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2 <-- 트롤 토벌 -->
트롤이 드르렁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굴 속에 있는 트롤은 곯아떨어진 것 같았지만 그 기감은 여전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트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핏빛 쥐〉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동굴을 무너뜨릴 생각으로 동굴의 기반이 되는 양쪽 벽을 파헤치고, 단단하게 굳어진 흙을 손으로 긁어내 물렁하게 만들고, 빈틈을 곳곳에 만들었다.
“찍찍. 여기에 큰 돌이 위에 있다. 흙을 걷어내면 동굴이 무너질 것이다.”
운 좋게 동굴 통로의 위에 큰 암반을 발견하기도 했다. 핏빛 쥐들은 능숙하게 움직여서 조심조심 깎아먹었다.
드득.
흙이 짓눌리며 육중한 바위가 움직이며 소리가 조금 났다. 그것만으로도 트롤이 눈을 떴다. 상체만 일으켜서 목을 긁으며 주위를 훑었다. 어둠 속에서도 트롤은 어느 정도 시야가 확장되어있었다.
스스, 토독.
“구룹?”
트롤이 흙과 작은 돌이 머리에 떨어지자 고개를 들었고, 단번에 토사가 떨어지며 큰 바위가 트롤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벌떡 일어난 〈검은 무늬 트롤〉이 돌을 받아서 아래에 놓았다.
동시에 동굴이 무너졌다. 그 속에서 트롤은 힘차게 양팔을 저으며 공간을 만들며 밖으로 순식간에 뛰쳐나왔다.
뛰쳐나온 트롤이 마주한 것은 달빛에 서슬 퍼렇게 빛나는 악령의 머리였다.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였다.
퍼벙!
가죽이 너덜하게 되었고, 피가 조금 새어 나왔지만 그것뿐이었다. 트롤이 달빛이 내려앉은 곳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거침없이 악령 화살이 쏘아진 곳으로 뛰어들어갔지만 무엇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트롤의 검은 머리카락이 드낙의 갑주를 슥 만지고 지나갔지만 트롤은 무식하게 앞으로 뛰어나가며 좌우를 살폈다.
〈어둠〉을 〈마브로스 리꼬〉에게서 배운 것이 드낙이었다. 특히나 드낙은 암살자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만약 〈검은 꿈〉이 아니었다면 사람 사냥꾼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는 탁월한 은신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크아아앙!”
분통을 터트린 트롤은 나무를 여럿 부수어서 사면을 막고 지붕을 놓은 채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 사이에 쪽잠을 자던 드낙은 카이야가 톡톡 건드리자 일어나서 집을 부수었다.
굴에 들어가면 핏빛 쥐들이 굴을 무너뜨렸고, 오두막을 척척 짓고 누우려고 하면 드낙이 방해했다. 놈은 아예 땅바닥에서 잠을 자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드낙의 흑마법이 얼굴을 두드렸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나온 〈검은 무늬 트롤〉은 그날 내내 드낙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트롤이 드낙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어둠은 드낙의 편이었다.
동이 트고 햇빛이 산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으!”
트롤이 갈증을 느끼며 고여있는 물을 거침없이 마셨다. 그리고 몇 걸음 가다가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더니 똥구멍에서 푸다닥 소리가 나며 트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설사가 로켓처럼 뿜어져 나왔다.
“꾸읍.”
나뭇잎으로 대충 닦으려고 앉는 자세를 취하자마자 설사가 폭발했다. 드낙이 독을 푼 것이다.
트롤의 체력을 소모시키는데 온갖 악랄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돌팔매질로 새를 피떡으로 만들어 격추시킨 트롤이 성큼성큼 새가 떨어진 곳으로 향했지만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땅에 구멍이 하나 나있었다. 그곳에 떨어진 깃털을 본 트롤이 분노해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우악스럽게 집어넣어서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찍찍! 트롤의 음식 빼앗아 먹는다!”
“남의 것이 원래 맛있는 법이다!”
핏빛 쥐들은 어둠 속에서 트롤이 잡은 새를 나눠먹었다. 식사 후에는 앞발 바닥에 침을 묻혀서 손으로 입 주위를 문대서 깔끔하게 만들었다. 드낙이 보여준 행위 때문이다. 드낙이 입가에 있는 지네를 닦아주었다는 것으로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산양을 두고 드낙과 트롤이 격돌을 하기도 했다.
“이 개 같은 인간이!!”
트롤은 드낙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욕을 지껄였다.
그 사이에 도노가 산양을 질질 끌고 갔다. 어느 정도 가면 핏빛 쥐들이 나타나서는 힘을 도와서 순식간에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전혀 지치지 않네. 지구력이 약한 게 맞나? 악마의 힘으로 신체능력이 높아져도 너무 불합리한데.’
트롤의 맹공을 피하며 팔뚝의 힘줄을 기어코 끊어내며 도주에 성공한 드낙이 짜증을 냈다. 설사를 통해서 몸에 수분이 빠져있을 텐데도 여전히 활력이 대단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무려 3일간이나 지속되었다. 아크로바틱 한 트롤에게 랜스를 성공적으로 먹이려면 놈을 지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도 못 잔채 3일을 시달린 트롤은 빠르게 메말라갔다.
육체에 수분이 쫙 빠지고, 지방도 거의 다 사라졌다. 근육에 에너지를 제공해야 할 지방이 없다는 것은 오래 힘을 못 쓴다는 뜻이기도 했다. 격렬하게 30합만 겨루어도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세파리아스는 어제 결행하라고 했지만 발바룽은 〈사냥꾼〉으로서 끝을 내기 위해서는 하루를 더 기다리자고 했다. 드낙은 이왕 한 김에 이 컨셉으로 끝을 내고 싶어 했으므로 그렇게 하루를 더 드잡이질을 했다.
“쉬익. 쉬익.”
트롤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평소에는 손쉬운 산길이었지만 이제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사타구니를 흐르는 물똥 때문에 똥구멍이 헐어버려 따가웠다.
똥독이 오르고 있어서 앉는 것도 고통스러워 옆으로 눕듯이 있어야 했다. 잠을 자지 못해 정신력이 바닥이 된 〈검은 무늬 트롤〉은 검은 불꽃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곳곳으로 불똥이 튀어 모든 것을 불태웠다.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트롤은 완벽하게 몰이를 당하고 있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인하여 협소한 곳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계곡으로 흘러들어갔다. 몸을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하늘 위로 태양을 등지며 카이야가 놈을 완벽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드낙은 놈의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망설임 없이 놈을 따라가고 있었다.
“크악!”
트롤이 발작적으로 들썩거렸다. 이성이 사라진 트롤의 이동 루트 따위 동물을 제법 사냥한 드낙에게는 손쉽게 예측 가능한 일이었고, 날카로운 말뚝을 트롤이 밟았다. 그 앞으로 말뚝이 주르륵 나열되어있었다.
뼈 무게만 해도 대단했기에 트롤은 뼈를 뚫지는 못했지만 피부를 뚫고 살로 파고든 말뚝을 뽑아내고, 다른 길을 찾았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그것을 힐끔 본 드낙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말뚝조차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지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검으로 놈을 죽이면 된다.’
그렇게 긴장감도 많이 생기지 않았다. 트롤은 드낙을 찾아낼 능력이 없는 것이 확인되었던 밤의 추적에서 이미 〈사냥감〉이 되어버렸다.
계곡의 위로 기어올라간 드낙은 트롤이 오기를 기다렸다. 트롤은 네 발로 움직이며 계곡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가서 몸을 누웠다.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는 듯했다.
드낙은 라이트 랜스를 여럿 허공에 던지며 하나를 쥐고 그대로 트롤을 향해 뛰어내렸다. 모든 체중을 다하여 놈의 머리를 겨누었다.
트롤은 꾸벅꾸벅 졸다가 라이트 렌스가 바닥에 먼저 떨어지자 반사적으로 몸을 굴렀다.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잘 때마다 겪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푸걱!
그 때문에 드낙은 트롤의 골통을 관통하지는 못했다. 대신 날개뼈와 오른쪽 어깨에 라이트 랜스를 박아 넣을 수 있었다.
끝이 박살 난 라이트 랜스였지만 드낙의 체중과 뛰어내리면서 생긴 가속력 때문에 막힘없이 트롤의 몸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커억!”
크게 휘청거린 트롤이 손으로 땅을 짚었다. 불의의 일격이었고, 살면서 가장 피해가 큰 공격에 당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순식간에 뒤로 빠져서 라이트 랜스를 하나 더 쥐었다. 트롤이 고함을 질렀다. 다른 손으로는 관통당한 랜스를 뽑으려고 했지만 그럴 시간을 드낙은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또 하나의 라이트 랜스가 투척돼서 허벅지 아래에 박혔다. 뼈에 금이 가고, 살이 축 처지면서 라이트 랜스가 덜렁거렸다.
푸욱!
하나를 뽑으면 하나를 더 넣고, 그것이 10번 반복됐다. 트롤이 랜스를 똑같이 던졌지만 드낙을 맞출 수는 없었다. 거대한 랜스는 눈에도 잘 보였고, 관통력이 높기에 자연스럽게 타격 면적도 적었다.
인간의 몸으로 못 피하는 게 웃길 지경이다.
피로 범벅이 된 트롤과 박살이 나거나 끝이 부러져 쓸 수 없게 된 랜스들이 널브러졌다. 피냄새가 계곡에 물씬 풍기며, 곳곳에 핏빛 쥐들이 나타나서 그것을 구경했다. 이스핀은 산의 초입에 보급품을 지키고 있었기에 막힘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트롤이 그것을 곁눈질로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이 자신의 묫자리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러자 없던 힘이 생겨났다.
“크오오오오!!!”
크게 함성을 내지르며 드낙을 향해 내달렸다. 몸 곳곳에 박혀있는 몇 개의 라이트 랜스가 덜렁거리며 다시 뽑혀져 바닥에 떨어지고, 부러져서 몸에 그대로 박혀있게 되기도 했다.
드낙은 도망치지 않았다.
“밴쉬 애로우.”
간략화가 된 흑마법이 순식간에 드낙의 손 주위에서 하나, 둘씩 튀어나왔다. 검은 불꽃이 일렁거리며 악령이 트롤의 머리를 향해 튀어나왔다. 그 숫자는 드낙이 달려가면서도 계속되었다.
파바바바바바바박!
끝도없이 악령 화살이 트롤의 머리를 두들겼다. 버둥거리면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21개가 넘는 악령 화살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이에 드낙의 검이 정확하게 트롤의 목젖을 후려쳤다. 그저 달리기만하는 트롤은 드낙에게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팡!
조금 약한 굉음과 함께 목젖이 터져나갔다. 트롤이 크게 기울었다. 뜯겨져나간 살점과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드낙의 공격은 계속됐다. 아래에 보이지 않는 드낙을 잡으려고 트롤의 팔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파방!
연이은 두 번의 공격이 연달아 트롤의 목을 쳐서 목뼈를 부러뜨리고 트롤을 죽였다.
쿵!
육중한 1m나 되는 트롤의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눈알이 드낙의 모습을 좇았다가 이내 아래로 조금 내려가서 시선을 잃었다. 놈은 눈을 감지도 못했다. 억울하기야 억울할 것이다.
드낙은 바짝 비벼서 납작하게 만든 가죽을 꺼냈다. 연금술에도 제법 조예가 있는 그였다.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가죽에 가득 받았다. 사후경직에 걸린 트롤의 몸이 덜덜 떨렸다. 트롤의 파손된 육신은 목이 떨어졌음에도 온전한 모습을 찾아갔다.
사람의 상체만 한 가죽 포대를 단단히 묶고, 나무로 고정한 다음에 드낙은 박혀있는 랜스들을 뽑아냈다. 그곳에서도 피가 나왔는데, 빠르게 살을 만들어내고, 가죽으로 상처를 뒤덮었다.
‘무시무시하군.’
활력은 재생하지 못하지만 육체의 파손을 빠르게 회복하는 트롤의 강력한 힘은 죽어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재생의 힘이 〈피〉에 있다는 것을 드낙은 간파할 수 있었다.
목에 밧줄을 십자로 걸어서 묶어 들고, 피를 담은 가죽 포대를 짊어지고, 드낙은 도노와 카이야에게 시체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그가 산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트롤의 머리통은 1m 정도였다. 그 정도로 대단히 컸기에 산길을 내려갈 때마다 드낙은 힘이 들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추처럼 퉁퉁 몸을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방 익숙해졌다.
드낙은 허망하게 죽은 트롤을 통해서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전투의 판세가 이렇게 다르구나.’
〈사냥감〉이 된 〈검은 무늬 트롤〉은 허망하게 드낙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전사〉로서의 〈검은 무늬 트롤〉은 드낙의 맞수였다. 그 차이를 보며 드낙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계가 결코 강자(强者)에게 상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에게 있었던 독살 사건에 깃든 중요한 진리를 더욱 고쳐잡을 수 있었다.
‘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그 어떤 힘이 나오더라도 일신의 회복력, 방어력을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도 생길 지경이었다. 그토록 강했던 트롤조차도 허망하게 죽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산길을 내려오자마자 이스핀이 보급품을 지킨 채 허둥지둥 달려왔다.
“대, 대단하십니다.”
“준비한 봉화나 지펴라. 좀 쉬어야겠다.”
드낙은 괜히 약한 소리를 냈다.
“예!”
이스핀은 짧게 있는 평지에서의 숲을 지나 평야로 나와서 미리 준비해둔 생나무와 장작이 뒤섞인 곳에 불을 지폈다.
봉화였다. 매캐한 검은 연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수십 분이 흐르고, 지평선의 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자신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되돌아온 이스핀에게 드낙이 눈을 감은 채 물었다.
“화답을 하든?”
“예. 확실하게 검은 연기를 지평선에서 확인했습니다. 한숨 주무십시오. 음식을 만들어놓겠습니다.”
“부탁한다.”
드낙은 나무 등치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돌이 달구어졌을 즈음에 일어나 돌을 땅에 넣고 다시 잠을 청했다. 오랜만의 숙면이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 작품 후기 ==========
6108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작품설정에 표지 이미지를 띄워놓았습니다. 컨셉은 모든 일이 폭망해서 떠돌이가 된 중년드낙입니다. 검은 탐욕이 여전한 붉은 눈이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