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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331화 (330/1,239)

0331 <-- 트롤 토벌 -->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원탁 회의〉 그리고 그곳에서 〈검은 무늬 트롤〉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자연스레 〈자유기사 바림〉의 증언이 수상스러웠고 에녹 히터 경이 그와 짧은 다툼 끝에 포승하여 끌고 왔다.

“오해요! 오해!”

코가 무너진 바림이 발악했다. 하지만 기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특히나 이스핀은 벌써부터 그를 유죄로 보고 있었다. 정황상 의심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드낙은 눈치를 살피고 반응이 심각하자 일어나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아직 죄인이 아니오. 말을 들어보는 것이 먼저 아니겠소?”

주변인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곳에서의 드낙이 가지는 위치가 절로 보이자 바림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자신의 목줄이 한 개인의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검은 무늬 트롤〉에 대한 모든 것을 찬찬히 말해보시오.”

“예, 예!”

그가 상세하게 말을 늘어뜨려놓았다.

“검은 불기둥이 솟아나고, 용암처럼 불꽃이 흘러내렸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준비한 함정들이···”

도중에 목을 축일 물을 드낙이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다른 기사들도 물을 마시는 모습에 갈증을 느끼며 술이나 물을 찾았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휴식시간에도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놈은 비대하기 짝이 없어서 용병들과 민병대들은 전략이 무너졌음에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바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든 말을 들은 기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멍청한 놈.’

드낙조차도 바림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드낙의 증언과 바림의 증언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리고 두 사람 중에 누구의 말을 믿을지는 명백했다.

모두가 드낙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번 일의 책임자는 그인 것처럼 굴었다. 드낙은 조금 고민에 빠졌다. 이런 자리를 더욱 빛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없던 공명심도 생겨나는 게 재판할 때였다.

소시민이 완장을 차서 눈이 벌겋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했다. 〈욕심〉이라는 놈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용병대장과 민병대 중에 영향력 있는 자를 몇 데려와서 증언을 받아봐야겠소.”

“허. 그럴 필요까지 있겠소? 이미 명명백백히 밝혀졌지 않소.”

그 말에 드낙이 웃으며 말했다.

“돌다리도 짚고 넘어가는 게 좋지 않겠소. 특히나 이 일에 연관된 사람과 벌을 받을 사람은 모두 귀족 아니요? 몰락해도 그 정도의 대우와 수고를 해주고 싶소.”

기사들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제법 그럴듯한 쇼였기 때문이다.

“미친 개소리요!”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게 말 그대로 시장 바닥이 되어버렸다. 드낙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줄 몰랐고, 기사들 또한 행정과는 눈이 멀었다. 찍하면 꽥하며 죽어야 하는 것이 기사들이 상대하는 자들이었다.

고로 이런 식의 접근에 있어서 노하우가 있을 리 없었다.

“뭐? 이 미친 자유기사 놈이, 몰락해서 우리를, 내 식구를 다 싸잡아 죽이려고! 함정 같은 소리 하네! 모두 개소리요!”

“저놈이 개소리요!”

“이 새끼가 개소리요!”

바림과 용병대장이 서로에게 침을 뱉었다. 꼴사나운 짓거리였다. 드낙은 두 사람을 멀리 놔두고 마을 사람들의 말도 들었다.

“트롤을 잡으려고 함정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그럴 자재도 없고, 벌목이라도 하면 트롤이 달려들까 봐 아무도 나무를 건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바림 자유기사가 벌목을 금하였고, 용병들 또한 감시를 했습니다. 저 둘 모두 쓰레기 자식들입니다. 아기 몇몇이 체온이 떨어져서 죽기도 했습니다.”

매우 신뢰성이 있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바로 〈트롤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벌목 금지령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했다.

‘미친 새끼들이구나.’

드낙 또한 전투에 있어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골통을 때려 부수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판결을 내리려고 하는데, 제가 이런 것은 많이 본 적이 없어서 의견을 묻고 싶소.”

드낙이 기사들에게 지혜를 구했다. 기사들은 너도나도 조언을 해주었다. 온갖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정〉은 특히나 기득권이 모양새를 내고 위세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였고, 많은 시민들이 참관하고 싶은 고등한 행사였다.

“군법으로 따지기에는 도르시안 가문은 북부의 가문이라고 할 수 없소. 들은 기억도 없고··· 아마 남부 귀족 중에 하나였을 것이오.”

“그게 가능하오?”

“토지를 빼앗긴 남부 귀족들이 북부로 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오. 물론 그중에서 돈까지 떨어진 귀족만 흘러오고 있지만···”

드낙은 여러 가지를 또 주워들을 수 있었다.

용병대장과 자유기사는 그 길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름 모를 나무 위에 걸린 두 구의 시체는 해질녘이 지나서야 내려져서 야지에 버려졌다.

〈원탁 회의〉는 그날 저녁 식사 이후에 다시 열렸다. 기사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의견을 나눌 시간이 필요했고, 드낙은 그것을 배려해주었다.

‘어차피 독식할 생각이니까.’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 가문들의 기사들을 드낙이 맞이해주었다.

“그래서 생각은 다들 해보셨소?”

“우리들은 무인이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소?”

“오히려 내가 더 환영이오.”

드낙의 빠른 대답에 〈스웬슨 보두앵〉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과를 말했다.

“아크온 몽펠리에 경께서 오기 전까지 무기한 대기를 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섰소. 협곡이나 절벽 위에 공성병기를 배치하지 않는 이상 악마의 힘을 받은 트롤을 죽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오.”

“그것뿐만이 아니오. 사제들을 모아서 조악하지만 작은 성전대라도 꾸려야 하오.”

드낙은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을 잃는다면 나중에 큰 길을 걷기에 어려울 수 있지 않겠소?”

“이해해주셔서 고맙소.”

기사들이 크게 안심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였다. 아크온 경을 기다리지 않고, 병력을 크게 잃는다면 공보다 과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진흙돼지 마을〉로 후퇴를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드낙이 스스로 나서서 이 주제의 핵심을 찌르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확답을 들었으니, 이제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을 차례였다.

“보름치의 식량을 놔두고 가시오. 난 놈과 호각을 한 만큼 끝장을 내보고 싶소. 또 보두앵의 철기들이 지닌 라이트 랜스를 사용하고 싶소만.”

“으음···”

기사들이 신음소리를 냈다. 결국 드낙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쇠고집이군.’

하지만 그 결정을 번복할 힘이 기사들에게는 없었다. 이미 드낙은 〈악마화〉가 제법 진행된 트롤과 호각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지구력〉을 생각한다면 승기는 드낙에게 있었다.

‘물러나는 게 좋다.’

‘괜히 주워 먹으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명예만 실추될 뿐이다.’

드낙이 만든 것에 숟가락 얻는 꼴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공이 아닌 것이다. 논공행상은 매우 중요한 행사였고, 그곳에서 정치를 통해 드낙을 매장할 수도 없었으므로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판단이었다.

〈선두 보급대〉가 그렇게 산길 초입에서 후퇴했다. 숲 언덕을 빠져나가 다시 평야로 향하였다. 그 무리에는 이스핀이 없었다.

“호위 기사인 제가 어떻게 드낙님만 남겨두고 빠지겠습니까?”

“놈이 어떤 놈인지 봤을 텐데?”

“싸우지는 못해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스핀의 말에 드낙은 목이 간지러워졌다. 하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말만 들어보면 간신이었지만 이스핀은 정말로 이 지옥 같은 곳에 남았기 때문이다.

“넌 자리만 지켜도 된다. 다른 짓은 섣불리 하지 마라. 내가 오면 불침번이나 서주고···”

드낙은 이스핀을 아끼듯이 조심하라고 말했다. 이스핀은 결코 전설 속에서나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영웅과 괴물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꿀떡 넘어가듯이 고개를 끄덕여대었다.

드낙은 도노와 카이야를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발바룽과 세파리아스가 만든 전략.’

일명 〈말려죽이기 전략〉이었다. 트롤과의 싸우기 전에 배경을 만드는 이 전략은 훌륭하게 드낙의 승률을 올려줄 것이다.

산을 충분히 오른 드낙이 조용히 입을 달싹거렸다.

보록, 스슥.

흙이 들썩거리면서 이내 뿔 달린 핏빛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뿔난 쥐〉는 1마리 무조건 드낙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모두 〈대장쥐〉의 제안이었다. 따라다니는 핏빛 쥐는 입 주위에 지네의 다리가 묻어있었다.

‘어휴, 더럽게.’

드낙이 입 주변을 닦아주었다. 쥐가 코를 벌름벌름 거렸다. 수염이 그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였다. 특히나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것이 핏빛 쥐였다. 약간 귀염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드낙이 동생 다루듯이 지네 다리를 닦아준 것이기도 했다.

“뜨낙!”

핏빛 쥐는 드낙을 앞에두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인간 병사들처럼 경례를 올리며 구령을 말했다. 핏빛 쥐들의 구령은 〈드낙〉이었다.

그 모습에 도노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보기에는 저 후배 놈들이 하는 짓은 그야말로 간-신짓이었기 때문이다. 드낙 또한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서 넘어갔다.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모두 모여라.”

“예! 명을 받듭니다!”

핏빛 쥐가 굴 속으로 모습을 기민하게 움직였는데, 드낙이 황급하게 불렀다.

“잠깐! 다시 와 봐.”

“예!”

“어떻게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거냐?”

“그냥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드낙이 도노를 보고 말했다.

“너도 말할 줄 아니?”

도노는 입을 꾹 다문 채 절레절레 저었다. 똑똑한 카이야에게로 의심이 되돌려졌다. 카이야는 고갯짓을 쳤다.

‘〈동굴 회색쥐〉가 일각수가 되면서 언어 쪽에 능력이 개화한 건가?’

드낙은 자연스럽게 〈정보 수집〉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았기에 양방향 정보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핏빛쥐〉들은 3시간이 지나서야 드낙에게 모일 수 있었다. 드낙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에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다른 핏빛 쥐들과는 다르게 고개를 과도할 정도로 빳빳이 올려서 턱이 정면으로 툭 튀어나온 〈대장 쥐〉가 말했다. 대장 쥐는 뒷짐을 지고 있었지만 드낙은 그것을 크게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곤충 사료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곤충 사료장?”

“예! 드낙님을 돕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부디 살펴주시옵소서.”

드낙은 고개를 끄덕이긴 끄덕했다. 식량을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봤다. 검은 꿈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검은 회의에서 무슨 말을 할지는 몰랐지만 일단 넘겼다.

“지금 온 게 전부인가?”

“예. 블러드 랫 총원 16마리입니다.”

“전보다 늘었군. 저기 뿔이 짧은 놈들이 새로 태어난 이들인가?”

대장쥐가 드낙이 가리킨 곳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분자〉들과의 전투 속에서 뿔의 힘이 조금 커진 신참들이었다. 워낙 뿔이 짧아서 커졌다고 해도 11인의 위대한 시작을 알린 〈뿔 달린 쥐〉보다는 약했다.

“네. 맞습니다. 다섯 명이 위대한 창조주이신 드낙님을 위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음···”

드낙은 무슨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대장쥐는 흡족한 듯이 코를 빠르게 벌름벌름 거렸다. 자연스럽게 수염도 위아래로 쑥쑥 움직였다.

“아무튼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실수 없이 해야 할 것이다.”

“맡겨만 주십시오!”

찍찍! 찍-찍찍!

드낙의 명령을 들은 블러드 랫이 순식간에 산 곳곳에 굴을 파며 이동통로를 만들고, 도주로를 설계했다. 오직 그들만을 위한 길이었다. 나무가 듬성한 절벽에도 굴이 하나 톡 만들어졌다.

트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절벽에 구멍을 뚫은 핏빛 쥐는 운 좋게 발견한 향긋한 약초를 냠냠 씹어먹고는 뒷걸음질 치며 굴 속으로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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