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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44화 (343/1,239)

0344 <-- 트롤 토벌 -->

검은 연기가 드낙을 뒤덮었다. 멀리서 조그맣게 뭔가를 씹어먹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응? 내 착각인가?’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안 들리자 드낙이 귀를 후비며 검은 문을 찾았다.

‘강화된 재생력을 주려나? 뭘 주려나.’

기대하며 들어간 드낙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문이 딱 한 개 뿐이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 하나가 끝이야?”

‘이럴 리가 없는데.’

드낙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로또 1등이었는데 3등이 된 기분이었다.

“왜 검은 문이 하나야? 세 놈을 조졌는데. 선택지라도 좀 많아야 하는 거 아니야?”

드낙의 말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고, 모습만 드러냈다.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하나만 있는 검은 문을 확인했다.

‘〈피부 혈액 저장소〉.’

피부 곳곳에 혈액을 저장하는 능력이었다. 피를 일반인보다 50%나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었다. 〈트롤의 재생력〉 능력을 더욱 좋게 해주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납득하지 못했다.

‘장난치냐? 검은 꿈. 이걸 나에게 준 놈이 내가 죽인 트롤의 업으로 뭔가를 하는데 사용했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

그게 무엇일까? 부활? 그러기에는 자신의 앞에 모습이라도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의문만 남을 뿐이었다.

“알고 있는 놈은 없겠지. 알고 있어도 안 말하겠지?”

“뭔 헛소리냐? 놈들에게 얻을 거라곤 재생력뿐이다. 하지만 넌 이미 〈트롤의 재생력〉을 보유하고 있지. 한 마디로 죽여봤자 큰 능력을 얻을 수는 없다. 트롤의 정수를 이미 먹었으니까.”

세파리아스의 말은 100% 옳게 느껴졌다. 하지만 드낙은 자신의 촉을 믿었다. 편의점에서 사기를 여러 번 당하며 깨달은 그 간질간질한 ‘뭔가가 잘 못 되었다.’라는 감각. 지금 상황에서도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내 착각이라기에는··· 너무 박하다.’

꼭 짚어서 말해도 세파리아스와 다른 이들은 정론을 내세웠다. 이미 〈트롤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얻을 게 없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결국 드낙은 싫증이 나서 그냥 안건을 넘겨버렸다.

인내심이 적은 것이 드낙이었다. 장기, 바둑 그런 것과는 인연이 없기도 했다. 소강상태를 잘 견디지 못했다. 비록 여물지 않은 실력이었지만, 어둠 속에 적이 보이지 않았을 때 졸기까지 한 드낙이었다.

또한 발바룽이 능숙하게 〈검은 여과기〉로 드낙의 시선을 돌렸다.

“하얀물은 있구나. 〈푸른 고블린〉꺼네.”

환상을 확인한 드낙은 코를 훔쳤다. 〈진형 파악〉이라는 능력이었다. 다수의 군대가 모여있는 곳에 대한 진형 파악, 형세의 판단을 좋게 해주는 전술 능력이었다. 현장에서 뛰는 중간 간부의 역할로 보였다.

‘많이 죽이긴 죽였지.’

〈검은 여과기〉에 〈푸른 고블린〉의 능력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조련술의 업(業)〉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 이상했지만 드낙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곧바로 〈검은 회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드낙의 어그로를 끌기 좋은 가장 자극적인 트롤 토벌의 가속화를 주장했다. 자극에 미친 인종이 있다면 바로 현대인일 것이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

“이미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이야. 정규병까지 많이 죽은 이상, 걷잡을 수 없고 결과를 모두 내려고 하기 때문에 귀족들도 적극적이게 변할 수밖에 없어.”

“이번에서 얻은 공으로 트롤 한 마리에 대한 전리품을 주장하는 것도 잊지 말고. 논공행상에서 빼돌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발바룽의 선 전리품 사상에 세파리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패군으로 강림하며 한 번 패배를 맞이해본 그였다. 또한 드낙의 처세를 위해서라도 반대 의견을 내야 했다.

“결혼 동맹이 예정되어있는데 무리해서 선 전리품을 소리 낼 필요는 없다.”

“네가 웬일이냐. 내 생각을 다해주고.”

“시끄럽다. 네놈이 바뀌지 않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세파리아스가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검은 회의는 계속 진행됐다. 온갖 것들이 말해졌다.

전투는 그 뒤로도 3일이나 길게 늘어졌다. 도망친 고블린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함이었다. 달리다가 탈진한 병사는 잠깐 쉬다가 다시 달렸다.

모든 인간들이 알고 있었다.

지금 기세를 잃은 고블린을 죽이지 않으면, 놈들은 단단한 산에서 다시 한 번 자신들에게 칼부리를 들이댈 것이다.

특히 푸른 피부를 가진 고블린은 단 한 마리도 살아서 산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놈에게 많은 정규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 분노 또한 대단했다. 종족주의가 팽배한 인간들이었기에 코피를 쏟으면서도 체력을 소비하는 병사도 많았다.

후우웅!

거친 초겨울의 바람으로 바뀌며 칼날처럼 드낙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이제 겨우 끝났다.’

단단한 산으로 도망친 고블린의 숫자는 1천에 불과했다. 나머지 4천은 모조리 평야에서 반불구가 되어서 기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이 죽이지 않아도 다친 고블린 대부분은 차가운 초겨울의 밤에 얼어 죽었다.

“합류하라!”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인간들은 폐허가 된 〈야생마 마을〉에 집결했다. 무너진 목책에 비스듬히 깃발이 놓이거나 땅에 박혀서 곧추서있는 깃발이 수백 개가 넘었다.

“······”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 들려왔다. 많은 병사들이 있었음에도 침묵은 지나칠 정도로 무거웠다.

엄청난 대승이었음에도 분위기는 처참했다.

“약혼녀는 홀로 남겨놓고, 개자식···”

많은 전우가 죽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병사는 없었지만 군대의 사기 자체는 바닥을 쳤다.

으아악!

때때로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는 병사의 외침도 들려왔다. 그만큼 마지막 평야에서의 싸움은 처절했다.

동부군은 진형을 갖추지 못한 채 광분 상태에 들어선 고블린 전사와 부딪쳐야 했다.

진형을 빼놓으면 시체인 것이 인간이었다. 또한 고블린과 인간의 장비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동부 귀족군의 경우 종군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챈트의 덕을 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엄청난 피해···’

정규군 410명이 사망했고, 남부군 중경상자 500명, 동부군 중경상자 800명이 생겼다. 동부 기병의 경우 말들을 많이 잃어 실질적으로 기병전력이 반 토막 났다. 총 1700명에 달하는 피해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중에 1300명은 신성력을 통해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르르···!

용병들의 시체가 잔뜩 모여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드낙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 또한 사실 이번 싸움에 큰 공을 세웠다. 목숨으로 몬스터의 돌진 속력을 늦추고, 트롤과 고블린의 간격을 멀게 하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용병 300명이 죽어도 통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보고서에 한 줄 그어지는 것이 전부다.’

오늘 약식으로 있었던 피해 보고를 위한 원탁회의에서 용병에 대한 것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한곳에 몰아넣어 불을 지르며 장례를 짧게 치른 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발가벗긴 채 태워지고 있었다.

수거된 것은 피해를 입은 마을에 배분될 것으로 보였다.

‘용병도 사람인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드낙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라는 놈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 뒤로는 온갖 자기변명이 이루어졌다. 그제서야 드낙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북부를 걱정하는 드낙이 있었다.

‘정규병 410명이 죽었다. 엄청난 금전 손실이 일어날 것이다.’

보통 장례와는 격이 다른 장례가 치러질 것이다.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가야 했기에 보급에 혼선이 올지도 몰랐다.

그들의 모든 것은 유품이 되어 관에 보관됐고, 맨몸은 힘을 강하게 줘서 뼈를 분지르더라도 가지런하게 만들어 천으로 꽁꽁 묶었다.

무인(武人)들이 세상의 주인인 곳의 장례는 특히나 사람의 온몸을 천으로 꽁꽁 싸매는 것이 강제됐고, 관을 짜는 것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투로 흉측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대한 장례식이 열릴 수밖에 없는 규모였다. 그들의 가족 또한 참관하게 될 것이고, 정규군을 다시 충원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대우해줘야 했다.

금화는 물론이고 백금까지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멜마론 평야〉에 평화가 다시 들어왔지만, 병사들은 자신들의 전우를 옮길 준비에 손이 바빴다. 그 사이에 귀족들은 제대로 된 〈원탁 회의〉를 개최했다.

잔뜩 모인 귀족들 사이에 드낙은 뻔질나게 발걸음을 옮기며 인사를 나누고 두어 마디를 이어나가며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외웠다. 물론 전부 외우지는 못했다.

야수 기사로 불리는 〈그라돈 토치라이트〉가 괜히 크게 웃으며 드낙의 손을 잡으며 악수를 했다.

“드낙 불파겐 경! 그때는 왜 몰랐을까! 하하하! 우리 가문이 준 전신갑주는 잘 쓰고 있소?”

“〈구울 묘지기〉와의 토벌에서 박살이 나버렸소.”

드낙이 대답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은혜는 전신갑주에 버려진 영지 중 한곳에 대한 토지 문서도 있었다. 드낙이 엄연히 따낸 것이지만 토치라이트가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다시 상기한 드낙은 마음이 찜찜했다. 놈들에게 일각수의 고기를 강매 당한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표정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가문과의 전면전은 지금 그 어떤 이득도 주지 못했고, 되려 귀족들에 대한 불파겐 공포를 전파시킬 수 있었다.

‘나는 유비다. 덕으로 주변을 두르고, 무력을 키우는 것이 내 계획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토치라이트 가문을 짓누르는 건 솔직히 정치적으로는 좀 아니지.’

그저 은근히 토치라이트 가문이 저지른 〈일각수 강매〉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럴 수가? 아무리 연식이 오래되었다고 해도 전신갑주가 산산조각이 났단 말이오?”

그라돈이 경악했다.

“몇 번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너무 쉽게 파괴되어서 나도 놀랐소. 일각수의 고기까지 강매당하듯이 내어줬는데 사실 실망이 좀 컸소.”

그라돈이 헛기침을 했다. 다른 귀족들이 그걸 들으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토치라이트 가문이 전신갑주에 장난질을 하고, 일각수의 고기까지 협박해서 얻어냈구나. 미친놈들!’

북부의 동쪽에 소속된 동부 가문들의 귀족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가 빠르게 풀었다. 〈버려진 영지〉와 도로는 연결되어있지 않아도 직선상 거리로 가까운 것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토치라이트 가문의 실수가 오늘 거론된 것이다.

그것도 드낙, 본인의 입으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에게도 인사를 해야 해서, 이만···”

“아~ 그러시오.”

그라돈이 혁대에 걸어둔 술병을 들어 올렸다.

시간이 흐르고 원탁회의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크온 몽펠리에는 큰 군막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의문을 느낀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아크온 경은 어디에 있는가?”

“전령의 보고를 받고, 어디론가로 가셨습니다.”

귀족들은 아크온을 찾기보다는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결정을 했다. 군막들이 늘어선 곳에서 그를 찾는 건 힘든 일이었고, 길이 엇갈리면 더 늦게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아크온은 10분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땀을 조금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뛰어서 온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지각을 하셨소?”

귀족 기사의 말에 아크온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그게 소리쳐서 말했다.

“〈백금 왕가〉가 북부 국경에 병력을 결집시키고 있소! 〈파이룬 가문〉과 현재 거리를 두고 대치 중이라고 하오!”

“마, 말도 안 되는!!”

“정말이라면 전면전 아닌가!!”

“뒤로는 트롤이고, 앞으로는 백금 왕가라니!”

“명분은 무엇이오!”

“〈왕족 제퍼 플래티넘〉을 모욕한 자를 수도로 압송하기 위해서라고 하오!”

“개소리다! 불파겐이라는 주춧돌 위에 집이 놓이기 전에 선수를 치는 것이오!”

그 외침에 아크온 또한 긍정했다.

급박한 상황 앞에서 드낙은 볼에 묻는 차가운 감각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다.’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명확하게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바람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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