에 처음에는 놀란 귀족들도 꼼꼼히 생각을 하고 나와서 모두 침착해져 있었다.

〈국지전〉에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늦은 밤의 원탁회의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작은 싸움〉에서 승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진짜 전면전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드낙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정리를 했다.

백금왕가는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

북부 귀족들도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

불파겐을 통해서 현상 유지하는 것이 진짜 목표. 백금 왕가도 이것을 알고 있기에 나선 것이다. 혹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선 것일 것이다.

자신 또한 버려진 영지에서의 안정을 원한다.

모순적이게도 서로 싸우고 싶지 않은데도 싸우는 격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드낙은 잠을 청했다.

검은 연기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모든 이들이 모여있었다.

“세파리아스. 넌 몰랐던 거냐? 북부 귀족들이 결국 현상 유지를 원한다는 것 말이다.”

“백금 왕가를 적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속하라고 했지, 내가 언제 백금 왕가를 멸망시키자는 소리를 한 적이 있나?”

“······원래 이런거야? 이 바닥이?”

제법 순수한 소리를 내뱉는 드낙을 보며 세파리아스는 안심하며 말해주었다.

“권력자는 언제나 권력을 쥐고 싶어 하지. 서로 정말로 망하자고 하는 건 드물어. 서로가 가진 힘을 맹신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드낙은 일단은 수긍하고 앞으로에 대해 물었다.

“당연히 같이 내려가서 국지전에서 승리를 따내고, 백금 왕가에서 작위를 받아야지. 놈들에게 불파겐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라.”

“놈들의 본대를 격파하는 것은 무리겠지?”

“네 수준으로는 정규병 300도 못 이긴다. 특히 마법 전력이 강한 것이 백금 왕가라며? 병사들의 마법 방어 수준이 높을 것이다.”

세파리아스의 즉답에 드낙은 아쉬움이 컸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자신은 더 성장해야 했다. 육체적으로도, 초월적인 힘으로서도, 정신적으로도.

트롤도 잡고, 오우거도 잡을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인간의 육체를 초월했지만 결국 한계가 있었다.

“무쇠를 자를 힘. 그런 것만 있었어도.”

‘썰리는 대로 다 죽일 수 있다면 인간 상대로 대단한 힘을 가질 텐데···’

그런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강인해도 강철이라는 것은 보통이 아니었다.

“승리해도 제퍼 플래티넘에 대한 것은 포기해라. 백금 왕가의 뜻에 맡겨라.”

“뭐?! 완전 호구잖아!”

“유비니 비비니 지랄 떨 던 놈이··· 일관성 있게 행동해라. 오히려 돋보일 것이다.”

펄떡 뛰는 드낙을 보며 세파리아스가 한 마디 했다. 그 뒤를 이어서 〈기어오르는 발바룽〉도 입을 열었다.

"하려면 제대로 연기해야지. 이번 일이 끝나면 버려진 영지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 걸? 콩고물이라도 먹으려고."

호구에게 사람이 모이는 법이었다. 커피라도 공짜로 먹어보려고, pc방 비를 대주고, 술값을 항상 내주는 친구에게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공주를 달라는 소리도 잊지 말고. 백금 왕가는 북부를 먹고 싶고, 북부 귀족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 싶어 하고, 너는 버려진 영지를 살려야 하는 게 목표 아니냐?”

“지금은 큰 세력이 두 개지만 너까지 오르면 남부 왕국의 미래는 정말 어찌 될지 모른다.”

드낙은 삼국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러기엔 버려진 영지는 너무 형편없는 땅이었다.

“나 혼자 트롤을 잡을 수 있긴 있을까?”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드낙의 하찮은 두려움을 비웃었다.

“너보다 뛰어난 암살자는 없다. 오히려 넌 몬스터의 대적자나 다름없지. 장담컨대 단단한 산에서 혼자 다니는 게 넌 더 재미날 거다.”

========== 작품 후기 ==========

622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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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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